
집에서는 얼마든지 Mac을 사용해도 무리가 없지만 회사에서는 어쩔수 없이 PC를 사용해야 했고, 언젠가부터는 인터넷을 이용한 각종 생활편의(가령 인터넷뱅킹과 같은)를 누리기 위해 집에서도 PC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한창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애플이 고전하고 있을때 Mac을 과감히 몇년간 포기하고 살기도 했었다. 굳이 PC를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우연히 알게된 Dell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게 1997년이었다. 그때부터 PC를 사야한다면 Dell을 사기로 마음 먹었고 동료들과 친구들이 PC구입에 도움을 요청하면 항상 Dell을 추천했다.
이 결과 우리 어머니, 장인어른, 나, 예전 직장 후배들, 아버지의 사무실, 팀동료, 같은팀 후배의 동생 등에 이르기 까지 Dell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지금까지 구입한 Mac의 댓수만큼이나 Dell을 구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PC는 총 4대인데 Dell의 데스크탑(집), Mac Book(집), Mac mini(집에서 운영하는 웹서버) 그리고 회사로 부터 지급받은 삼성 노트북 등이다.

Dell은 복잡한 서버/스토리지 제품군을 Rack에 쌓으면서 어떤 부품들이 얼마나 들어가고 어떤 모양이 될지를 시뮬레이션 하는 간단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데 이를 이용하면 어떤 파트를 얼마나 구매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어서 나 역시 이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여러대의 랙마운트용 서버를 쌓아보고 높이가 얼마나 되며 필요한 전력은 얼마나 필요하며 어떤 주변장치들을 추가로 사야하는지 추산해 낼 수 있었다.
Dell의 내부에서도 이 소프트웨어가 널리 쓰이는데 그들 역시 내가 어림잡아 견적을 요청하면 해당 소프트웨어를 구동시켜 서버를 랙에 고정하는 레일, 각종 배선도구, 콘솔, 필요한 랙의 크기 등을 계산해 나와 같은 고객에게 보내주곤 했다.
한번은 Dell에 이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구성한 파일을 보내주고 견적서를 의뢰하였는데 Dell Korea측에서도 그렇게 자세하고 정확한 견적의뢰를 처음받아본다고 까지 할 정도였다. (나중에 진짜 Dell에 들어갈 기회도 있었다^^)
어쨋든 나는 이런 예에서 보듯 지난 10년간의 Dell제품에 대해 매우 민감한 사람이었고 그들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를 말할 수 있는 오래된 '관찰자'이다.

사실 서비스의 문제보다 스피드가 떨어진 것과 경쟁우위가 상쇄된 두가지가 가장 큰 이유이다.
이쨋든 이러한 이유로 10년전부터 마이클 델과 함께 Dell을 이끌어오던 쌍두마차중 하나인 롤린스가 1월31일 사임했고 마이클 델이 전격적으로 CEO에 복귀했다. 사람들은 스티브잡스가 복귀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마이클 델이 복귀를 하기는 해도 델을 정상궤도에 안착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엔 Dell의 상황은 98년 애플의 상황만큼 나쁜것은 아닌것 같다.
게다가 마이클 델은 현 시대에서 가장 훌륭한 지휘관중 한명이다. 전쟁터건 회사간의 경쟁이건 지휘관은 전체 전력의 50%이상을 점유한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클라우제비츠와 같은 유명한 전략가들의 믿음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도 마이클 델이란 사람은 아직도 젊은 데다가 긍정적이고 소신있는 사람으로 이번 복귀를 통해 롤린스가 없는 현재의 Dell에 대한 장악력을 더욱 높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사공이 많은 배를 통제하는 것 보다는 조건이 좋은 편이다.

잡스는 자질구레한 사업을 모두 스스로 정리하면서 병력을 한군데로 집결시켰고 편제개편을 통해 분위기를 추스리면서 때를 기다렸다. 때가 무르익고 기회가 찾아오자 그는 정예군단을 다시 전쟁터에 내보냈는데 그를 바탕으로 결정적인 거점 한군데를 확보하게 된다. (iMac의 성공) 그 후로는 모두 아시는 바와 같다.
잡스의 달라진 면모는 거점을 확보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이용하여 다음의 성공을 이루어 냈다는 점이다. (iPod의 발표) 또한 잡스는 지난날의 이상주의 적인 개척자정신을 과감히 내던졌다. 그는 세계최초로 듣도보도 않은 물건을 만드는 것을 집어치우고 기존의 물건들을 가장 최상의 것으로 바꾸는 전략을 사용했다.

사실 잡스의 이런 달라진 변화는 Dell의 기본적인 전략과도 다르지 않다. Dell은 확실하게 성장한 시장만을 빠르게 공략해서 남의 성을 탈환하는데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 HP에서 타블렛 PC, 삼성에서는 UMPC등을 내놓을 때도 Dell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Dell은 HP가 맹주로 자리잡은 프린터 시장에 뛰어들려고 준비해 오고 있었고 업계에도 Dell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파다하게 퍼졌지만 사람들은 '설마'라는 단어를 말머리 처음에 사용하곤 했었다.
Dell은 그러한 소문들을 사실로 확인시켜주며 시장에 진입하여 교두보를 확보했다. 프린터 사업과 TV등 가전 사업이 그런것들이었다. Dell은 언제나 빠르게 제품을 출시했고 의외로 쉽게 교두보를 확보하곤 했었다.
Dell이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을 때 Compaq과 같은 선두주자들은 Dell이 무엇을 하고있는지 빤히 눈으로 보면서도 애써 그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다 결국 쫓아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HP가 Compaq을 흡수했을 때 그 흡수/합병이 오히려 Dell에 도움이 되리란 몇몇 전문가의 예측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했고 결국은 그렇게 되었다. 그것은 속도의 문제였고 하루이틀에 HP이나 IBM이 따라갈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이들 두회사는 눈을 뜨고 Dell이 자신들의 코를 베어가는 것을 바라봐야만 했다. 그리고 몇년에 걸쳐 Dell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절치부심 했고 이제 거의 그것을 따라잡게 되었다.
언제나 선제공격은 Dell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Dell이 반격을 당하기 시작하자 특유의 스피드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준 데다가 여러가지 악수와 함께 대기업병까지 겹치면서 급기하 전세가 뒤집어져 버렸다.

스티브 잡스 역시 끊임없는 항복(애플의 매각)의 유혹속에서 수천킬로미터나 후퇴하여 전열을 재정비한 바 있다. 이번에는 마이클 델 앞에 그러한 상황이 놓여있다. 내가 알고 있었던 마이클 델이라면 명예를 건 무리한 돌격보다 전열 재정비를 선택하고 다시금 적들을 위협할 수 있는 전력으로 조만간 다시 나타날 것이다. 물론 앞으로 당분간 경쟁사들이 예전처럼 다시 활개를 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Posted by demitri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