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대초. 매년 대학가요제를 즐겨 보고 있었는데 이미 초딩시절 산울림과 썰물을 경험하면서 음악의 순수함에 대해 느꼈고 정오차의 바윗돌 이후 뭔가 기류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린나이에 느끼고 있었다. 우습게도 난 초딩을 졸업할때 즈음 더이상 대학가요제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이제 음악의 순수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멋이 들어가 있고 너무 프로같은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이 말세라 생각했다
- 80년대말. 거의 필연적으로 언더그라운드 매니아 클럽과 언더그라운드 뮤직 동호회에 가담하고 거기에서 몇 권의 동호회지를 만들면서 이제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은 상업성만이 유일한 음악의 목표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물론 여기 저기 자생하는 인디의 내음과 언더그라운드적인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건 이제 대세에서 밀려난지 오래였고 나중엔 거의 씨가 마를것으로 걱정했다.
3. 지금에 와서 다시 그때를 회상하고 지금의 상황을 보면 그때 예상했던 것 보다 사실 훨씬 더 않좋은 상황에 와있는 것은 분명해졌다. 예전엔 뮤지션은 줄었어도 듣는이들은 일정한 세력을 유지했는데 지난 십여년 동안 듣는이들 마저 그 시스템에 거의 소리없이 물든것 같다. 이제 음악을 찍어내는 회사들은 마음만 먹으면 계획적으로 자신들이 수년간 훈련시킨 가수들로 하여금 챠트를 휩쓸고 지나가게 만들 수 있다.
4. 오늘 영국의 80년데 뉴웨이브 음반 몇 개를 만지작거리면서 비록 락의 시대에서 좀 더 상업성을 지닌 뉴웨이브 시대로 넘어가면서 음악은 좀 더 가벼워졌지만 그들의 정신은 오히려 80년대가 가장 초롱초롱 살아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발견하고 그 점이 상당히 부러웠다. 그들의 히트곡들을 살펴보면 듣기도 좋으면서 주제의식이 넘친다. 클래쉬나 엘비스 코스텔로 등은 단순히 현실의 사회문제와 관계없는 남녀간의 사랑 노래만으로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5. 내가 우리나라의 대중음악 사조를 우려했던 것은 사실 너무 단편적으로 수렴해가는 노래의 주제때문이었다. (젊은날엔 참 이 주제로 유치한 글도 많이 썼다) 사회문제나 시대적인 고뇌 등이 대중음악에서 퇴장해버리고 난 뒤엔 감각적이고 선정적인 소재, 누구나 그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남녀간의 사랑정도만 남게 되었는데 그것도 요즘 들어선 내면의 사랑도 아닌 피상적으로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는 것들만 남아버렸으니 어찌 개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6. 현실이 더 암울한 것은 요즘의 뮤직 매니아들은 그런 무거운 주제와 감각적인 사운드가 아니면 접근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뭐…괜한 우려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아예 삐딱하게 잘못보고 있었는지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오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오늘 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요즘의 정치와 삶이 피폐해진 현실때문이었다. 사실 이럴때 가장 민감하게 세상의 문제를 탐지하고 앞서 나가는 사람들이 뮤지션, 화가와 같은 예술가들인데 이젠 그런 기반마저 없어지고 있는 것 같아 더 착잡해져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