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전, 오랜만의 A매치 승리

By | 2007-02-07

유로 2004는 역대 유로매치들 중 가장 재미없는 대회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모든 팀들이 그리스의 수비를 뚫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리스는 단 한번의 역공이나 세트플레이에서 장신의 공격수들과 수비수들이 머리로 밀어넣거나 문전혼전을 이용하여 골을 넣은 후  단단히 수비를 잠그는 형태로 경기를 마감하곤 했습니다.

오늘 풀럼 구장에 서있던 그리스의 오토 레하겔 감독의 ‘승리방정식’이었는데요.   그 패턴은 오늘 한국대 그리스전에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전반 초반에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위협적인 압박을 가해오기 시작했고 다른 유럽팀들에 비해 체력적으로 열세인 한국을 상대로 골에이리어 부근으로 직접 볼을 투입하면서 슬슬 재미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190cm가까운 장신이다 보니 양쪽 사이드돌파에 의한 크로스 보다는 단순하게 중앙으로 올려주고 양포스트가 그걸 머리로 떨구면 양사이드에서 달려드는 미드필더들이나 포워드가 그것을 받아 먹는 단순한 스타일이었죠.   만약 노르웨이나 덴마크 같은 북구의 완강한 팀이었다면 그리스의 조직력도 단단치 못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금방 다른 해결책을 모색했어야 했겠지만 시차적응과 포백 수비진의 언밸런스로 애를 먹는 한국에게는 그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는 시종일관 그 방법을 놓지 않았고 금방이라도 골이 터질것만 같았기에 끝까지 그 방법에 매달렸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 때문에 한국은 수차례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지만 조직적인 수비없이도 그럭저럭 상대해 낼 수 있었죠.    그야말로 문전앞에서 누가먼저 걷어내느냐의 싸움이었으니까요. 

며칠전 레딩과의 경기에 출장했던 맨시티의 사마라스는 그 당시에도 그리 위협적이지 못했는데 오늘 경기에서도 약간은 설익은 듯한 기량으로 모기떼와 같은 한국수비들에 둘러쌓여 성질만 있는대로 부리고 후반전에 교체되어 나갔습니다.  

만약 아스날과 같은 패싱게임 위주의 제대로 된 국대들에게 걸려들었다면 포백이 농락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를 2006년 가나와 상대하면서 겪은바 있죠. 

결과적으로 그리스의 이러한 단순한 공격전개가 한국팀을 살려준것 같습니다.   한국팀에게 오늘경기는 2007년의 첫 A매치이기도 했지만 런던 한복판에서 벌어진 한국팀/선수의 쇼케이스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천수에게는 중요한 쇼케이스였고 오늘 그가 충분히 욕심을 부릴거라는 것은 축구팬이면 웬만큼 예상되는 것이었죠.   실제로 그리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었던 것은 이천수의 크로스와 킥이었습니다.   한국팀의 공격은 전반적으로 깔끔하지 못했는데 오늘 중앙 미드필더로 나선 박지성이 분전했지만 막상 그 볼을 배급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리스의 공격을 차단하고 나서는 1차적으로 중앙의 박지성에게 볼이 투입되고 박지성이 중앙으로 돌파를 시도하거나 좌우로 볼을 배급하곤 했는데  왼쪽날개(명목상)인 이천수-이영표쪽은 활발하게 움직여줬지만 오른쪽의 설기현-오범석 라인은 내내 침묵을 지켰습니다.

이호-김남일의 더블 볼란치는 오늘 매우 좋았습니다.  이들이 역공을 그리스진영에서 먼저 차단하거나 파울로 끊어 그리스의 흐름을 적절하게 차단한 점은 매우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포백의 지역방어 능력은 조금 문제가 있었고 경험이 많지 않았던 오범석의 자리가 종종 비어있기도 했습니다.   보통 포백의 지역방어 한곳이 뚫리면 전체가 무너지는 양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오늘도 한두번의 그런 모습이 나왔던 겁니다.  

중앙수비는 김진규-김상식 라인이었는데 이 두명이 꽤나 견고하게 그리스를 물고 늘어져준 덕분에 실점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오랜만에 A매치에 출장한 김용대가 수퍼세이브라 할만한 2-3차례의 결정적인 선방과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베어백 감독이 골키퍼 기용을 놓고 고민좀 할 것 같습니다.

경기전체를 보자면 무리다 싶을 정도로 양팀의 선수들이 미친듯이 뛰어다닌 스피디한 경기였고 다들 조직력면에서는 별로였습니다.   전반초반의 그리스의 파상적인 공세와 압박을 침착하게 넘기고 나서 서서히 볼의 점유율을 끌어올리면서 박지성의 중앙, 이천수의 측면이 살아나면서 경기는 이내 대등하게 바뀌었고  후반전들어서는 그리스가 대거 6명의 선수를 교체투입하였지만 스피드는 전반전만 못했던 대다가 1명밖에 교체하지 않았던 한국을 밀어붙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던중 박지성이 페널티에이리어 왼쪽 30여미터 지점에서 프리킥을 얻어내면서 분위기가 만들어졌죠.  저도 순간 이천수가 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가 후반전에 골키퍼를 교체한 것이 화근이었는지 그리스 골키퍼는 먼쪽의 포스트로 먼저 방향을 잡았다가 니어 포스트로 날아오는 프리킥을 막아내지 못하고 골을 허용했습니다.    실점직후는 거의 한국 페이스였습니다.  설기현이 원톱으로 포지션을 바꾸고 나서 결정적인 찬스를 잡았고 공황에 빠진 그리스를 양쪽 측면을 중심으로 계속 공략했습니다.

사실 이때 추가골을 넣어서 그리스를 주저앉혀버렸어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정신을 차린 그리스는 후반 40분을 넘기면서 막판 대공세를 펼쳤고 인저리타임에 문전혼전에 이은 골을 성공시켰지만 선심이 이미 기를 들고 있었죠.  정말 가슴철렁한 순간이었습니다.    경기는 그대로 1:0으로 끝이 났구요 ^^

오늘 프리미어리그 3인방중 박지성이 전반전 말미에 잡은 헤딩슛은 정말 아쉬웠습니다.  골대를 맞고 밖으로 나갔는데 박지성의 골대불운이 오늘도 이어지더군요.   설기현은 전반전과 후반전 중반까지 오른쪽에서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오범석과의 유기적인 호흡이 맞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오히려 조재진이 교체되어 나간 후 중앙 원톱에 자리잡고 나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영표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크게 무리가 없었죠 ^^

베어백감독은 오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지금까지의 A매치에서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멤버교체를 하지 않거나 포지션의 변화를 거의 주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이것저것을 저울질 해보았습니다.   박지성을 중앙에 놓은채 시작했다가 조재진을 빼고 설기현을 중앙으로, 박지성을 우측으로 밀어넣어 보기도 하는 등 주로 공격진의 포지션변화를 테스트했었죠.

베어백 감독으로서는 오늘 경기에서 졌다면 정말 큰 곤욕을 치를뻔 했는데 천만 다행입니다.  

오늘 풀럼의 홈구장은 의외로 관중이 많이 입장하기도 했지만 상암구장에서 경기하는것과 같이 한국팬들이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어서 ‘어디나 한국사람이 많구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오늘은 너무 두서없이 막 적어내려갔네요 ^^ 어쨋든 이기니까 기분은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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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oughts on “그리스전, 오랜만의 A매치 승리

  1. 비탈길

    오늘 경기를 못봐서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좋은 리뷰를 읽게 되어서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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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감사합니다…사진이나 동영상 등 볼거리 없이 글만 빼곡하게 있으니 보기가 참 민망했습니다만 힘이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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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효준,효재아빠

    오늘 이겼네 그려..하이라이트 잠시 봤더니 여러 차례의 실점 기회도 있었더만.
    지성이는 오늘도 골대를..
    천수 Lee는 멋지게 한 건 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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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꿈바라기

    언제나 촌철살인 같은 리뷰네요~밤새고 봤는데~궁금증이 사라졌네요~요즘 축구 리뷰도 많이 해주세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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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 경기는 자주 보긴하는데 게으르기도 하고, 거의 축구블로그가 될까봐 자제하고 있었답니다. 게다가 제가 다른분들처럼 그렇게 전문가 수준도 아니어서 ^^;;… 조금 더 자주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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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야구시즌이 돌아오고 있으니 이제 또 슬슬 얘기를 시작해야지..찬호도 부담없이 다시 시작하게 되었으니 올시즌에 성적좀 올릴거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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