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웍

사진 위쪽은 지난 9일(한국시간 10일) 애플의 미디어 이벤트 키노트에서 팀쿡이 애플와치를 설명하는 장면입니다.  애플와치를 크게 세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하려고 세가지 그림이 나와 있습니다. 첫번째 그림은 시계로서의 기능이고 두번째는 의사소통 기능, 세번째는 피트니스 기능입니다.   이런 접근법은 매우 좋습니다. 기능적으로 복잡한 것들 수십가지를 단순 나열하기보다 세가지의 방향성을 가지고 그에 묶어 각각 설명하면 청중의 머리에 더 잘 남게되죠.  전 강의때 쉬운 이해를 돕는 단순한 구조를 만드는데 집중하라고 항상 얘기합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팀쿡의 접근은 교과서적이죠.

그러나 그건 팀쿡이 처음 시도한건 아니었죠. 어디선가 봤던 구조였거든요. 7년전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발표할 때도 잡스는 아이폰을 세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하나는 아이팟으로서의 기능, 또 하나는 전화기로서의 기능, 마지막은 인터넷 단말기로서의 기능입니다.  2007년 키노트는 100분간 진행되었고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되었으며 마지막에 아이폰을 배치하여 80여분이나 할애해서 설명합니다.  그때와 지금 프리젠터는 달라졌지만 무대뒤에서 그 키노트를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들은 거의 같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니면 그 전통을 계속 이어받고 있거나요.  그 기조가 예전부터 지금까지 도도하게 한줄기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거든요.

애플은 셋으로 나누는 구조를 좋아합니다. 어지간하면 큰 구획은 일단 셋으로 나누고 시작하죠. 아마 그 큰 개념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겁니다.  일단 7년전 잡스의 키노트나 며칠전 팀 쿡의 키노트 모두 전형적인 애플표 프레젠테이션의 DNA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디테일로 들어가면 안타깝게도 같은 무공이면서도 내공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죠.  전 그걸 잡스와 팀쿡의 차이로 생각합니다.

잡스는 그 셋이라는 프레임웍을 처음부터 공고히 하기 위해 간단한 명칭을 텍스트로 박아넣고 청중들에겐 ‘오늘 신제품이 세가지가 있다’고 농담을 던집니다.  그런데 결국 그 세가지 신제품이 하나의 기기에 담겨있다고 하면서 그 세가지를 주입시키기 위해 두번이나 반복해서 선생님처럼 세 단어를 반복해서 얘기하자 좌중은 웃음바다가 됩니다. 그렇게 세가지 구조를 공고히 하고나서 시작하죠. 사실은 그 세가지 이전에 UI문제를 길게 얘기하고 난 다음 본격적으로 그 세가지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봅니다.  그 각각은 하나의 챕터로 구성되어 그에 맞는 게스트가 무대에 등장하고 그에 맞는 설명을 잡스가 하고 그에 맞는 데모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세명의 게스트와 세번의 데모와 세번의 설명이 있게 되죠.  정말 명확하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고 그 때문에 전체 내용이 머리속에 체계적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구조였죠.

7년전 잡스가 했던 정확히 비슷한 무공을 이번엔 팀쿡이 구사합니다.  U2의 공연을 제외하면 7년전과 같은 100분 정도의 키노트였고 아이폰-애플페이-아이와치로 이어지는 3단 구성도 같습니다.  그를 위해 항상 키노트때마다 맨 첫부분에 했던 회사의 성과자랑 10여분을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7년전 아이폰이 그랬던 것 처럼 애플와치가 키노트의 주인공으로 세 방향의 구조로 구성된 것 역시 같았습니다.  그러나 세부적인 부분으로 들어가서는 역량의 차이를 여실하게 보여주었죠.  잡스가 전체 구조를 명확하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에 반해 팀 쿡은 일단 그에 실패합니다.

애플와치 키노트의 논리전개가 저렇게 세 갈래로 뻗어나가고 있다는걸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아마 7년전에 비하면 기억하는 분들이 매우 적을겁니다.  이걸 왜 팀 쿡과 잡스의 내공의 차이라고 느끼냐하면 아래의 화면때문에 그렇습니다.  지친 기획자들이 ‘A precise, customizable timepiece’라고 초안을 잡스한테 갖다 주면 잡스는 한 단어로 줄여오라고 호통을 쳤을겁니다. 2007년은 진짜 한 단어씩이었죠.  일단 저 명칭을 기억하기도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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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어집니다. 먼저 팀쿡이 아이와치의 등장을 선언하고 개요에 대해 설명하고나면 막바로 세 파트로 나뉘어 설명이 이어져야 하는데 그때 조니 아이브의 나래이션이 곁들여진 동영상이 다시 등장합니다.  이런 형태의 동영상도 애플이 가진 전형적인 레퍼토리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동영상은 이전까지의 동영상들과 다르게 거의 두배에 달하는 길이로 10분이나 상영됩니다. (잡스였다면 절반으로 잘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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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영상만 해도 이전과 같은 형식에 감탄할만한 영상을 보여준다는 면에선 같습니다만 메시지를 말하는 부분에서는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내공의 수위를 보여줍니다.  어쨋든 이 동영상이 너무 길어 팀쿡이 3으로 구획정리를 했다는 것을 모두 까먹어버릴 즈음 쿡은 케빈 린치를 무대에 올려 데모를 시작합니다. 놀랍게도 린치는 팀쿡이 말한 세가지중 첫 두가지를 구분없이 단순나열식으로 보여주고 끝을 냅니다.  마지막 순서는 당연히 피트니스 차례였는데 팀쿡은 그에 대한 개요를 간단히 말하고 데모를 생략한채 이걸 다시 3분 46초짜리 동영상으로 대체합니다.

결국 구조는 뭉개져버렸습니다. 완전 애플답지 않은 키노트였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여전히 키노트 부문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애플의 키노트에서 광고나 필름은 간간히 등장하긴 했지만 이번처럼 많고, 길지는 않았습니다.  조니 아이브는 애플와치에서 10분을 등장했고 아이폰에서도 6분이나 등장합니다.  100분간 무려 10개의 동영상이 등장하죠. 애플와치에서는  지구모양으로 시작해 애플와치가 등장하는 영상만 2분이고 조니 아이브가 10분, 피트니스가 거의 4분 가까이를 잡아먹었습니다.  케빈린치는 데모에만 15분을 연속해서 사용했는데 그 역시 역대 최장시간이 아닌가 의심되더군요. 그리고 팀쿡이 나머지 15분의 애플와치 설명을 담당합니다만 거의 개요에 대한 부분이었으므로 이 역시 조금 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전 제목과 같이 ‘같은 무공, 내공의 차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었죠. 저로서는 잡스의 부재를 키노트에서 여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비한다면 이번 키노트가 생각보다 심한것 같습니다. 기획의 부재를 그대로 드러내버렸는데 잡스가 없었던 작년과 비교해도 떨어진 다는 것은 이번 키노트의 준비가 더 촉박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추측하게 합니다.

게다가 이번 키노트는 대형 실시간 중계사고까지 겹쳐버렸습니다.  중국어 실시간 통역과 처음으로 영상이 되돌아가고 끊기는 문제 등으로 거의 역대 최악의 사고로 불릴만했죠.  게다가 키노트의 시작을 동영상으로 했는데 이는 작년 WWDC의 Intention을 떠올리게 합니다만 (전설의 애플광고 Best 10 참조)  실제로는 그보다 OK Go의 뮤직비디오를 앞서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애플의 이미지에 대한 영상이었는데 그것이 OK Go와 겹치면서 촛점을 흐려버렸고 3분가까이로 상영시간이 길어서 동영상에 나온 텍스트는 거의 기억을 못해낼 지경이 되었습니다.    Intention이 90초였다는 것을 감안할때 이건 무리수였습니다. 역대 최악의 애플 동영상으로 꼽을만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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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종일관 혹독하게 프레젠테이션을 평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애플의 아이폰 6 플러스는 역대 최고수준의 예약판매를 기록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 역시 프레젠테이션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기억해둘만한 장면입니다.  전 팀쿡이 아니라 스티브 발머가 발표했더라도 그랬을거라 생각합니다.   이미 애플의 지금상태는  프레젠테이션 자체로 사람들의 마인드에 변화를 주던 (제 용어로 한다면 반응을 설계하는)  단계를 지난것 같습니다.  이 역시 지금의 애플이니 가능한 얘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