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혁신 어워드 출품에 대한 의뢰

By | 2014-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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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기획자의 생각정리 역량 첫번째.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

지난 화요일 공개강의가 끝난 후 난 강의에 참가한 어떤 분으로부터 그가 작성한 어떤 문서에 대한 타당성 검토 의뢰를 받았다. 그분이 내게 건넨 워드프로세서로 프린트된 문서 10여장은 영문과 한글이 반반씩 섞여있었다. 집에와서 찬찬히 읽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편의상 나에게 의뢰한 분을 K씨라 부르기로 하겠다. K씨는 어느 국제 기구에서 주최하는 ‘OO에 대한 국제 혁신 어워드’에 자신의 케이스를 출품하기로 하였고 그에 대한 Application Form을 (영문폼) 작성하는 중이었다.  그 양식 전체를 보니 A부터 I까지 10개의 대항목과 그 아래에 세부 질의가 4개 정도까지 기술되어 있었다.

예를들어 B항목은 제출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명칭과 분야, 프로젝트의 시작과 종료일 등이 기술되어 있었고, D항목은 프로젝트 추진 배경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1에서 4까지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유, 문제점, 목적, 추친체계, 사용된 기술 등을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조건에 맞춰 적어야 하는지 기술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단어수까지 제한하면서 말이다)  이는 변형된 형태의 RFP(Request for Proposal)와 같다.

해당 양식을 적어내려가기 앞서 먼저 생각해보자. 그 Application Form을 작성한 사람은 자유로운 양식으로 응모하게 놔두지 않고 왜 그 고생을 해가며 복잡하고 정교하게 출품할 사람들에게 상세 내용을 요구하고 있을까 ? 답변은 명확하다. 그는 심사의 편의성을 위해 수고를 해가며 그 Application Form을 작성한 것이다. 아마도 그는 미리 심사 평가기준과 항목들을 정해놓은 후 그 양식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대단히 지능적인 사람이다. 생각해보라 전 세계에서 수백명의 참가자가 자유로운 양식으로 자신의 프로젝트를 기술해서 보내온다면  그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심사 평가기준대로 서류 심사를 진행하는데 고초를 겪게 될 것이다.  예를들어 그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효과와 향후 발전가능성을 평가하고 싶은데 어떤 출품자는 그에 대한 내용을 적은 반면 또 다른 출품자가 그 내용을 적지 않았다면 그는 ‘기대효과’란 항목에 대해 심사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추가적으로 그 출품인에게 기대효과를 적어달라고 요청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RFP작성자들이나 Application Form설계자들은 심사의 편의를 위해 구체적인 항목을 요구하고 목차까지 맞춰달라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피겨 스케이팅의 쇼트프로그램과도 같다. 점프를 몇번 이상 하고 스핀동작은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규정종목같이 말이다. 폼 설계자는 미리 자신이 맞추어 놓은 맥락과 내용으로 작성자들이 따라오길 원한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작성자들은 항상 규정에 맞추어 요구하는 것을 내놓기 급급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대해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폼을 작성한다. 전체적인 맥락같은 것은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그 때문에 그가 작성한 Application Form의 답변들을 모두 하나로 이어놓으면 맥락들이 모두 조각난채 작성자가 원래 가지고 있던 논리보다 못한 내용이 완성된다. 당연히 폼 설계자들도 받아보면 불만을 터뜨릴 것이다. 그것은 양쪽 모두에게 재앙에 가깝다. 내 예상으로는 대부분의 출품인들이 작성한 폼은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중복된 답변이 속출하며 동문서답을 한 부분이 발견될 것이다.

그에 대한 나의 대응방법은 이렇다. Application Form은 일단 무시하고 먼저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한 논리체계와 전개방식을 먼저 그려야 한다. 상황에 대한 설명과 그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점,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먼저 자신의 논리를 그려내고 상세한 설명까지 기술하여 완성도를 갖춘 후 그것을 해체하여 폼 작성자가 원하는 맥락으로 재조합해서 줘야한다. 두괄식이든 미괄식이든 한번 정립된 논리체계는 그 순서를 바꾼다고 해서 무너지지는 않는다. 다만 임팩트가 달라질 뿐이다.  맨 하단에 있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만 급급하지 말고 그 상위 개념의 질문에 먼저 간단히 답변을 해서 논리릐 지향점을 세운 후 하위 질문에 신경써야 한다.  이번 케이스처럼 A-I까지 10개의 대항목이라면 먼저 10개의 질문에 대해 답을 하고 그 10개의 문장을 연결시켜 맥락의 흐름을 살핀 후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10개의 큰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앞서 말한대로 먼저 내 의도대로 작성해 놓은 논리전개에서 답을 가져와야 한다.

지난 공개강의 Act 1에서 난 문서의 논리구성에서 작성까지의 네 가지 관문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그것은 기획과 문서작성 전 과정에 대한 큰 설계도 같은 것이었다.  논리-전개-이야기-비주얼로 이어지는 4개의 관문 중 처음 두 개를 구성하는 가정이 이번 케이스를 헤결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4개의 관문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난 기획자의 생각정리 역량 세 가지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세번째 역량이자 가장 중요한 것이라 얘기한 ‘핵심을 요약하는 기술’은 Act 2. Idea Dictation을 통해 실습을 하였고 첫번째 역량인 ‘사고의 폭을 넓혀서 생각하는 것’이 오늘 이 케이스에 해당한다. 최초로 보고서의 주제를 받아든 후 사고의 폭을 넓혀서 다양한 시각으로 주제에 접근하여 이후 어떻게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을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결정하는 행위에 위에서 설명한 것이 포함된다.  우리는 주제를 받아들고 청중이나 심사자의 입장에서 왜 그 주제가 나오게 되었는지, 왜 Application Form이나 RFP가 그리 작성되었는지, 청중은 어떤 특성을 가졌고 나와 주제에 대해 어떤 선입견이나 기대감을 가졌는지 추측하고 조사해 봐야 한다. 기획의 극초기에 일어나는 이러한 상상력이 후속작업의 범위와 질을 결정하기도 한다.

청중이나 지시를 내린 사람에게 맞추기에 급급하지 않고 그들을 내가 설치한 프레임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기획 극초기에 상상력을 동원해 추리를 하고 가설을 세우고 어떻게 작업을 하기로 결정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니 제발~ 상상하고 추리하는 연습을 하라. 상상은 상상을 낳고 생각은 생각을 낳는다.  생각하는 연습을 할 수록 품질은 좋아지게 되어있다.  이건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에필로그

어제저녁부터 새벽까지 난 그분이 작성한 문서를 몇 번 읽고 장문의 메일을 작성했다. 크게 두 파트였는데 그 분이 가지고 있는 논리체계를 내가 파악한 대로 대략적으로 그리고 먼저 그걸 완성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 첫번째 파트였다. 그리고 두번째는 장문의 Application Form의 구조를 단순화 시켜 재작성한 후 각 질문에 대한 답변의 방향에 대해 맥락에 주의하면서 해설한 후 전체를 조망하면서 크게 크게 답변하면서 아래로 내려가라고 조언했다.

그 메일을 다 쓰고 난 이 케이스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해서 막바로 키보드를 고쳐잡았다.  K씨가 작성한 Application Form은 불행하게도 논리와 맥락이 세부 질문들로 분산되어 전체를 대변하는 진짜 중요한 메시지가 수면위에 떠오르지 않은채 계속 디테일한 곳에 쏠려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K씨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작년과 올해 많은 스타트업들을 코칭하면서 그들 역시 정확히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되었다.  그들은 심사기관에서 요구한 양식으로 문서를 만들었고 그 결과 논리전개는 물론이고 스토리텔링 등에서 총체적인 난국에 직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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