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수영 (아카이빙)

By | 201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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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수영을 배운건 10년쯤 전.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뭐 선수될 것도 아니고 빨리 해서 뭘해 ? 접영같은거 잘해서 뭘해 ? 접영이야 거의 보여주기 영법아닌가 ? 됐어~ 난 그냥 물에 빠져죽지 않고 스무스하게 갈 수 있으면 돼. 10년이나 수영을 했으면 잘해야 하는데 난 중간에 하도 많이 빼먹어서 정신차리고 1년 수영 열심히 다닌놈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 그래서 막 수영을 해도 1년 한듯한, 10년을 수영해도 1년한듯한…한량수영에 능통하다

2. 한량수영은 네 가지 영법 중 대략 두 가지만 잘하면 된다. 자유영과 평영이 그것. 제일 실용적인 영업이다. 한량수영의 본질은 열심히 하지 않고 계속 엔드라인에서 쉬는것. 그 대신 눈으로 남들의 수영을 감상한다. 그것으로도 공부가 많이 되니까. 10년이나 봤더니 이제 보는건 9단이다

3. 토탈 이머전 스위밍. 처음 배울무렵 이걸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나의 자유영은 이 영업을 추종한다. 지금도 최대한 천천히 한스트로크로 최대한 멀리, 최대한 부드럽고 물이 튀기지 않게, 거의 힘을 들이지 않는것 처럼 물속에서 미끄러져 가기가 나의 모토다.

4. 탄천종합수영장. 며칠전 처음 다니기 시작했다. 싸고 괜찮으니까. 특히 50미터 풀이 있다는게 매력이다. 걱정대로 거의 1년만에 수영을 한 첫날 온몸이 뻐근했다. 25m 풀 자유수영 한달치를 끊고 시작했다. 첫날 25m풀에서 30분이 지나고 호기심에 50m풀로 향했다… 오…위로 올라가는 계단…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은근 긴장감을 조성한다. 좋아…50미터 풀이라면 이래야지

5. 50미터 자유수영 멤버들을 첫날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민폐파 : 너무 느리고 중급정도의 실력을 가지고서도 굳이 여기 하겠다는 사람들. 이들 때문에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중도파 : 한바퀴 돌면 1-2분은 쉬면서 구경하는 사람들. 한량수영의 취지와 어울리는 집단이다. 열성파 : 시작과 동시에 벨이 울릴때까지 고개한번 안들고 도는 사람들. 등짝에 X자로 끈이 있는지를 보고나서야 성별 판단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6. 민페파가 내앞에서 출발하면 난 그들이 20미터 이상 갔을때 출발한다. 그래도 결국 나한테 중간에 따라잡힌다. 열성파라고 다 스트로크가 좋고 빠르지 않다. 진짜 속도가 빠른 사람앞에서는 절대 출발하지 않는다. 깊이가 2m나 되는 풀이어서 중간에 앞사람 다리가 닿으면 오갈데가 없어 참으로 곤란하다.

7. 50미터 풀 강습생들. 고급반을 지나 연수반에 접어든 사람들이 여기에서 수영한다. 다들 1-2년 이상 죽어라 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들 몸도 좋다. 게다가 7개 레인을 쓸만큼 사람들도 많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누군가가 스탠드에서 지켜봤더라면 UDT대원 선발대회를 하는줄 알거다.

8. 연수반원들의 드릴. 어제 연수반의 드릴을 보고 좀 놀랐다. 풀부이를 머리에 올려놓고 한바퀴 다녀오기 드릴을 시전… 물론 제대로 잘 하는 사람들은 절반도 되지 않았지만 그런 고난도의 드릴까지 시키다니. 나같은 한량스위머는 아마 가다 죽어버릴것 같았다. 일전에 알렉산더 포포프의 시전모습을 보았는데 다리는 모은채 가만놔두고 양쪽 팔만을 가지고 머리를 목까지 내놓은채 힘들이지 않고 전진하는 모습을 보고 절로 고개가 숙여졌었다.

9. 샤워실 쟁탈전. 50분이 되면 벨이 울린다. 끝났다는 소리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샤워실에 몰리는데 샤워기는 50개다. 어림짐작으로 100명은 몰리는 듯. 첫날 면도도 해야 하는데 서서하는 샤워기를 잡지 못하고 의자도 없어 무릎꿇고 샤워하고 면도하는 굴육을 맛봤다. 한량수영답게 두번째 날부터는 5분전 내려가 유유히 샤워하는 센스를 발휘중이다

10. 드라이기. 드라이기는 대략 3-4개쯤으로 엄청 모자라다. 어제도 결국 옆사람이 먼저 잡아채가는 바람에 멍청하게 기다렸다. 아 그런데 그 친구…머리 다 말리고 아래로 가져가더니만 숲도 말려주신다. 그리고 드라이기 꽃이에 놔두고 간다. 난 그걸 받아들고 머리를 말리기 시작한다. 이 자식…웬지 굴욕적인 이 기분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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