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네이버의 야구게시판을 어른 거리다가 그 옛날의 잠수함 투수 ‘박정현’의 사진을 얼핏 보고 바로 클릭을 해서 들어갔더랬습니다.  (원본기사보기)   89년 태평양의 돌풍을 이끌었던 유신고 출신의 언더핸드 박정현에 대한 추억담이었는데 참으로 감회가 깊었죠.

프로야구가 시작된 82년, 저는 중학생이었습니다.  누가 뭐랄것도 없이 그냥 삼미와 MBC청룡을 응원하기로 했었는데 (삼미는 형이 응원하는 바람에 덩달아) 삼미는 정말 비참함의 연속이었죠.  삼미의 경기는 그 비참함에 눈을 뜨고 볼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나마 MBC의 경기는 봐줄만 했죠.

백인천, 이종도가 각각 4할, 3할9푼으로 청룡의 타격을 이끌고 있었거든요.   원년에 가장 관심이 가던 선수는 이길환이었습니다.   청룡의 언더핸드 투수였죠. 하기룡과 함께 MBC의 원투펀치였습니다.

그때 동네야구도 성행했는데 저는 어깨가 그리 좋지 않아서 이길환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동네 유일의 언더핸드 투수가 되었죠.  그때문에 숱하게 동네친구들과 유치한 언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뭐 내용은 뻔했죠.  언더핸드 투수는 대성할수 없다는 둥의 자극적인 친구들의 놀림과 그에 대한 반박이 주요 내용이었죠.

건전하게도 그 언쟁의 끝은 ‘친선패싸움’이 아니라 야구시합이었습니다.

그때부터 MBC청룡의 이길환, 해태의 이강철, 삼성의 박충식, 롯데의 노상수, 빙그레의 한희민 등 잠수함 투수들의 경기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릅니다.    

프로야구 초기에 재일동포였던 해태의 주동식의 경기를 보면서 그 컴퓨터 컨트롤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쓰리볼까지 몰려있었는데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구석을 찌르는 제구력과 유인구로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걸 보고 MBC의 물방망이를 욕하면서도 속으로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죠.

박정현. 실제 던지는걸 보면 커다란 가위나 작두가 순식간에 ‘싹둑’하듯이 그의 기다란 몸이 크게 펼쳐졌다가 접힌다.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그러다가 박정현이 나온겁니다.   그때가 대학교 2학년때였는데 친구중 하나가 수원 유신고 출신의 박정현과 동기생이라서 그가 유신고 출신이란걸 알았습니다.   194cm의 큰키임에도 작년 WBC에 나온 일본 롯데출신의 와타나베 슌스케처럼 거의 땅에 끌릴듯한 위치에서 공을 놓습니다.  그러다 보니 타자가 보기에는 공이 나오는 각도가 워낙커서 타이밍을 맞추기도 어렵고 종잡을 수도 없어서 삼진을 많이 당해야 했습니다.

시즌내내 박정현은 언터쳐블이었죠.   그때까지도 언더핸드를 유지하고 있었던 저는 괜한 자부심이 느껴진 한해였습니다.

삼성의 신인투수 박충식이 93년 대구에서 벌어진 한국시리즈에서 이순철-이종범-김성한-한대화-홍현우-이호성-백인호 등으로 이어지는 초호화타선의 해태를 상대로 15회 완투(181구)를 하며 무승부로 끝낸 경기는 언더핸드 투수가 벌인 가장 인상적인 경기중 하나였습니다. 

아마 당구장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그 경기를 지켜본걸로 기억하는데 서로 응원하는 팀이 달랐지만 박충식의 투구가 이닝을 더해갈때마다 다들 점점 조용해 지기 시작했었습니다.  15이닝동안 2실점을 하긴 했지만 해태의 타자들은 박충식의 공에 전혀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박충식은 해태에서 선동렬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리지 않았죠.  정말 최고의 경기였습니다.

제가 응원을 했던 삼미-청보-태평양은 잠수함투수에게는 거의 물방망이 였습니다.  MBC는 삼미와 경기를 할때면 으례히 이길환을 내보냈고 삼성은 박충식을, 해태는 이강철을, 빙그레는 한희민이 나와서 손쉽게 승수를 챙겨갔습니다.  (뭐 사실 잠수함투수만 삼미에 강한건 아니었죠.  박철순, 김시진을 보세요…에휴)

장명부 이후 최대어로 거품을 물던 김기태의 영입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김기태 역시 제가 좋아하는 언더핸드였지만 같은 제일동포인 주동식만 더 그리워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오래동안 가장 꾸준한 활약을 펼쳤던 것은 이강철이 아니었던가 싶은데요.   이강철은 안그래도 우승전력인 해태에 오자마자 마음편하게 승수를 챙길 수 있었죠.   이강철의 뒤를 이은 임창용도 기대를 모았지만 구위에 비해 성적이 그리 잘 나오지 않았고 개인적인 사생활과 기복등으로 인해 이제는 황혼기에 접어들고 말았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 인호봉-감사용이 거의 매일 경기에 나와서 혹사당했었는데 (그것도 거의 패전만)  빙그레가 창단되면서 등장한 한희민-이상군 커플 역시 김영덕 감독(투수혹사의 대명사격인 감독)을 만나면서 고무팔인생이 됩니다.   특히 이상군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였고 한희민도 (안그래도 너무 말라 난민이 연상되었는데)  엄청나게 혹사를 당했었습니다.   그러나 한희민 역시 국내 프로야구사에 획을 그을만한 잠수함중 하나였습니다.

90년대 중반이후 잠수함 투수가 좀 뜸하다 싶었을때 메이저 리그로 건너간 김병현은 정말 이색적이고 독특한 잠수함이었습니다.   그의 공이 빨랐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애리조나에서 크레이지 모드에 진입한 1-2년간의 활약은 정말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죠.

언론에서 매일 떠들어대는 그 현란한 변화구앞에 메이저리그의 거인들이 차례로 삼진을 당하는 모습은 정말 짜릿했습니다.   월드시리즈 우승당시의 디비전, 챔피언십 시리즈에서의 구위는 정말 압도적이었습니다.

아직 그의 나이가 젊은 만큼 2007년에도 그의 분발을 기대해 봅니다.

이상이 제가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국내 잠수함 투수들입니다.  한명 더 언급을 하라면 올림픽에서 미국타선을 틀어막았던 정대현 정도입니다.

정대현 역시 마구 두들겨 맞을것 같았던 분위기와는 달리 기껏해야 120km의 공으로 미국타자들을 농락했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잠수함 투수는 역시 박정현이었고 가장 아까운 선수라고 생각됩니다.  너무 혹사를 당했었던 것이 부상을 불러왔죠.  잠수함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롯데의 염종석 역시 아주아주 아까운 선수라고 생각됩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마치 류현진과 같은 괴물중의 괴물이었습니다.  한가지 다른점이라면 염종석은 자신의 손으로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일구어 냈다는 거죠.

지바 롯데 마린스의 2005 시즌 우승을 견인한 와타나베 슌스케.  WBC에서도 정말 경악스러웠다.

비록 WBC에서 적군으로 등장했지만 일본의 와타나베 슌스케의 투구는 정말 탄성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같이 야구를 보던 친구들도 일본은 밉지만 일본 선수 개개인의 기량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한두개를 넣고 빼는 것은 그에게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것 같더군요.

하긴 요리우리로 이적한 이승엽이 와타나베의 공을 통타해서 담장을 넘긴것도 더욱 대단했지만요 -.-

전 요즘에도 공을 포수미트에 던지라면 언더핸드로 던집니다.   그리고 잠수함 투수가 나오면 더욱 눈여겨보죠.  최근엔 눈에 확들어오는 잠수함이 별로 없지만 위에서 열거한 잠수함들을 능가하는 신형 핵잠수함이 또다시 나오길 기대하고있습니다.      그리고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는 김병현의 2007시즌 활약도 기대하겠습니다.

Facebook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