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세 가지 잣대

By | 2013-12-16

shutterstock_40793773

프롤로그

어느날 내 수업을 듣고있는 분이 자신의 보고서를 조심스레 들이밀었다.  거의 마무리단계에 와있는 보고서의 비주얼적인 측면에 대해 조언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  그 보고서는 확실히 비주얼에 문제가 있긴 했다.  그러나 내 생각엔 비주얼보다 전체적인 논리의 전개방식이 더 문제였다.  잠깐 고민을 했다. 그가 원하는대로 해당 슬라이드를 보기 좋게 꾸며주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것이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것 같았다. 그래서 그에게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는 실망했지만 나의 설명에 수긍했다.

어차피 논리구성이 제대로 되지 않은 문서는 모양새를 다듬어봐야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은 이렇게 단순하게 정리한 것 처럼 말하지만 사실 난 여러 사람들이 가져오는 보고서들을 보고 말문이 막힌적이 많았다. 어디부터 얘기를 시작해야할지 몰라 그들을 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시간씩 말할 때도 있었다.  지난 1년간 삼성전자나 SK텔레콤 등 중견기업에서 강의하고 그들의 보고서를 검토하면서 난 보고서를 단순하게 진단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코칭을 하는 의사소통이 원활할 것 같았다.
최근 수 개월간 난 40여개 스타트업들의 제품소개서나 사업계획서를 코칭하면서 그동안 생각해 온 ‘완성도를 평가하는 3단계 관문’(뭐 제식명칭은 없다)을 적용해 조언을 했는데 이전보다 더 빠르고 매끄러운 느낌이어서 오늘 그 체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 체계는 보고서를 주로 검토하는 입장인 관리자들에게 1차적으로 유용하겠지만 보고서를 쓰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3개의 관문, 그리고 첫번째 논리의 문

이 세상의 문서는 다음의 3관문 중 하나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제 1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문서에게 2,3관문은 전혀 의미가 없다.
제 1관문 : 논리의 문 – 논리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내용들이 빠짐없이 들어있나
제 2관문 : 이해의 문 – 메시지가 세련되고 임팩트있게 정리되었는가
제 3관문 : 표현의 문 – 작성자가 의도한 내용은 누구나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내는가
지난 수개월간 내가 검토한 40여개의 스타트업의 제품소개서(혹은 사업계획서) 중 3개의 관문을 모두 통과한 팀은 하나도 없었다. 대략 30여개의 팀이 1단계에 머물러 있었으며, 7~8개팀이 2단계에,  3단계에 도달한 팀이 1~2팀 정도였다.  거의 대부분은 1관문을 통과하지 못한채 거기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 스타트업의 제품소개서나 사업계획서는 매우 명확한 지향점을 가진다. 게임을 제외하면 그들은 대부분 제품이나 (대부분 앱이나 간혹 제조업도 있다) 서비스를 가지고 있다. 제 1관문을 통과할 자격이 있는지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  당신은 어떤 점이 불편해서 그 앱이나 서비스를 만들게 되었는가 ?
위의 질문이 불편하다면 이런 질문으로 바꾸어 보겠다
  • 내가 저 제품(혹은 서비스)를 구입함으로 얻는 Benefit은 뭔가 ?
자신의 보고서가 위의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주제라면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 당신이 그 주제에 대해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
사실 저 세 가지 질문은 거의 비슷하다. 1관문을 통과할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저 질문을 받으면 반사적으로 답변이 나온다. 그것도 짧게 나온다. 게다가 몇 가지인지 명확하게 구분해서 얘기한다.
‘결혼을 혼자 준비하기엔 알아볼 것이 많아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고 전문성도 떨어진다. 그 때문에 웨딩플래너를 고용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신경쓸 것들이 많아 스트레스가 쌓이더라’
웨딩 서비스를 준비하는 스타트업이 위와 같이 대답한다면 거의 완벽하다 생각한다.(1차적으로는 말이다.)  수 십초이내에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게 정제되어 있고 혼자 준비하는데 대한 3가지 문제와 그 대안으로 고려하는 웨딩플래너 역시 완전한 솔루션이 아니라는 명확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뒤로 이어질 내용은 사실 뻔하다. 우리 서비스가 그 문제를 완전히 보완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많은 스타트업은 저렇게 단순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아예 답변을 하지 못한다면 최악의 상황이다. 자신들의 제품이 어필해야할 최소한의 논리구조를 전혀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아예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예상보다 많았다. 그리고 대다수는 대답을 하지만 주절거리며 1분이상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핵심내용이 그 주절거림 속에 들어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주절거림도 있었다.
어쨋든 첫 번째 관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의 뼈대가 제대로 갖추어졌는가이다. 위에서 예로든 웨딩 서비스 얘기를 계속해보자. 난 위에서 제시된 저 문장이 1차적으론 완벽하다고 했다. 난 아마 애매한 부분에 대해 추가적으로 질문을 해댈 것이다. 가령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는 것의 더 구체적인 내용,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 전문성이란 무엇인지 떨어진다면 어떤 기준으로 그걸 평가했는지, 여전히 신경쓸 것이 많다고 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당연히 작성자는 그에 대한 대답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거기까지 대답할 수 있어야 1단계 관문의 요건을 모두 갖춘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위에  저 질문이 1관문의 모든 것이라 착각하지 말라. 저것은 단순히 시작일 뿐이고 여러분들은 그 다음 질문에 대해 역시 같은 방식으로 대답해야 한다. 가령 그 다음 질문은 이런것이다.
  • 당신의 제품(혹은 서비스는)은 그 불편함을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진짜 하고싶었던 얘기가 아니던가. 가장 기본적인 논리의 뼈대는 불편함(혹은 문제점)과 해결책에 대한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 1관문은 가장 어렵다. 단순하면서도 구체적이어야하기 때문에 많은 생각과 고민으로 많은 정보를 압축해 단단하게 만들어진다.

제 2관문, 이해의 문

첫번째 관문에선 청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와 그에 따른 증거자료들이 갖추어 진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2관문에서 내가 우려하는 바는 청중이 그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대수롭지 않게 자극을 받지 않고 넘어가 버리거나 오해했을 때다.
난 청중이 발표내용을 심각하게, 혹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선 제품이나 서비스의 실체가 제대로 설명되어야 하며, 그에 더해 임팩트있게 자극해야 한다. 난 가능하다면 언제나 구체적인 사례를 스토리로 구성하여 주인공이 겪는 어려움이 해소되는 과정을 보여주라고 주문한다.
다시 웨딩서비스로 돌아가보자. ‘혼자서 결혼준비를 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웨딩플래너를 고용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복잡성이 모두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딱 이 정도의 문장을 읽어주면 청중이 모두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은가 ? 아니 내가 보기엔 어림없다.
최근에 결혼한 선배에게 엑셀로 된 결혼준비 체크리스트를 받아보니 우려 150가지의 의사결정 사항의 리스트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고 얘기하라. 그 과정에서 예비신랑과의 일정에 대한 의사소통 때문에 싸운 얘기,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대안들을 수집하러 다니면서 예비신랑과 언쟁을 벌이고 결혼 자체에 회의를 느껴 몇 번이나 포기할뻔 했던 그런 얘기들을 들려줘서 청중들도 그 이야기에 깊숙히 끌어들이고 그들도 그 상황에 짜증내게끔 만들어라.
청중을 당신의 얘기로 깊숙히 끌어들이기 위해선 정말 구체적인 얘기를 통해 그들의 감정선을 자극해야 한다.  10년 이상 경험을 쌓은 과/차장급 기획자들은 1관문을 어렵지 않게 통과하지만 그들이 가진 메시지는 대게 구체성이 떨어지고 스토리가 장착되어 있지 않아 청중들의 감정선을 자극하는데 있어 부족하다. 스타트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명확한 제품과 서비스가 존재한다면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유리하다. 난 이 스토리 같은 것들을 논리를 어필하는 부스터(Booster)라 부른다.
대부분은 부스터가 없는 것이 문제지만 가끔 스토리의 배치와 흐름이 청중을 엉뚱한 곳으로 끌고가기도 한다. (오해를 만든다) 최근 나의 코칭에 참여한 한 스타트업은 걷는 운동을 측정하는 앱을 통해 그 거리에 따라 아프리카에 물을 기부한다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그는 자신의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을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아프리카의 물부족 문제에 대해 인지했고 그것을 운동과 연결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걸음’을 기부하면 광고스폰서가 그 걸음 수 만큼 아프리카에 물을 기부하는 체계를 만들어 냈다.  그의 다이어트 이야기는 뒤로 이어지는 맥락상 필연적으로 나와야 하지만 되도록 빠르게 통과하고 청중의 이목을 뒤에 이어지는 물부족 문제에 집중시켜야 한다. 따라서 난 이야기의 도입부가 내 생각보다 길고 청중이 키워드를 다른 것으로 오해할 수 있음을 지적했고 전체 이야기의 밸런스를 다시 맞춰보는 작업을 했다.
제 2 관문은 대단히 미세한 작업을 필요로 한다. 청중의 입장에서 그들의 반응을 설계하는 것이 2관문의 주요 내용이다.

제 3 관문, 표현의 문

마지막 관문은 비주얼에 대한 것으로 상대적으로 가장 쉽다.  예쁘게 꾸미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누구나 내 의도한 바를 신속정확하게 오해없이 읽어내느냐가 핵심이다. 사실 내가 검토한 많은 스타트업들은 이 부분에 대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다.
너무 많은 색상과 폰트를 사용하지 않고 일정한 크기와 위치에 고정적으로 메시지를 노출시켜 청중을 학습시키고 생략할 수 있는 글자와 내용은 최대한 줄여 단순화 시킨다면 승산이 있다.
사실 위에서 설명한 1,2,3관문은 내가 강의때 늘상 설명하는 문서작성 단계 4단계중 1-2-3단계와 같다. 1-2-3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문서는 완성될 수 없지만 재미있게도 각 단계를 부실하게 거친 완성품들이 내 앞에 온다. 첫 부분에서도 말했지만 1관문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 문서는 3관문에서 슬라이드를 그럴싸하게 다듬어도 의미가 없다. 사실 그 문서는 내용의 절반은 없어지거나 보강되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 내민 그 슬라이드는 비주얼을 논하기 전 존재여부를 따져야 하는 것이다.
부하직원들의 보고서를 검토하는 관리자 입장이라면 이제부터는 빨간펜으로 맞춤법 검사만 해서 돌려보내지 말고 논리구조와 전개방식을 먼저 평가해보고 빨간펜을 들어라. 상사에게 보고서를 가져가야 하는 처지라면 스스로 자신이 어느 관문에 해당되는지 평가해 보고 당신의 상사가 어떻게 보고서를 읽어내는지도 흥미있게 지켜보시라. 그리고 회의에 들어가서, 데모데이에 나오는 다른 팀들의 발표를 위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라. 남의 것을 보면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샐러리맨들이라면 남의 보고서를 간파하는 것도 기획자의 역량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5 thoughts on “문서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세 가지 잣대

  1. Pingback: [Sonar & Radar] 문서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세 가지 잣대 – Platum

  2. 오지의 마법사

    안녕하세요. 아주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과학을 하는 제 입장에서도 공감가는 것이 많습니다. 실험과 연구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데,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아주 중요한 내용이군요. 결과적으로 모든 스토리 텔링이 위와 같은 단계를 따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재미있네요. ^^ 자주 글 읽으러 올께요~

    Reply
    1. demitrio Post author

      감사합니다~ 과학자들의 저술이 오히려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는 더 진보한 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일반인들을 쉽게 이해시켜야 하는 명제를 가지고 있으니 그 필요성이 더 커져서 그렇지요 ^^

      Reply
  3. Pingback: 문서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네 가지 관문 - Sonar & Radar

  4. Pingback: 좋은 페이퍼워크를 위해 필요한 3단계 | ㅍㅍㅅㅅ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