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스타트업들에게

By | 201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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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올해 난 두 번째 책을 쓰기로 되어 있었는데 여름으로 넘어올 무렵 이 생각을 접게 되었다.  두 번째 책에서 주로 다루기로 한 내용을 세 번 정도에 나누어 선발투수 같이 1-2-3선발이라 명명하곤 그것을 공개강의때 내놓았는데 청중은 어땠을지 몰라도 내 생각엔 그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고 판단한 탓이다.  난 이야기가 처음에 구상되어 만들어지는 초기와 중기 기획단계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내 강의를 듣고난 청중들로부터 그들의 결과물을 몇 개 받아보고는 적잖게 놀랐었다. 솔직히 내가 이야기했던 부분이 제대로 반영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 거의 없었던 탓에 난 이대로 내 두번째 책을 내놓으면 그것이 독자들의 결과물에 긴밀하게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쓰레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고 모든 생각을 접었다. 이 때문인지 올 여름은 이런 저런 고민으로 시간을 보냈고 강의 내용에 진보는 없었으며 나의 코칭 방식이 좀 더 구체적이고 그들에게 한발 더 다가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혔다.

미안하게도 그들 스스로는 더 나아졌다고 메일을 보내왔고 실제로 성과를 거두었다고 얘기를 나에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난 그들에게 바란 내 기준이 있었고 그들이 그걸 만족시키지 못했으며 그것을 또 내 스스로의 코칭방법의 미숙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이 몇 개월 이어지는 중에 나는 내가 아닌 청중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문제를 같이 해결하면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지난 몇 개월을 그들과 함께 그들의 프레젠테이션과 문서를 만드는데 보내왔다.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난 많은 사람들이 어느 부분에서 공통적으로 문제를 겪는지 느끼기 시작했다.  솔직히 난 그들이 겪는 그 문제를 비교적 쉽게 빠져나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건 마치 수영을 처음 배우는 사람과도 같아서 물속에서 호흡을 하기 어려워하는 초보자들을 가르치는 문제와도 같았다. 나는 이제 익숙해져 ‘그냥 편안하게 숨쉬면 된다’라고 하거나 ‘하다보면 익숙해질거야’라는 말만 했지 그 단계를 정말 쉽게 통과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멘티들은 그 단계에서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게 나의 고민이 되었다.  정말 호흡을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론을 만들어 그들에게 얘기해 줘야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난 요즘 창업을 준비하거나 이륙 직전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은 절박하다. 따라서 내 수업에 대한 집중력도 좋다. 올해 나는 스타트업과 관련있는 많은 분들의 얘기를 듣고 조언했는데 그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에 대해 지금 두 가지 방향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아마 직접 적용이 가능한 이야기 이니 관심있을 걸로 생각한다

 

제품소개서가 핵심이다

창업자들이 내게 보여주는 문서의 종류는 대게 세 가지이다.  제품소개서, 회사소개서, 사업계획서가 그것이다.  사업계획서는 투자자나 파트너 십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보통이며 사업을 평가하는  심사위원들도 이에 포함된다. 제품소개서나 회사소개서는 주로 소비자들을 보고 만드는데 앞서 언급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보여준다.   보통 회사소개서는 간략한 제품소개서를 포함하며 사업계획서는 회사소개서를 포함하는 형태이다. 그러니 우리가 산수시간에 배웠던 집합관계로 표시해 본다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제품소개서 ⊂ 회사소개서 ⊂ 사업계획서

결국 세 문서의 공통분모는 제품소개서이며 모든 창업자들은 여기에 일차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내가 투자자라면 일단 ➊’제품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먼저 판단한 다음 ➋ 그걸 만든 사람들이 신뢰성이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며, 마지막으로 ➌ 그걸 만들어 내는데 필요한 리소스나 문제가 무엇인지 궁금해 할 것이다.  ➊-➋-➌으로 이어지는 순서는 자연스러운 맥락이며 순서가 바뀔 수는 없다.  또한 그것은 허들과도 같아서 다음 단계로 우회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제품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회사소개나 사업계획 같은 내용들은 허망할 뿐이다.  반대로 제품은 엄청나게 좋으나 회사소개서나 사업계획이 부실한 경우는 어떨까 ? 제품만 확실하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내가 투자자라면 그 아이템에 매료된 나머지 다른 부실한 것들은 내가 직접 도와서라도 정상궤도에 올려놓고 싶어할 것이다.

창업자인 여러분들이 가진 세 종류의 문서 내러티브가 위와 같다면 모든걸 포함하고 있는 사업계획서는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해 첫 부분에서 제품에 대해 다뤄야 할 것이고 거기에서 어떻게든 청중들로 하여금 제품이 매력적이라는 동의를 구해내야 할 것이다. 제품에 매력을 느낀다면 자연스럽게 청중의 관심은 그것을 개발해 낸 사람들과 그들의 신뢰성에 대해 알고 싶어 할 것이며 그 제품의 사업적인 로드맵을 듣고싶어 할 것이다.  후반 부의 두 가지(➋,➌)는 이미 마음이 기울어진 청중에 대한 의례적인 확인 절차이므로 너무 길지 않아도 된다.  만약 10페이지 정도의 사업계획서라면 처음 6페이지를 제품에, 회사소개와 사업계획에 대해서는  각 2 페이지 정도를 할당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에겐 문제가 좀 있다. 창업과 관련된 지원기관에서 요구하는 문서 등을 보면 위와 같은 내러티브에 반하는 목차를 요구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창업지원센터에서 스타트업들에게 요구하는 문서에는 창업자와 관련된 사항들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리고 사업계획 수립을 위한 SWOT분석 양식 따위가 중간중간 들어간다. 그것이 여러분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위의 3단계 내러티브는 무너지고 어느 순간 제품소개서도 아니고 회사소개서도 아니요 사업계획서도 아닌 문서가 탄생한다. 아주 심한 경우는 사업 아이템의 실체를 짐작조차 못하겠는 문서들도 있다.  내가 본 창업자들은 어느 기관에 소속(소속되었다고 하긴 뭐하지만)되어있다 보니 그 양식을 무시할 수 없다.  그 양식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창업지원센터 역시 뭔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요구하는(쉽게 작성하기 위해) 창업자들을 고려하여 그런 양식의 문서를 만든 것이니 애초 의도는 분명 긍정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문서는 그 문서대로 그들을 위해 작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다른 내용의 문서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다만 플롯이나 맥락이 그들과는 좀 다를뿐이므로 실제 프레젠테이션 시에는 좀 더 여러분에게 특화된 문서로 브리핑 하기를 권한다. (센터에서 정한 양식은 핸드아웃으로 나눠주고 말이다)

어쨋든 제품소개서에서 상대방의 주목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나머지 단계는 자동적으로 실패란 것을 명심하고 1차적으로 제품에 집중하기 바란다.

 

Benefit에 대해 얘기하라

내가 검토했던 제품소개서들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라고 한다면 난 첫번째로 “제발 고객을 보면서 얘기하라”고 소리를 치겠다.  투자를 받기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제품소개서(사업계획서를 포함)를 보면 너무 투자자를 의식한 듯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마치 자기 앞에 앉은 고객을 외면한채 90도로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투자자의 눈치를 보면서 얘기하는 듯한 느낌말이다.  이 때문에 제품과 고객간의 관계에 대해 집중해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투자자나 심사위원 역시 그런 태도를 싫어하긴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3인칭 시점으로 창업자가 고객에게 제품을 설명하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이 고객이라도 그 물건(혹은 서비스)에 매력을 느낄수 있을지 가늠해 보려 하기 때문에 제품 소개서의 브리핑 대상은 이 자리에는 없는 고객에게 일차적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난 많은 문서에서  고객에 대한 얘기가 빠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객의 니즈나 전혀 모르고 지냈을 혁신적인 사안이 어떻게 그들을 열광시킬 지에 대한 계획이 없다는 것은 정말 슬픈 얘기다.  내가 얘기하는 그 많은 문서들에서는 고객이 빠져있는 상태에서 혁신적인 기능이나 사양등이 일방적으로 나열되어 있었는데 그 (혁신적인) 기능은 고객이나 경쟁사 제품과 접촉할 때 화학반응을 일으켜 청중의 생각을 바꿔놓는 것이지 스스로는 반응하지 않는다.

고객을 생각하면서 제품을 소개하기로 했다면 이제 구체적인 내용을 작성할 차례다. 내용의 근간은 꽤 간단하다. 아래와 같은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라.

당신은 무엇이 불편해서 그것을 만들게 되었는가 ?

‘난 기존의 가상키보드가 사용하기 불편하고 보안성도 없어 이 모두를 해결한 것을 만들게 되었다’ 라고 짧게 대답할 수 있으면 완벽하다 생각한다.  고객이 어떤 것을 불편해 했는지 (혹은 좋은데 모르고 있었는지) 정의를 내려서 문제에 대한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시작이다.  당신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당위성에 대한 것인데 이 부분도 많은 문서들에서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다.   그 다음은 당연히 그 불편함을 어떻게 우리 제품이 나이스하게 해결했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플롯은 이렇게 간단하다. 그러나 90%의 문서들이 당위성은 빼고 나이스한 기능에 대한 얘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건 마치 복수극을 쓰는 작가가 주인공이 악당들에게 당했던 얘기는 빼고(복수해야할 당위성) 그저 상대에게 복수하는 얘기만 쓰는 것과 같다.

결국 제품소개서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모르고 있던 기회에 대한 해법을 알려주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논리구조도 매우 간단하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청중(고객, 투자자, 파트너)에게 우리가 만든 제품으로 어떤 Benefit (잇점)을 줄 수 있는지 설명하는 것이고 그 Benefit의 가치가 클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투자자의 몫이다.  Benefit은 고객이 현재로서는 가질 수 없으나 그 제품(서비스)을 이용함으로써 만들어 지는 가치를 말한다.  예를 들어 1500cc 자동차를 가진 사람은 2500cc자동차를 구입함으로써 넓고 안락한 승차감과 강해진 파워 등을 잇점으로 취한다. (사람마다 다르다)

 

에필로그

난 여러가지 목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스타트업들에게 먼저 두 가지를 생각해 보라고 위에서 말했다. 제품소개서에 집중하고, 그 제품소개서엔 고객의 Benefit을 문제에 대한 해결책 형식으로 다루라고 말이다.   난 이 두개가 스타트업들의 문서를 검토하면서 가장 문제하고 생각한 부분이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익숙하지 않은 문서작업과 프레젠테이션으로 고전하고 있다. (물론 일반 샐러리맨들도 그렇지만..)  위의 두 가지 문제말고도 해결해야한 것들은 쌓여있지만 그 어느것도 저 두 가지 보다 크지는 않다.  각자 제품과 처한상황이 다른만큼 위와 같은 내 조언이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은 아마 짐작할 것이다.  그럴땐 방법이 있다. 내가 청중이 되어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남의 발표를 들으며 자신을 심사위원이라 생각하고 질문해보는 연습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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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스타트업들에게

  1. 강봉석

    정말 오랜만의 포스팅 글에 감사합니다.
    복수극, 베네핏에 관한 내용은 불변의 진리네요. 저도 그런 개념을 갖고 접근하니 훨씬 좋은 발표가 되었음을 경험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말씀하신 내용처럼, 제품소개가 가장 우선이어야 한다는, 바로 순서의 문제가 의외로 중요할 수 있더라구요. 일반적으로 회사소개를 먼저 장황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집중이 좋은 시간을 제품이 아닌 회사에 촛점을 맞춰버리니, 그 발표가 끝난 후 청중의 머리속에 남는건 ‘회사가 좋다고 자랑하는건 기억에 남네요’라는 거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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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emitrio Post author

    정말 오랜만이죠 ? 앞으로는 계속 쏟아낼 것 같아요.
    아마 이미 했던 말을 형태를 바꿔서 하게될지도 모르겠어요. 이 글도 사실 강의때마다 계속 하던 것을 스타트업에 특화하여 재구성한 것이니까요. 말씀하신대로 기본 구도는 비슷해요. 복수극과 베네핏에 촛점이 있죠.
    순서에 대한 것은 스토리텔링에 해당하는데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중요한 것을 맨 앞에 올려서 얘기하고 나머지는 뒤로 빼는게 맞다고 봐요. 장편영화라면 또 다르겠지만 단편은 빨리 주제에 접근해서 속전속결로 끝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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