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에도 시놉시스가 필요해

By | 2013-06-14

9solomonw

페이스북에 생각나서 잠깐 적었던 글인데 길어져서 블로그에 옮기고 보강한다.

 

음….제목과 내용을 밝힐 수 없는 보안을 요하는 프로젝트를 또 하나 컨설팅 중인데… 아직은 극 초반부이나 … 초반 전개는 일단 답답한 형국이구나… 이미 내용은 수백페이지에 이르지만 … 결국 중요한 플롯은 3-4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고 이걸 보면 타당한지를 평가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모든게 명확하지 않으면 상세하게 설계로 들어갈때 개미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런건 참 옛날 사람들이 잘했던 것 같다. 예를들면 이런식…

“나라가 어수선하고 백성이 도탄에 빠졌으니, 정치와 권력엔 관심없지만 백성들의 고통을 생각하니 잠을 이룰 수 없어 비록 서생의 신분이나 지금의 편안함과 가족을 뒤로하고 분연하게 떨쳐 일어난다.”

전체의 플롯은 위와 같고 여기에 현재의 문제 몇 개와 방법 몇 개가 곁들여지면 그 짧은 문장만으로도 느낌을 줄 수 있게 된다. 그게 결국 대의명분. 그 대의명분이 누굴 위한 거냐가 사람들을 감동으로 이끌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게 되며 발표하는 끝까지 그 뉘앙스를 유지시켜 줄 수 있게 만든다.
기획의 극 초반부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 그 명분부터 정해야 한다. (중반부에 모든걸 정리하면서 저걸 정리하려들면 멘탈이 붕괴된다) 명분은 보통 현상에 대한 반발로부터 오기 십상이다. 어떤 문제인가를 낱낱히 밝혀 그걸 해결한다는 명분 (예를들어 탐관오리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위해 그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거나 한다는..)이 일반적이고 명분을 먼저 내놓고 현상에 짜맞출 수도 있다 (이건 보통 정치하는 친구들이나 하는 짓)

만약 이런 종류의 프로젝트가 국가 차원의 세금을 들여 하는 사업이라면 당연히 대의명분 중 하나는 국민이나 대중, 즉, 공익을 위한 것이 하나 들어가야 한다. 이건 선정하는 기관에 주는 명분이기도 하고 그들 또한 이것이 필요하다. 보통 도탄에 빠진 상황을 제대로 밝히기만 해도 뒤에 나올 그에 대응한 명분은 (실제로는 허접한 명분이라도) 엄청난 에너지를 얻게 된다. 또한 그 뒤에 나올 세부적인 시행계획 등도 모두 그렇게 해야 하는 당위성 에너지를 여기에서 공급받게 된다.

왜 3단계로 진행하는지, 왜 그런 추진체계를 구성했는지, 왜 그 만큼의 돈이 들어가는지에 대한 이유는 다 그 명분안에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한다. 그러니 완성될 수백페이지의 보고서는 한장한장이 당위성 에너지를 공급받는 서로 연결된 파이프라인의 집합체이며 유기체같이 움직인다.

어제 개인적으로 나에게 회사소개서를 문의하신 분은 다행히 나의 공개강의를 통해 플롯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고 24장의 회사소개서와는 별도로 다섯문장의 논리전개를 정리해서 보내주셨는데 위에서 내가 얘기한 대로 큰 틀을 그렇게 잡고 작성한 문서라 거의 흔들림 없이 완벽했다 (그 다섯문장을 증명해 내는데는 말이다) – 물론 난 그 다섯문장의 명분을 다시 세 문장으로 바꾸어서 보내긴 했지만…

이게 참…. 사람들을 이해시킬 때 가장 힘든 부분이다. 회의를 오래하다 보면 다들 전체보다는 부분에 집중해서 다들 숲을 전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서있지 않고 이미 숲에 들어가버린 뒤라 ..항상 내가 쫓아 들어가곤 하는데 나 역시 숲에 들어가고 나면 개미지옥에 빠져버려서 가끔 멘붕상태에~~~.

난 영화의 시놉시스 (Synopsis) 개념이 보고서 쓰기에도 필수적이라 강력히 주장한다.  3-40분짜리 보고를 단순하게 구슬을 꿰어 만드려면 반드시 시놉시스 정도의 분량에 논리를 정리해 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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