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3/11)부터 스페이스 노아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기’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제가 첫시간이었죠. 첫시간에만 벌써 일곱장의 그림을 그렸어요. 앞으로 더 자주 그리게 되겠죠 ? 첫시간이 끝난 후의 느낌은 마치 몇 년만에 목욕탕에 가서 정말 개운하게 목욕을 하고나온 그런 뽀송뽀송한 기분이었습니다. 역시 음악과 미술은 인간의 본능인가봐요. 노래야 노래방에서 가끔 부를수 있지만 그림은 그것조차 안되죠. 사실 아무 노트에 막 그릴 수도 있는데 그걸 왜 안그렸나 싶었어요. 그리고 첫 수업에서 그 해답을 들은 것 같아요. 사실 저 위의 영수증을 구겨놓은 종이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저 그림이야말로 제가 그저 지금가진 모든 선입견과 시선이 총동원되어 그려낸 그림인것 같아요. 물론 그래도 좋았죠 ^^ (반전은 이 뒤에~~)
작년 11월 전 서재벽면 전체를 화이트보드로 덮기로 결정했어요. 120cm x 90cm짜리 대형 화이트보드를 샀죠. 전 여기를 낙서판, 메모판으로 쓰고 싶었거든요. 뭔가를 적고 그릴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니 너무 뿌듯했어요. 아마 며칠간 이 화이트 보드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 상태였어요. 처음부터 뭘 그려야 할지 막막했거든요
어느날 아침, 전 일어나서 학생시절 곧잘 그리던 캐릭터들을 그저 그리고 싶어 그리게 되었죠. 호랑이 까치 자석을 옆에 붙여 놓으니 재미있는 그림이 되더군요. 나중에 지나가다 다시 코끼리와 하마를 그려넣었어요.
그게 말이죠…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그림이 늘어나게 되더라구요. 돼지와 너구리, 여우, 생쥐, 식인종이 계속 추가되었죠. 그리는 동안은 정말 즐거웠어요. 아마 다들 그것때문에 그리는거겠죠 ?
그걸 보고 지나가던 마님이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자기도 펜을 잡고 그림을 그리더군요. 저를 그린거래요. 원래 저를 저렇게 표현하거든요. 소복한 발, 뚱뚱한 배, 동그란 얼굴. 단풍잎같은 손 ㅋㅋㅋㅋㅋ
그런데 말이죠 얼마전 강의기획 때문에 몇 분과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근처의 교보문고에 가게되었다가 저는 등뒤에서 두 분 사는걸 구경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스케치북이 눈에 들어왔죠. 그날 뭐 이런저런 조언을 받아 스케치북과 지우개 연필 등을 사가지고 왔답니다. 거의 운명적이랄까요 ? (그게 2월 20일이네요)
그리고 전 스페이스 노아에서 같이 코워킹을 하던 소프트아케데미와의 류재훈님을 2/25일 저의 공개강의에서 앞의 10분을 할애해 그리기수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했어요. 사실 그 수업은 제가 가장 듣고 싶었던 거였죠. 하지만 평일 밤엔 정후때문에 좀 어려웠어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죠. 월요일 평일 낮 2시부터 클래스를 열어주신 거였어요. 아~ 너무 감사한~~ 즉각적으로 평소 잘 알고지내던 이상혁님에게 연락했죠. 같이 듣자고요. 뭐 결과는….즉각 따라오셨죠 ㅎㅎ 그렇게해서 프로젝트 노아의 세 분과 함께 한 클래스가 꾸려졌어요.
수업시작전 전 이상혁님, 손호성 대표님이랑 을밀대에 가서 낮술과 수육, 냉면을 배불리 먹고 왔어요. 아마 매주 월요일은 냉면먹기와 그림그리기로 보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수업이 시작하기 전 선생님의 앙증맞은 팔레트를 열어보니 ‘꼭 가지고 싶다’란 열망이 강력하게 드는거 있죠. 저정도 크기의 팔레트는 국내엔 없데요.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쓰던것이랍니다. 저도 딱 저 정도 사이즈를 꼭 구비해야겠어요 (ㅎㅎ 벌써부터 지름신만 잔뜩) 첫날 수업의 백미는 맨 위 영수증 그림이 아니구요. 아래의 세 작품이었어요.
위의 그림은 스케치북은 쳐다보지 않고 눈으로 사물을 관찰하면서 손을 움직인 결과이고 왼쪽 아래는 왼손으로 그린 그림, 오른쪽은 음악 세 곡을 듣고 그린 그림이에요. 이 과정이 아마 첫날 수업의 백미이자 ‘자연스럽게 그리기’ 수업 전체의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지금까지 그저 실제와 비슷하게 그린것을 잘 그린 것의 기준으로 삼았고 그렇게 그리지 못하는걸 부끄러워하며 남에게 자신의 그림 내보이기를 주저했다는 말이 정말 와닿았어요. 객관적으로 모두가 해석할만한, 모두가 잘 그렸다고 생각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관을 그리는 것이라는 걸 알게되었죠. 저 세 번의 과정은 지금까지의 나쁜 습관과 가식을 털어버리는 시간이었어요. 내가 편하고 내가 자유롭고 내 손이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상태를 만들기 위함이었죠. 첫시간을 듣고 나니 이 과정이 왜 ‘자연스럽게 그리기’인지 그 의미를 알겠더군요.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몇 주전 후배녀석이 평일 낮에 저를 찾아왔었어요. 그 녀석과 밥을 먹고 정동극장에서 차를 마시면서 날씨 좋은 평일 낮의 이런 여유가 참 좋다는 얘기를 했죠. 그리고 재미있게 사는 것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말했어요. 전 그때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는데 그 녀석이 자신은 몇 개월 다녔었다고 하더군요. 강사선생님에게 명절때마다 공물을 바치는 아줌마들의 성화가 보기 싫어서 관뒀다고요. 어제 그 후배가 문득 생각이 나서 막바로 문자를 보냈어요.
제 생각엔 그 녀석 ~ 이 수업을 들으면 정말 좋아할것 같더군요.
앞으로 전 부끄럼없이 제 그림을 그냥 보이려구요. 아마 그런 그림들이 많은 분들을 미술강좌로 끌어낼 걸로 믿어요. ‘아~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어’할테니까요. 사실 그러지 않고도 나와야 하는데 말이죠 ^^ 혼자 그림 그리는 분들 많을거에요. 그리고 분명 그리는 기법을 궁금해 하실거에요. 아마도 수업에 참여한다면 그런 기법등을 구체적으로 물어볼 수 있고 배울 수 있어 등록하겠죠. 그런데 첫날 수업을 듣고 나니… 그런 테크닉보다는 보고 느끼는 방법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자신의 자유로운 시선과 손을 가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큰것 같더군요.
다들 빨랑 나오세요~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연락드리네요.
계속 생각만 하다가 낮에는 바빠서 잊어버리고
잠이 안와서 컴퓨터 켠 김에 이렇게 찾아왔어요.
그림을 그리시다니 너무 부러워요.
저도 언젠가는 제 시간을 가질 수 있겠죠? ^^
자주 찾아올게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