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tish Invasion

1977년 존 트라볼타와 비지스를 내세운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는  영화적인 재미 이상의 의미를 지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는데 이건 영화제작진과 배우, 영화음악 담당자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그때는 60년대 중반이후부터 전유럽과 미국을 휩쓴 소위 ‘British Invasion’이 황혼기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거함 ‘비틀즈’를 위시하여 Led Zeppelin,  Deep Purple과 같은 향후 수십년간 다시 나오길 힘든 수퍼 그룹들이 비틀즈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었고  Rolling Stones, Yardbirds, The Who, Pink Floyd, Yes, EL&P, Genesis, Renaissance ….. 등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의 명그룹들이 이 시기에 영국에서 탄생하여 전세계 Rock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의 뮤지션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지향점으로 영국의 슈퍼밴드를 좇기 바빴을 시점이었고 지리적으로는 약간 거리가 있었던 미국에 비틀즈가 드디어 상륙하기 시작하면서 ‘British Invasion’이란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를 굳이 규정짓자면 1차 침공의 시기 정도라고 할수 있겠다.  그후 70년대에 비틀즈의 후속타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던 시기를 2차침공의 시기로 생각할 수 있다.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가 나왔던 77년이후에는 Elvis Costello, The Clash, Sex Pistols가 British Invasion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확실히 비틀즈, 레드 제플린, 롤링 스톤즈때에 비해서는 그 무게감이 떨어지고 있었다.       (외부적인 영향도 있었겠지만) 이시기는 지난 10여년의 영화를 누렸던 수퍼그룹들이 서서히 쇠락하던 시기였는데 이미 비틀즈는 없어졌고 딥퍼플은 잦은 멤버 교체의 우환을, 그외 그룹들은 이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앨범들로 팬들의 실망을 사고 있던 시기였다.

70년대 중반까지가 영국그룹들이 주도한 Rock음악의 시대였다면 중반 이후부터는 점차 그 색깔이 흐트러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디스코와 뉴웨이브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낙타를 쓰러뜨린 마지막 하나의 짐

이런 시기에 등장한 ‘토요일밤의 열기’는 휘청거리면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던 기존의 판도에 종지부를 찍는 결과를 가져와서 마치 이 영화 한편이 모든걸 무너뜨린것 같이 여겨졌지만 실상 그 정도는 아니더래도 ‘낙타를 쓰러뜨린 마지막 하나의 짐’ 역할을 충실히 해준것이다.

지금 다시봐도 감탄스러운 존 트라볼타의 춤과 비지스의 노래인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파격적이었을지 짐작하지 않아도 알만하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젊은이들은 고고에서 디스코로 자신들의 춤을 전환했으며 월남전까지 끝난마당에 굳이 히피스럽게 젊은 시절을 보낼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드디어 자신들의 몸뚱이를 환락의 생활에 던지기 시작한다.

예술성보다는 상업주의가 더욱 득세를 하고 고뇌와 번민보다는 신나게 노는것이 일과가 되었다.  

“War is Over ~” 란 구호가 그런현상을 가속화 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토요일밤의 열기’이후 올리비아 뉴튼존이 나왔던 그리스로 다시 열풍을 이어나가는듯 하더니 아예 마이클 잭슨이라는 초대형 팝가수의 탄생으로 British란 단어는 America나 USA로 대체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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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90년대이후에 나온 음악들과 영화는 그리 땡기는게 없어 걱정이다.

오늘은 그냥 지나가다가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어쩌구 기사를 보고 생각나서 한마디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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