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놓고 보니 대작이 되었지만 본래 IT Warfare는 순수하게 프레젠테이션 교육 목적으로 기획을 시작하게 되었다. 난 이야기를 크게 두가지 패턴으로 본다. 인과관계에 의해 결론이 존재하는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로 말이다.  전자의 패턴을 해결사 플롯, 후자를 서사시 플롯으로 명명했다.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교사나 교수가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는 것, 초보자에게 작동방법을 알려주는 행위 같은 형식이 서사시 플롯에 해당된다. 결론이 있는 이야기야 결론을 향해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나아가면 되는데 서사시 플롯은 그런 롤러코스터 같은 극적 반전이 없다보니 자칫하면 지루해지기 쉽다.

강의를 하면서 많은 분들이 서사시 플롯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 같은 플롯이라면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재미있게 프레젠테이션 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어떤 의사분은 새로운 의료기의 사용법을 인턴들에게 가르쳐야 했는데 동작원리와 작동법, 유의사항, 사용 노하우에 대해 가르치려 하는데 그 모든 것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 낸다는 것은 좀 어렵지 않겠느냐고 얘기한다. 또한 어떤 교사분은 역사수업을 하는데 짧은 시간내에 왕조를 중심으로한 정치와 문화를 연대순으로 포인트를 집어 주어야 하는데 중요한 부분이 많아 그걸 단순화하면서 생략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한다. 법정에 서게된 어느 변호사 분은 법의 문구라는 것이 어떤 부분은 생략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단순화 시키면 본래의 뜻이 왜곡되기도 하여 어쩔 수 없이 지루한 문구를 모두 말하게될 수 밖에 없노라고  얘기한다.

난 어떤 내용이든 기획자에 의해 그것이 얼마든지 재미있는 내용으로 몰입도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전체를 이해시킬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IT Warfare에 대한 기획은 서사시 플롯 역시 재미난 프레젠테이션으로 엮을 수 있음을 내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교육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 이야기는 1997년 스티브 잡스의 복귀부터 15년간 IT업계전체가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한 내용을 풀어가려는 이야기다. 여기엔 정말 많은 등장인물과 사건이 깨알같이 박혀있다. 과연 이걸 한시간 정도에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

 

아이디어의 구체화

1997년부터 2011년까지 IT업계를 주름잡았던 각 부문의 무수한 강자들이 있다. 막상 손을 대고보니 이 주제를 호기롭게 시작한 나 자신을 원망하는 것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어디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나 조차도 막막했기 때문이다. 일단 난 주요 등장인물과 사건을 정하기 위해 전체 구성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주어진 한달 정도의 시간에서 거의 절반의 시간을 할애하여 IT산업계 전체의 구도를 마인드맵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첫번째 작업은 IT의 시장을 기업용 시장과 개인용 시장으로 크게 나누고 각 시장의 주요제품과 그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를 나열해 보는 것이었다. 즉, 고객과 품목으로 등장인물을 분류해보기 시작했다. 이 작업에서 완벽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어느 정도 전체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작업을 멈추고 거기에서 플롯을 뽑아낼 생각이었다

IT-War

어느 정도 작업이 진행되어갈 무렵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마인드맵을 그리기 시작했다. 현시점에 있어 가장 잘 나간다고 하는 회사들의 포트폴리오를 정리해 보는 것이었다. 이들이 시장에서 어떻게 부딫히고 있는지 가늠해보기 위한 것이었다.

IT War 2

주제를 받아들고 나서 문제를 인식하고 내 나름대로의 프레임으로 청중을 이끌기 위한 브레인스토밍은 필수적인 코스다. 이 두 마인드맵을 통해 나는 기본적인 축을 몇 개 설정했다

  • 1번축 : 엔터프라이즈-컨수머 시장으로 나누어 전체를 설명
  • 2번축 : 서버베이스 컴퓨팅-클라이언트 컴퓨팅의 IT이데올로기 2분화 구도
  • 3번축 :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 3국쟁패 구도

이 세 개의 축에 나는 등장 인물들을 모두 붙여나가기로 했다. IT의 거인들을 모두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짧은 시간에 영웅들이 모두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건 삼국지를 영화로 만드는 것과도 같다. 수백명의 영웅 캐릭터들이 2시간 남짓한 영화내에서 모두 살아숨쉴 수는 없었다. ‘삼국지 적벽대전’같은 영화라면 제갈량이 주연이 되고 다른 인물들은 자연스레 조연이 되며 그 많은 사건 중 적벽대전만 줌인(Zoom-In)시켜 만드는 것이고, ‘삼국지 용의전설’같은 영화는 조자룡이 주인공이 되고 유비, 관우, 장비는 단역에 그친다. 내가 만드는 영화의 캐스팅은 다음과 같이 정해졌다

  • 주인공 : 애플,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
  • 조연 : 오라클, IBM, HP, 시스코,  EMC, 아마존, 페이스북
  • 단역 : Dell, 삼성, 3Com, Compaq, Sybase 외 다수

이들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정말 다양한 Product들이 사건과 함께 등장하고 이들의 평가 잣대는 ‘매출액’ 단 하나만 사용하기로 했다. 주가와 같은 다른 정량적인 지표나 정성적인 요소도 있을 테지만 이들을 같은 레벨에서 동일한 잣대로 비교하기엔 매출액이 가장 수월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축과 캐스팅이 정해짐으로 인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지는 대략적으로 구상이 끝났다. 이 다음에 한 일은 청중의 특성을 분석하여 그에 따라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 프레젠테이션은 엔트리브라고 하는 게임회사의 임직원 전체가 대상청중이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 20대에서 30대 초반이 대다수
  • 일반 샐러리맨보다는 디자이너, 개발자, 게임기획자 같은 엔지니어 성향
  • 마지막날 늦은 오후의 세션

위 사실을 통해 아래와 같은 추정을 할 수 있었다

  • 오덕후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향
  • 포멀하고 젠틀한 것 보다는 공상과학적인 것
  • 게임이라는 공통분모
  • 마지막세션이라 지치고 집중력이 저하될 수 있는

고민끝에 이 모든 것을 묶을 수 있는 몇 가지 소재를 결정했다

  • 전쟁 (War !), 시리즈 (Warfare !) : 게이머, 개발자, 디자이너가 공감할만한 요소
  • 스타워즈 테마, 반지의 제왕 테마 : 매니아적인 테마
  • Osmos ! : 게임을 이용해 게임의 원리를 설명
  • 3국지 :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구도
  • 시선을 잡아끄는 도입부

이제 이 모든 요소를 하나의 틀에 부어넣는 일이 남았다. 여기까지는 참 막연하고도 모호한 작업이다. ‘IT 삼국지를 쓰겠다’라는 막연한 한줄기의 의지만으로 큰 이야기의 구상없이 이런저런 자료들을 보면서 생각들을 정리했던 단계였다. 이렇게 생각해보라. 오늘 저녁식사로 된장찌게를 끓여야 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장에가서 이런저런 식재료들을 대략적으로 산다. 양파, 대파, 청양고추, 모시조개, 논우렁살 같은 식재료를 말이다. 집에와서 재료들을 씻고 다듬어서 드디어 요리할 준비는 마쳤다. 된장찌게이긴 하지만 모시조개를 넣고 끓일지 논우렁살을 넣고 끓일지, 아예 해물된장찌게를 끓일지 세부적인 레시피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아마 우리 상태가 이정도일 것이다. 처음부터 세부적으로 ‘모시조개를 넣고 찌게를 끓이겠다’는 생각은 무리일지 모른다. 가끔 모시조개가 없는 날이 있기도 하고 품질이 나쁜 날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럴때 우리는 마트에 나와 있는 가장 신선한 재료를 고르면서 레시피를 급수정하기도 한다.

 

 

 

Facebook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