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다스의 개, 어린시절 만화

By | 2012-09-15

며칠전 정후를 안고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면서 녀석을 재우는데 계속 조용한 노래를 불러주다가 레퍼토리가 떨어져서 머리속으로 생각하다 어린시절 즐겨보던 ‘프란다스의 개’ 주제곡을 나즈막히 불러줬다. 사실 하도 오랜만에 불러보는 프란다스의 개라서 정후가 잠든 후에도 몇 번이나 다시 불러줬는데 갑자기 예전 그 만화가 생각나서 가슴이 울컥했다. 생각해보니 그 ‘울컥’하는 기분은 상반된 두가지 기억때문이었다. 하나는 물론 프란다스의 개의 감동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걸보고 짜증이 났었기 때문이었다.

아… 네로네는 너무, 찢어지게 가난했다. 게다가 하루하루 밥벌어먹고 사는 구조는 왜 그리 힘들어 보이는지 폐렴에 걸린듯한 쇠약한 할아버지와 아직 미성년인 네로와 파트라슈라는 줏어온 개가 앤트워프까지 가서 우유를 팔아야만 연명할 수 있는 구조라니… 게다가 할아버지가 아파서 앓아 눕자 네로와 파트라슈만…크흑…

어린 시절의 내가 봐도 극의 설정은 너무 비참했다.  특히 느릿한 말로 해설하는 성우 아저씨의 분위기도 슬픔을 더욱 부추겼다. 언제나 비협조적인 아로아의(주인공 네로의 여친) 아버지,  광폭한 파트라슈의 전 주인 등은 너무 미웠다. 극이 계속될수록 비참함은 나아지기는 커녕 계속 증대되기만 했다. 풍차화재사건의 범인으로 몰리질 않나 미술대회에서는 탈락하지 않나 … 아…그때쯤엔 이미 찢어지게 가난한데 대한 울컥거리는 심정보다 그 상황에 대해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너무 약한 네로에게 화가났고 아파서 누워있는 네로의 할아버지에게도, 아로아의 아빠에게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도 않고 맨날 놀러오는 그 형제에게도 말이다. 그렇게 슬픈 내용의 연속인데도 주제가는 밝고 명랑한 것이어서 역설적으로 더 슬펐나보다.

난 ‘프란다스의 개’ 원작이 어떻게 끝나는지 매우 궁금해서 형에게 결말을 물어보았는데 루벤스의 그림을 보면서 죽는다는 대답을 듣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었다. “뭐라고? 지금의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는단 말인가? 네로가 그림으로 출세해서 집안을 일으키고 아로아랑 결혼하는게 아니라?”

맙.소.사…나…난….

마지막 장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고 그때부터 프란다스의 개를 일부러 보지 않았다. 맙소사…네로가 죽다니…. 아마 그걸 봤더라면 초등학생인 나는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했을텐데 난 만화를 보면서 그러기는 싫었다. (솔직히 위의 그림은 지금 처음본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가슴이 아리다)

난 솔직히 불만족스러웠다. 왜 어린이 시간에 해주는 만화영화가 저렇게 슬퍼야 하는지 너무 의아했다. 모든 만화가 마징가제트나 그랜다이저 같으면 안되는건가?  맙소사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 언젠가 부터는 프란다스의 개 이후에 엄마찾아 삼만리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정말 눈물없이 볼 수 없는 드라마를 왜 어린이들에게 보여주는건지 …어렸던 나는 그때 엄청 화가났었다.

그러고보면 그 전에 봤던 서부소년차돌이도 마찬가지였다. 정후에겐 이런 슬픈 만화들은 보여주지 않으리…

아…이걸 보면 정말 지금도 울컥거린다. 루벤스가 뭐라고 젠장할…

P.S- 난 지금까지도 루벤스에 대해 감정이 좋지않다. 루벤스가 이들의 생명을 거두어들인 것 같이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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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프란다스의 개, 어린시절 만화

  1. CK Hong

    저는 말씀하신 만화 세 가지를 끝까지 다 봤습니다. 어린 나이에 정말 많이 울었고 슬퍼했었습니다. 마치 제 어렸을 때 모든 기억이 슬픔으로 가득 찼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의 인성을 형성되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도 듭니다.
    남을 이해할 줄 알고 어려운 이웃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런 말 하려니 부끄럽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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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흠…긍정적으로 보면 그런 효과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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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김수수

    저도..!!이런 비극적인 결말이 싫어서 마지막회는 안봤더랬죠..정말 동감입니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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