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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도입부분.  T-Rex의 Cosmic Dancer가 흐른다

빌리 엘리어트에 대한 포스트를 하려고 항상 작정을 하다가도 심경이 복잡해져서 그동안 올리지 못했더랬습니다.   원래는 블로그 개설 기념으로 올리려고 했다가 결국 쓰다말고 지금까지 두었었죠.  지금 대대적으로 수정해서 다시 올리는 거랍니다.   빌리 엘리어트는 대단히 복잡한 영화중 하나입니다. 

여러가지 소재들이 절묘하게 엮여있는 영화죠.  또한 저에겐 21세기들어 가장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아마 그렇게 감탄을 하면서 본 영화가 도대체 얼마만인지 기억이 안날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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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의 어느날 저는 대치동 지하에 박혀서 저의 팀원들과 열심히 뺑뺑이를 도는 벤처기업에 있었죠.  그날 저녁때 코엑스몰에서 가볍게 맥주를 한잔하고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뭘볼까 하다가 마침 볼게 너무 없어서 어쩔수 없이 선택한 영화가 ‘빌리 엘리어트’였죠.

빌리 엘리어트는 ‘음악’ 영화다

이 영화가 저와 코드가 맞는 영화라는 것을 알아채는데 필요한 시간은 영화시작후 10초도 안되어서 였습니다.    첫 장면에서 빌리는 T-Rex의 Electric Warrior 앨범을 턴테이블에 겁니다.  T-Rex의 리더 마크 볼란은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 중의 하나였죠.

첫장면, T-Rex의 Electric Warrior LP를 플레이어에 거는 빌리

세상에… 이 영화엔 T-Rex의 곡이 다섯곡정도 나옵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저 앨범은 이미 20년도 넘은 구닥다리 였고 마크 볼란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죠.   티렉스의 곡들은 이 영화를 위해 씌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건 마치 영화를 만들때 T-Rex에게 의뢰해서 이 영화만을 위한 음악을 만든것 같았습니다.

처음 나오는 Cosmic Dancer는 빌리가 춤을 침대에서 춤을 출 때 흘러나오죠…

가사가 대충 이렇습니다… 

‘나는 12살때부터 춤을 췄어요..늦게 춤을 배운게 이상한가요? …죽을때까지 춤을 췄어요…’

주제를 관통하고 있는 가사였죠.  그건 그냥 우연의 일치라고 재미있게 생각하고 넘어갔었습니다.

빌리는 발레교실을 훔쳐보다가 한두번 발레에 발을 들여놓게 되죠.   심정적으로는 사내애가

발레를 하는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빌리의 몸이 발레를 원하는걸 빌리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길을 가면서도, 교실에서도 계속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죠.   이때  발레를 부추기는 곡이 흘러나오는데 역시 T-Rex의 (Bang a gong)Get it On 이었습니다.     이곡은 T-Rex 불후의 명곡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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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빌리가 복싱대신 발레를 하다가 아버지에게 걸려서 신나게 야단맞다가 대판 싸우고 집을

뛰쳐 나갈때 흐르던 Children of Revolution때는 좀 심상찮았습니다.

발레선생에게 개인교습을 받으며 같이 신나게 부기춤을 출 때  I love to Boogie가 흘러나왔던 것은

거의 결정적인 증거였죠.   영화의 스토리를 T-Rex의 히트곡들로 따라가고 있었던 겁니다.

(영화의 중분부분 까지 벌써 4곡이나 나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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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영국의 광부파업을 힘으로 저지했던 대처수상. 이 영화의 배경이기도 하다

경찰에게 쫓기던 시위대와 시위의 주동자인 빌리의 형이 도망을 치면서 흘러나왔던 The Clash의 London Calling은 탁월한 선곡이었습니다. (원래 클래쉬가 의식있는 밴드죠 ^^  비록 T-Rex의 곡은 아니지만 상황에 어울리는, 그리고 진짜 명곡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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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의 형이 경찰서에 들락거리면서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 해지자 빌리는 로열 발레스쿨 오디션에 못나가게 되고 발레선생님은 오디션 때문에 빌리의 집에 왔다가 빌리와 함께 수모를 당하죠.

이 때 빌리는 거리로 나가 울적한 기분을 탭댄스로 푸는데요.  이 때 흘러나온 The Jam의 Town Called Malice역시 아주 아주 좋은곡이고 빌리의 탭댄스와 잘 어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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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빌리가 로열 발레스쿨에 들어가면서 종점으로 치닫습니다.  성인이 된 빌리가 도약하던 마지막 장면이후 흐르던 곡 역시 T-Rex의 Ride a white swan이었습니다. (백조의 호수를 공연한 것이니 이 또한 우연치곤 기가 막히죠)  뒤를 이어서 자막이 흐를때 등장한 곡은 Stephen Gately의 I Believ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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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상황이 이러하니 제가 어찌 빌리 앨리어트를 음악영화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T-Rex에게 헌정되는 영화를 방불케 하는군요.   최초로 영화의 플롯을 잡았을 당시부터 염두해 두지 않고서는 이런 선곡을 하기 힘듭니다.   영화의 내용과 흡사한 곡을 한 그룹에서 다섯곡이나 발췌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죠.   게다가 T-Rex의 앨범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빌리 엘리어트는 ‘댄스’영화다

빌리 엘리어트가 딱히 발레 영화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상당히 다양한 쟝르의 춤들이 등장한다는 겁니다.

부기댄스, 탭댄스, 발레에 이어 마지막에는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가 잠깐 나오죠.  이 역시 퓨전성격이 강한 작품이었죠.  

이 영화의 표면적인 소재이기도 한 ‘춤’은 영화내에서 상당히 거칠게 다루어집니다.

보통 ‘춤’영화라면 아무리 빌리의 성장영화라 해도 볼거리와 내공을 보여주기 마련인데요. 

‘백야’가 그랬고 (춤이 진짜 끝내줬죠.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와 그레고리 하인즈가 나옵니다)

전세계의 춤과 음악판을 바꾸어 놓은 ‘토요일밤의 열기’ (존 트라볼타의 디스코는 그당시 인간으로는 따라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봐도 그렇습니다)가 그러했으며

‘사랑은 비를타고’에서 진 켈리가 보여준 춤은 지금도 깨지지 않는 육상 세계기록같이 너무 벽이 높아보였습니다.   심지어는 더티 댄싱이나 플래시 댄싱에서 조차 그런 내공을 발산했죠.

오우~  아담쿠퍼의 저 멋진 도약을 보라

빌리 엘리어트의 감독인 스티븐 달드리는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내공이 담긴 춤은 자막이 올라가기 1초전에서야 딱 한장면만 보여주고 끝냅니다.   (위의 사진을 좀 보시죠)

저도 그랬고 같이본 아해들 역시 저 춤사위를 끝까지 보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을 정도였죠.   실제로 이 한장면의 춤사위를 보여준 이가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 오리지널  백조인  아담 쿠퍼였습니다.

달드리 감독 역시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를 보고 영화에 대한 강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단 한장면은 너무 했습니다.  남들은  질릴때까지  모든  초식을 시전하는데  달드리 감독은  무협지에  나오는 한장면 같이 무공대결대신 그저 매화꽃을 잘라서 보낸후 상대방이 가지를 자른 칼솜씨를 보고 감탄해서 스스로 간단하게 항복해버리는 것과 같은 방법을 써버리다니요.

어린 빌리는 로열 발레스쿨 오디션에서까지 막춤을 추지만(영화를 보던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춤에 대한 생각과 자세 하나로 합격해서 결국 저런 고수의 반열에 올랐죠.   보고난 직후에는 춤이 싱겁다라고 생각되던 것이 시일이 지나고 다시 보면 볼수록 ‘저렇게 하길 잘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

로열 발레스쿨 오디션의 심사위원들.  빌리의 막춤에 적잖게 황당한 기색을 보이지만 저 맨 오른쪽에 앉아있는  심사위원이 돌아가는 빌리의 등뒤에 던진 질문의 대답을 듣고는 비로소 빌리가 추는 춤의 근원을 이해하게 된다.

빌리 엘리어트는 ‘정치’영화다

1984년 마거릿 대처수상이 연임하여 집권하던 시절  일어난 영국의 탄광파업은 이미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수십년동안이나 영국의 집권당은 탄광파업의 향방과 운명을 같이 해왔죠.  1970년대 초반까지 석탄이 전체 75%의 에너지 원일때는 탄광노조가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석탄의존도가 현격하게  줄어들어버렸던 1984년에 대처는 노조에게 굴복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결국 대처가 파업을 1년이나 버틴끝에 항복을 받아냈고 광부들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탄광은 폐쇄되었고 석탄산업은 민영화의 길을 걷게되었죠.

대처는 경제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정책은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달드리 감독 역시 이점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냉혹한 터치를 그대로 살려서 말이죠.   빌리를 발레 학교로 보내기 위해 배신자의 낙인이 찍히면서까지 탄광으로 조업을 나가는 장면은 정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겨울에는 땔감을 살돈이 없어 먼저 가버린 아내의 유품이었던 피아노를 부숴서 착잡하게 난로에 넣죠.

달드리 감독은 현실과 대의명분에 대한 갈등을 극명한 대조로 풀어나가는 데요.  위에서 말한 조업 나가는 장면도 그랬고 빌리가 합격통보를 받은 그날 노조사무실로 그 소식을 전하러 갔다가 노조가 정부에 항복한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빌리의 형과 아버지. 이들의 놀랍도록 사실적인 연기가 실질적으로 영화를 이끌었다

가장 냉혹하고 강렬한 대조는  빌리가 로열 발레스쿨로 떠나가고 항복한 노조원들은  조업을 재개하기 위해  탄광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바로 위의 장면이었죠.  그들의 표정에 이젠 희망은 없습니다.

마치 나락으로 떨어지듯이 말이죠.

반항적이고 이 사회와 잘 어울릴것 같지 않았던 Clash와 T-Rex의 음악이 그래서 더 잘어울렸군요

빌리 엘리어트는 ‘동성애코드’를 가진 영화다

영화 전체를 통해 동성애 코드는 다분히 드러납니다.   달드리 감독은 여러가지 힌트를 주고있습니다.

빌리의 성의 정체성도 영화에서는 상당히 모호한 편이었습니다. 

일단 빌리의 친구인 옆집에 살았던 마이클은 혼자 집에 있을 때 여자옷을 입는다던가 화장을 하는 등 거의 여성화된 남자애로 나오죠.   마지막 빌리의 공연장에 온 마이클은 (아래사진)  남자친구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아예 ‘커밍아웃’한 것으로 결론을 내주었습니다.

빌리의 공연무대에서 우연히 나란히 앉게된 마이클과 빌리의 가족.  빌리의 형이 흠칫 놀라고있다.

빌리의 경우 그의 발레친구이자 발레선생의 딸인 데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죠.  데비가 빌리를 좋아했던 것은 여러 정황상 확실했으나 빌리는 데비가 매력이 없어서 무관심했다고 보여지지 않을만하게 행동을 했습니다.   

결국 데비 보다는 마이클과 노는 것을 선호했으니 말이죠.  

게다가 마지막 성인이 된 빌리 역으로 등장하는 아담 쿠퍼는 실제로도 게이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성인 빌리역의 아담 쿠퍼.  별 연기도 없었는데  왜그리 긴장되던지…압도적 카리스마가 있는건 확실한것 같다.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들조차 이 친구를 보고나면 칭찬을 늘어놓기 바쁘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가 원래 동성애 코드로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었던 데다가 아담 쿠퍼, 매튜 본 뿐만 아니라 감독인 스티븐 달드리까지 모두 동성애자라는 설이 파다하니 ….

달드리 감독은 공교롭게도 두번째 작품인 ‘디 아워스’에서 역시 동성애 코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쯤되니 한번쯤 의심받을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배우들의 연기와 초짜감독

제일 경악스러운 부분은 스티븐 달드리가 빌리 엘리어트로 영화감독 데뷔를 했다는 점입니다.

위에서 얘기한 음악+댄스+정치+동성애 코드를 모두 적절히 조화롭게 배치하면서도 4개소재가 모두 부각되는 이런 영화가 감독 데뷔작이라니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인 빌리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배우들이 연극에서 잔뼈가 굵은 연기파들이자만 정작 영화는 거의 초짜 수준이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출연하는 단역배우들 조차 쉽게 넘어갈수도 있는 표정 하나하나도 너무 사실적이어서  정말  이영화를 만든 집단이  진짜 초보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빌리가 도약할때 0.5초도 안되게 잠깐 노출되던 빌리 아버지의 표정연기.   빌리가 드디어 무대로 뛰어나오며 도약하자 너무 감격스러워서 ‘울컥’이는 연기를 찰나의 시간에 기가막히게 보여줬다.

빌리 엘리어트 이후 헐리우드가 그의 작업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는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이 되었습니다.      거대 자본가들이 그의 재능을 돈버는데 동원할까봐였죠.    이미 볼프강 페터슨 같은 감독은 적어도 제 생각엔 그런식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Das Boot를 감독할 당시의 그 광기는 헐리우드의 달러뭉치에 의해 가려졌었죠.

그래서 그의 차기작인 ‘디 아워스’의 캐스팅이 발표되었을 때 니콜 키드먼 등 배우들의 면면을 보고 더이상의 빌리 엘리어트는 기대하기 힘들겠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디 아워스가 괜찮긴 했지만 역시 빌리..시절의 광채는 약간 바랜 느낌이었죠.  (그래도 키드먼의 분장은 기존배우의 선입견을 지우는데 충분했습니다.  저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니콜 키드먼을 찾다가 시간 다보냈습니다.)

최근작들중 최대의 수확

빌리 엘리어트 이후에 나온 영화들중 이를 능가하는 마음에 드는 작품은 아직 못봤습니다. (물론 반지의 제왕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려서 봤습니다만 그건 종류가 다른거였죠)  비록 제가 위에서 여러개의 주제로 나눠서 얘기를 했지만 이 영화는 그냥 전체로 느끼면서 보는게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주인공 빌리의 열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거든요.

그건 마치 빌리가 로열 발레스쿨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과도 유사하고

감독의 기본적인 광기도 그런것에서 나오는것 같습니다…

정말 좋은 영화였습니다…언제 다시봐도 흥미진진하군요…후우~

빌리 마지막으로 하나 물어보자.  넌 춤을 출때 어떤 생각이 드니 ?
음…모르겠어요
그냥 좋아요

활활 타오르는 불길같은 느낌,

날아가는 것 같아요

모든걸 잊어버려요

춤을 출때 저는 한마리 새처럼 날고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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