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HP가 Web OS와 타블렛의 포기와 함께 발표한 PC사업의 분사 발표에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HP는 전세계 PC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이날의 발표 직후 HP는 또하나의 놀랄만한 발표를 했는데 Autonomy를 110억불에 인수하기로 한 것 때문이었다. 이 두가지 발표는 결국 컨슈머 시장에서의 철수와 엔터프라이즈 시장의 강화를 의미했다. HP는 PC와 프린터로 다섯전쟁의 승리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산맥을 넘어 컨슈머 시장을 적극 공략하려한 회사였는데 이제 큰 전략이 바뀐것이다.

PC 시장엔 부품만 조립할 줄 알면 누구나 뛰어들 수 있었다. 그래서 유달리 경쟁이 심했고 마진이 박했으며 경쟁자들 또한 넘쳐났다. 십 수년간의 전쟁을 통해 PC시장에 환멸을 느낀 이들이 사업을 포기했으며 여러 회사가 무너졌고 이제 HP와 Dell로 승자가 가려진것 같이 보인다.   1996년부터 현재까지 PC 시장의 주도권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보자. 다시말하지만 이 시장은 엔터프라이즈 플레이어가 컨슈머와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였다.

1996년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컴팩-IBM-NEC-애플이 1위부터 4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이들 모두 이제는 없어졌거나 순위에서 밀려있다. 애플은 이 시기 호환기종이 출시되어 있었다.

97년 드디어 순위권에 델이 등장했. 컴팩의 점유율은 더 상승했으며 3위권 다툼이 치열해 보인다.

컴팩의 점유을은 더욱 올랐고 델역시 마찬가지다. IBM과 NEC만 하락했다. 이때쯤부터 Dell의 직접 판매모델에 순위권내에 있는 거의 모든 업체들이 고전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순위권챠트에선 델이 독보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IBM은 드디어 2위 자리를 델에게 넘겨주었으며 컴팩도 점유율을 델에게 서서히 내주고 있다

IBM의 하락이 지속적이었다. 델은 더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었는데 컴팩과  HP들은 델과 같이 인터넷에서 자기 마음대로 컴퓨터를 조립해서 주문을 넣을 수가 없었다. 델의 SCM모델이 이시기에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우려하던대로 컴팩이 델에게 왕좌를 내주었고 HP와 IBM은 점유율이 급격히 줄어들어 버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델이 모든것은 집어삼킬 기세였다. 이 시기 들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것은 PC판매대수였다. 전년도 1.3억대로 정점을 찍은 이 시장은 2001년 들어 최초로 1.28억대로 하락한 것이었다. 96년 7천만대에서 4년만에 두 배로 성장했다가 말이다.

이때를 즈음하여 IT산업계의 센세이셔널한 합병 발표가 나온다. HP가 컴팩을 인수해 버린것이다. 이로써 잠시나마 통합 HP 는 1위에 복귀할 수 있었지만 델의 점유율은 여전히 확대되는 중이었다. 전년도에 처음으로 PC수요가 줄어들었던 것도 위기감을 가속시켰는지도 모른다.

HP의 통합의 효과는 이듬해까지 지속되지도 않았다. 델은 1위자리를 탈환했다.

이때부터는 델과 HP의 2파전 양상으로 변했고 IBM은 PC시장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컨슈머 시장은 매력적이지 못했고 엔터프라이즈 시장에서의 집중이 필요했다.

결국 IBM은 레노버에게 PC부문을 매각한다. 엔터프라이즈 시장의 강자들은 이로써 컨슈머 시장과 점점 멀어져 간다. 이 사이 델과 HP의 시장점유는 더 커지고 있었다

델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 마이클 델이 너무 일찍 물러났고 직접판매모델의 후속타가 없었으며 서비스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쟁자에게 너무 많은 시간적 여유를 허용했다. HP는 선도적이지는 않지만 완전히 고리타분한 조직은 아니어서 이때쯤 델의 직접판매 모델의 장점을 많이 벤치마킹한 상태였다. 변할것 같지 않았던 반전이 여기서 일어난다.

델은 2007년부터 급전직하한다.

이시기 에이서 등은 드디어 두자리수의 점유율까지 확보한다.

굴욕적이게도 델은 2009년에 2위자리까지 내주게 되었고 마이클 델이 복귀해 정상화에 안간힘을 쓰고는 있었다.

델은 이듬해 다시 2위 자리를 탈환했지만 예전의 델이 아니었다. HP는 1위자리를 굳건하게 지키는것 같이 보여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 PC사업의 분사얘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HP, Dell 등 이 시장의 강자모두 1,2위를 달리고는 있지만 정상이 아니다. 게다가  PC산업엔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었다

HP는 PC사업의 분사를 발표해 놓고도 계속 말을 바꾸며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사이 iPad가 발표되며 가뜩이나 심란한 PC 시장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타블렛이 PC를 대체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에 말이다. 스티브 잡스의 독설처럼 아이패드를 제외한 모든 타블렛이 전멸을 면치못했다.

PC시장은 엔터프라이즈의 다른 4개 시장 전체를 합친것 만큼이나 크다. 엔터프라이즈 시장의 근간이 되어 왔던 사업중 하나란 뜻인데 그것이 컨슈머 시장의 강자인 애플로부터 직접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PC시장은 더 성장을 할 것이냐 이제 하락할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다

PC시장은 96년이후 4배나 성장했고  IBM이 사업을 접었으며 컴팩은  HP와 합치는등 가장 변화가 심한 시장이었다. 이제 PC시장은 PostPC 이슈에 직면했고 96년 래리 앨리슨의 네트워크  PC개념 제창이후 최대의 도전에 직면했다. 과연 타블렛과 모바일이 PC시장을 잠식할까 ?

지금까지 엔터프라이즈 시장의 주요 다섯개 전쟁에 대해 설명했다.  IT시장은 본래 엔터프라이즈 시장밖에 없었다. 당연히 지금까지 등장한 다섯전쟁의 승리자들이 IT산업의 주인공들이었다.  2010년말을 기준으로 IT업계의 주요 기업들의 매출액을 살펴보자. 애플과 구글이 어디에 위치했는지 보라. 2010년말이 아니라 2004년정도만 해도 애플은 EMC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구글은 아예 매출을 일으키지도 못했을 시점이었다.

그러나 이 공룡들은 컨슈머 시장에 넘어오지 못하고 계속 엔터프라이즈 시장내에서 머무르고 있다. 지금까지가 이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굳히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이제 엔터프라이즈내의 남의 영역을 침범하며 2차 대전을 일으키는 시기가 될 것이다

5개 전쟁의 승리자들은 몇 몇을 제외하고 직접적인 격돌기회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5개의 승리자들이 5개의 시장영역에 어떻게 손을 뻗치고 있는지를 보자.

가장 덩치가 큰 HP는 DB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 손을 뻗치고 있다. 그들은 3Com을 인수하면서 네트워크 시장에 새로 뛰어들고 있다.

IBM은 사실상 End-to-End 솔루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PC사업에서 손을 떼고 서비스쪽에 주력하고 있다.

시스코는 네트워크가 주력이지만 서버사업에 진출했다.

오라클도 서버사업에 손을 댔다. 생각해보라 시스코와 오라클이 서버사업에 손을 댔는데 스토리지 사업을 같이 안하겠는가 ? EMC는 다큐멘텀 등을 인수하며 솔루션 사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EMC는 스토리지와 같은 하드웨어의 강자같이 보이지만 그들의 강점은 항상 소프트웨어였고 현재 그들은 그들만의 강점을 살려서 나름 출구전략을 제대로 구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나머지 4개 공룡들은 저 화살표가 몰려있는 부분에서 격돌이 불가피하다. 이제 각자의 영역을 평정했으므로 앞으로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차례다.

엔터프라이즈 시장은 대략 1.3조 억불로 추산된다. 서두에 얘기해듯 여기에는 표시되지 않았던 서비스 영역이 사실 위의 다섯개 전쟁터보다 더 큰 영역이다. 그러나 그 서비스 영역은 너무도 많고 다양하며 퀼트이불처럼 무수한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이 자리에서 IBM, HP 등과 같은 등급으로 소개할 수 없었다.

이들 다섯개 회사들이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과 경쟁한다는 얘기를 들어본적이 있는가 ?  같은 IT기업이지만 이들은 경쟁을 한다기 보다는 고객과 공급자의 사이이다. 난 이것을 당구장과 손님이라 비유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구글, 애플 등은 당구를 치러오는 손님이고 IBM, HP 는 당구장 주인이다. 애플과 구글이 서로 내기 당구를 치는건 HP와는 상관없다. 그저 당구비만 받으면 그뿐이다. 실제로 애플은 구글 등과 경쟁하기 위해 새로운 데이터센터에 10억불의 설비를 투자했고 그 중 대부분이 HP서버와 MS의 클라우드 솔루션이라한다. 설마 여기에 시스코의 네트웍 장비와 오라클DB와 EMC의 스토리지가 없을까 ?

엔터프라이즈 시장의 기업들은 당구장 운영만 잘해도 일단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다. 새로운 당구장이 생기지 않게 견제하면 말이다. 그러나 당구장 운영은 수동적이어서 IT의 새로운 바람이 불어줘야지만 당구장에 새손님이 넘쳐난다.  이들 당구장은 이제 거의 고착되었다. 아마 서로의 영역만 침범하지 않는다면 지금 정도의 수익을 영속적으로 누릴수 있을 것이다.  애플이나 구글, 페이스북이 이 영역에 침범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사실 이것이 엔터프라이즈 IT시장의 특성이다. 지금 이 시장은 성숙기를 맞이하고 있다. 주니퍼와 같은 의기양양한 도전자는 계속해서 나오겠지만 Osmos란 게임에서 보듯 그런 도전자들의 DNA 역시 결국 기존 기업에서 나온 것들이다.

아직 이야기하지 않은 한명의 주자가 있다. HP사 발을 빼면서 마이크로 소프트는 이제 산맥을 가로지르며 양쪽에서 활동하는 최초의 엔터프라이즈 IT기업으로 남았다.  MS는 사실 다른 다섯에게 아쉬울 것이 없는 존재였다. 반대로 HP등은 MS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새로운 버전의 윈도우즈 출시는 교체주기의 도래를 의미했다. 또한 자신들이 가지고있는 시스템소프트웨어를 모두 업데이트해야하는 일이기도해서 이들 모두는 MS의 행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데스크탑 OS를 틀어쥐고 있는 것은 거의 절대반지를 가진 사우론과도 같은 존재감이었다. 그들은 같은 제품으로 컨슈머 시장에도 접근할 수 있었다. 내 생각에 MS는 제품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세금을 거둬들이는 절대군주같은 모양새였다. PC를 가진자들은 모두 MS에 세금을 내야하는 것이다 !! (각 PC엔 윈도우즈 세금딱지까지 붙어있지 않은가) PC제조업체들은 OEM으로 공급되는 윈도우즈를 위해 세무신고를 MS에 해야했고 말이다.

1997년까지 이들에게는 강력한 전함 두척이 있었는데…. (다음회 ‘제국의 형성’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