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경의 추억

By | 2012-06-07

1989년 6월이었으니 딱 이맘때쯤 되나보다. 난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가기위해 휴학계를 냈고 그 때쯤부터 거의 매일 군대가는 애들의 환송회가 열렸다. 뭐 그날도 그랬던 것 같다. 할일없이 학교앞 당구장에서 애들과 겐빼이를 치기위해 집을 나섰고 신촌로터리에서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내리는 순간 버스 정류장에서 짭새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오늘이 바로 하필이면 통일의 꽃 임수경이 평양에 당도한 날이로구나. 재수도 없지. 짭새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학생 룩앤 필이 묻어나는 나를 크리스탈 백화점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닭장차로 데리고 갔다. 이미 버스는 만원~

그날 난 학교 근처엔 가보지도 못하고 저녁때까지 마포경찰서 유치장에 다른 수십명의 젊은이들과 갇혀있어야 했다. 짭새들은 꽤나 친절해서 비록 짬밥이었지만 식사도 제공하고 별다른 일로 귀찮게 하진 않았다.  그들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임수경을 보면서 괜히 평양에 가가지고 자기들만 고생시킨다고 투덜댔다. 사실 내 반응도 별반 다른건 아니었다. 하루동안 유치장에서 짬밥을 먹게 했지만 임수경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난 마포경찰서 앞에서 2번 버스를 타고 쿨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애들하고 술을 마시면서 임수경이 안주로 올라왔다. 남학생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너무 푹패인 티셔츠를 입고가서 북한애들에게는 좀 야하게 비춰졌으리란 것 정도와 임종석과 임수경이 둘 다 임씨인데 친인척관계나 연인사이가 아니냐는 정도가 전부였다.

어쨋든 요약하자면 임수경은 내가 살아온 생애에서 하루를 빼앗아 간 여인이었고 난 쿨하게 그걸 받아넘겼다. 그 뒤로는 그에 대한 소식은 별 접할 기회가 없었다가 나중에 임종석과 그 몇몇이 단란주점 소동을 벌였을 때 임수경이 찾아와서 단단히 잔소리를 했다는 에피소드를 전해들은것이 전부다. 그 얘길 듣고 ‘임수경답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총선에서 사실 임수경이 비례대표 후보인지도 잘 몰랐다가 최근의 막말 파동으로 제대로 도마위에 오른 그녀를 보면서 입맛이 썼다. 통합진보당 사태 등으로 정치권 뉴스엔 다시 흥미를 잃기 시작한 시점에서 임수경의 막말사태가 수면위로 떠오른 것인데 저간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하태경의원과 탈북자를 대표한다는 그 요셉인지 하는 청년은 애당초 사과받을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임수경이 국회의원으로서 공인의 신분이기는 하나 100분 토론같이 공적인 자리에서의 실수도 아니었던 것 같고 예의 그 불같은 성격상 그 정도의 사과면 받아들이고 넘어갈 수도 있을것 같았는데 이게 빨갱이 논쟁으로 들불같이 번지게 되는걸 보고 아연실색했다. (물론 그 역시 이왕하는 사과면 그 성질 좀 죽이고 확실히 숙일 필요가 있었다)

얼마전 이준석이나 손수조의 문재인 참수 삼국지 만화건과 참으로 비교되는 장면이다. 문재인이 조금 더 정치적이고 비열한 면이 1g이라도 있었다면 그것을 구실삼아 그 두 젊은이들에게 포화를 퍼부었을 텐데 (아마 나라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깔끔하게 사과를 받고 덮어버렸다. 그럼 문재인이 바보였나?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난 그렇게 사과를 받아주는게 상식으로 생각되었고 그게 선굵은 정치라 여겼으며 체급에서 차이가 나는 그들과 같은 레벨로 내려가는걸 방지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상황이 매카시선풍때의 그 광적인 ‘빨갱이 잡아내기’가 아니고 무엇이랴. 어쨋든 이 비상식적인 선풍이 정상적인것 처럼 유통된다는 사실이 더욱 개탄스럽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 비상식을 냉정하게 지적했던 언론들이 이제는 모두 한쪽으로 편향이 되어 있으니 이제 대중들에게 이러한 비상식을 ‘아니오’라고 일깨울 장치가 줄어들었다는 것이 상황을 그 때보다 더 악화된 것으로 보이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MB도 참 어이가 없다.  자유민주주의라면 적어도 국민들이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을만큼의 정보들이 공정하게 유통되는 환경이어야 할텐데 지금의 모습이 어디 그런가 ?

휴우~ 정리가 잘 안된다. 어쨋든 병신같은 종북좌빨론 같은 테마가 와이드하게 먹히는 현재의 돌아가는 꼴을 보니 정말 복장이 터진다.  차라리 임수경때문에 유치장에 들어갔던 바로 그때가 사상적으로는 오히려 더 자유로웠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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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임수경의 추억

  1. 서울시민

    강용석이 술자리에서 대학생에게 한 저질 농담은 인간말종의 짓이지만 임수경이 술자리에서 대학생에게 한 협박 폭언은 그저 공적인 자리도 아닌 말실수일 뿐이고…

    (그런데 언제 임수경이가 탈북자들에게 사과했지? 하태경이한테 변절자라고 한 거니까 오해라는 말밖에 들은 게 없는데? 근본도 없는 탈북자 XX들이 어디 국회의원한테 개기냐고 닥치고 살라고 협박한 거 사과한 적 있나? 그리고 강용석이는 몇 번이나 사과했는데도 출당시켰으니 임수경이도 출당될까?)

    청와대 홈페이지에 걸어 놓은 박근혜 누드패러디는 고급스러운 정치풍자일 뿐이고 문재인의 참수패러디는 비열한 작태이고…

    (문재인은 대범해서 사과받고 넘어갔고 박근혜는 요즘도 그거 들고 다니면서 노무현 청와대를 비난중인가 보지?)

    병신같은 종북좌빨론이 와이드하게 먹힌다고 하는 당신만의 판단과 잣대는 당신의 잘난 RSS와 SNS를 통해서 잘만 돌아다니고 있지만 정보의 유통은 왜곡되고 자유민주주의는 훼손되고 있고…

    (아예 독재정권이라고 하는게 어때? 색깔론펴는 쥐XX 독재자! 당신 입맛에 딱 맞는 단어잖아. 지금이 전두환 노태우 때보다도 못하다면서? 왜 당신 팬들이 읽고 강연의뢰 떨어져 나갈까봐 그렇게는 막 나가지는 못하겠나?)

    그나저나 국민의 냉정한 판단을 방해하는 공정하지 못한 정보유통이라는게 무슨 뜻인지나 알려주지 그래. 조선중앙방송을 지상파에서 실시간으로 보지 못해서 그렇다는 건가? 아니면 북한 트위터 우리끼리를 리트윗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건가? 혹시 요즘 한겨레나 경향, 오마이의 기사들이 검열이라도 받고 있나? 아… 혹시 언론노조 애들 파업때문에 방송이 편파적인가? 그럼 빨리 복귀해서 피디수첩에 이석기,김재연,임수경 살리기를 위한 행진곡이라도 틀어 대던가.

    물론 현충일 다음날 이따위 글을 올리는 당신의 머리속에 들어 있는 이 나라는 빨갱이 잡아내기의 매카시즘 광풍에 휘둘리는 병신같은 국민들의 나라겠지만 내가 보기엔 뒤늦게나마 천안함에서 연평도에서 순국한 우리의 병사들이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다행스러운 과정에 있는 조국이거든. 그러니 당신의 복장이 빨리 터져버리는게 이 나라를 위해서는 훨씬 다행스러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 역시 인간은 아무리 자신을 꾸며도 언젠가는 그 밑바닥 본색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는 걸 당신을 보고 나처럼 다시 깨닫게 될 사람들이 있을 거야.

    P.S
    참고로 말해 두지만 나는 평생 동안 빨갱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입에 담은 적이 없는 사람이야. 그런데 이제는 진심을 담아서 쓰기로 했어. 정말 있더라구. 진보도 아니고 좌파도 아닌 진짜 ‘빨갱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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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거 보세요, 님도 이번 임수경건에 대해서 이상한 쪽으로 끌고가시잖아요. 여기에서 독재정권이 왜 나오며 빨갱이가 왜 나와요. 임수경이 말을 가려서하지 못한것에 대해서는 저도 그렇고 다들 너무했다고 인정하는 부분이에요. 여기에 대해 좀 더 숙여서 확실히 사과하지 못한 임수경에 대해서도 저 역시 질타를 했구요. 이 건은 딱 거기서 끝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변절자’라는 단어의 방향과 해석에 대해서 오버하기 시작하더니 그게 빨갱이쪽으로 옮겨간거잖아요. 하태경 의원이라면 제가 봐도 임수경 입장에서는 변절자라 부를만 한데요 뭐. 신군부 정권시절 고초를 겪었으면서 이제는 그 시절 하나회 출신의 국회의장과 같은 당에서 같은 한솥밥을 먹고있으니 임수경 입장에서는 변절자일 수 밖에요.
      정말 딱하십니다~ 이런 답글을 통해 논쟁을 하시려면 당당하게 자기 자신이나 밝히시는 것이 어떨까요. 이메일 주소는 통합진보당주소로 달아 놓으셨네요. 진짜 실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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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황재하

      “종북사상”을 찬양하는 분위기를 가진 사람들이 보도되는게 이상하게 여겨 지는데요.. 월북 하시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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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Playing

    아이고… 저는 ‘관심’은 있는데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너무 커서 뭐라고 판단을 내려야 할 지 모르는 부분이 ‘정치와 언론’ 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서울시민’ ‘황재하’님은 물론 많은 분들과 깊이 대화를 통해서 모두가 함께 발전하길 바랍니다

    아무튼 옛날에는 사람을 ‘계급'(또는 신분)으로 구별짓는 게 당연히 했고, 현재는 ‘돈'(또는 금융 흐름)으로 구별짓는 게 당연하게 여기지는 게 사실인가 의문이 든다면 미래에는 ‘정보 확보'(또는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시간)로 나뉘는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각 사람이 어떤 성향이고, 어떤 행동을 했는 지 ‘언론 기사’만 봐선 아리송합니다. 아무튼 뭐가 뭔지 알수 있게 정보가 조금 더 개방되길 바랍니다. 조중동, 한경향오마이 봐도 ‘기사’ 수준이 솔직히 너무 떨어지지 않나요? 사람들이 기사도 안봐서 모른다는 게 아니고 어이없는 수준이라서 가치 판단이 힘든거죠

    이번 사건만 봐도 객관적으로 표현하기 어렵다면 자기 생각을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게 근거로 풀어서 써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부족한 거 같아요

    정치인을 우습게 표현하는 건 동일하게 잘못한 거죠
    제가 볼땐 누가 정보를 흘리는 건지 언론에서 다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법’이나 ‘검찰’보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게 ‘언론’ 같아요
    추정기사룰 낼려면 그 뒤에 부족한 부분이나 바뀌어야하는 부분을 보강기사로 더 잘 보이게 나와야죠. 이건 완전 초등학교 수준의 기본인데 이걸 안하니 기사나왔다고 누가 “아 그런가 보다” 할까요
    문제는 이런 수준의 기사가 사실인양 계속 언론은 그 수준만 유지된다는 거죠 ㅡ _ㅡ;;

    아우 진짜 답답하네요
    저는 어리고(신체 나이도 그렇지만 정신수준은 형편없어요 ㅜㅜ) 인식수준이 낮기 때문에 아직 경험 못한 것일 수 있지만 제 수준으로 봤을 때는 싸우는 이유는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말 실수는 할 수 있고, 잘못 정도에 따라서 사과나 그 책임은 지는 거죠. 문제는 그게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은 거고, 이건 가치 중립의 ‘법’을 정의롭게 집행하면 공정하고, 법을 악용해서 집행하면 억울한 건데
    당연히 현재의 법이 정의롭고 완벽하니 거기 걸려들면 나쁜놈이고 교묘히 빠지면 괜찮다고 여기는 게 씁쓸한 겁니다

    법은 하늘에서 정의롭게 만들어져서 내려오고, 하늘님이 판결하나요?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고 불완전한 적용과 집행 및 판결이 나오니 계속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악의적인 손길은 막아내야만 하는 겁니다
    이 때 절실한 게 다양한 정보의 공유를 통한 화합입니다. 언론의 존재이유죠

    누가 잘못된 법의 탄생과 집행 및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풀어줄까요?
    평범한 시민이 어떻게 이걸 하나요? 부디 ‘언론인’들의 가치가 주목을 받고, 더 양질의 기사를 쓰고 내놓을 수 있게 발전해서 엉킨 실타래의 끝을 찾을 수 있는 많은 대화가 오가길 바랍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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