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6월이었으니 딱 이맘때쯤 되나보다. 난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가기위해 휴학계를 냈고 그 때쯤부터 거의 매일 군대가는 애들의 환송회가 열렸다. 뭐 그날도 그랬던 것 같다. 할일없이 학교앞 당구장에서 애들과 겐빼이를 치기위해 집을 나섰고 신촌로터리에서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내리는 순간 버스 정류장에서 짭새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오늘이 바로 하필이면 통일의 꽃 임수경이 평양에 당도한 날이로구나. 재수도 없지. 짭새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학생 룩앤 필이 묻어나는 나를 크리스탈 백화점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닭장차로 데리고 갔다. 이미 버스는 만원~

그날 난 학교 근처엔 가보지도 못하고 저녁때까지 마포경찰서 유치장에 다른 수십명의 젊은이들과 갇혀있어야 했다. 짭새들은 꽤나 친절해서 비록 짬밥이었지만 식사도 제공하고 별다른 일로 귀찮게 하진 않았다.  그들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임수경을 보면서 괜히 평양에 가가지고 자기들만 고생시킨다고 투덜댔다. 사실 내 반응도 별반 다른건 아니었다. 하루동안 유치장에서 짬밥을 먹게 했지만 임수경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난 마포경찰서 앞에서 2번 버스를 타고 쿨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애들하고 술을 마시면서 임수경이 안주로 올라왔다. 남학생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너무 푹패인 티셔츠를 입고가서 북한애들에게는 좀 야하게 비춰졌으리란 것 정도와 임종석과 임수경이 둘 다 임씨인데 친인척관계나 연인사이가 아니냐는 정도가 전부였다.

어쨋든 요약하자면 임수경은 내가 살아온 생애에서 하루를 빼앗아 간 여인이었고 난 쿨하게 그걸 받아넘겼다. 그 뒤로는 그에 대한 소식은 별 접할 기회가 없었다가 나중에 임종석과 그 몇몇이 단란주점 소동을 벌였을 때 임수경이 찾아와서 단단히 잔소리를 했다는 에피소드를 전해들은것이 전부다. 그 얘길 듣고 ‘임수경답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총선에서 사실 임수경이 비례대표 후보인지도 잘 몰랐다가 최근의 막말 파동으로 제대로 도마위에 오른 그녀를 보면서 입맛이 썼다. 통합진보당 사태 등으로 정치권 뉴스엔 다시 흥미를 잃기 시작한 시점에서 임수경의 막말사태가 수면위로 떠오른 것인데 저간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하태경의원과 탈북자를 대표한다는 그 요셉인지 하는 청년은 애당초 사과받을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임수경이 국회의원으로서 공인의 신분이기는 하나 100분 토론같이 공적인 자리에서의 실수도 아니었던 것 같고 예의 그 불같은 성격상 그 정도의 사과면 받아들이고 넘어갈 수도 있을것 같았는데 이게 빨갱이 논쟁으로 들불같이 번지게 되는걸 보고 아연실색했다. (물론 그 역시 이왕하는 사과면 그 성질 좀 죽이고 확실히 숙일 필요가 있었다)

얼마전 이준석이나 손수조의 문재인 참수 삼국지 만화건과 참으로 비교되는 장면이다. 문재인이 조금 더 정치적이고 비열한 면이 1g이라도 있었다면 그것을 구실삼아 그 두 젊은이들에게 포화를 퍼부었을 텐데 (아마 나라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깔끔하게 사과를 받고 덮어버렸다. 그럼 문재인이 바보였나?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난 그렇게 사과를 받아주는게 상식으로 생각되었고 그게 선굵은 정치라 여겼으며 체급에서 차이가 나는 그들과 같은 레벨로 내려가는걸 방지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상황이 매카시선풍때의 그 광적인 ‘빨갱이 잡아내기’가 아니고 무엇이랴. 어쨋든 이 비상식적인 선풍이 정상적인것 처럼 유통된다는 사실이 더욱 개탄스럽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 비상식을 냉정하게 지적했던 언론들이 이제는 모두 한쪽으로 편향이 되어 있으니 이제 대중들에게 이러한 비상식을 ‘아니오’라고 일깨울 장치가 줄어들었다는 것이 상황을 그 때보다 더 악화된 것으로 보이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MB도 참 어이가 없다.  자유민주주의라면 적어도 국민들이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을만큼의 정보들이 공정하게 유통되는 환경이어야 할텐데 지금의 모습이 어디 그런가 ?

휴우~ 정리가 잘 안된다. 어쨋든 병신같은 종북좌빨론 같은 테마가 와이드하게 먹히는 현재의 돌아가는 꼴을 보니 정말 복장이 터진다.  차라리 임수경때문에 유치장에 들어갔던 바로 그때가 사상적으로는 오히려 더 자유로웠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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