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에서…

By | 2012-05-04

평일 오후 1시에 수영장에서 혼자 자유수영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마도 빌딩을 몇 채 가진 갑부던가 나같은 가정주부(?)가 아닐까 싶다.  매일 오후1시엔 아쿠아 에어로빅 수업이 있는데 여기엔 주로 50대이상 아줌마들 30여명이 수업을 듣는다. 물론 남자는 한명도 없다. 총 6개 레인중 적어도 3개 레인을 에어로빅 수업이 사용하고 나머지 레인은 모두 자유수영이다. 인구밀도는 대단히 낮아서 레인당 보통 2-3명이 수영을 하는데 운좋을 경우 한시간내내 레인을 나 혼자 쓸때도 있다. 그리고 한창 수영을 하다 고개를 들어보면 그 넓은 수영장에 남자는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가끔 인지하게 된다.

이 시간에도 단골손님은 있는데 ‘뒤로가는 아줌마’와 ‘그자리 아줌마’가 그들이다. 뒤로가는 아줌마는 수영은 안하고 한시간내내 뒤로 걸어다닌다. 누가 그게 몸에 좋다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어쨋든 그 아줌마는 한시간동안 거의 쉬지 않고 30여바퀴를 뒤로 걸어서 수영장을 돈다. 그자리 아줌마는 걸어다니지는 않고 수영을 하긴 하는데 거의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 없다. 그러나 그 아줌마는 굿꿋하다. 거의 거북이 같은 수영으로 쉬지 않고 20바퀴 이상을 돌 수 있는 지구력을 가지고 있다. 어쨋든 이 두명이 있다면 무조건 피해야 한다. 중간에 멈춰서지 않고 인간답게 수영하려면 말이다.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역시 정말 수영하기 좋은 날이었다. 맑고 더운날씨 말이다. 반지하 수영장이긴 하지만 햇빛이 수면까지 부분적으로 들어오는데 수영장 바닥까지 닿아있는 햇빞을 받으며 수영장 바닥으로 잠영하는 기분은 정말 최고다.  보통 이런 날이 수영도 잘된다.  요즘 난 한시간 정도에 30바퀴 (약 1,500미터) 정도를 도는 편인데 별다른 욕심은 안내고 그저 편하게 오래 자유영을 하는걸 목표로 하고 있다.  아래 보이는 요 녀석은 ‘풀부이’라 부르는데 나의 소박한 훈련도구이다.(크기는 한뼘정도보다 조금 더 크다)  이 녀석을 허벅지 사이에 끼고 팔로만 수영을 하면 평영감각과 밸런스를 잡는데 도움이 되서 15바퀴 정도를 이 녀석을 이용하는데 오늘은 몸이 말랑말랑했는지 아주 감이 좋았다.

정말 감이 좋을 때의 수영은 물을 헤치고 가는 기분이 아니라 물을 타고 가는 기분이다. 수면 아래의 타일들이 빠르게 멀어져가고  물살이 옆구리를 스쳐지나가고 숨을 내쉴때마다 풍경이 바뀌는 기분좋은 느낌말이다.  오늘 느낀 밸런스가 거의 그랬던것 같다. 거의 물소리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하게 오갔다. 마지막 바퀴를 돌고나서 풀 바깥으로 나가려고 몸을 절반쯤 뺐는데 뒤에서 금방 온 아저씨 두 분이 수영을 얼마나 한거냐고 물어왔다.

대답하기 쪽팔린 질문이었다. 수영은 이미 6-7년전부터 해왔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드문 드문 하는 바람에 지금 내 실력은 6-7년차의 그것이 아니다.  그래서 난 대강 ‘그저 쪼금 했다’고 얼버무렸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그 정도 수영을 하면 그렇게 부드럽게 할 수 있는거냐고 다시 물어왔다. (물론 그 뉘앙스는 칭찬이었다)

간사하게도 난 반쯤 뺀 몸을 다시 물에 집어넣고 돌아서서 풀부이를 집어들고 그저 물에 평행하게 떠있는 것과 엄청나게 느리게 팔을 저어도 가라앉이 않음을 보여주었다. 그저 평행하게 떠 있는 연습을 하는 것과 느리게 스트로크를 구사하며 밸런스를 잡아가라고 하면서 아저씨한테 풀부이를 건넸는데 처음엔 예상대로 허우적 거리더니 몇 번을 계속하자 눈에 띄게 개선되는 모습이 보였고 난 ‘계속 연습하시라’고 하면서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거이거 이러다가 야매 강사가 되는건 아닌지 몰라…

Facebook Comments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