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몇 번 언급했다시피 대기업에서 주로 남들을 설득하는 보고서 작성이 주된 업무였습니다. 제 스스로는 그래도 여러 산업군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죠.  프레젠테이션 강의를 시작하고부터는 제가 가보지 않은 산업군이나 생소한 영역에도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데요. 의료계나 게임업체, 공기업, 협회, 창업을 준비하거나 스스로 작은 기업을 운영하고 계신 분들 등등 정말 스펙트럼이 다양해졌죠.  원래 제가 가지고있는 컨텐츠를 위주로 강의만 하고 다녔다면 산업군의 다양성이야 어쨋든 저는 저대로 컨텐츠만 풀어놓고 돌아왔을겁니다.

공개강의와는 달리 기업체 강의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청중들의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질만한 예제분석을 통해 강의내용을 이해시키고자 하였고 그 때문에 강의전에는 항상 그 기업(단체)에서 널리 통용되는 슬라이드 문서를 먼저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얼마전엔 저에게 또한 생소한 분야인 법조계쪽으로 강의를 나가게 되면서 처음으로 로펌에서 작성한 프레젠테이션 문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또한 저의 흥미를 자극했죠.

다른 산업군과는 달리 이 분야는 논리대결이 주를 이룹니다.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패턴이기도 하지요. 결국 이것을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은 형태입니다.

왼쪽이 원고측 논리, 오른쪽이 피고측의 대응논리라고 하죠.  원고측에서 주장하는 논리에 대해 피고측이 조목조목 반박하는 양상을 취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이고 당연한 구조죠. 수동적으로 원고측 논리를 반박하여 상대방의 결론이 결과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있고 여기에서 조금 공세적으로 대응하면 상대방의 결론을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추가논리를 얘기해도 됩니다.

전 상대방의 결론만 최종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면 상대방이 제시한 모든 이유와 증거들을 모두 조목조목 반박할 필요없이 선택적이고 의도적으로 몇 개만 잡아서 확실히 반박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위 그림에서 나타난 개념은 다들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그리고 당연히 변호사들도 위와 같은 구도로 작업을 할테구요.

그런데 문제는 보고서만 읽어서는 위 그림과같은 구도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증거가 몇 가지인지도 애매하고 논리가 2가지인지 3가지인지도 애매할뿐더러 이것이 원고가 주장하는 두번째 논리에 대응하는 개념인지조차 조금 불분명하죠.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보니 조사와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들은 워드프로세서로 장문의 변론 문서나 제안서를 꾸미더군요. 분명히 그 안에 모든 내용과 논리들이 들어있습니다. (그 분들이야 논리로 먹고사는 분들이니 일반 기업의 기획자들 처럼 필수적인 논리요소를 누락시키는 우는 거의 범하지 않을겁니다)  그것을 다시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슬라이드로 옮깁니다. 저는 그 분석문서를 작성하기 이전 위 그림과 같이 한장으로 논리구조를 완전히 그려낸 다음  본격적인 작성에 임할것을 권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다 읽거나 프레젠테이션을 보고난 후에도 상대방의 논리를 제압해낼 수 있었는지 조차 가늠해내기 어렵습니다. 모든 논리가 보고서 내부에 들어있음에도 말이죠. 이때 청중들은 최종적인 결과를 평가절하합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용은 들어있어도 평가절하 해버리죠. 이는 프리젠터가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법률 프레젠테이션 문서엔 또 한가지 특성이 있더군요.  대응논리가 보통 2중 3중으로 구성된다는 겁니다. 아래와 같은 식이죠.

1차 저지선에서는 상대방의 논거 자체를 정면으로 반박해 꺾어버리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것에도 대비하죠. 이른바 2차 저지선에선 상대방의 주장은 인정하되 그에 대한 피해범위를 최소화 시키는 논리를 펴게 됩니다.  그것이 변론준비에 대한 패턴이더군요. 모두 저렇지는 않겠습니다만 지금까지 제가 본 몇개는 모두 저런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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