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젠테이션의 성공과 실패를 따지려면 발표가 끝난 뒤 청중의 머리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난 대개 세 가지 유형으로 실패한다고 생각한다.  끝난 후에도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거나, 다른 것으로 오해했거나, 프리젠터가 처음부터 청중의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해서 더 이상 들어볼 가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 세가지 유형 중 어느것이라도 경험을 하고난 프리젠터는 그 원인을 찾아 개선하려 하는데 그 ‘원인’이라는 녀석을 오해하면 피상적으로만 생각할 수 있다. 즉, 유려한 디자인과 유창한 언변 등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에 주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두가지 요소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은 2:8정도로  그리 높지 않다고 누누히 설명했었다.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최근 나는 이 원인을 아래의 세가지로 재정리했다

최소한의 논리력, 논리를 추상적으로 펼쳐내는 프레임 전달력,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주목하도록 만드는 가시성 등 세가지가 바로 그것이다. 프레젠테이션의 실패를 바로잡을 수 있는 이들 세가지 원인은 모두 ‘단순’해야한다라는 원칙하에 구상된다.  오늘은 이 세가지 원인(혹은 성공요소) 중 정보의 가시성에 대해 예를 들어 얘기하려고 한다.  프레젠테이션을 학습할 때 제일 좋은 것은 스스로 직접 경험하는 것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좋은 것은 남의 프레젠테이션을 경청하고 그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자신이 프리젠터였다면 전체 이야기를 어떻게 개선시킬까 어떤 부분을 어떻게 바꿀까..같이 말이다.

필기구를 만드는 다국적 회사 Sonar & Radar는 최근 대형 서점에 입점계약을 체결하면서 경쟁사인 펠리컨 제품을 취급하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고 실제로 펠리컨은 그 후 납품이 중단되었다. 이에 공정거래 위원회는 이를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경쟁을 고의적으로 제한하려 한다고 판단하고 Sonar & Radar 한국지사와 본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8억원을 부과하였다. 이에 법무법인 ‘블루스’는 Sonar & Radar를 위해 이번 판정의 부당함을 주장하려고 의견서를 만들어 프레젠테이션 하려고 한다. 아래의 내용은 피심인 즉, Sonar & Radar측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정리한 의견서의 도입부분이다.

먼저 아래 두 장의 평범한 슬라이드를 보고 어느 부분을 개선해야 할지 스스로 생각해보자.

자, 두 장의 슬라이드를 다 읽으셨는가 ? 그럼 내가 질문을 한가지 하겠다.

  • 피심인들의 주장은  몇 가지 인가 ?

글쎄… 몇 가지인지 잘 모르겠으면 두 세번 정도 다시 읽어보시라. 자, 몇 가지인지 다시 대답해보라. 아마도 청중 개개인에게 피심인들이 주장하는바가 몇 가지냐고 설문조사를 벌인다면 정말 다양한 답이 나올것 같다. 난 이 레포트를 몇 번을 다시 읽은 끝에 5개 정도의 의견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지겠다.

  • 결국 피심인들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가 ?
  • 또한 제일 우선순위가 높은 주장은 또 무엇인가 ?

지금까지의 질문 세가지가 모두 어렵게 느껴졌다면 이 슬라이드 두장은 청중을 이해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 슬라이드의 작성자는 이 두장의 슬라이드를 통해 청중에게 어떤 것을 전달하려고 했을까 ?  정보의 가시성 측면에서 이 두장의 슬라이드는 많은 오해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사실 이 슬라이드를 분철하면 아래 그림과 같이 세개의 블럭으로 구분할 수 있다.

A, B, C 세 개의 블럭은 순차적으로 배치되어 있지만 사실 인과관계라는 것이 없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A이기 때문에 B로 대응해야 한다’ 와 같이 ‘때문에’, ‘그래서’, ‘예를 들어’ 등과 같은 인과관계 말이다.  그래서 A,B,C는 서로 순서가 뒤바뀌어도 사실 크게 상관없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이 두 장의 슬라이드는 나열형 프레젠테이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프리젠터의 의도야 어쨋든 청중은 A를 챕터를 시작하는 선언문으로, C를 요약 정리표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추가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한편 A,B,C 블럭의 내용을 감싸고있는 정보의 포장지들은 그 모양이나 색상 등이 각각이다. 어떤 블럭이 어떻게 중요할지는 청중의 취향에 달렸다. 또한 같은 계열의 색상을 사용함에 있어 진한색은 청중의 주목을 이끌어낸다. 저 세개의 블럭에서 가장 진한 색이 쓰인 곳을 보라.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한가?

B블럭의 만년필 그림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 그림을 텍스트로 바꾼다면 무엇이라 읽어야 할까? 그렇다 그저 ‘만년필’이다. 스티브 잡스가 맥북에어를 처음 발표하면서 노란 서류봉투안에 노트북을 넣어와서 꺼내 보여주는 장면을 보고 청중은 무슨의미로 받아들였을까 ?  ‘노트북’? 아니 아니다.  ‘얇고 작다’이다.

A,B,C 블럭내엔 너무 많은 텍스트들이 들어있어 증요한 키워드들이 부각되지 않는다. 또한 폰트의 크기 차이가 거의 없어 중요도의 차이를 느낄 수 없고 문구 역시 간결하고 부르기 좋게 다듬어지지 않았다.

문제들을 다시 정리해보자

  • 요점 파악 어려움
  • 흐름과 연결고리 부족
  • 제각각인 정보의 포장지
  • 메시지를 담지 못한 그림
  • 폰트 크기차이가 적음
  • 색상의 농도활용 미숙
  • 너무 많은 텍스트
  • 키워드가 드러나지 않음
  • 네이밍을 다듬어야 함

위에서 지적한 내용들은 모두 우리가 일상적으로 범하고 있는 실수들이다. 이것들은 단지 우리가 청중의 마인드로 생각할 여유만 된다면 막바로 인지하고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가 작성하는 슬라이드는 대개 모호함의 연속이다. 예를들어 위의 그림처럼 말이다. “저게 몇 개의 원일까 ?”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최소 10개 정도의 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자세히 살펴봐야 말이다. 앞서 나는 두 장의 슬라이드를 제시하면서 ‘피심인들의 주장은 몇 가지인가?’란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했었다. 기억나는가 ? 바로 위의 그림과 상황이 같은 것이다.

사실 작성자가 아주 조금만 일해주면 이 모호함은 바로 명확함으로 바뀔 수 있다. 위 그림과 같이 흰색 테두리를 주는 것 만으로 우리는 10개의 원이 저 안에 있음을 조금 더 쉽게 알 수 있다.

아마 이렇게 정리해서 작성한다면 더 알아보기 쉬울 것이다. 처음에 비해 얼마나 가시성이 좋아졌나 ? 정보의 가시성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사실 그렇게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명확성, 쉬운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열가지 중에서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명확히 표현해 주는 것도 어렵지 않다. 더 진한색은 더 중요한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중요도를 나타낼 수 있다. 이를 테면 위와 같은 크기의 차이 말이다. 크기와 색상의 농도를 조합하면 효과는 극적이다.

사실…나의 이런 이야기들을 여러분들도 여기서 또는 다른 책 등을 통해서 한번쯤 들어보셨을 확률이 크다. 그런데 왜 내 슬라이드는 위에서 예로든 법률회사의 슬라이드에서 지적당한 것과 비슷하게 별 진전이 없는 것일까 ?  나의 첫 질문이 해답일 수 있다.  “피심인들의 주장은 몇 가지인가 ?” 또는 “해당 챕터에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요 메시지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일단 없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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