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아웃 = 내용을 배치하는 일

기획이 막바지에 접어들게 되면 우리는 슬라이드 작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조사한 정보들을 어떤 형태로 슬라이드에 수놓아야 할지 말이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초보자들에겐 지금 이 시점이 가장 황당한 순간이다. 도대체 텅 빈 슬라이드에 무엇을 어떻게 펼쳐놓아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줄이 빼곡히 쳐진 노트 몇 장에 내용을 논술하는 편이 그들에겐 더 쉬운일 일런지도 모른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선배들이 작성한 슬라이드를 참조하게 되고 프레젠테이션 서적을 찾아 보게 되면서 초보를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 적어도 작성 스킬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올라선다.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나보다도 더 말이다.

아래 소개된 (멀쩡해 보이는) 슬라이드 다섯 장은 모두 높은 작성스킬을 보여주며 특별한 문제를 찾기도 힘들 것 같다. 이걸 청중의 관점에서 정보의 전달, 이해력을 생각하며 살펴보면 좀 다른 결과가 나올것도 같다.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Case A. 인식의 흐름

아래 슬라이드는 잡스식 슬라이드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한장의 사진이 슬라이드 전체를 메우고 있으며(Full Shot) 매우 단순하고 우아하며 이해하기 쉽다. 사실 이러한 스타일의 슬라이드는 작성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슬라이드 메시지와 어울리는 사진을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작업의 80%가 끝나기 때문이다. 주의 할 점은 사진이 전체 화면을 메울만큼 커야하고 메시지가 삽입될 공간(흔히 이 공간을 Copy Space라고 부른다)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과 간결하게 메시지를 다듬는 일이다.  어쨋든 이 한장의 슬라이드 자체로는 그 누구도 흠집을 잡을 수 없다. 나 역시 채점을 하라면 주저없이 100점을 주겠다.

그러나 100점짜리 슬라이드로만 구성된 프레젠테이션이 꼭 100점이 되리라고는 보장하지 못한다. 특히 이렇게 전체에 사진이 풀샷(Full Shot)으로 처리된 슬라이드가 그렇다. 청중의 심리는 대단히 민감해서 연속선상에 있는 이야기의 흐름을 확보하려면 여러가지 분위기도 그대로 유지시켜야 한다. 가령 위의 슬라이드가 아래와 같이 계속 이어지는 슬라이드들중 하나라고 생각해보자.

 

이 네 장의 슬라이드 하나하나는 매우 잘 작성되었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1번 슬라이드에서 4번 슬라이드까지 내용이 주욱 이어지도록 설계되었지만 색감, 등장인물, 느낌 등에 차이를 보이면서 마치 한장 한장이 서로 다른 네 가지의 선언문이 들어있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즉, 슬라이드의 서로다른 배경이 청중의 이해를 교란시킬 수 있다. 만약 위와 같이 풀샷으로 처리된 서로 다른 느낌의 사진이 담긴 슬라이드 수십장이 청중에게 보여진다면 청중들은 훨씬 집중하기 어려워지며 산만한 느낌을 갖게될지 모른다.

이러한 경향은 스티브 잡스나 프리젠테이션 젠 스타일의 단순한 슬라이드가 유행하면서 그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서 발생하기 시작한 현상이라 보인다. 이 케이스를 통해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슬라이드 디자인은 슬라이드 한장한장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맥락을 이어가고 싶다면 배경색이든, 등장인물이든, 그 어떤것이라도 청중이 흐름의 연속을 인식시킬 수 있는 것이 등장해야 한다.

아래 슬라이드는 맥락의 흐름을 고려하여 거의 같은 내용으로 재설계된 것이다.

이 네장의 슬라이드는 풀샷 사진을 포기하고 내용을 같은 배경색으로 묶어냈다. 이것이 꼭 정답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이야기의 연속성은 교란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청중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아래와 같이 내가 하고자 할 이야기는 같은 무대를 떠나지 않고 등장인물과 소재들이 번갈아 등장하며 그 맥락이 이어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Case B. 방향성

하이브리드 슬라이드내의 정보 배치는 훨씬 더 골치아프다. 슬라이드 한장에 들어가야 할 내용들이 많기 때문이다. 잡스식의 슬라이드에서는 메시지는 하나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슬라이드 한장한장은 레이아웃을 설계하기 어렵지 않다. 하이브리드 슬라이드 역시 그 슬라이드의 키메시지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키메시지를 설명하는 부가적인 메시지들이 4-5가지는 더 슬라이드에 표현된다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슬라이드의 상세한 레이아웃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자세히 설명을 하겠다. 여기에서는 문서 전체의 정보설계 관점에 주력하도록 하자.

이 슬라이드는 하이브리드 슬라이드로서는 썩 잘 만들어졌다. 청중의 입장에서 이 슬라이드의 레이아웃에서 나타나는 직관적인 정보의 흐름에 대해 생각해보자.

청중은 직관적으로 이 슬라이드가 아래와 같이 크게 두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는 것을 알게된다. Part A에서는 게임시장의 여러가지 현상들에 대해 객관적인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Part B는 그 사실들로서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다.이야기의 흐름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도록 되어 있다. 이 슬라이드가 이해가 어렵지 않은 이유는 시각적으로 파트 구분이 쉽기 때문이고 그 방향 또한 쉽게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의 슬라이드는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널리 사용되는 포맷이다. 슬라이드 상단의 헤드라인은 Part A,B를 포괄하고 있어서 시간이 없다면 헤드라인만 읽어도 전체적인 내용을 가늠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

한 단계만 더 깊게 들어가보자. 두개의 파트는 사실 다섯개의 이야기 블럭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Part A는 4개로 이루어져있다. 어쨋든 청중은 슬라이드가 화면에 비춰진 순간 정연하게 배치된 레이아웃 만으로도 4가지 현상을 통해 어떤 판단에 이르고 있음을 알아낼 수 있다.

처음 이 슬라이드가 잘 작성되었다고 얘기한 것은 청중들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도록 파트와 블럭이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가려고 한다. 청중이 다음 슬라이드가 비춰질때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 이 슬라이드의 맥락이 위에서 아래로 방향이 제시되었음을 감안한다면 청중은 무의식적으로 다음 슬라이드가 비춰지는 순간 시선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리게 될것이다. 자 다음 슬라이드를 보자.

오, 이런… 다음 슬라이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앞에서 했던 파트와 블럭의 구분을 연습해 보자면 이 슬라이드는 세개의 파트에 총 8개의 이야기 블럭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장의 슬라이드 각자는 준수하게 작성되었으나 전체적인 맥락의 방향성을 고려할 때 어떤 슬라이드든 그것을 고려해서 레이아웃의 방향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듯 하다. 문서 전체를 통틀어 맥락의 방향이 바뀔 수는 있으나 그것이 계속 변화한다면 그것을 읽어내려는 청중에겐 고역이다.

이 두장의 슬라이드를 연속해서 놓고보면 위와 같이 청중의 시선이 따라가 줘야 한다. 두번째 슬라이드에 첫 4개의 이야기 블럭은 앞 장 전체를 요약해 등장시킴으로써 연속성을 이어가고자 만들어 진 것이데 그 방향이 바뀜에 따라 그 시도가 빛이 바랜 모습이다. 이렇게 설계하기 위해선 문서 전체의 모습을 미리 염두하여 맥락을 설계하고 난 뒤 가야할까 ? 바로 그렇다. 아래와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내 스스로의 용어로는 이걸 블럭설계라 부른다. 기업내에서 사용되는 보고서를 되짚어보면 우리는 단계별로 몇 가지의 이유를 들거나 문제점, 원인, 개선방향 등등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개시켜 나가면서 끊임없이 열거하는 형태를 지닌다.  (이런 형태는 피할수 없을것으로 보인다)

위의 구조를 파트와 블럭 구조로 단순화 시켜보면 아래와 같다. 어떤 경우에도 맥락의 길이와 열거의 깊이는 짧은 것이 좋다. 저 이야기 블럭들은 중요도가 다르다. 어떤 블럭집단들은 앞뒤의 연결을 위해서만 필요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보통 문제점에 해당하는 블럭, 개선방향, 이유에 해당하는 블럭들이 내 경험상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그 블럭들의 숫자를 가지고 흔히 4,2,4 전술이니 4,3,3 전략이니 하는 말들을 되뇌이고 다녔던 것 같다. (내 경험에 의하면 애매한 보고서들은 저 숫자 자체가 나오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건 그들이 되는대로 나열하거나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은 정제하지 않고 몽땅 털어넣었기 때문이다)

자, 어쨋든 방향성을 위해서는 원래 슬라이드는 수정해야할 필요가 있다.  아래로 흐르는 방향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방향으로 말이다.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수정된 슬라이드는 솔직히 말해 이전 슬라이드보다 모양새가 좋지 않다. 4개의 챠트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아래로 흐르는 슬라이드가 더 표현력이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 흐름을 위해서는 개별 슬라이드의 디자인까지도 어느 정도는 희생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것이 결국 청중의 인식의 흐름을 교란시키지 않을테니 말이다.

Case C. 학습효과

아래 슬라이드는 스티브 잡스가 사용하던 것과 똑같은 형태이다. 주로 왼쪽엔 설명하려는 상품의 실제모습이 나와 있고 오른쪽 상단엔  품명이, 그 아래쪽은 상품의 특성 몇 가지로 채워진다. 이 역시 대단히 직관적이고 오해의 소지가 거의 없는 멀쩡한 슬라이드이다.

우리는 파블로브의 개처럼 이런 형태의 슬라이드가 또 다시 등장하면 실제모습, 품명, 특성을 편안하게 거의 자동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학습효과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간단하지만 상품의 특성을 열거할 땐 계속 이런 포맷을 고수했고 그것은 한번 학습되기만 하면 익숙하게 다가온다. 이런 포맷의 정형화는 고리타분할 것 같지만 사실 아래와 같이 여러가지 포맷을 하나의 문서에 등장시키는 것이 더 청중을 피곤하게 한다.

케이블TV의 홈쇼핑을 오랜 기간 시청한 사람들은 상품이 마음에 들었을 때 자동적으로 화면 하단의 전화번호를 찾고 왼쪽 상단의 상품번호와 하단의 가격에 차례대로 시선을 준다. 이 홈쇼핑 방송의 자막들을 L-Bar라고 하는데 이는 전세계적으로 거의 유사하며 이 학습효과로 인해 그 형태를 조금만 바꿔도 시청자들은 불편함을 호소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와 같은 단순한 형태의 슬라이드에도 이러한 포맷과 패턴이 존재하는데 하이브리드 슬라이드는 오죽하겠는가 ? 폰트의 크기, 컬러, 도형의 형태 등은 문서 초반 자연스러운 학습을 거치게 된다. 만약 초반부에 특정컬러와 폰트, 크기로 키워드를 강조하였다면 겉은 효과가 뒤에 나왔을 때 청중은 별도의 설명을 하기 전에 이미 그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해 버린다. 청중의 학습효과는 매우 중요하다. 같은 패턴의 설명이 필요하다면 가급적 포맷을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Case D. 복잡도

앞선 Case A,B,C는 모두 문서 전반의 흐름과 관계 있는 사례였다. 즉, 나무가 아닌 숲 차원에서 고려해야할 레이아웃 디자인에 대한 얘기였는데 이제 시선을 숲에서 나무로 돌려보도록 하자.  잡스 스타일의 슬라이드에 비해 하이브리드 형식의 슬라이드는 아무래도 고려할 것이 많아 어렵다. 아래 슬라이드는 신문이나 잡지에 나왔다면 100점짜리 일 수 있지만 프레젠테이션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나는 하이브리드 슬라이드 레이아웃에 있어서는 파트와 블럭의 구분이 청중의 내용인식에 매우 중요하다고 전술하였었다. 위 슬라이드는 사실 인포그래픽(Infographic)이다. 인포그래픽은 폭이 넓고 내용이 깊은 특정 체계를 특징적으로 설명할 때 매우 유용하다. 우리는 인포그래픽을 볼 때 이런저런 각도에서 꼼꼼하게 뜯어본다. 결정적으로 인포그래픽에 감탄을 하게되는 것은 그것들을 모두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단순한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게 정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포그래픽은 글자가 많거나 조금 복잡해 보여도 상관없다.

그러나 프레젠테이션은 조금 다르다. 저와 같은 슬라이드는 좋은 가독성을 보장하지도 못하거니와 오랜 설명이 필요하고 청중의 시선을 분산시키기도 하기 때문에 나는 인포그래픽이 꼭 프레젠테이션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행히 위 슬라이드는 이야기 블럭이 크게 6개로 나뉘어져 있고 번호도 붙어있기 때문에 순서를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거라 생각되지만 여전히 복잡한 레이아웃은 직관적인 이해에 문제를 내포한다 생각한다.

아래 슬라이드 역시 복잡도 등에 있어서는 위에서 제시된 슬라이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슬라이드 역시 마찬가지이다. 멋지기는 하나 위의 두 슬라이드 보다 훨씬 해독이 난해하다.

인포그래픽이 이 정도로 단순하다면 슬라이드로 표시되어도 나쁘지 않다. 지금 나는 인포그래픽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의 블럭이 슬라이드 한장에 표시되는 그런 레이아웃 전반에 해당되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우린 이런 복잡한 일들을 설명하기를 포기해야 할까?

인포그래픽의 잇점을 포기하고 분철하면 이런 목적은 쉽게 달성될수도 있다. 아래와 같이 단순화한 전체 그림(=숲의 모습)으로 전반적인 설명을 마치고 각각의 스텝을 한장씩의 슬라이드로 만들어 마치 줌인하듯(=나무의 모습) 여섯스텝을 모두 설명한 후 마지막에 다시한번 전체 스텝을 요약하면 (총 8장의 슬라이드) 말이다.

 

Case E. 블럭구분

아래 슬라이드는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문제일 수 있다. 아래 슬라이드는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장점이라곤 없다. 위 아래로 크게 두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지만 각 파트의 맥락이 어떻게 이어지는 것인지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게다가 그 안에 있는 몇 개의 블럭들은 어디까지가 경계인지 애매하다.  결국 이 슬라이드를 대하는 청중들은 프리젠터의 친절한 설명이 있기 전까지 내용의 핵심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래와 같은 슬라이드 역시 그렇다. 거의 하나의 통에 들어있는 내용은 사실 5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파트 마다 여러개의 이야기 블럭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야기를 읽어야 할 방향은 맨 아래에서 위쪽 방향이지만 그것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고 실제로는 이어지는 슬라이드마다 청중이 어느곳에 처음 시선을 두고 읽어야 하는지 제각각이었다.  이러한 슬라이드들이 지속되면 청중은 쉽게 피로를 느끼기 마련이며 이야기를 이해하려는 의지와 촉수가 약화된다.

지금까지 다섯 개의 사례를 통해 슬라이드 레이아웃에 대해 내 나름대로 문제를 제기해 보았다. 이어지는 연재에서는 이 문제들을 단순하게 분류하고 엮어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좀 더 지면을 할애하여 하이브리드 슬라이드의 레이아웃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한 얘기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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