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화와 작명

By | 2012-01-05

올바른 괴물이 되기 위한 마음가짐

 

해마다 열리는 넥슨의 개발자 컨퍼런스(NDC : Nexon Developers Conference)는 프레젠테이션의 집단적인 진보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매우 바람직한 행사이다. 단일 회사가 매년 100개의 세션이 넘는 대규모 컨퍼런스를 개최할 수 있는 것도 놀랍지만 (물론 외부 초청 강연자들도 있지만 그건 문제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넥슨이라는 조직에서 매년 배출하는 프리젠터들의 수와 역량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이제는 그 노하우가 조직전반에 퇴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게임업계 종사자가 아니기에 그 동안 참석할 일은 없었지만 NDC 블로그를 통해 공개되는 세션자료는 매년 살펴보고 있다. http://ndc.nexon.com/

그 중 오늘 주제인 구조화와 작명을 설명하기 적합한 세션이 하나 있는데 NDC10(2010년)에 나왔던 ‘올바른 괴물이 되기 위한 마음가짐’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션은 Slideshare를 통해서도 공개되어 있으니 먼저 대략의 내용을 보기 바란다.

이 세션은 액션게임에서 게이머들이 재미를 느낄만한 몬스터를 설계하는 7가지 원칙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짧게  평가하자면 테마선정과 논리전개의 큰 틀은 매우 좋았으나 마무리와 디테일에 아쉬움이 느껴진다.  인상깊었던 두가지를 살펴보자. 먼저 제목이다.  ‘올바른 괴물이 되기 위한 마음가짐’은 정말 센스가 넘치며 완벽해 보인다.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 몬스터의 경험담과 고백을 연상시킴으로써 제목 자체로 스토리라인을 갖게 되었고 청중의 흥미를 유발시킨다. 몬스터를 바라보는 시점이 설계자에서 몬스터 당사자로 바뀜으로써 이야기가 더 생생해 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잡은 것이다.

두번째는 이야기 전개의 큰 틀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개의 파트로 전개된다. 본격적으로 몬스터의 설계 원칙을 논하기 앞서 몬스터가 액션게임에서 왜 중요한지 청중에게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 것이다. 이 첫번째 파트는 후에 나오는 일곱가지 설계원칙을 더 중요한 것으로 만드는 부스터이다. 청중은 게임내 몬스터의 역할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얘기를 듣고나면 다음에 나오는 몬스터 설계의 원칙이 더 궁금해진다. 보통 서론은 뒤이어 등장할 본론의 중요성을 강조해 청중으로 하여금 귀를 쫑긋 세우고 어서 본론을 들어보고 싶게 만드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는데 이 세션의 구조는 그 정석에 잘 따르고 있으며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듯 이 세션의 메인 아이디어와 초기 구획설계는 흠잡을만한 데가 없다. 이제 디테일로 들어가보자. 세부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Part 2의 일곱가지 설계원칙에 대한 것이다. 당연히 Part 2는 번호가 붙은 일곱개의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일곱개의 작은 이야기들은 하나하나가 결론을 가진 작은 이야기의 구조체이다. 아쉽게도 슬라이드를 넘길 수록 프리젠터가 주장하는 일곱개의 원칙이 하나하나 증명되어 차곡차곡 쌓이기 보다는 머리속이 점차 복잡해지기 시작하면서 어느순간 지금 보고있는 원칙이 몇 번째였는지 그 핵심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일곱번째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필자 역시 그것을 스스로 직감한 듯 하다. 정리와 요약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일곱가지 원칙을 다시 되짚어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결정적인 혼란을 야기했다. 앞서 슬라이드에 명기된 일곱가지 원칙과 정리요약 슬라이드에 명기된 단어들이 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그 뜻은 같다. 그러나 서로 다른 단어의 사용은 뉘앙스, 느낌을 바꾸어 놓아 일관성있는 프리젠터의 주장을 방해하고 있다. 분명 기획의 중간단계에서 잠시 멈춰서서 일곱가지 원칙을 세심하게 다듬어 놓은 다음 슬라이드를 작성해야 했다. 여기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작성자가 일곱가지의 막연한 아이디어를 세심한 기획을 통해 확정하지 않은 채로 작성을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에겐 수정할 수 있는 시간 또한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로인한 댓가는 적지 않다. 문서내엔 일곱가지가 아니라 14개의 원칙이 떠다니고 있으며 사실 슬라이드 내부에는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원칙들이 떠나니고 있어서 작성자가 7이라고 구획지어 놓은 원칙의 경계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자 이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화살을 돌려야겠다. 내가 오늘 이 이야기를 예제로 꺼내든 것은 이야기의 기획과 작성 전과정에 있어 독자에게 가장 취약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인식하지도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오늘의 몬스터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분의 이야기이다.

난 게임 전문가가 아니어서 내용 자체에 첨삭을 가할 수는 없지만 내용은 그대로 두면서 메시지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변경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음과 같이 3단계로 접근해보자.

  • 1단계 Re-Structuring : 원칙을 7개로 하는 것이 맞는가 ?
  • 2단계 Naming : 운율이 맞고 기억하기 쉬운명칭인가 ?
  • 3단계 Logic Design : 각각의 이야기 구조가 납득할만한가 ?

 

1단계 Restructuring

제일 먼저 할 일은 제시한 원칙들을 7개로 유지하는 것이 맞는지 검증하는 일이다. 혹시라도 비슷한 원칙이 두 개이상 등장한다던가 원칙간의 레벨차이가 존재한다면(중요도에 현격한 차이가 난다면) 이는 조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너무 많은 원칙들을 몇 가지로 축약할 때도 유용하고 말이다. 내가 생각할 때 7개의 원칙들은 그 성격으로 재분류해볼 때 사실 5가지 정도로 축약될 수 있다고 본다.

몬스터로서 게이머가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끔 맞아주는 일, 그들에게 스릴을 선사하기 위해 위협적인 모습으로 피할 여지를 주면서 공격하는 일, 많은 (약한)졸개들을 거느리고 다니면서 게이머에게 보스의 존재를 알리는 일, 사용자의 수준에 맞춰서 적당히 쉽거나 어렵게 반응해 주는일 말이다. 여기에서 몬스터가 게임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지금 시점에 등장하기 부적합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Part 1에서 이미 ‘몬스터 자체가 게임의 목표’라고 선언을 했고 그것을 증명해 보였기 때문에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내용은 Part 1에 나와야 한다. 이를 제외한 맞는 일, 때리는 일, 졸개들, 사용자 수준 등 4가지로 재구성된 키워드(원칙)는 결국 게이머로 하여금 아찔한 성취감을(결국 게임성) 느끼게 해주는 것이 몬스터의 궁극적인 목표로 수렴됨을 추가로 알 수 있었다.

 

2단계 Naming

자 이제 다음단계는 새롭게 재분류된 원칙들에 멋진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 명칭을 듣는 것만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제목과 같이 선배 몬스터가 후배 몬스터에게 말하는 형태로 말이다. 그리고 한번 명명되고나면 문서 전체에서 똑같은 형태로 통용되어야 한다. 결국 프리젠터가 알리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최종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비록 위 그림엔 ‘게임의 목표되기’라고 명명되었지만 다섯번째 원칙은 앞서 말한대로 생략되거나 Part 1 으로 넘어가야 한다. 명명(Naming)은 중요하다. 기억하기 힘들도록 긴 문장, 명칭만 들어서는 짐작되지 않는 내용은 피해야 한다. 그리고 가급적 형태와 길이를 (짧게)맞추려고 노력하자. 위에서 제시된 4개의 원칙은 모두 명사형으로 끝나며 비슷한 길이로 글자 수를 조절하려 노력했고 OO하게 OO하기 등으로 같은 형태로 제작(?)되었다. 이로써 새롭게 탄생한 원칙들은 청중의 머리속에 자리잡기 더욱 편한 형태가 되었다.

3단계 Logic Design

처음으로 돌아가서 Part 2에 나오는 7개의 작은 이야기들이 왜 우리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 사실 일곱개의 이야기는 많은 편이다. 그런데다가 이야기 하나하나를 풀어나가는 패턴은 모두 다르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이야기는 청중의 머리를 복잡한 실타래로 가득채우게 된다. 작은 이야기 각각에도 로직이 필요하며 가급적 그 로직은 일곱개 모두에서 일정한 것이 청중의 이해를 돕는데 좋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거야’라고 보여주고 나면 두번째 이야기 부터는 그 패턴이 청중에게 학습된다. 따라서 문서 곳곳에 등장하는 작은 이야기들도 세심한 설계가 요구된다. 이를테면 이런식이다.

‘1. 실감나게 맞아주기’ 뿐만 아니라 다른 3개의 이야기도 위와 같은 패턴으로 구성할 수 있고 첫번째 이야기에서 프리젠터가 좀 더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Why-What-How-예제의 구조를 잘 설명해 낸다면 두번째 이야기부터는 더 수월하게 진행될 것이다. 그럼 새롭게 구성될 Part 2의 구조를 살펴보자. 이야기는 6개의 작은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 시작은 1단계 Restructuring에서 파악된 4개 원칙이 공통적으로 따르고 있는 목표인 ‘게이머의 성취감’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그리고나서 4개의 원칙들이 Why-What-How-예제의 하부구조를 가지고 이어진 다음 마지막으로 4개의 원칙들을 짧게 요약해 주고 끝내는 것이다.

어떤가 ? 오늘 이야기 한 것이 프레젠테이션 초기기획을 지날무렵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부적인 구조화와 작명에 대한 것이었다.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다른 예제를 슬라이드 형태로 소개하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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