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들은 오늘 내가 발표할 주제에 대해 각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선입견이 될 수도 있겠고 기대감일 수도 있겠다. 혹 어떤 청중은 진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내 프레젠테이션을 들으러 나타났을 것이다.  바람직한 프레젠테이션이었다면 이렇게 다양한 청중들의 ‘처음생각’을 발표의 마지막부분에 이르러 내가 의도한 방향으로 돌려놓는데 성공했을 것이다.  프레젠테이션과 스토리텔링의 속성이 바로 그것이다. 청중들이 프레젠테이션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처음 생각’을 내가 의도한대로 돌려 놓는 것 말이다. 이런 청중의 바뀐 생각을  ‘바람직한 반응’이라고 부르자. 우리는 프리젠터로서 ‘바람직한 반응’을 설계하는 것이다.

 요즘 내가 즐기고 있는 ‘승마’란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난 청중들에게 승마를 해보라고 권할 참이다. 아마도 내 예상엔 청중의 대다수는 평소 승마를 심각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을 것이다. 멋진 승마복을 입고 말을 타는 사람을 보았을 때 그것이 멋지다고 생각할 테지만 정작 자신이 승마를 해볼 엄두는 내지 못했을 것이다. 웬지 승마는 자신과 멀리 떨어져있는 귀족 스포츠인 것 같아서 말이다. 이때문에 아마도 청중 대다수는 내가 ‘승마를 해봅시다’란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할 때 ‘웬 승마?’라는 ‘처음생각’을 가지게 될거라고 예상된다. 나는 어쨋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청중들이 프레젠테이션이 끝날무렵에  ‘아하~ 승마도 이제 해 볼만한 스포츠가 되었군’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청중의 반응을 나의 의도대로 이끄는 것이다 !!

이 간단한 구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처음 생각’을 파악하고 ‘나의 의도’ 혹은 ‘청중의 바람직한 반응’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는 승마로 설명한 것 처럼 매우 간단한 문구로 나온다. 그러나 많은 프레젠테이션과 보고서들이 이 두가지의 간단한 목표점없이 설계되며 이 때문에 태풍에 표류하는 배처럼 정처없이 정보들을 흘뿌리며 정신없이 진행되곤한다.

 만약 ‘처음 생각’과 ‘나의 의도’가 설정되었다면 그 둘 사이의 갭이 얼마나 큰지 가늠해보라. 내가 하려는 승마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승마에 전혀 관심이 없던 이들의 마음을 돌려 ‘할 만하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려면 갈길이 참 멀어보인다. 이 갭을 차례로 허물어 뜨리는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몫이다. 처음생각을 나의 의도에 근접시키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길(시나리오)을 설계할 수 있다. 어떻게 설계하든 그것은 프리젠터의 상상력에 달려있고 단 한가지만의 길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똑같은 주제를 수십명의 프리젠터에게 나누어 준다면 그 중 몇 명은 실패할 테지만 또 그중 몇 명은 각자 다르게 설계한 이야기로 청중을 설득해 낼 것이다. 우리의 최종 의도가 한 가지었던 것과 같이 우리 이야기는 일단 한 줄기로 끝난다. (이는 영화나 연극, 문학작품 모두에 해당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두 줄기로 시작될 수 있다. 우린 이런 형식을 가진 영화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혀 관계없는 사건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각각 발생하면서 시작하는 영화들이 있잖은가. 또는 시작은 한줄기였으나 중간에 두줄기 세줄기 사건으로 갈라지는 스토리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한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잘된 이야기 진행을 도식화시켜보면 위나 아래의 그림처럼 곡선은 모두 닫혀있다.  즉, 연결고리를 항상 갖고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아래와 같은 스타일의 영화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위 두개의 스토리가 모두 연결되고 닫혀있는데 반해 아래 스토리는 중간에 끊기고 비약을 거쳐 이상한 논리로 전개되다가 결론이 뭔지도 모른채 끝나버리고 만다. 아래 그림을 보면서 누군가는 웃겠지만 불편한 진실을 들추어 내자면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프레젠테이션의 절반 이상이 아래와 같은 그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이런질문을 하였다.  ‘나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면되지 왜 굳이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것인가 ? 오~ 타당한 질문이다. 다시 승마를 통해 설명하자면 나는 승마를 통해 얻었던 잇점을 30개쯤은 나열할 수 있다. 아마 난 스토리텔링 기법이 필요없이 승마를 해야하는 이유를 청중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프레젠테이션이 단계적인 논리전개를 생략하고 막바로 정작 하고싶은 얘기에 촛점을 맞추어 청중들을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청중의 ‘처음생각’과 갭이 크지 않은 경우라면 성공할 수도 있다. 또한 너무나도 확실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면 그 또한 성공이 유력하다. 그러나 청중의 처음생각과 갭이 큰 경우라면 단도직입적인 방법이 오히려 이질감을 키울 수도 있다.

‘잠수병’을 들어본적 있는가 ? 아마도 스킨 스쿠버 경험자들이라면 잘 알것이다. 다이버가 심해에서 해수면으로 올라올때 급격한 압력차로 인해 발생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이버들은 감압에 대한 시간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수면위로 올라온다.  우리도 다이버의 입장과 같다. 급격한 압력차가 있을 때는 단계적으로 이를 감압하면서 해수면으로 올라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스토리텔링을 통해 청중에게 접근하려는 것은 처음과 의도 사이의 갭을 두 세개의 변곡점을 통해 감압하려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이야기는 어떤 형태로 진행되더라도 2-3개의  ‘의식의 변곡점’을 거치면서 단계적으로 갭을 줄여나가게 된다.

이 변곡점을 ‘중간생각’ 정도라고 정의해보자.  청중은 처음생각에서 몇 단계의 중간생각을 거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단계적으로 내가 의도한 ‘바람직한 반응’으로 바뀌게 된다. 난 이 변곡점을 지금까지 ‘허들’로 불러왔다. 영화나 소설, 연극에서도 이러한 변곡점, 전환점이 나타난다. 청중은 이 변곡점에서 심경에 변화를 느낀다. 영화나 연극이 보통 3막 구조인 것과 문학작품이 기-승-전-결, 혹은 서론-본론-결론을 가진 것과 같이 변곡점은 2개 혹은 3개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너무 많은 변곡점(심경의 변화)을 가지게 되는 것은 설계하기도 어렵고 청중또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변곡점은 인과관계로 단단히 묶여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위에서 예로들었던 한가닥 한가닥이 끊어진 형태의 스토리가 탄생할 것이다.

자, 이제 최종적으로 승마이야기의 마지막 단계를 보여줄 때가 온것 같다. 난 승마이야기를 두개의 변곡점(혹은 허들)으로 설계했다. #1에서 나는 승마가 재미있는 운동임을 청중에게 보여줄 예정인데 아마도 이부분은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청중의 처음생각을 설계할때 나의 가정은 청중이 승마가 자신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라기 보다는 너무 비싸며, 운동이라기 보다는 취미이고, 승마를 배울곳이 드물다고 생각하리란 점이었다. 즉, 그들역시 평소 승마가 보기에도 멋지고 뭔가 있어보이며, 말이라는 동물에 막연한 흥미를 느끼리란 것이었다.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2이다. 일단 #1을 지난 시점에서의 청중은 ‘그래 재미는 있겠다. 하지만 내 처지엔…’ 정도의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제 #2에서는 승마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제거해 나갈 것이다. #2를 거치고 나면 청중은 승마가 생각보다 저렴하며, 많은 운동이 되고, 가까운  많은 곳에서 말을 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전체적으로 ‘이제는 나도 승마를 고려해볼 때가 되었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결국 영화나 프레젠테이션 모두 청중이 가지게 될 의식의 흐름을 설계하는 것이 키 포인트이다. 스토리텔링 수업을 진행하면서 참가자들이 여전히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위와 같이 커다란 변곡점을 설계하기 보다 자신이 소개하고 싶은 내용들을 기획서에 몽땅 꺼내놓고 이들을 적절히 말이 되게 배치하려다 보니 논리가 꼬이고 머리가 아프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 가장 큰 문제점은 보고서나 프레젠테이션을 언제나 자신의 입장에서 써버릇했기 때문이다.  청중의 입장을 상상해보지 않은 프리젠터는 결코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P.S

프레젠테이션에서 이야기의 얽개를 설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보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이해가 쉬울까’로 정말 오랜 시간을 고민해 온 것같다. 이때문에 올해초부터 공개강의 등을 통해 이에 대해 강의를 하면서 계속 신경을 썼던 부분은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이야기 설계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는 가를 살피는 것이었다. (이 부분때문에 나의 두번째 책의 집필이 계속 더딘행보를 걷고있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설명해왔던 방식은 느낌은 줄 수 있지만 실제 적용하는데 있어서 아직도 난감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아마도 난 청중들이 조금 더 쉽게 이해하는 모습을 볼 때까지 계속 방법을 바꿔가면서 이런 저런 시도를 할 듯하다.  (느낌을 말로 표현하는데 올해처럼 한계를 느낀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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