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 충격…천하삼분론 가시화

By | 2011-08-19

어제 HP가 퍼스널컴퓨팅 사업부분을 분리 독립시킨다는 소식을 전한데 이어 iOS, 안드로이드를 제외하고는 그나마 현시점에서 가장 대항마로 행세할 수 있는 webOS를 포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솔직히 충격적이다. 칼집에서 검을 뽑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항복을 선언한 꼴이니 말이다. 2007년 iOS가 충격파를 던진 이래로 겨우 4년이 지난 시점인데 IT 업계는 그 한번의 충격파에 구조 자체가 바뀌어 가고 있다. 아이폰이 나오고나서 부터 노키아, LG, RIM 같은 기존 통신강호들이 서서히 쇠락해 가고 있고 작년 아이패드가 나오자마자 넷북 시장이 떼죽음을 당했다. 7~8년전만 하더라도 IT부문에서 매일같이 입에 오르내리던 기업이 HP, Dell, IBM, Microsoft 등이었던 것을 기억해보라. 물론 이때도 애플이 화제거리긴 했지만 겨우 아이팟 하나로 지탱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불과 몇 년사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가 바뀌면서 전통의 강호들이 변방국가 취급을 받는듯 하다. 2007년 이전의 관심사는 치열한 MP3 플레이어 전쟁에 있었고 아이팟에 대항해 아이리버(MS의 지원을 받는), 크리에이티브랩스, 샌디스크 등이 이 시장에서 애플을 몰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애플은 이 시장에서 경쟁자들을 몇 년만에 깨끗하게 치워버리고 자잘한 회사들하고의 경쟁을 떠나 좀 더 큰물에서 놀기로 결정했고 솔직히 내가 보기에도 좀 무모해보였던 아이폰 출시를 강행했다. 출시시기는 내 예상보다 1년은 더 빠른 것이었고 나는 그 때 스케일이 다른 통신강자들의 집중포화에 애플이 견디기 힘드리라 예상했었다. 그때 나는 그걸 히틀러의 소련침공에 비유했었다. 기술력이 좋고 잘 싸우는건 인정하지만 싸워야 할 적들이 너무 많은데다가 너무들 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재시점에서 지난 4년을 추억해 보니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 경쟁자들을 깨끗하게 날려버렸던 것 처럼 애플은 진입하자마자 자만하고 있던 경쟁자들에게 제대로 한방을 먹임과 동시에 확보한 교두보를 바탕으로 정말 집요하게 공격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 결과 결국 바로 어제 HP마저 백기를 들어버렸다. 자… 이 시점에서 HP와 Dell. IBM얘기를 해보자. 이 세 회사는 PC시장을 삼분하던 회사다. 이들의 전쟁은 21세기 초반에 불을 뿜었고 직접판매 방식을 가진 Dell의 완벽한 승리로 끝나는 것 같이 보였다. 사실 전쟁의 시작때는 컴팩도 있었다. 단시일내에 Dell의 직접판매 방식을 경쟁자들이 따라잡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HP는 굴욕을 감수해가면서 Dell의 모델을 따라했고 나는 그 때의 HP를 ‘따라쟁이’라 불렀다. HP는 컴팩과의 통합 CEO의 경질 등 진통을 겪었지만 너무 일찍 샴페인 뚜껑을 따버린 Dell의 비즈니스 모델을 거의 따라잡는데 성공했고 Dell의 서비스품질 저하사건과 맞물려 절묘하게 역전에 성공했고 그 후 Dell은 거짓말같이 추락한다. 이미 그 시점 이전에 델의 창립자인 마이클 델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였다. 그후 델은 경영일선으로 복귀하였지만 ‘직접판매 모델’은 더이상 델만의 강점이 아니었고 이전에 마이클 델이 보여준 엄청난 속도의 변화도 딜레마에 빠지면서 전쟁은 HP의 승리로 일단락되면서 막을 내린다. 모두가 아는것 처럼 IBM은 Dell이 승승장구하던 시기에 PC사업을 아예 접어버릴 것을 결심하고 미련없이 전쟁판에서 빠져버린다.  HP는 이렇게 승리했다.

그런데 그 사이 저편에서 벌어지고 있던 MP3 플레이어 전쟁에서 애플이 승리하고 아이폰으로 새로운 시장을 공략할 무렵, HP도 가만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변신의 폭이 너무 적은게 문제였다. 서버와 PC, 프린터라는 든든한 기반이 있었던 HP는 사실  PDA분야에 있어서도 전통의 강호였기 때문에 어쨋든 이 부문도 소홀하게 다루지는 않았다. 그런데 친구를 잘못 만난게 내가 볼땐 좀 화근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인 마이크로소프트와 보조를 맞추며 가다 보니 어느날 자고일어나보니 윈도우모바일이란 OS는 쫄딱 망한데다가 아이패드 훨씬 이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타블렛도 아이패드가 나오고 보니 그리 혁신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오래도록 애플이 직접적인 적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본적이 없는 듯 했는데 (그도 그럴것이 직접 조우하는 일이 별로 없었기 떄문) 작년에 스티브발머의 손에 들려줬던 타블렛 프로토타입이 몇 개월뒤 정식으로 출시된 아이패드와 비교할 때 거의 찌질한 수준이었음을 알아챈 순간, 애플은 HP의 직접적인 적이 되었고 그 때부터 이리저리 손을 뻗쳐 Palm을 사들이고 출시하기로 했던 타블렛은 재빨리 포기해 버린다. (어쨋든 HP의 상황인식과 주저없이 포기해버리는 결단력엔 박수를 보낼만 하다)  그리고 그마저도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인 지금 포기를 선언했다. 게다가 퍼스널 시스템 그룹 (PC,모바일, 스토리지가 소속된)을 독립시키기로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들 부문은 공교롭게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만 모아놓은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아마 HP는 다른 방식으로 전투에 참여하든지 아니면 애플과 구글이 벌이는 전쟁터에서 발을 빼든지를 선택할 것 같다.

어쨋든 오라클에 주당 18$ 정도에 인수되느니 마니 말이 많았던 애플은 아이맥 하나로 기사회생을 해서 그 전쟁을 여기까지 발전시켜왔다.  국지전으로 시작된 전쟁은 2007년 아이폰을 출시함으로 인해 세계대전으로 번졌고 이건 4년전 내가 말했던 히들러의 소련침공의 양상과도 같았다. 전 유럽과 미국 기타 모든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세계대전에 참가했듯 이 전쟁또한 거의 모든 IT기업들에 영향을 미쳐가고 있다. 그리고 히틀러가 크레믈린궁 20킬로앞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던 것 처럼 현재 애플이 통신의 공룡들을 거의 사지에 몰아넣어 놓았다. 그 당시 히틀러가 가장 걱정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 아마 바다 저 건너에 버티고 있는 미국의 참전이었으리라 결국 미국이 북아프리카에 상륙하면서 전유럽이 괴멸직전에 있다가 기사회생했으니 말이다. 애플이 걱정하는 ‘미국’의 역할을 맡은게 ‘구글’이다. 그리고 며칠전 구글이 모토롤라를 인수하면서 북아프리카에 상륙하여 전면전을 치루려 하고있다. 바로 얼마전까지 구글이 애플의 이사직 한자리를 맡고있었는데 말이다. 이제 후방에 건재한 세력으로 남아있지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힘이 별로 없는 영국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앞으로의 전쟁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축이 된 삼국지로 변모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역사적으로 삼국이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여기며 대치하고 있는 형국에서는 절묘한 힘의 균형이 생기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둘이 연합을 하여 어느 하나가 더 커지지 못하게 견제를 하곤 하는데 그런 상황은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랜 앙숙이었지만 근래들어 서로 불가침조약이라도 맺은듯 서로에 대한 공격은 늦춘채 일제히 포문을 구글을 향해 열고있지들 않은가. 앞으로 IT의 판세를 설명하기는 더욱 쉬워질 것 같다. 이들 세 업체 때문에 말이다. 이들 셋을 제외한 다른 IT기업들은 어느편에 서야할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HP나 IBM같은 엔터프라이즈 IT 시장의 강자들은 아직도 자신들만의 시장이 남아있다. 아직 그 시장은 거대하고 애플은 근시일내로는 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울 듯 하다. 어쨋든 이들은 좀 생각해볼 여유가 있는 것이다. 한동안 네트워크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CISCO는 요즘 조용하다. 이 친구는 예전 3Com, Nortel 등과의 네트워크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익스트림, 주니퍼와 같은 후발자들의 공격도 잘 뿌리쳐냈다. 이들은 곧바로 비슷한 분야인 음성 네트워크 부문에서 Avaya같은 새로운 스타일의 강자들과 차례로 대결해서 승리를 이끌어냈고 아직까지도 시스코는 IP네트워크 부문에서는 최종승리자로 남아있으며 이들 부문에도 아직 애플의 직접적인 손길은 미치지 않아 이들또한 생각할 여유가 조금 있다. 어쨋든 이들에게조차 애플과 MS,구글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이들입장에서 조금 서글픈 것은 애플이 그들 시장으로 침범할 수는 있어도 그들이 애플이나 구글이 활동하는 시장으로 진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세상이다.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다이나믹하게 변화하다니 말이다. 자 이제 앞으로는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만 지켜보면 IT의 판세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롭게 지켜보자~ 아니 그들의 싸움이 나와는 상관없을거라는 생각은 버리고 심각하게 바라보는 편이 좋겠다. 언제 불현듯 그들이 나의 영토로 들어올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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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HP, 충격…천하삼분론 가시화

  1. NoPD

    너무 허무하네요.
    슬레이트의 운영체제를 바꾸겠다며 전격인수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포기라니 이게 무슨…
    추측컨데 애플의 탈PC 공세로 인해 수익사업들이
    위협 받으면서 상황이 나빠진듯한 느낌입니다.
    바야흐로 진짜 삼국지가 시작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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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HP는 공룡답지 않게 판단이 빠른듯 합니다. 지난 십수년간의 행보를 통해 그런 모습을 보여줬죠. 인수합병을 하거나 어떤 사업을 포기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과감합니다. 그것 때문에 살아남았는지도 모르죠. HP로서는 일단 엔터프라이즈 시장이라는 성벽을 철옹성으로 만들어 놓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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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크몬드

    Google vs Apple vs Microsoft의 차세대 IT전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합니다. 재밌게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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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천하삼분론에 대해 한번 더 정리를 하려구요 ^^ 마치 스타크래프트를 보는 느낌도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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