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의 단상

By | 2011-07-19

이야~ 이제 비가 그쳤다. 일요일 점심시간 즈음이 되자 아직 날은 흐렸지만 비가 완전히 멈춘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사는 동 바로 앞엔 위 사진과 같은 배트민턴 코트가 있고 양쪽에 벤치가 두개씩 있어서 난 담배를 피울때 사람이 없는지를 확인한 후 느긋하게 앉아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 그 시간이 내 머리의 휴식시간이요 아직도 니코틴이 내 두뇌를 활성화 시키는 화학물질이니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이 벤치에 앉아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내내 억수같이 내리는 비로 난 항상 처마밑에서 비를 피하면서 피워야 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찾아온 마른 벤치의 여유를 놓치기는 싫었다.

나의 트레이드 마크..태극기가 달린 크록스 샌들

아까 비가 그친걸 확인한 후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십 몇층인가에서 부터 타고 내려온 아가씨가 내가 탄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와 화장을 점검중이었다. 1층에 도착했는데도 그 아가씨는 내리지 않고 몇 초인가를 더 거울을 보았고 내려서도 엘리베이터 옆에 붙어 있는 거울을 보면서 계속 머리와 옷을 만져보고 야단이었다. 그 아가씨는 여름과 어울리는 시원한 색상의 연노랑 원피스로 멋을냈고 그 옷에 걸맞게 날씬하고 에뻤다. 아마 일요일이니 늦잠을 좀 잤을테고 일어나자마자부터 화장실의 거울을 보기 시작해 화장대의 거울과 현관의 거울로 이어지다가 나를 만나 엘리베이터의 거울과 1층 현관의 거울까지 거울 퍼레이드를 벌이다가  그도 모자라 이제 막 현관을 나서면서  숄더백에서 안나수이 손거울을 꺼내는 참이다.  도대체 누구를 만나러 가길래 끊임없이 거울을 들여다 볼까. 정말 누구 말대로 여자들의 지옥엔 예쁜옷을 놔두고 거울은 없을까 ?

내가 이미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워물었는데도 그 아가씨는 계속 꾸물거렸다. 자~ 내가 앉은 곳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파트 정문까지의 광경이 이렇게 펼쳐진다.

사진 상단에서 차가 나가는 방향같이 약간의 경사로를 오른 후 오른쪽으로 꺾으면 아파트 정문을 통과하게 된다.  자~ 이제 나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아가씨가 출격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이제는 바쁜 걸음으로 정문쪽을 향해 올라가고 재빨리 오른쪽으로 턴을 해 아파트를 빠져나간다. 근데 그 사이 바로 옆동에서도 잘 차려입은 아가씨가 등장했다. 그 아가씨 역시 계속 옷매무새를 다듬다가 결심한듯 자신도 저 길을 통해 출격, 재미있는 것은 한 두명의 아가씨들이 더 그런방식으로 빠져나갔는데 그들은 장마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다들 화려한 컬러의 옷을 잘 차려입고 차례대로 정문을 빠져나갔다.

ㅎㅎㅎ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었다. 정말 말이 안되는 비유지만 정성스럽게 정비를 마치고 저마다 화려한 컬러로 마킹한 꼬리날개를 가지고 하나 둘 관제탑의 유도에 따라 러시아 항공모함에서 이륙하는 날렵한 전투기들 같았다.

정문 앞의 경사로는 마치 구 소련시절 만들어진 항공모함 민스크호의 일명 ‘스키점프대’를 연상케 했다. ㅎㅎ 재미있고도 어처구니 없는 비유지만 엘리베이터를 비용해 활주갑판에 도착한 우리동 아가씨와 그 컬러풀하고 날렵한 모습, 이륙직전 꾸물거리는 모습, 우습게도 다른 동에서 나온 아가씨들도 그렇게 하다가 우연찮게도 한명씩 저 활주로를 질주하여 오른쪽으로 빠르게 날아가 버리는 모습 등에서 갑자기 그 생각이 나 혼자 바보같이 배시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구 소련의 대표적인 항모 민스크호와 그 특유의 스키점프대 모습

Facebook Comments

10 thoughts on “일요일 오후의 단상

  1. 늙은여우

    남자를 위해 돈과 시간과 정성으로 이쁘게 치장했으니 데이트 비용은 당연히 남자가 내야된다는 말도 안되는 이론이 떠오르네요 -_-;
    또 어떤 사내들이 돈을 쏟아 부을지…너무 피해망상적인 생각일까요?ㅎㅎㅎ

    결국 남자보다는 자기 만족을 위한것이 목적이면서…

    Reply
    1. demitrio Post author

      ^^ 남자를 만나기위해서도 저렇게 할테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들일땐 오히려 남자만나는 것보다 더 신경을 쓰는것 같더군요. 그런데 지난 일요일의 정황상 날씨가 개자 막바로 예쁘게 출격한다는건 아무래도 남자친구쪽이 더 유력해보이죠 ?

      Reply
  2. 정도령

    거 참 표현하고는.. 그럼 그 아가씨들이 호넷, 호크아이, 시호크 등으로 분류되는 거냐? -.-;

    Reply
    1. demitrio Post author

      우리동의 크지않고 날렵한 아가씨는 단발엔진을 장착한 F-16 팰콘, 그 뒤를 이어 나간 키 170은 넘어보이는 아가씨는 F-18 호넷, 나풀거리는 화려한 블라우스를 입은 아가씨는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톰캣이 아닐까 생각한다만… -.-;;

      Reply
  3. 배기송

    광주 질문남입니다^^; (이문규님 덕에 강의 들었던…)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러서 ‘엘리베이터 걸(?)’들의 이야기에 저도 잠시나마 미소를 짓고 있는 중입니다.

    김용석님의 조언데로 저도 블로그를 하나 개설했습니다.
    이문규님이 만든 블로그가 탐이 나서 저도 그곳에다 만들었습니다.

    다음주부터 저에게 꽤 의미있는 발표가 두 가지가 잡혀 있는데 강사님이 알려주신 방법데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논문 발표와 강사님의 강의 내용 전달을 병원에서 하게 됐는데 역시 의료계통이기 때문에 Bullets이 빠질 수는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급적 ‘단순한 메시지의 구조물’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작업하고 있는 도중에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내용 전달을 하는데 있어서 사진이 필요한데 제가 검색한 것보다 강사님이 ppt로 주신 파일에 좋은 것들이 많더라구요^^

    비용이 들어간 사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제 발표 노트에 사용해도 될 지 여쭙습니다. 물론 거절하신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설마(?)’ 사진 사용을 허락해 주신다면 제 발표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염치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Reply
    1. demitrio Post author

      ^^ 제가 모두가 다 보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배포를 허가(?)할 수는 없는노릇이죠. 이런 질문은 개인 메일로 주셨어야 했는데 말이죠 ㅎㅎ 의미는 아시겠죠 ?

      Reply
      1. 배기송

        ^^*
        안그래도 제가 너무 경솔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참입니다.
        혹시라도 강사님에게 불편을 끼쳐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좀 더 신중히 생각하겠습니다.
        오늘 중요한 한가지를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 demitrio Post author

        ㅎㅎ 괜찮습니다 ^^

    1. demitrio Post author

      저도 덕분에 오랜만에 읽게되었네요 ^^

      Reply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