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고도 슬픈 군대 에피소드

By | 2011-07-15

어느 맑고 화창한 오후 , 갑자기 박병장이 행정반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원래 이 시간쯤이면 같은 군수/보급계원들끼리 PX에서 노닥거리고 있어야 했는데 말이다. 게다가 박병장은 평소 그렇게 헐레벌떡 스타일이 아닌 위인이었기에 난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박뱅~ 무슨일이십니까” (박뱅=박병장님의 애칭:필자주)

“야~ 803호 빨랑 가져와. 보급대 간다”

뭐 다들 알다시피 군바리 찦차엔 번호가 달려있다. 보통 세자리인데 헌병대는 어느 사단이나 8로 시작한다. 아마 수송대는 6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같은 소규모 사단엔 물론 차량 대수가 적다.우리 헌병대엔 세 대가 있었는데  800호는 헌병대장차, 801호와 802호는 공용이었다. (보통 803호 804호가 거리에 보이면 그 사단 헌병대는 규모가 크다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럼 803호는 무어냐? 뭐긴 일명 당카로 부르는 리어카지. 우린 두대의 리어카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게 각각 803호 804호였다. 보급대와 빈 당카라… 생각해보시라. 짬밥이 있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뭔가를 가지러 가는것이다 !! 그것도 먹을것이 잔뜩 쌓여있는 보급대에 말이다 !!

박병장은 자초지종은 얘기해주지 않은채 의기양양하게 앞서 걸어갔고 난 뒤에서 바삐 803호를 몰고갔다. 보급대 창고 근처에 이르자 이미 주위가 떠들썩했다. 다들 저마다의 당카를 가져와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또 한가지의 의문이 스멀스멀 내 머리속을 지나갔다. 어차피 보급대에서 부대별로 뭘 불출한다면 딱 정해진 수량을 주고 끝낼텐데 구태여 서둘러 올 필요가 있었을까 ?

오~~ 그럴필요가 있었다. 보급대 친구가 창고문을 열고 눈앞에 정입방체로 곱게, 그러나 산더미같이 끝없이 쌓아올려진 농심 육개장 사발면 박스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10분내에 몽땅 가져가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난 속으로 박병장한테 욕을 했다

‘이런 병신~ 이럴줄 알았으면 804호랑 옆 방 교육계까지 같이 끌고 오는거였는데’

어쨋든 우리는 계급장도 떼어내고 염치도 없이 백화점에서 명품 세일할때 온갖 여자들이 핸드백에 달라붙듯 (진짜 딱 그 모양새였다) 메뚜기떼같이 그 많은 육개장 박스를 5분만에 깨끗하게 그 창고에서 치워냈다.  우린 그 자리에서 아마 24개들이 상자로 3-40박스는 노획한것 같다. 사실 정확한 박스수량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걸 다시 부대로 가져올때 박병장이 박스가 옆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내내 손으로 잡고가야했던 것만 기억난다. 어쨋든 그날 저녁부터 부대는 갑자기 분위기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식사추진조는 다음날부터는 오바이트국이 나오면 국은 추진조차 해오지 않는 호기를 부렸고 평소 라면따위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이등병들조차 사회에 있을 때 껌사먹듯 사발면을 먹을 수 있었다. 보급대의 당부사항 한가지가 그 사발면들을 이번달 내에 모두 먹어치워 달라는 것이었기에 우린 간식으로 사발면을 먹기도 했다. 심지어는 영창에 임시로 수감된 애들한테까지 먹였으니 그 며칠간은 그야말로 사단 전체가 배불리 먹고마셨으며(국물을 말이다) 함포고복하며 ‘역군은 이샷다’를 연호했다.

하루는 근무에서 열외되고 현재는 야간당직만 하는 갈참 전병장이 아침부터 신나게 자다가 점심시간 직후 일어나 행정반으로 전화를 걸어 나한테 사발면을 주문했다.  난 당근 잽싸게 물을 끓여서 해다 바쳤는데 5분있다가 또 전화가 왔다. 잠깐 와보란다. 가보니 전병장이 나한테 잠깐 사발면을 들여다 보랜다. 들여다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전병장은 희끗희끗한게 떠다닌다며 다시 잘 좀 보랜다. 하긴…이렇게 볕이 잘드는 오후에 내무반에서 사발면을 들여다본건 처음이었다. 어쨋든 찝찝하니까 다른걸 끓여오라해서 다시 끓여갔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군수계인 박병장 그리고 갈참 전병장과 함께 보일러실로 내려가 사발면을 한상자 꺼내와서는 부대마당에서 뜯어보았다. 일단 우리가 새롭게 발견한 사실은 유효기간이 이미 1년이상 지났다는 사실… (뭐 유효기간 따위엔 군바리들을 눈도 꿈쩍안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두번째 사실은 좀 더 놀라운 발견이었다.

사발면에서 면을 들어내 보았는데…면 아래부분에 흰곰팡이가 뿌리처럼 자라서 용기바닥까지 뻗쳐있었다. (면과 용기 사이엔 공간이 약간있다 : 필자주) 우리 셋은 일제히 보급대 쪽으로 눈을 돌려 쌍시옷이 들어가는 욕을 한바가지를 퍼부었다. 알고보니 그 개노무자식들이 군수지휘검열이 나온다고 하자 자기들이 이제까지 꼬불쳐두고 다 먹어치우지도 못한 그 산더미같은 사발면을, 치우긴 해야겠는데 양이 너무 많다보니 그중 한놈이 꾀를 내서 비공식적으로 모조리 불출해 버린것이었다. 단 5분만에 그 창고를 우리가 비워줬으니 얼마나 일을 효율적으로 한것이던가 ~! 하긴 그걸 공식적으로 불출했다면 전통이라도 사전에 내려보냈을 것이다.

정말 신기한 것은 그 사발면에 사단본부 전체에 배급되었는데 지금까지 별 말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아~ 그러면 우리가 가장 처음 발견한 것일까 ? 뭐 그건 둘째치고… 갑자기 아직도 키만큼 쌓인 그 사발면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일단 몇 몇 고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즉각 4-5명의 고참들과 행정병들이 아이솔막사 뒷편에 모여 처리문제를 얘기했다.

난 그걸 어떻게 티안나게 버릴것이냐를 논의 하는 자리인줄 알았는데 일단 버릴것이냐 안버릴것이냐부터 논의하기 시작했다. 난 작년 사단 쓰레기장 소각일을 한달간 했었기 때문에 어떻게 버려야할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고참들은 일단 그 사발면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못내 아쉬워했다. 문제를 처음 발견한 전병장이 끝까지 잠자코 있다가 한마디를 던졌다.

“야~ 그냥 곰팡이는 찬물에 씻어버리고 그냥 물부어먹자”

만.장.일.치.통.과 …

모든 부대원들에게 사발면을 먹기전 꼭 찬물에 곰팡이를 씻어내고 먹으라 전달하는 자리에서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고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부대는 월말까지 여전히 활기있게 돌아갔고 우리 헌병대막사엔 이번에 표어짓기 대회에서 1등을 한 “생각없이 때린한대 살인범이 웬말인가”란 플랭카드가 나풀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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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웃기고도 슬픈 군대 에피소드

  1. 늙은여우

    지나간 일이지만 왤케 우울하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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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글쵸…음미해보면 참 씁쓸합니다…피해갈 수도 없는 환경이었으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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