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의 시대
전 스마트폰과 MP3을 통해 주로 음악을 듣는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고 나서 음악 감상자들을 크게 두가지 타입으로 분류하게 되었습니다. 첫번째 타입은 폴더형 리스너(Folder Listener)입니다. 보통 이들은 현재 시점에서 가장 듣고 싶은 곡들을 하나의 폴더나 계층구조의 폴더집단에 넣고 이걸 그대로 플레이어에 집어넣어 듣습니다. 가깝게는 제 아내가 이런 타입의 리스너입니다. 이런 분들은 대개 최신유행곡 대부분을 가지고 다니죠. 이윽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한번씩 폴더를 재편성해 곡들을 다시 최신으로 유지합니다. 아니면 또 다시 최신유행곡 폴더를 만들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이런 형태는 휘발성이 강한 감상방법인것 같습니다. 예전의 그 폴더는 용량에 한계가 오면 해체되어야 하니까요. 음악감상을 폴더단위로 하기 때문에 곡을 듣다가 건너뛰는 경우가 잦고 실증이 나면 또 다른 폴더로 이동을 합니다.
MP3 플레이어가 최초로 등장했던 초기에는 어쩔 수 없이 다들 폴더형 리스너였고 저 또한 그랬습니다. MP3 플레이어가 등장하기 이전 전 외출전 항상 버스에서 들을 휴대용 파나소닉 CD플레이어를 챙겼고 어떤 CD를 가방에 넣을까 항상 고민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이리버의 CD형 MP3플레이어가 나왔고 전 공 CD한장에 100곡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환호했습니다. 밤새 CD를 리핑해서 MP3 화일들을 아티스트별 폴더로 분류해 놓은다음 고심을 거듭하면서 100곡을 선정해 MP3 CD로 구어냈죠. CD내에 폴더가 너무 많으면 감상할 때 다른 폴더로 건너뛰기가 불편해 되도록 한 두개의 폴더에 수십곡씩을 몰아서 넣었습니다. 실증이 나기 시작하면 금방 또 다른 CD를 구웠습니다. 그렇게 듣다보니 특정곡을 괜히 넣었다는 후회가 되었고 그 자리를 다른곡으로 메꾸어 또 구웠습니다. 메모리형 MP3 플레이어가 나왔을 때 저는 다시한번 환호했는데 이제 더 이상 CD를 구울 필요가 없이 곡을 넣고 빼기가 너무 간편해진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이후로 광범위하게 퍼진 폴더형 리스너 체제가 어느 정도 굳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 애플에서 아이튠즈와 아이팟이 나왔죠.
전 어느날 저의 뮤직매치 플레이어(MusicMatch Player : 현재 야후에 인수되어 Yahoo Music Jukebox라는 이름으로 야후의 오프라인 음악 플레이어의 주력으로 살아남았다)를 아이튠즈로 바꾸기로 결심했고 아이리버를 드디어 애플의 아이팟 나노 1세대로 교체했습니다. 애플의 팬이었음에도 그 전환은 늦었던 셈이죠. 이때가 2005년이었습니다. 처음 만난 아이튠즈는 저에겐 끔찍한 플레이어였습니다. 뮤직매치가 폴더형 리스닝을 지향했던데 비해 아이튠즈는 플레이리스트(Playlist)를 음악감상의 기본 도구로 내세웠기 때문이었죠. 그럼에도 첫 1년간은 제 플레이 리스트는 거의 텅비어있었습니다. 몇몇 해외뮤지션들의 내한 공연의 셋리스트(Set-List)를 구성하여 공연전 복습을 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면서 전 처음으로 리스트기반의 리스닝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아티스트별로 정리된 폴더들을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도 아이튠즈의 스마트 재생목록, 재생목록 기능을 이용하여 정말 여러가지 조합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수 있었고 이러한 방식이 정말 편리하다는 것을 눈치챘죠. 그린 데이의 첫번째 내한공연 셋리스트를 만들고 같은 곡이 포함된 모던락 컬렉션을 만들었으며 역시 같은 방식으로 그 곡은 저의 별 4개 이상의 베스트 리스트에도 들어가 있었으며 그린데이 베스트 리스트에도 있었죠. 여러가지 다양한 리스트의 조합으로 말미암아 음악을 훨씬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게 두번째 타입의 리스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바로 리스트형 리스너(Playlist Listener)가 된 것이죠.
iTunes Genius List : 또 한번의 진화
애플은 2008년 9월의 미디어이벤트에서 iTunes Genius란 신기능을 발표합니다. 흔해빠진 음악 추천기능이었죠. 이미 그 당시엔 Pandora의 Music Genome Project가 음악 추천엔진의 최고봉으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애플의 지니어스 엔진은 음악팬들의 혹평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저 또한 첫 모습에 실망했었죠. 그러나 그 엔진이 경험을 쌓아올리게 된다면 분명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 정도는 하고있었습니다. 지니어스는 해당 곡을 중심으로 들을만한 플레이리스트를 자동으로 만들어 주거나 특정곡이 플레이 될때 지니어스 사이드 바에 그 곡과 관련된 곡들을 추천하여 구매를 유도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저의 컬렌션 전체를 분석해 12가지 정도의 쟝르별 리스트를 선곡해주는 지니어스 믹스 기능 등 세가지가 핵심이었죠. 처음 지니어스 기능을 활성화 시키면 아이튠즈는 저의 컬렉션을 스캔해도 좋은지 물어옵니다. 제가 그걸 허락하면 녀석은 열심히 제 컬렉션으로부터 저의 음악감상 경험을 모아 애플의 서버로 전송하죠. 이 작업을 주기적으로 반복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났습니다.
구글은 Google Music 베타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이 서비스를 발표할 당시 구글의 Paul Joyce는 구글뮤직의 킬러 컨텐츠는 ‘Instant Mix’라고 자랑했습니다. 구글판 지니어스 플레이리스트였죠. 애플이 새롭게 시작할 iTunes Match 서비스와 정면대결할때 쓰일 핵심무기입니다. 또 다른 음악리스트 추천 엔진인 the Echo Nest의 책임자인 Paul Lamere가 자신의 프로젝트인 에코 네스트와 아이튠즈 지니어스를 가지고 구글의 Instant Mix의 품질에 대해 비교한 글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아무래도 그가 에코 네스트의 책임자인 만큼 결과는 에코 네스트와 아이튠즈 지니어스가 가장 좋게 나왔습니다. 그 과정과 결과물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저도 유심히 살펴본 결과 폴의 의견과는 약간 다르지만 (제 생각엔 지니어스가 가장 무서운 결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만) 저와 폴의 공통된 의견은 구글 뮤직의 Instant Mix는 초기 지니어스 만큼 쓰레기 같은 결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구글의 추천엔진은 CDDB로 유명한 그레이스노트(Gracenote)의 엔진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레이스노트는 음반메타데이타 구축과 보유에 있어 지금까지는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애플의 아이튠즈의 음반 메타데이타만해도 그레이스 노트의 힘을 빌어 구축된 것이니까요. 그러나 곡추천에 있어서는 양상이 좀 다릅니다. 판도라는(Music Genome Project) 이 분야에 있어 장인정신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온 결과 최고의 위치에 오른 엔진입니다. 전 개인의 음악취향에 따라 음악을 추천해 주는 시스템이 음반메타데이타 사업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이것이 2차 메타데이타라 규정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뮤지션의 곡목, 앨범, 바이오그라피만 가지고 곡들을 자신의 컬렉션과 매칭시키는 초기 형태에서 벗어나 이제는 음원의 리듬과 무드 등 DNA(보통 Digital Finger Print 등 각 업체가 가진 기술명으로 명명된다)를 가지고 곡을 판별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다음이나 네이버 앱에 음악을 들려주면 그 곡이 무엇인지 인식해 내는 기술이 바로 그것이죠. 전 이 부분까지를 1차 메타데이타로 생각합니다. 그저 단순히 곡을 매칭시켜주는 기술이죠. 그레이스 노트는 이 1차 메타데이타만으로도 많은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국내에서도 음원사업과 관계된 업체들과 국가기관들은 스스로 메타데이타를 정리해내지 못해 결국 그레이스노트의 서비스를 비싼 돈을 주고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이제 음반 시장은 플레이리스트 추천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사용자들도 점차 폴더형에서 리스트형 리스너로 변화해가야합니다. 사용자들은 벅스뮤직 등을 이용해 음원을 구입할 때 벅스뮤직의 추천을 받아 새로운 곡을 알게 되어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이미 어떤 곡을 살지 정한 다음 들어옵니다. 음악방송이나 드라마, CF, 라디오 등을 통해서 말이죠. 음원을 파는 쪽에선 이 과정에서 조금만 더 사용자를 자극할 수 있으면 더 많은 곡을 구입하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용자들은 자신이 몰랐던 기막히게 좋은 곡을 새롭게 알게되길 언제나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좋은 음악을 추천한다는 것은 음원을 판매하는 쪽도 좋지만 사용자들도 좋아할만한 Win-Win 게임인 것이고 음악산업에서 이 부분이 계속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난 3년간 iTunes Genius는 얼마나 발전했을까요 ? 바로 위 Paul Joyce의 평가에서도 보여지듯 현 시점의 지니어스의 추천기능은 등골이 서늘해 질 정도로 섬세해졌습니다. 애플은 2.5억개의 애플ID 계정에서 몇 명의 사용자가 지니어스가 자신의 컬렉션을 스캔하는데 동의했는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 발전의 결과만큼은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기본적으로 애플의 매커니즘은 ‘내가 같이 들으면 좋을 만한 곡들의 리스트’를 만드는데 포커스를 맞춥니다. 판도라나 위에서 소개된 에코 네스트는 쟝르나 무드 등 특정 축을 중심으로 곡들간의 유사성을 결정하고 사용자들의 경험치를 입력받아 모든 곡과 곡간의 관계(Relation)를 지표화해 그것을 곡의 DNA로 삼아 메타데이타를 구축합니다. 그래서 결과치를 받아보면 보통 대부분의 곡들이 같은 쟝르에 속해 있을때가 많죠.
지니어스의 결과 값 역시 기본적으로는 유사한 쟝르가 같이 편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매커니즘은 좀 다르죠. 사용자들은 대개 자신들이 좋아하는 쟝르를 중심으로 음악을 감상하기 때문에 쟝르를 축으로 해 리스트가 만들어진 것 같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반면 저 같은 경우는 정말 신나는 곡들은 쟝르를 초월해 같은 리스트에 올려 놓고 듣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다이안 슈어의 Reverend Lee는 ‘베스트’, ‘여성보컬’, ‘신나는 곡’ 등의 플레이리스트에 각각 저장되어 있죠. 지니어스는 그 부분까지 감안하여 알고리즘이 설계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곡이 여성보컬 리스트에서 Fleetwood Mac의 Rhiannon와 함께 자주 플레이되었고 만약 다른 나라의 여러 사용자들 중 그런 행태를 보였던 경험이 포착된다면 그것이 패턴으로 자리를 잡아 영국의 어떤 여성이 Rhiannon을 듣고 있을 때 지니어스는 그 여성에게 Reverend Lee를 추천하게 될 것이고 아마도 그 여성은 그 노래를 좋아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저 역시 지니어스 기능이 생기고 난 뒤 벅스뮤직의 월 150곡 자동결제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좀 아이러니 하지만 추천은 애플에서 받고 구입은 벅스에서 하는 셈이죠. 추천받은 곡들은 모두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또한 지니어스 리스트 기능은 제 컬렉션 중에서 잘 안들었던 곡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위 리스트는 작년쯤 Diamond Head의 Am I Evil로 지니어스 리스트를 만든화면입니다. 15곡중 제가 좋다고 평가한 곡이 3곡이고 나머지 12곡은 잘 안듣거나 심지어는 제 컬렉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들어보는 곡입니다. 아마도 지니어스는 전 세계 수백만 사용자의 경험을 이용해 저 리스트를 만들어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사용자들의 대다수가 Am I Evil을 들을 때 저 12곡을 같이 듣곤 한다는 경험이 녹아있을겁니다. 오~ 제 경험으로 단언하건데 저는 지니어스 리스트를 통해 흙속의 진주같은 곡들을 많이 발굴해냈습니다. 지니어스가 제 경험을 하루에 몇 번을 빼내가든 전 제가 가졌음에도 모르고 지나쳤던 훌륭한 곡들을 지니어스가 찾아내 준다면 문을 활짝 열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건 다름 음악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 저는 Am I Evil을 가지고 다시 지니어스 리스트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두 리스트의 차이를 보면 지니어스가 계속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년 리스트를 만들때 올라있던 15곡중 여전히 리스트에 올라있는 곡은 자기 자신을 포함해 세곡입니다. 리스터들의 취향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지니어스는 그것을 반영해 결과를 냅니다. 이제 지니어스는 초기의 비판을 극복하고 괴물이 된거죠. 그 누구도 지니어스를 위해 애플이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축적하고 몇 대의 서버를 운영하여 이를 위한 전담인력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Quora에 애플의 지니어스팀 엔지니어가 추천 메커니즘에 대해 잠시 글을 올렸다가 삭제한 적이 있었고 그것을 실마리로 지니어스의 엔진은 Netflix의 추천엔진과 비슷한 매커니즘인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관련글 – 재미있습니다 : How iTunes Genius Really Works – Technology Review) 일반 사용자라면 지니어스 기능쯤은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으나 아이튠즈의 진정한 경쟁력은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것은 꽤나 오래전부터 차근차근 준비되고 진화해온 것이었습니다.
Ping ? Oh~ No~
지니어스 이후 애플이 다시 야심차게 준비한 Ping이 작년 9월 미디어 이벤트에서 발표되자 지니어스와 마찬가지로 혹평이 쏟아졌습니다. 그 당시 아이튠즈의 팬이 되어있던 저도 Ping이란 서비스는 좀 어이없어 보였습니다. 인터넷엔 Ping 기능을 disable 시킬 수 있는 방법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고 지니어스 사이드바를 전면적으로 대체했던 Ping 사이드바는 사용자들의 비난 여론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지니어스 사이드바와 핑을 결합한 아이튠즈 사이드바로 즉각 교체되었습니다. 핑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천덕꾸러기같이 보여집니다. 그러나 애플의 노림수는 핑으로 분명해 진 느낌입니다. 지니어스 기능은 사용자가 능동적으로 참여해서 얻어진 경험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도 모르는 저의 습관을 수집해가는 기능이었죠. 핑은 사용자의 능동성을 요구하는 또 다른 지니어스 엔진의 기능이고 기존의 지니어스와 결합해 좀 더 입체적인 추천엔진을 완성하려는 애플의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모양새가 마치 트위터와 같아 애플이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만드려는 수순이 아니냐’로 의심을 받았지만 휘발성 높은 트위터와는 그 의도가 달라보입니다. 분명히 핑의 모든 멘션들은 각 음반, 곡, 뮤지션의 메타데이타와 엮여있기 때문입니다. 애플은 아직까지 사용자들과 실시간으로 다이나믹하게 소통하는 서비스나 기술엔 약해보입니다. 백그라운드에서 뭔가를 쌓는다던가 제품을 보여주는 기술은 강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지니어스 또한 초반에 악평을 달고 다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겁니다. 핑이 지니어스와 묶여 빛을 볼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쨋든 애플이 의도한 아이튠즈의 두번째 임팩트는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보여집니다.
iTunes Match : the Third Impact
올 가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iTunes Match는 애플의 세번째 임팩트입니다.(사실 임팩트로만 따지자면 DRM Free가 첫번째 임팩트입니다만 지니어스-핑-매치를 임팩트의 1,2,3번째로 정한 것은 그 세 서비스 모두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을 위한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라 그렇게 잡았습니다) 전의 지니어스와 핑에 비해 아이튠즈 매치의 첫 모습은 조금 나아 보입니다. ‘조금 낫다’라고 표현하는 것 보다솔직한 기분은 ‘만세’에 가깝지만 이 ‘만세’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어서입니다. 전 이 서비스가 시작되면 무조건 가입해서 저의 모든 128k음원들을 256k의 고음질로 ‘세탁’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거면서도 웬지 24.99$만 내고 이용하기엔 겸연쩍은 부분도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느끼실 테지만) 음원세탁, 가격, 해적판 구제, 스트리밍 서비스, 컬렉션 스캔 등 아이튠즈 매치 서비스는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석연찮은 구석이 많습니다. 도대체 애플의 노림수는 뭘까요 ?
일단 스트리밍 서비스가 빠진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용자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지난번 포스트를 준비하면서 열심히 구글을 뒤지고 다녔던 사항이 ‘스트리밍’은 왜 언급이 없는 것인가 때문이었습니다. 전 아이튠즈 매치 서비스가 종국적으로는 스트리밍을 위해 기획되었다고 믿습니다. 다만 여러 환경적인 여건과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상 등 제반 여건이 애플이 계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기 때문에 서비스의 일부인 아이튠즈 매치가 먼저 출범하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인프라가 거의 완비된 현 상황에서 애플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해외언론에서 지적하듯 AT&T나 버라이즌의 3G망의 대역폭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이유는 설득력이 있기는 하나 이유의 전부는 아닌듯 합니다.
잡스의 성격이라면 3G망은 제외하고라도 스트리밍 서비스를 강했했을 겁니다. 이미 페이스타임도 그런 방식으로 처음 등장했고 iOS 5에서는 3G망으로도 가능해질 것이라는 증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또 다른 이유인 음반사와의 협상난항이 가장 큰 이유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미 아마존과 구글은 음반사의 심기를 건드려가며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회사의 서비스는 몇 가지 근시안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가장 큰 것은 사용자가 업로드하는 컬렉션으로 서비스가 제한된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이들 데이타센터의 스토리지엔 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이 백만곡쯤 중복되어 업로드 될겁니다.
아마존, 구글 뿐만 아니라 애플은 2천만곡에 가까운 음원을 보유했을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데이타의 중복없이 이 방대한 컬렉션을 원하는 사용자들에게 스트리밍해주는 것이 목표일텐데 단기적으로 아마존, 구글은 이미 다른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음반사와의 관계까지 악화된 상황이어서 향후 궁극적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선 또 다시 먼길을 돌아가게 될것입니다. 아마 그 때가 오면 현재시작한 사업모델은 애플의 아이튠즈 매치와 같이 변경해야 할겁니다.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화일을 모두 클라우드에 올리는 것이 무의미해 질테니까요. 반면 애플은 일단 교두보를 확보했습니다. 메머드급 스토리지를 들이지 않고 일단 리스트만 가져와 화일을 다운로드 받게 할테니까요. 앞서 설명한 궁극의 스트리밍 모델로 전환하는 것도 순식간입니다. 구글과 아마존이 저수지에 고여있는 썪은 물을 빼내는 것과 같이 방대한 스토리지를 사용자들에게 비워달라고 할 동안 애플은 즉각 서비스에 돌입할 준비태세를 완비해 놓고 있게 될테니 말이죠.
이번 잡스의 노림수는 정말 절묘합니다. 서비스의 다음단계인 스트리밍으로 전개하기도 용이하면서 음반사들의 호감을 샀고 죽어도 돈을 안낼것 같은 검은사용자들이 단 1년이라도 24.99$을 내도록 만들었으며 그토록 싫어하는 경쟁자들에게 완전히 한방 먹였으니까요.
아이튠즈 매치 서비스를 앞두고 많은 사용자들이 애플이 자신의 컬렉션을 스캔해 가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애플은 어떤 방식으로 내 컬렉션을 스캔할까요 ? 네 ? 이미 지금까지 답을 구구절절히 말씀드린것 같습니다만 … 네, 이미 애플은 합법적으로 2008년부터 우리 컬렉션을 스캔해 왔습니다. 지니어스를 통해 말이죠. 아이튠즈 매치는 뭔가 다를 것 같은가요 ? 아니요 전 지니어스가 하는 방식과 같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지니어스가 우리의 데이타를 무기명으로 가져갔다면 이젠 떳떳하게 우리의 Apple ID을 태그로 달고 가져가는 점이 다르겠지요. 지니어스때부터 매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져오고 있는 겁니다. 애플이 2006년 캘리포니아에 데이타센터를 구입한 직후 또 다시 동부인 노스 캐롤라이나에 세계에서 가장 큰 데이타센터를 짓기로 결심한 그 때부터 거의 모든게 계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겁니다. (경쟁자들은 아무도 그 계획을 저지하지 못했죠)
지난 포스트에서 아마존과 구글의 이번 서비스가 어떤 한계를 가지는지 단편적으로나마 언급한바 있습니다. 오늘 포스트의 앞부분에서 저 대신 폴이 구글뮤직의 핵.심.서.비.스.인 Instant Mix의 서비스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 꼴이었는지 보여드렸습니다. 구글은 애플의 지니어스 처럼 우리의 컬렉션을 스캔해가서 경험치를 지금이라도 쌓아갈 수 있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용자들의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며 매커니즘 설계의 노우하우와 경험도 필요하고 (애플도 초반에 그렇게 욕을 먹었던것 처럼 구글도 그럴겁니다) 클라우드에 사용자들이 올린 화일들의 메타 데이타는 애플이 수집한 것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일겁니다.(게다가 그레이스 노트의 메타데이타 품질은 양에 비해 형편없습니다) 반면 애플은 256kbps AAC라는 합당한 떡밥으로 사용자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유한 컬렉션의 메타데이타를 애플이 가진것과 맞추기만 하면 256k AAC를 다운받을 수 있다고 말이죠. 이렇게 깨끗한, 중복되지 않는 단일 메타컬렉션을 사용자 개개인의 도움을 받아 유지할 수 있게 된겁니다.
이 모든것이 현실에서 얼만큼의 효과성을 가지고 경쟁자들과 간격을 벌려놓을지 불보듯 뻔합니다. 잡스가 아픈 와중에도 마른 몸을 이끌고 자신만만하게 아마존과 구글이라는 글자가 박힌 슬라이드 앞에서 ‘너흰 이제 끝장이야~’라는 듯이 통쾌하게 말한 것도 다 근거있는 자신감이죠. 그나 저나 이 부문에서는 애플의 아성을 허물만한 안목을 가진 기업들이 당분간 없겠는걸요 아날로그의 향수를 가진 음악 팬들께서는 이 점이 심히 못마땅하겠지만 음악시장이 이렇게 돌아가는걸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음반사업 종사자들은 정말 망할게 뻔합니다. 오디오는 이제 CD와 LP를 플레이할 일이 점점 더 줄어들겠죠. (살아남으시려면 에어플레이를 지원하세요~ )
자~ 다음 차례는 비디오쪽인가요? 애플이 뒤에서 무슨일을 준비하고있을까요 ?
보너스 : Tag로 그 곡인척 가장하기
어제 트위터에서 ‘더미 음악화일’에 대한 의견을 보고 설마..하는 심정에서 시험해 보았습니다. 더미 음악화일이란 그저 아무 음악화일에 Tag만 마치 그 곡인것 처럼 씌우는걸 말합니다. 이를테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Mp3 화일의 태그를 Led Zeppelin의 1집앨범 첫곡인 Good Times, Bad Times로 고쳐놓는 거죠. 아이튠즈 매치(지니우스 엔진일거라 확신)의 스캐너가 이 곡을 진짜 Led Zeppelin의 Good Times, Bad Times로 인식하게 되면 서비스가 시작되었을 때 대량의 더미화일들이 유통되어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음원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전 현재의 지니어스 엔진으로 이것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태그를 고쳐놓은 후 지니어스를 업데이트하고 이 곡으로 지니어스 리스트를 만들어 보기로 했죠. 한글로 되어 있는 가요의 경우 지니어스 버튼을 누르면 리스트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지니어스가 가요에 대한 메타데이타를 가지지 않았거나 경험치가 없어서 그렇죠. 팝송의 경우라도 태그가 지니어스와 매치되지 않으면 마찬가지입니다. 컬렉션이 적어도 그렇구요. 시험결과…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아이튠즈는 레드제플린으로 인식하였습니다. 현재의 지니어스 엔진은 태그만으로 곡을 식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죠. 이 사실을 애플이 모를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언급되었던 것 처럼 Digital Finger Print, Music DNA등과 같은 기술이 추가적으로 이용되어야 정확한 식별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지며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잡스가 말한대로 수분만에 모든 컬렉션을 스캔하기는 힘들것 같습니다. 이 사항 역시 어찌 되는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디지털 음악에 대한 포스팅은 계속 이어집니다. 상대적으로 국내에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야이기도 해서 자꾸 말을 많이하게 되네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섭군요…애플
사실 애플도 저렇게 독주하도록 놔둬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적당한 견제세력들이 존재해야 더 큰 생태계가 돌아가는데 계속 애플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죠~
아이튠스 매치 서비스에 적잖이 실망한 초기 단계에서 애포 글 보고 따라 들어 왔다가 이 글도 봤습니다.
제 경우 매치 서비스의 초기 정확도에 좀 실망한 상태입니다만, 좀 더 지켜보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초기 정확도는 지니우스와는 달리 앞으로도 별로 나아지지 않을것으로 보입니다. 그 정확도는 애플의 역량보다는 그레이스노트로 추정되는 음원인식 알고리즘과 메타데이타에 달려있다고 생각되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적잖게 실망했습니다. 애플이 매치 서비스의 효율화를 위하여 앞으로 노력할 부분이 바로 그 ‘매칭율’이 될겁니다. 매칭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에 비례해 스토리지를 절약할 수 있을테니까요.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경우 구매한 음원을 ‘구매’로 인식 못 하고 ‘매치’로 해 놓거나 하나의 음반에서 구매로 인식 못한 한두 개 음원이 있어서 업로드하거나 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게다가 이걸 다시 인식시킬 프로세스도 없어 보이고요. 흠…
아직은 보완해야할 점 투성이인듯 싶습니다. 좀 더 기다려봐야죠. 불안한 점은 애플은 온라인 서비스에 있어서는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해왔다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