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대학시절까지는 권투를 광적으로 시청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저의 스포츠 시청목록에서 사라져버렸고 TV에서도 사라져버렸죠.  20년전만 하더라도 강호에는 만화책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선수들로 드글거렸습니다. 

로베르토 듀란 – 마빈 헤글러 – 슈거레이 레너드 – 토마스 헌스 의 4인이 이끄는 중량급 매치는 수년간 계속 되었고 그 만큼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경기는 없었습니다.  듀란이 레너드를 이긴것과 레너드가 그에 복수한것, 헤글러가 헌스를 무참하게 짓밟아 버리는 광경과 레너드가 14라운드에 헌스를 역전 K.O시키는 장면은 정말 명승부중의 명승부였죠.   오죽 했으면 레너드가 승리를 예감하고 헌스를 향해 다가서면서 두팔을 하늘위로 쭈-욱 치켜드는 장면을 학교에서 그대로 흉내내고 다녔겠습니까.

토마스 헌스는 디트로이트의 저격수라 불리우며 거의 2미터에 이르는 긴리치와 속사포같은 연타의 소유자여서 아무리 불세출의 레너드라 하더라도 그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죠. 

이 4명의 중량급 스타는 서로 한번씩은 대결을 가졌었죠. 레너드와 듀란만 두번이었습니다.  이 대결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마빈 헤글러와 레너드의 대결이었는데  저는 헤글러를 응원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헤글러가 석연치않게 졌었고 저는 헤글러가 다시금 레너드와 리턴 매치르르 갖길 바랬었는데 그 승부를 끝으로 사실상 이 4명의 시대는 종료되었습니다.

정말 한동안은 이들 4명의 복서때문에 행복했었죠.   저는 무하마드 알리나 래리 홈즈가 버티고 있는 헤비급은 별로 흥미가 없었습니다.   복서가 가진 기량과 체력, 스피드를 모두 감상하기에는 미들급을 전후한 이들

4인방이 가장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죠.

한때 존 무가비라고 해서 아프리카의 야수로 불리우면서 26(혹은 28)연속 K.O승을 거두며 헤글러에게 도전한 파이터가 있었는데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키듯, 헤글러가 초반부터 잔매를 누적시키며 끌고다니다 완벽한 밸런스로 무가비를 박살내 버렸고 무가비는 그게 끝이었습니다.

산체스나 고메스가 활약한 시기에는 너무 어려서 그들의 얘기는 전설로만 알고 지냈었습니다.  (무당거미에서는 산체스와 고메스가 나오죠 ^^)

이들 4인방을 제외하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복서는 알렉시스 아르게요의 4체급석권을 4번이상 방해한 아론 프라이어 였습니다.  (오른쪽 사진)

그는 도저히 질것 같지 않은 복서였고 가장 교과서적이며 스피드, 펀치력, 경기운영능력을 고루 겸비한 아르게요를 번번히 K.O로 물리쳤습니다.    결국 그는 저의 예감대로 한번도 지지 않은 상태로 상대가 없어 1차로 은퇴하게 되죠.

세계챔피언을 지낸바 있었던 김상현도 아론 프라이어의 지명 방어 상대로 나서서 (제 기억으로는) 3회인가에 K.O로 간단히 무너져 버립니다.

그 후 중량급에서는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가 나오지만 은퇴를 앞둔시점에서 오스카 델라 호야를 만나기 전까지는 정말 맞수라고 불리우는 상대를 만나지 못한채 100전이 넘는 전적과 80%이상의 K.O율로 (정말 백전노장이었죠^^) 그 시대를 주름잡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IBF가 새로 창설되기 전까지 WBA, WBC챔피언을 동시에 3명정도를 꾸준히 보유한 경량급의 강국이었기 때문에 주말이면 정말 볼만한 복싱 경기가 줄을 지어 있었던 셈입니다. 

우리나라 복서들의 경기들도 정말 기억에 남는 명장면들과 명챔피언들이 즐비합니다.

홍수환이 적지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3회 K.O로 잡았던 장면은 지금봐도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짜릿합니다.    세계 챔피언이 되지는 못했지만 제가 좋아했던 복서로는 최충일이 있습니다.

사실 최.충.일 이름 석자만 들으면 지금도 속이 상합니다.  최충일은 아마추어 대표를 지낸 FM적인 아웃복서로서 스트레이트성 원-투잽과 속사포같은 양스트레이트를 몇초이내에 상대방의 안면에 10여방은 꽃아넣을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부가 약했죠 -.-    한마디로 맷집은 별로였단 얘깁니다.

그의 첫 세계타이틀 도전은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였습니다.  필리핀 원정경기였고 상대는 그 나라의 영웅이었던 놀란도 나바레테였죠.   거의 원사이드 하다시피 나바레테가 끌려다니고 있었습니다.   몇번이나 그로기 상태를 넘겼고 공이 살려준 라운드도 많았지만 결국 경기 막판에 최충일에게 카운터를 한개 꽃아 넣은게 역전의 빌미였습니다.   최충일이 위기였지만 도망다니다 끝나도 이길만한 경기였는데 무리하게 달려들다 재차 쓰러져서 K.O패 했죠 -.-

두번재 세계타이틀전은 미국 원정이었고 상대는 바주카 리버였습니다.   펀치가 바주카포 같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죠.  이 경기 역시 나바레테 만큼은 아니었지만 리버가 최충일의 빠른 스텝을 잡지 못한 데다가 스트레이트를 너무 많이 허용해 하마터면 원사이드하게 질만한 경기였습니다만 다시한번 최충일이 막판 카운터블로를 맞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미치는줄 알았습니다)

그외에도 박찬희-김철호-장정구-유명우로 이어지는 챔피언 계보는 정말 흥미진진 했었죠.   유제두 선수가 타이틀을 확득했을 때 영등포에 살던 저는 어머니와 함께 카퍼레이드까지 보러 나갈 정도였으니까요.

(홍수환때도 카퍼레이드를 했었죠? ㅎㅎ)

제일 통렬했던 매치는 김태식의 경기였습니다.   좌우양훅에 의존하는 김태식은 단조로운 면이 있지만 그 훅에 한번 걸려들면 상대방은 쓰러지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었습니다.  타이틀을 따낼때도 김태식은 1회에 오른속 훅을 명중시킨 후 2회에 가서 상대방을 완전히 캔버스에 뉘어버렸었죠.  얼마나 후련한 매치였는지 기아자동차의 트럭 C.F로 사용될 정도였습니다.

그 다음 통렬했던 경기는 84년 LA올림픽때 밴텀급의 문성길이 미국대표 선수를 RSC도 아니고 완전히 인사불성으로 만들어서 작살을 내버린 경기였는데요.  그 선수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미국대표팀 선발전에서 MVP를 차지하면서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던 선수였습니다.

얼마나 그때 호되게 당했던지 문성길의 오른쪽 훅에 헤드기어가 돌아가면서 탱나서 처음으로 자기 눈으로 자기 등짝이 어떻게 생겼나 보았을 정도로 턱이 심하게 돌아가는 모습이 자주 잡혔었습니다.

문성길은 그 후 허영모와 같은 체급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프로로 전향했었더라면…하고 가장 고대하던 선수가 허영모였고 문성길과 같은 체급에서 만나지 않기를 바랬었습니다.   다행히도 문성길은 프로로 전향했었죠.  (초반 몇번은 허용모가 문성길에 패배하면서 대표팀에서 탈락하기도 했지만요)

문성길이 프로에 전향했던 때는 참으로 운이 없던 때였습니다.   같은 체급에 카오사이 갤럭시가 있었기 때문이었죠.  아마 해당 체급에서 역대 챔피언들중 가장 무적의 선수를 꼽는다면 누구나 다 갤럭시를 꼽을 겁니다.  갤럭시의 유일한 패배는 바로 문성길에게 당한것이었는데 국내에서 벌어진 이 경기의 판정을 두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태국에서 벌어진 리턴매치에서 갤럭시는 문성길에게 완승을 거두죠.  그 후로 갤럭시는 무적행진을 이어갑니다.  WBC의 역대 챔피언들 중에 가장 위대하다는 평가를 들으며 17차 방어까지 성공 한 후 은퇴합니다.  상대가 없어서 말이죠.

문성길에겐 적이었지만 갤럭시는 정말 스피드, 맷집, 펀치력등 3박자를 완전히 갖춘 선수였고 도대체 못치는게 없는 선수였다고 기억됩니다.

오늘 갑자기 점심을 먹다가 복싱 생각이 나서 그만…쓰다보니 길어졌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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