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난 선발명단을 확인하기 위해  게임시작 한시간전을 킥오프 시간보다 더 기다렸었다. 그리고 지성이 명단에 들어있는것을 확인한 순간 환호를 올렸다. 자~ 그 다음은 바르샤를 이기는 일이 남았는데…그게 가능할까…하는 걱정이 되었지만 퍼거슨 할배 역시 노림수가 잘 듣는 양반이라 특효약이 있을거라 믿었다. 적어도 전반 10분까지는 말이다.  초반 기싸움에서 맨유는 바르샤 전체를 흔들어 놓을 요량이었는데 바르샤 애들은 침착하게 막아내면서 맨유를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그 진정제는 10분이 지나자 서서히 효과를 발휘했는데 그때부터 바르샤는 후방에서부터 패싱을 가다듬으며 이제 막 하프라인을 넘어오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패턴을 보아왔던지라 그걸 그렇게 놔두면 위험하다는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박지성은 그 때부터 확실히 알베스 대신 메시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패스길을 차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메시가 패스 받는것을 저지하러 말이다. 15분쯤이 되자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박지성은 메시의 1:1 대인마크맨이 아니라 메시부근에서 집단 그물망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러 메시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퍼거슨 할배의 안배에는 발렌시아도 들어있었는데 그 역시 박지성이 여의치 않을때 메시를 막는다는 임무가 들어있었던듯 하다. 처음 한 두번 박지성은 가로채기를 성공시켰으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평소 왼쪽으로 나오던 비야가 오른쪽으로, 페드로는 왼쪽으로 자리를 바꾸고 아비달이 오랜만에 왼쪽 측면수비로 들어섰으며 놀랍게도 선발출장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푸욜대신 마스체라노가 중앙수비를 맡고 부스케스까지 평소의 자리에 서면서 퍼거슨 할배가 아니라 과르디올라가 맨유에 대한 맞춤 전술을 들고나온 듯한 인상을 줬다.  맨유는 요즘 구설수에 올랐던 긱스가 나왔는데 그는 맨유 선수중 가장 많은 거리를 뛰었지만 솔직히 ‘긱스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야’라는 말을 몇번이고 할만큼 손발을 제대로 맞춰내지 못했다. (그게 뭐 긱스만의 탓이랴)

어쨋든 맨유는 전반 10분을 기점으로 점유율을 잠식당했다. 무링요라면 이 시점에서 거두절미하고 그 다음 행동강령으로 들어갔을 터였다. 아마 수비를 문전앞으로 내려 두줄로 배치하고 루니와 에르난데스까지 하프라인 아래에 두어 수비의 첫관문 역할을 시켰거나  수비라인을 중앙선 부근에 두세겹으로 촘촘히 세우고 침투를 저지했을테지 그리고 그 가운데 페페와 같은 역할을 하는 선수를 두었을 것이다.  퍼거슨 할배는 이게 좀 굴욕적이라 생각했는지 거의 정상대형으로 유지시키고 박지성에게만 좀 무리한 요구를 한것 같다. 평소 메시라면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에서 작업을 했을텐데 박지성이 쫓아오자 영리하게도 왼쪽부근으로 박지성을 끌고다녔고 거기엔 평소 오른쪽 부근에서 메시의 패스를 받아 침투하곤 하던 페드로가 기다리고 서있었다.

이러다보니 오른쪽은 드디어 알베스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되었고 역시 빠른 침투에 도가튼 비야까지 대기중이었으니 평소 박지성과 수비를 나누던 절친 에브라는 졸지에 혼자가 되어 버렸다. 박지성은 부지런히 메시에게 공급되는 볼을 차단하려고 애를 썼지만 맨유의 수비시스템은 계속해서 움직이며 패스를 주고받는 바르샤의 시스템에 점차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왼쪽으로 옮긴 페드로에게 27분경 선제골을 허용하고 만다.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루니가 자신의 능력으로 이른 시간안에 동점골을 뽑아낸 것이었다. 사실 전반전을 1:1로 마무리한 것은 퍼거슨에겐 행운이었다. 난 베란다에서 커피와 담배를 피우며 다음 수순은 긱스를 플레쳐로 교체하고 박지성을 왼쪽으로 원대복귀 시켜 선수비 후역습 체제로 다소 지루하게 끌고가면서 경기후반 바르샤의 패싱게임이 체력문제로 느슨해졌을 때 지성-플레쳐에서 루니-에르난데스에게로 한 두번에 배달되는 역습을 생각했었다.

오 ~ 그런데 이게 웬일 ? 후반이 되자 작전이 바뀌긴 바뀌었는데 이번엔 지성이 메시를 놔두고 샤비를 쫓아다니기 시작한 것이었다. 샤비를 막으려면 이니에스타와 메시까지 모두 패스가 불편하게 나가거나 불편하게 받도록 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자 박지성은 계속 헛심만 쓰게되었고 메시에게 수비 3-4명이 몰렸으며 좌우에서 침투대기중이던 비야와 페드로는 메시가 드리블을 칠 때 좌우로 벌려주며 맨유의 수비진이 메시에게 밀착하지 못하게끔 했다. 그렇게 한순간 약간의 틈이 벌어져버리자 메시는 번개같은 왼발 중거리슛으로 역전골을 터뜨렸고 사실상 그 멋진골이 맨유에게 공황모드를 선사했다.

이어서 터진 비야의 중거리슛 또한 바로 그 문제 때문에 생겼다. 내 생각에 퍼기 할배는 박지성의 용도를 좀 잘못 계산한 것 같았다. 발렌시아와 지성은 수비의 부담이 커 바르샤의 사이드를 거의 공략하지 못했고 퍼거슨은 정상적인 대결로 바르샤와 맞붙으려하다가 졌다고 했지만 내 생각엔 오히려 맞춤전술로 인해 수비와 공격밸런스 전체가 무너져 내린 모습이었다.

솔직히 바르샤의 축구는 축구를 보는 인간이라면 감탄할 수 밖에 없는 플레이를 선사했지만 반대로 맨유와 같이 최고 클래스의 팀에게는 자괴감만 심어줄 뿐이었다. 같은 A클래스라도 믿었는데 이렇게도 실력의 차이가 현격하니 어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나도 수년간 맨유의 경기를 보아왔지만 이렇게 완전히 지배를 당했던 경기는 몇 년전 멘디에타에게 농락당한 미들스브로와의 경기 이후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쨋든 작금의 바르셀로나는 마치 수백년마다 한번씩 드물게 찾아온다는 태양계 행성들이 일렬로 늘어서는 현상을 보이는 바로 그 타이밍에 들어선 듯 하다. 메시가 어린나이에 드디어 바르샤의 경기에 가끔 출전하면서 유망주로서 기대를 받았던 것과 과르디올라 감독의 취임, 맨유가 버린 피케를 잡아온 일, 데코가 첼시로 떠나며 중원의 사령관이 샤비로 굳어진 일 등등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연이어 일어나면서 최강의 밸런스가 드디어 완성모드에 근접해버린 것이다.  어쨋든 바르샤가 맨유까지 처참하게 발라버리며 빅이어를 가져감으로써 이젠 모든 빅클럽들이 바르샤를 넘지 않으면 이 시대 최강의 팀으로 불릴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맨유가 이렇게 됨으로써 상대적으로 무링요의 주가는 더 올라갈 듯 하다. 어쨋든 바르샤를 깰 수 있는 노림수를 가진자는 이제 무링요밖에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바르샤의 대망의 3관왕을 저지한게 무링요 아니던가. 바르샤의 쥐세페 로시 영입검토 소식을 오늘 전해듣고 이 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과르디올라는 샤비-이니에스타-비야의 대체자를 지금부터 양성하여 정상에서 한걸음도 내려오지 않은채 계속 질주하려는 듯 하다. 지금 이토록 완벽한 축구를 하는 팀에서 왜 세스크를 데려가지 못해 안달하는 것인지 잘 생각해보라.  맨시티나 첼시 등 총알이 있는 팀에서 바르샤의 주축선수 몇 명을 빼내가지 않는다면 적어도 2-3년은 바르샤 시대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듯 하다.

국가대표팀으로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팀이 1998~2000년의 프랑스팀이었는데 그 당시 그들의 라인업과 개개인의 면면을 보면서 깨지기 힘든 밸런스라고 생각했건만 그 조합 역시 2002년에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어느팀이건 이런 시대를 5년이상 지속시키긴 어려울 것이다. 옛날같았으면 몰라도 요즘같은 시대에서는 말이다.  이런 괴물같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어쨋든 정말 대단하다 바르샤~

 

– 지성 : 넘 속상해 말아라. 그리고 지금이 마지막이란 생각도 말길~ 계속 칼을 갈면서 기다려~~

-퍼거슨 할배 : 여름에 팀을 쇄신할 명분을 얻으셨구료

– 벨바 : 떠나야할 명분이 생겼군 그래

– 나니 : 넌 그래도 할배가 그걸 배려해서 출전시켜줬잖아.  잔말말고 너두 패스나 좀 더 배워

– 에르난데스 :  최전방에서 놀줄 알았으면 차라리 네가 메시를 수비할걸 그랬다. 네탓이 아니다. 넌 이번시즌 정말 잘했어

– 긱스 : 이겼으면 스캔들도 좀 묻혔을텐데 아마 그래서 더 많이 뛰려 노력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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