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2011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맨유가 원정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살케04를 2:0으로 격파하며 웸블리로 가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국내외의 모든 언론들이 박지성의 선발출전을 점치는 바람에 나는 오히려 대기자 명단에도 없을까봐 바짝 긴장하며 선발명단이 발표되기를 기다렸다. 퍼거슨 영감의 선발 명단을 모두 맞추는 것은 맨유 축구를 수십년을 취재한 유럽의 축구기자에게도 어려운 일이며 퍼기 영감은 번번히 언론을 따돌리며 황당한 명단을 내놓곤 했던 기억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요즘의 맨유는 이전보다는 예상이 좀 쉬워진것 같기도 하다) 한 시간전 박지성이 선발명단에 들어있는 것을 확인한 후 혼자 쾌재를 부르곤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화면에 보여지는 독일의 구장들은 하나같이 예술이다. 구름같은 관중하며 거대한 경기장까지 오랜만에 보는 살케의 홈구장 화면에 눈이 즐거워졌다. 경기가 시작된 후 처음 10분을 제외하곤 맨유는 거의 일방적으로 살케를 밀어붙였다. 오늘 퍼거슨 감독이 내놓은 메뉴는 ‘스피드’ 에르난데스와 루니 박지성이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왼쪽 측면에서 중앙을 점유하며 상대수비를 흔들었고 발렌시아는 오른쪽 사이드라인에 시동을 걸어놓고 대기하는 모양새였다. 바로 뒤에는 회춘한 긱스가 지원사격을 맡았고 수비형 미들엔 캐릭이 든든한 모습을 보여줬다. 오른쪽 윙백인 하파엘이 나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지난번 퇴장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오늘만큼은 평소의 하파엘보다 훨씬 얌전한 플레이(그러나 활기찬)를 보여줬다.


살케는 전반 초반까지 자신의 안방에서 맨유를 몰아붙여보려는 의도를 보였으나 에르난데스-지성-루니의 공격 삼각편대에게 계속적으로 빠른 역습을 허용하면서 점차 수비라인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 전반 중반부터는 거의 반코트게임같이 일방적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파파도플로스와 메첼더라는 이름값깨나 하는 중앙수비수들이었지만 세명의 공격수가 계속적으로 위치를 바꿔가며 원터치로 빠르게 침투하는 바람에 몇 번이나 위기를 맞게 되었다. 보통 이런식이면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중앙으로 몰리게되기 마련이다. 당연히 측면의 수비가 헐거워지면서 약속된 대로 시동을 걸고 사이드 라인에 대기중인 발렌시아쪽으로 지체없이 볼이 투입되어 결정적인 크로스 기회를 자주 허용하니 살케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맨유 공격의 삼각편대는 스위칭을 하면서 계속해서 수비수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통에 (에르난데스는 메첼더를 중앙선까지 데리고 나오곤 했다) 그로인해 빈공간을 긱스에게 허용하니 자칫하면 긱스의 말대로 4~5골이 나면서 대량득점으로 이어질 경기양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고 살케의 포백은 붕괴직전까지 몰렸다. 전반 5분경 헐거워진 왼쪽사이드 라인에서 공을 잡고 중앙쪽으로 이동하던 박지성이 우치다와 또 한명의 수비수가 겹치는 틈을 이용해 벼락같은 중거리 슛을 날렸지만 노이어의 반응이 반박자 더 빨랐다. 이를 기점으로 맨유는 수비수들을 붕괴직전까지 몰아넣으며 소나기 유효슛을 퍼부어대기 시작하는데 전반 30분까지 무려 7개의 결정적인 유효슛을 노이어가 막아냈고 결국 그렇게 핀치에 몰리면서도 전반전을 0:0으로 마치는데 성공한다. 축구는 흐름의 경기이기에 이쯤되면 때리는 쪽이 더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사실 호날두가 레알로 떠나간 뒤로 맨유는 빠른 역습전개가 이전같지 않았다. 보통은 박지성-루니-호날두로 이어지는 두 세번의 패스로 문전앞까지 그림같이 도달해 빠르게 일격을 날리는 것으로 심심찮게 재미를 보아왔던 퍼거슨 감독은 빠르게 적응을 마친 에르난데스의 능력을 보고나서 탄성을 내질렀을 것이다. 베르바토프-나니-루니의 조합으로 이루기는 웬지 석연찮았던 점을 에르난데스를 통해 다시 가능성을 보게되었고 오늘 루니와 박지성을 묶어 다시금 그 스피드를 보여주었다. 후반전에 싱글거리는 퍼거슨 감독의 만족스러운 표정도 바로 그런데서 오는 만족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나는 호날두가 맨유에 있음으로 해서 가장 큰 수혜를 본 선수가 박지성이 아닐까 생각해왔다. 이제 에르난데스로 인해 박지성의 쓰임새가 더 중요해졌다)

기본적으로 박지성은 왼쪽 측면을, 에르난데스는 원톱을, 루니가 중앙에서 볼을 끌고 배급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들 세명이 왼쪽과 중앙을 넘나들며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하는데 오늘은 박지성의 측면 수비부담을 약간 덜어주는 대신 쉐도우 스트라이커와 왼쪽 윙, 중앙의 수비형 미들필더 역할까지를 맡기면서 전반전엔 공이 있는 어느곳에서나 박지성을 보게 되었다. (이런걸 요구하는 퍼거슨도 참 낯이 두꺼운 양반이다) 박지성도 박지성이지만 다른 두명도 워낙에 활동량이 많았기에 포백을 비롯, 미들진영 전체를 끌고다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긱스가 조금 더 편해지게 되었고 오른쪽 사이드 라인의 발렌시아 역시 짭짤한 소득을 챙길 수 있었다.

전반전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여러번 놓친 긱스가 루니의 패스를 받아 기어이 선제골을 뽑아내면서 살케는 드디어 공황상태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이미 전반전에 그렇게되었어야 했지만 순전히 노이어 골키퍼의 개인기량에 의해 한골도 먹지 않고 후반 20분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살케였다. 결국 첫골을 허용하고부터 수비가 다시금 급격히 무너져내리기 시작 몇 분도 안되어 다시 루니에게 추가골까지 얻어맞고 사실상 (맨유를 감안한다면) 결승진출이 물건너가버린다.

퍼거슨 감독은 이때부터 잽싸게 주전선수들을 갈무리하기 시작한다. 원정경기 2:0이면 이미 8부능선을 넘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판단, 작년과 같이 두마리 토끼를 잡기로 한 것이다. (궁금하시다면 이 글을 보시라) 그러나 상황은 그 때보다 지금이 좋고 아스날전을 염두했을 때 리그우승의 쐐기를 박기 위해선 필수적이었다. 오늘 공격을 이끌며 엄청난 체력을 소모한 에르난데스-박지성-루니가 차례로 안데르손-스콜스-나니로 교체되었고 경기는 그대로 마무리 되었다.  내일새벽에 벌어질 레알과 바르샤의 경기가 정말 흥미진진하게 되었고 올 챔스결승도 엄청 재미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경기 이모저모

아인트호벤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지냈던 제퍼슨 파르판(페루)와 박지성이 오늘은 적으로 만났다. 파르판은 박지성이 맨유로 떠난 후 기량이 일취월장, 에베레디지 득점왕에 등극한 바 있고 오늘도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가 오른쪽 지향적이기에 왼쪽을 커버하는 박지성과 번번히 조우해야겠고 이 둘은 서로 깨끗한 플레이를 펼쳤다. (반갑다~ 파르판~~)  케이리그 출신인 에두도 반데사르의 가슴이 철렁이게 만든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 등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고 평균이상의 기량을 보여줬다.

박지성이  상대했던 또 다른 아는 얼굴 우치다. 살케의 오른쪽 윙백자리를 꿰찼다. 일본 대표팀이 강해진 원동력에는 바로 좌우윙백인 우치다와 나가토모가 있다. 이들의 성장으로 인해 일본대표팀은 수비가 한층 안정됨과 동시에 제 3의 공격옵션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우치다는 오늘 경기에서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그렇다고 뚜렷하게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는 (다소 이영표스러운~) 보통정도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큰 경기여서 좀 부담도 있었겠다. 박지성과의 잦은 충돌이 경기전 예상되었으나 지성이 중앙지향적으로 플레이하는 바람에 두 사람이 크게 부딫힐 일은 없었다.  계속 지켜봐야할 친구다. (언론들의 작은 한일대결..운운은 적지 않을란다. 이제 그런 대결이란 표현 좀 그만하자. 지긋지긋하다)

살케의 골키퍼인 노이어의 이야기를 안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그는 왜 퍼거슨이 탐낼만한 골키퍼인지 오늘 몸소 시범을 보였다. 안정감과 더불어 예측과 판단, 반응속도 등에서 우월한 기량을 과시했다. 비록 두 골을 허용하면서 팀은 졌지만 그는 맨유의 소나기 슛을 셀수 없을 정도로 방어해 냈다.  정말 졌지만 MOM의 자격이 충분한 선수다. 대단했다 정말~!

요즘 긱스를 보고 회춘했다는 표현을 자주쓰는데 그 말이 딱 맞다. 지난 8강전에서 팀의 세골 모두를 어시스트 했는데 그 때의 움직임은 정말 탁월한 것이었다. ‘설마 이 시점에서 돌파하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을 가질즈음 그는 예상을 깨고 수비수들이 예상 못한 지점으로 돌파를 하고 기가막힌 송곳패스와 프리킥, 코너킥 능력을 보여주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오늘도 결국 결승골을 뽑아내며 ‘역시 긱스’란 감탄사를 불러내게 했다.  게다가 1-2년전 보다 체력이 더 좋아진 느낌이다. 오늘도 풀타임을 소화했다. 며칠전 리그에서도 뛰었는데 말이다.

오늘 스탤스 모드이긴 했어도 라울이라는 선수는 정말 존경받을만 했다. 그는 여전히 찬스가 오면 여간해서는 놓치지 않는 스트라이커이자 매너좋은 남자여서 누구도 그에게 얼굴을 붉히는 법이 없다.  라울은 경기가 끝나자 운동장에 남아 모든 선수들과 일일히 악수를 하며 인사를 건넸고 그의 표정이 바라보는 내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그 스스로가 이미 바랬던 대로 그는 마지막에 긱스에게 다가가 그와 포옹하고 격려의 말을 주고 받으며 유니폼을 교환했다. (노장들의 유니폼 교환모습에 가슴이 찡~ 하더라)

이날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 승리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긱스가 라울의 유니폼을 왼쪽 어깨에 걸치고 팀의 최고참 반데사르의 격려를 받으며 라커룸으로 돌아가고 있다. 긱스에겐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 중 하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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