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가장 만나고픈 제자

By | 2011-03-18

이시영과 홍수환 관장.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이충섭님의 기사 중)

지난 17일끝난 전국여자 신인 아마추어 복싱대회에서 이시영이 우승했다는 기사와 사진을 지나쳐보았다. 사실 이 뉴스에 대해 더 자세히 볼 마음은 없었다. 나의 선입견으로는 이 친구가 학교 다닐때 전력이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고 나의 뇌리엔 그리 좋은 인상이 없어서 한마디로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다. 그러다 오마이 뉴스를 읽던 중 이충섭님이 쓴 ‘가소롭게본 이시영, 이럴줄은 몰랐다.’는 타이틀이 눈에 들어와서 그저 호기심에 그 기사를 찬찬히 읽어내려가게 되었다. 그 글을 다 읽고 나서 난 이시영에 대한 내 선입견을 완전히 지우고 순수하게 그녀를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쓴 한명의 복서로 보게되었다.

스토리는 대충 이렇다. 드라마 출연을 위해 체육관을 방문한 이시영은 복싱에 대한 준비가 전혀되어 있지 않았고 아마도 주위 사람들이 이 때문에 그녀를 가소롭게 본 것 같았다. 금방 나가떨어질 줄 알고 말이다. 글을 쓴 이충섭씨가 이시영의 스파링 파트너인 3년 경력의 여대생의 세컨을 자처하며 이시영에게 쓴맛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오히려 자신의 무경험을 엄청난 연습과 노력으로 메꾸며 단시일내에 3년간 연습한 여대생의 실력을 훌쩍 뛰어넘어버린 그녀에게 그도 나처럼 처음의 선입견이 무장해제되며 점차 그녀를 복서로 인정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이시영이 출연키로한 복싱드라마는 제작이 취소되지만 이시영은 복싱대회 출전을 자청하며 본격적으로 복싱에 뛰어들게 되는데 생활체육대회에서 우승하고 난 후 이번에는 더 큰 대회에서 우승을 한 것이다. 그녀는 이 대회의 최고령 출전자로서 (29세) 띠동갑벌인 성소미를 꺾고 우승을 차지 했는데 그것도 일방적인 경기끝에 RSC를 거두었다. 결승전 상대인 성소미는 한국체대에 다니는 국가대표 복싱선수 성동현의 여동생으로 (성동현은 지난 아시안게임 수영에서 금메달을 따낸 정다래의 남자친구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인 성광배씨 역시 국가대표 복싱선수 출신으로 전남 복싱연맹 훈련이사이자 대한아마복싱 중앙심판위원을 지낸 골수 복싱가문의 후계자를 꺾은 것이었다.

이 경기를 지켜본 성광배씨 역시 애초에 자신의 딸과 이시영의 기량차이가 컸고 저런 실력이라면 전국대회 입상도 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로 여러 전문가가 보기에도 복서로서의 타고난 자질이 보였나보다. 그녀는 처음 체육관에 찾아왔을 당시 169cm, 53kg의 체격에 리치가 길어 신체조건으로는 ‘Born to  Boxer ‘같았다고 한다. 이번 대회에서 그는 여자 48kg에서 우승을 했는데 세컨을 본 홍수환 관장은 성소미와 같은 왼손잡이로서 리치가 긴 점을 이용, 원-투 스트레이트 위주로 경기를 운영할 것을 주문했으며 이시영은 그 주문을 그대로 잘 수행해냈다.

이것이 이시영에 대한 지난 스토리를 짧게 요약한 것이다.  홍수환 관장은 그녀의 장점으로 신체조건도 그렇지만 한대를 맞으면 두대를 때리러 달려드는 승부근성과 독기를 얘기한다.  그녀는 예전 최충일과 같은 월등한 리치와 경쾌한 푸트웍을 이용한 아웃복서라기 보다는 인파이터에 걸맞다는 얘기다.  그녀가 우승한 후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스포츠 현장에서 직접 뛰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원초적인 승리의 희열을 보여준다. 아마 이 맛을 본 스포츠맨이라면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전기처럼 온몸을 휘감는 느낌을 평생 지울 수 없으리라. 아마 그녀의 표정은 평생 처음 맛보는 이런 종류의 쾌감을 감당하지 못해 북받쳐오르며 울컥거리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표정은 정말 부럽다) 아마 그녀는 이런 것을 한번 맛보았기에 앞으로도 복싱을 결코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시영 본인은 그렇다치고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링 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세컨과 홍수환 관장은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연예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한심한 자세를 취하며 복싱을 배워보겠다고 찾아온 어여쁜 처녀에게 그들은 정말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기사를 쓴 이충섭님처럼 복싱의 쓴맛이 뭔지를 보여주기 위해 다른 사람들 보다 더 혹독하게 다뤘을지도 모르는일이다.  그러나 그런 혹독함에 토를 달지 않고 노력과 근성으로 모든 이들의 선입견을 차례로 깨뜨리는 그녀를 보았을 때 가르치는 스승 입장에서는 자신의 판단착오를 뉘우침과 동시에 옥석을 발견했다는 짜릿한 희열감이 밀물처럼 밀려왔으리라. 스승입장에서는 머쓱하기는 하지만 이때부터는 자신의 모든것을 열고 진정한 복서로 그녀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했던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쏟아붓기 마련이다. 기사를 읽는 나도 그 문장과 단어들이 짜릿하게 다가왔는데 직접 그녀를 가르친 스승들은 오죽했으랴. 이시영이 링위에서 승리를 만끽하고 있을 때 링 사이드에 서있던 세컨은 오히려 그녀보다 더 그 성취감에 아드레날린 분비가 최고치에 이르렀을 것 같다.

그러니 그녀의 승리는 그 자신에게도 대단한 의미였겠지만 그녀를 가르친 스승들에게도 똑같았을 것이다. 그 맛에 가르치는것 아니겠는가.  나는 아직도 누군가에게서 배우고 있다 생각하지만 예전에 비해 배우는 것 보다는 가르치는 시간이 더 늘어나고 있음을 감안해볼때 나에게도 그런 제자가 몇 명이나 생기게 될지를 생각하며 이시영보다는 그녀를 가르친 스승을 부러워하며 지금까지 나에게 배운 후배들과 팀원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누군가를 키우는 재미는 스스로가 대성하는 것 보다 때론 더 재미있기도 하다.

P.S – 이시영의 경기를 봤는데 긴리치의 왼손 스트레이트가 가공할만 하군요. 3회 1분 57초만의 RSC였는데, 승리가 확정된 후 이시영의 세컨이 코너로 돌아온 이시영에게 그때까지 14:0이었다고 알려주는걸 들었습니다. 14:0이면 테크니컬 RSC인가요 ? 정말 왼손 스트레이트 하나만으로도 성소미가 완벽히 제압당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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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oughts on “스승이 가장 만나고픈 제자

  1. 조현철

    역쉬 실력은 노력한만큼 흘린 땀을 배신하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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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ㅎㅎ 저친구가 혹시 런던 올림픽에 도전할지 내기라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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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connected

    글읽고 이시영선수 경기영상을 봤습니다.

    재능이 꽃펴 만개하는 순간을 같이 하는 스승도 복 받았다고 생각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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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네 ^^ 저런 제자가 불쑥 튀어나와주면 스승으로선 참 재미나고 희열도 느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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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スタビ

    으로 서두에 보여드린 이미지는 디자인로그의 포토샵 강좌 게시물을 운영 중인 페이스북 ‘Design’ 페이지로 공유한 모습입니다. 아주 깔끔하게 링크 업데이트가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겁니다. 여러분도 페이스북 ‘코멘트(commets)’ 소셜 플러그인을 완벽하게 설치하셔서 많은 페이스북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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