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스토어라는 개념을 애플이 처음 들고 나왔을 때 난 솔직히 성공을 반신반의했다. 2008년 이전 스마트폰 세상에 앱스토어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난 그때 한창 윈도우모바일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었고 가끔 한당고에서 유틸리티 따위의 앱들을 몇 개 사기도 했었다.  거기서 바탕화면을 꾸미는 앱과 액세서리 등을 한두개 얹어사면 30달러는 족히 지불해야 했기에 나는 앱스토어를 환영하기는 했어도 나의 1세대 아이팟 터치에 무료앱 여러개와 기껏해야 서너개의 유료앱을 사겠거니…하고 상상하고 있었다.

오, 그런데 내 상상과는 달리 대부분의 앱들이 무료이거나 0.99$ 정도인것을 보고 나는 일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애플이 일부러 가격을 통제하지는 않을텐데 어찌해서 이런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 거의 오픈과 동시에 애플이 출시한 텍사스홀뎀이란 게임을 받아서 해보면서 나는 그 이유를 어느정도 알 것 같았다. 사실 이 게임은 애플에서 내놓기에는 상당히 생뚱맞은 앱이었다.

위와 같이 리모트, 아이북스, 아이디스크, 모바일미 갤러리, 파인드 마이 아이폰 등과 같은 앱은 무료이자 애플이 내놓을 이유가 충분했다. 애플은 위의 다섯개의 무료앱 중에서 리모트를 가장 먼저 0.99$에 내놓았었다. 텍사스홀뎀은 4.99$였는데 아직까지는 애플이 내놓은 첫번째 게임이자 마지막 게임이다. 애플은 대체 왜 이런 생뚱맞은 짓을 했을까 ? 이 앱은 4.99$의 가치가 충분할 만큼 아주 잘만들어진 (사실 그당시로는 4.99$보다 더 비싸도 괜찮다 생각했던) 앱이었다.  애플은 초반에 리모트, 텍사스홀뎀과 함께 키노트 리모트도 내놓았는데 이건 0.99$였다.

호오~ 이쯤되자 뭔가가 그려지는 것 같았다. 마치 애플이 무료앱, 유료지만 저렴한 앱, 조금 비싼 앱에 대한 보이지 않는 기준선을 주욱~ 그어놓은 것이었다. 아마 텍사스홀뎀을 해본 유저라면 두번째 게임을 살때 당연히 텍사스홀뎀의 값어치와 비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그래픽이나 게임진행이 재미없는데도 비싼 게임들에 대해서는 아마도 욕을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텍사스홀뎀은 자연스레 기준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다.  4.99$ 가격 정도의 게임은 텍사스홀뎀 정도는 되어야 하고 0.99$의 유틸리티는 적어도 키노트 리모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

실제로 앱스토어 초반 터무니 없는 가격의 앱 가격들은 재빨리 안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흔한 유료앱은 거의 모두가 0.99$ 정도다. 기가막히지 않은가 ? 난 텍사스홀뎀은 애플이 일부러 그어놓은 커트라인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앱스토어가 대중화의 길을 걷고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룩한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그 당시의 피처폰내의 간단한 게임조차도 2~3천원정도 하지 않았던가 ?  텍사스홀뎀에 대한 내 생각은 순전히 내 상상이지만 초반의 앱스토어 생태계를 위한 적정가격까지 애플이 여러모로 가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릴때마다 정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사실 이 덕분에 애플의 앱스토어가 아닌 앱스토어들의 가격도 자연스레 그를 넘어설 수 없게 되었다. 애플이 개발자에게 보장한 70%의 수익금과 앱의 표준가격은 정말 절묘한 줄타기가 있어야 나오는 계산일텐데 애플은 그 밸런스까지 미리 계산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앱의 표준단가와 판매량, 수익금을 변수로 두고 대박-중박에 대한 기준을 이리저리 시뮬레이션 해보면서 그런 것들을 보이지 않게 조절하려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은 싼 값에 앱들을 사서 좋고 개발자들은 혈혈단신이래도 70%의 수익금을 보장받으며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애플-개발자-소비자가 모두 Win-Win-Win하는 생태계를 처음 만들어 낸 것 아닌가 ?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아마 구글이나 삼성, SKT와 같은 통신사들이 애플의 앱스토어 계획을 사전에 인지하고 자기들끼리 이 생태계를 만들어 선수를 쳤더라면 아마 크게 망신을 당했을 것 같다. 구글이야 앱으로 인해 벌어들이는 돈에 궤념치 않으리라 생각되지만 다른 주자들은 소비자에겐 바가지를 씌우고 개발자에게 멍에를 씌우며 자신들만 돈을 버는 생태계를 일단 만들어 낸 후 선도자라고 깝죽대다가 결국 애플이 들고나오는 치밀한 정책에 크게 한방 얻어 맞고 결국 애플과 같은 구조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을테니 말이다.  (아마 그랬더라면 더 크게 망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아이패드 전용 앱들이 나올때인 작년을 기억해보라. 애플은 언제나 선도적인 앱들을 내놓아 기준선을 긋고 시작한다. iWork 삼총사는 각각 9.99$에 맞추어져 있고 iLife의 컴포넌트인 iMovie는 4.99$이다. 당연히 비슷한 기능을 가진 많은 앱들이 감히 저 가격을 넘어설 수 없었다. 얼마전 iPad2때 발표된 개라지밴드의 가격은 발표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iLife컴포넌트들과 같은 가격이지 않겠는가 ? 아마 개라지밴드가 나오고 나면 웬만한 음악,악기관련 앱들은 자신들의 앱 가격을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을듯 하다. 음악앱의 종결자라 불리우는 개라지밴드가 4.99$인데 누가 그보다 비싸며 기능이 떨어지거나 단순히 피아노나 드럼만 있는데 2.99$인 앱을 사겠는가 ?

이런 애플의 기준선 긋기는 올해초 발표한 Mac 앱스토어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iWork 컴포넌트들의 가격이 19.9$로 맞춰진 것인데 키노트가 단돈 2만원대 초반이라는건 정말 놀라운 가격이 아닐 수 없다. 파워포인트 2010의 단품은 19만원대가 아니던가 ?  난 파워포인트나 키노트가 각각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해 어느 하나가 좋다고 말할 수 없었지만 10배정도 되는 가격앞에서는 키노트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는 없다. (난 요즘 파워포인트 2010구입을 가격때문에 계속 망설이는중이다. 젠장~ 너무 비싸단 말이다.)

아~ 이젠 결론을 간단히 얘기해야 겠다. 텍사스홀뎀은 애플이 내놓은 생뚱맞은 게임이지만 나는 그 앱이 모든 앱스토어 생태계의 밸런스를 조절하려고 했던 보이지 않는 손의 첫번째 실체로 생각되기에 오늘 문득 생각난 김에 이 기념비적인 앱에 대해 추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ㅎㅎ 썰렁~)

Facebook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