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미디어 이벤트가 시작되자 마자 스티브 잡스가 걸어나왔다. 오늘 발표할 iPad 2 만큼이나 신선한 뉴스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청중들은 그를 기립박수로 맞았고 나 역시 그의 등장이 매우 반가웠다. 그는 수척해 보이기는 했으나 키노트를 진행하는 솜씨는 여전했고 말에는 에너지가 넘쳤다.

잡스는 경쟁자들을 직접적으로 폄하하는 것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그의 키노트에 단골로 등장해 오징어같이 씹히는 것은 마이크로 소프트였다. 아예 키노트를 시작할 때 Mac & PC의 동영상으로 시작하곤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 그 동영상은 더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 캠페인은 이제 종료되었다. 애플은 그 대신 반대편에서 새로운 전쟁을 시작했고 이제 오랜 동료였던 구글과 그를 떠받치는 공룡 IT기업들이 타겟이다. 잡스가 그들을 싸잡아 폄하하는 모습을 보니 웬지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 역시 잡스다운 독설이었다. (아니 오늘은 좀 약했지만)  그러나 구글의 로고는 차마 등장시키지 못했다. 구글은 분명 경쟁자이지만 애플로서는 최소한의 예는 구글에게 취하는 셈이다. 허니컴 로고가 그것을 대신하여 등장했다.

애플은 이제 공공연히 post-PC 시대를 얘기하고 있다. 잡스는 post-PC시대를 열어갈 세개의 블록버스터 제품들을 하나씩 소개했다.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말이다. 그래 맞는말이다. 컴퓨팅의 중심은 PC에서 모바일로 옮겨가고 있다. 이들의 네번째 블록버스터는 과연 무엇이될까 ? 현 시점에서 생각나는것은 애플TV밖에 없다.

애플과 잡스는 프레젠테이션의 Best Practice가 된지 오래다. 그러나 그들의 프레젠테이션이 언제나 악~ 소리가 나게 항상 새로운건 아니다. 오히려 잡스는 항상 같은 배경화면과 같은 스타일의 슬라이드 외형을 고수하면서 진행에 있어서도 계속 비슷한 패턴을 보여준다. 보통은 이런식이다. 처음 등장해 지난번 제품들이 이루어 놓은 성과를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애플스토어에 대해 짚고 넘어간 후, 이 제품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고 경쟁사들의 한심한 작태를 얘기하곤 한다. 그리고 나서 신제품을 소개하는데 기능소개와 시연, 게스트 초청, 동영상을 반복하며 포커스를 맞춘 기능설명에 전념한 후 가끔 one more thing…을 얘기한다.

최근의 키노트를 보면 엔딩은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있는 애플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애플의 키노트 패턴은 청중들에게 학습효과를 제공한다. 즉, 매번 같은 프레젠테이션 패턴은 진부함대신 학습효과를 불러일으켜 두번째 세번째에서는 더욱 이해를 쉽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올바른 패턴만 확립된다면 패턴이란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정기적으로 비슷한 청중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사람들이라면 참고할만한 대목이다.

애플은 WWDC, 9월정도에 열리는 아이팟을 중심으로한 음악에 대한 미디어 이벤트, Mac, iPhone, iPad에 대한 각각의 키노트가 전체적으로 일관성있는 맥락위에 행사의 특수성을 감안해 조금씩 변화를 준 여러형태의 키노트 패턴을 보유하고 있다. 가령 9월의 미디어 이벤트는 마지막에 유명 뮤지션이 출연해 직접 미니 라이브무대를 펼치며, OS와 관련된 행사에서는 여러 업체가 게스트로 나와 자신들의 앱을 시연한다.

애플은 보통 제품소개가 끝난 후 해당 제품의 광고를 보여주는 것으로 제품소개를 마무리하곤 했는데 이 역시 얼마전부터 변화를 주어 이야기가 있는 4~5분 정도의 동영상을 제작해 광고대신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역시 패턴으로 고착되어가는 중이다) 이 짧은 4~5분의 동영상 자체가 아주 좋은 스토리텔링과 논리전개의 예제라 생각된다. (관심이 있다면 예전의 동영상들도 모두 찾아서 보라) 이 동영상 역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일단 완성품에 대한 특징을 훑어 내려가는 것으로 시작, 고객들이 그 제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디에서 사용하고 있는지를 정말 다양하게 보여준 후 그런 제품이 탄생하기까지 각 부문의 엔지니어들이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 디자인, 하드웨어, OS, 애플리케이션 등 각 부문 책임자들이 차례로 등장해 자신이 맡은 부분에서 주안점을 두고 설계한 부분에 대해 얘기한다. 그리고나서 동영상은 다시한번 해당 제품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훑어 내려간 후 끝이 난다.

오늘 소개한 동영상에서는 아이패드가 자폐증 어린이를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게 했는지도 짧막하게 소개되었는데 이는 상술로 보이기 보다는 정말 감동적인 휴먼드라마로 보여 애플을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기업처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애플은 언제나 치밀하다…후우~) 경쟁사가 그저 자신의 제품을 들고 의미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보다는 훨씬 실용적으로 고객들에게 다가가는 장면이다.

오늘 키노트 전체를 통틀어 가장 관심있게 지켜본 것은 스마트커버와 개라지밴드였다. 개라지밴드의 UI는 정말 정말 인상적이었다. 건반을 살짝 누르는것과 강하게 누르는 느낌을 구현해낸 것이나 화면에 보이는 저 드럼키트에서 심벌을 때리는 위치가 바뀌면 소리역시 바뀌는 부분은 정말~ 경악스러웠다. 기능 자체보다 그것을 설계한 사람들의 세심함말이다. 4.99$인 개라지밴드는 음악/악기앱의 종결자라 불릴만하며 이 앱 하나를 위해서 아이패드를 살만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다행히 아이패드1에서도 훌륭하게 작동한다니 단돈 6천원도 안되는 이 훌륭한 장난감을 안살재간이 없다. (스마트커버의 하드웨어적 UI 역시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조연들이 주연배우를 몇 배 더 빛나게 만드는구나)

여러모로 참 생각할 것 많은 키노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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