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일기외 잡다한 일상Log

By | 2011-03-02

1.

오늘은 3월들어 수영 첫날이었다. 아직 날씨는 쌀쌀하지만 역시 3월이라는 숫자의 위력이 나타난 날이었다고 할까 ? 갑자기 초급반에 사람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한겨울엔 매월 10명 미만의 초급자들이 새로 들어오는데 이번엔 어림잡아도 20명은 되보인다. 20명이 벽을 잡고 나란히 발차기를 하는 장면을 정말 오랜만에 보는듯 하다.  나야 뭐 날라리 회원이니 중급반에 만족하며 오래 머무르고 있는데 그래도 수영장 물밥이 몇 년 되다보니 이제는 입구에서 수영복을 입고 들어서는 사람의 실루엣만 봐도 그 사람이 고급반 사람인지 초급인지를 가려낼 수 있을 지경이 되었다.

오늘 수영 클래스가 시작하면서 나는 초급반을 바라보다가 혼자 푸훗~하고 웃고 말았다. 뭐 가끔 있는 일이지만 수영 클래스에 처음 오는 여성회원들중에는 드레스코드(?)를 알지 못해 수영모없이 비키니를 입고 온다던가 남성회원들 중에는 비치웨어(긴 반바지형태의 수영복)를 입고 오는 분들이 있다. 오늘은 썬탠을 아주 잘한 젊은 여자한분이 스커트같이 레이스가 달리고 가슴이 깊게 패인  범상치않은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등장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혼자 웃고말았다.  아마 본인도 아차 싶었는지 엄청 어색해했다. 보통 그런분들은 바로 다음시간에 수영복이 바뀌는 것이 일반적이며 계속해서 같은 수영복을 밀어붙이는 경우는 한번도 본 일이 없었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의 고급반에 속한 분들은 다들 꾸준하게 수영을 하셔서 그런지 남녀가릴것 없이 수영을 많이 한 것 같은 몸매들을 유지하고 있어 보기가 좋다. 대부분 오래 수영을 하신 분들은 일단 몸매로 판단을 하고 그 다음은 수영복의 품새를가지고 판단하는데 가끔 다른 운동을 많이 하다가 오시는 분들이 있어 조금 헤깔리기도 하지만 수영을 오래한 몸은 대체적으로 부드럽고 탄탄해 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웨이트트레이닝을 오래한 것 같은 우락부락함과는 차별화 되더라.

 

2.

월이 바뀌며 우리 중급반 선생도 바뀌었다. 선생이 바뀌는 것은 뭐 그리 반길일만도 아니다. 내 경험으로는 보통 회원님들의 수준을 본다며 바짝 땡기기 때문인데 아니나다를까 이 선생이 기본 발차기 4, 자유영 8 정도를 실시한 후에 4개 영법 공히 쉬지 않고 각 3바퀴씩 12바퀴를 돌아보자고 지시했다.  난 거의 1년반을 쉬었다가 2월에 복귀했지만 그 2월마저도 거의 절반을 쉬어서 아직도 예전같은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불구(쉽게 말해 저질체력), 이상하게도 다른 분들보다 빠르다는 이유로 3번영자로 지목되어 젊은 친구들과 극강의 체력을 가진 아줌마 등 클래스내 우수집단과 초반에 달려야 했다. (뭐~ 몇바퀴 지나지 않아 바닥을 드러냈지만 말이다)  그 12바퀴동안 자유영을 제외한 배영, 평영, 접영을 오히려 자유형이상으로 편하게 한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고 놀랬다. (아니 이게 어쩐일?)  반면 자유영은 돌수록 어깨가 뻐근하고 몸이 가라앉는…그래서 결국은 힘이 배로드는 상태가 지속되었는데 한시간 내내 뺑뺑이를 돌면서 이 문제에 대해 원인이 뭘까를 계속 생각했다.  사실 그 상태로는 100미터도 연속적으로 가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내 어깨의 유연성을 탓했는데 (난 다른사람들에 비해 어깨가 뻣뻣하다는 약점이 있다) 평영과 접영을 하면서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아하~ 지금까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숨쉬기가 문제인듯 했다. 어느 순간인가 부터 (겉멋이 들고난 후부터라고 해야하나) 음~파~를 제대로 안하고 대충대충하기 시작했는데 자유영을 길게길게 글라이딩 하다보니 내가 호흡을 꽤나 길게 가져가서 결국은 헉헉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오호라~ 요게 문제의 원인이라면 의외로 쉽게 교정이 될지도 모르고 초보자같이 헥헥대는 시간도 줄어가리라~ 다음 시간에 한번 시험해 봐야겠다.

 

3.

저질체력임에도 불구, 나도 영문은 모르겠지만 속도는 빨랐다. 뭐 그렇다고 내가 스트로크를 빨리 하는건 절대아니며 자유영 뺑뺑이를 돌땐 발차기도 거의 투킥으로 길게 가져가는데도 그렇다. 그 바람에 난 앞사람을 절반정도 보내놓고 그제서야 출발하는 버릇이 생겼고 그 모습이 선생의 눈엔 요령을 피는 걸로 보이기 십상이었다. 예전 옥수동에서 이쪽으로 다시 이사를 오면서 옆쪽의 고급반의 몇몇 고수를 제외하고는 (사실 그분들도 꾸준은 하지만 물을 길게 타는 분들은 몇 안된다) 나와 비슷한 스피드를 가진 사람이 중급반 레벨에서는 거의 없었다. (하긴~ 내가 워낙 중급반에 오래있다보니 월말이면 항상 선생과 고급반에 올라가는 문제로 실랑이를 벌인다)  4년전쯤 우리반에 있던 막내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 당시 우리반은 어느 순간부터 공교롭게도 남자는 나 한명이 전부였고 나머지 15명이 모두 여성회원들이어서 나는 철저하게 기에 눌려 숨어지냈다.  그러나 속도가 빠르다는 이유로 항상 1번으로 출발해야 했는데 보통은 2번 영자보다 항상 반바퀴 이상의 차이가 나서 오히려 나는 반대편에서 잠시 쉴 수 있는 사치를 누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딱 이맘때쯤 초-중급반에서 막 넘어온 젊은 처자에게 첫날부터 2번딱지가 부여되면서 우리반이 조금 술렁거렸다.  나는 슬렁슬렁 1번으로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출발을 했는데 거의 반대편에 다다른 순간 2번영자의 손이 내 발가락에 닿는것을 느꼈다. 오호~ 추월당한 것이다.

그 다음날부터 그 친구한테 1번을 넘기고 난 그 뒤를 따라 2번으로 시작했는데 그 친구는 나와는 달리 절대 쉬는법 없이 끊임없이 돌았고 그 덕분에 우리반은 오랜만에 물속에서 땀나는 것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이 친구의 스트로크를 서서 몇번을 지켜보았는데 거의 타고난 수영꾼이었다. (본인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한 스트로크의 거리가 거의 자신의 키에 가까울만큼 길었고 엉덩이와 허벅지로 이어지는 움직임에 의한 몸의 롤링과 밸런스가 최고였다.  게다가 초-중급반에서 갖 올라왔으면서도 양쪽 팔은 수영시간전에 늘씬하게 두들겨 맞은 사람처럼 힘없이 흐느적거렸다. (수영에서는 힘빼는데 3년이란 격언이 있다. 그러므로 아주 좋다는 소리다 – 필자주)  나와 비슷한 저질체력을 가진 우리반의 고참 언니 두 명과 그 친구가 수영하는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두명의 언니들은 그 친구의 팔꿈치가 물밖에 상어지느러미 처럼 모습을 드러낼때마다 그 팔의 라인이 이쁘다고 난리들이었다 (어쩜~ 그건 남자들이 해야할 소리 아닌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새로온 그 친구는 고참 언니들에 둘러쌓여 탈의실에서 신상이 모두 까발려졌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그 세세한 신상정보는 바로 다음 시간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저질체력 동무들과 맨끝에서 잠시 쉬고있는 틈을 이용해 완벽히 공유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막내로 불리며 우리반의 1번 영자자리를 그로부터 수개월간 독차지하게 되었고 그가 빡세게 끌어준 덕분에 우리반 전체가 매번 지옥같은 현기증을 경험했고 다이어트를 걱정하던 8번영자쯤 되던 언니는 거의 10킬로를 감량할 수 있었다.

 

4.

우리 마님은 전통적으로 물과 친하지 못했다. 아니 내가 보기엔 운동 전반에 걸쳐 흥미를 느끼는 종목을 찾기 힘들었다고나 할까 ?  내가 설득을 해서 몇번이나 수영장에 끌고 나왔지만 번번히 편하게 숨을 쉬는데 실패하고 집으로 패퇴해갔다. 그런 우리 마님이 드디어 에이스 노릇을 하는 종목이 생겼으니 그게 바로 얼마전 시작한 승마다. 승마란게 수영과 달리 꽤나 차별이 심한 운동이어서 나같이 몸무게가 좀 나가는 사람들은 모양새도 웃기고 말도 힘들어했다. 게다가 항상 컴터 앞에 앉아있느라 자세도 꾸부정하니 승마 교관의 질책은 모두 나의 독차지가 된 기분이었다. 뭐~ 나야 전통적인 슬로우 스타터에 만만디니 감이 잡히기 시작하면 내가 에이스 노릇을 하리라 뒤에서 칼을 갈고있는 중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지난 일요일 드디어 우리 마님이 경속보에 대한 감각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실내마장을 경속보로 한시간동안 뛰어다니며 깔깔거리기 시작했는데 그 동안 나는 말을 잘 듣지 않는 ‘문경3호'(내가 탔던 말 이름)와 구석에서 고삐를 당기며 씨름중이었다. 참 별일이지…우리 마님이 소질을 보이는 운동이 있었다니… 어쨋든 바람직한 현상이다. 내가 더 일찍 감을 잡았더라면 마님은 또 좌절했겠지만 말이다.

오늘 아침 아이패드를 열고 우연히 사파리에 그대로 떠있는 화면을 보다 혼자 또 웃었다. ‘제주도 승마’로 검색된 네이버 검색결과가 떠 있었다. 이걸보니 감이 잡힌다. 5월말 예정된 제주도 강연에 같이 가기로 했는데 거기에서 지금껏 갈고닦은 실력을 해변을 따라 달리는 외승으로 풀어낼 심산이었던 것이다. 흠~ 그러려면 중급이상은 마스터 해야할 것 같은데… 시간이 될까 ?… 뭐 가능은 한 시간이다. 4월초쯤이면 경속보는 능숙하게 할 정도가 될테고 거기서 한달반 정도를 더 배워서 구보가 가능한 수준까지 빨리 끌어올리면 될테니까. 하얀 승마복과 멋진 승마장화를 사달라고 조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난 뒤에서 갈고 닦아서 나중에 텍사스에 가서 카우보이들이 하는 승마묘기나 말타고 활쏘기를 할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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