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골의 주인공 아르샤빈, 역시 원더보이 다웠다


[audio:http://www.demitrio.com/wp-content/uploads/2011/02/11-Fire.mp3|titles=11 Fire]

음…먼저 위 음악을 틀어놓고 읽기 시작하세요. 마치 하이라이트를 시청하시는 것 처럼요.

오늘 에미리트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아스날과 바르셀로나의 챌스리그 16강전 1차전은 아스날 팬이라면 평생 잊지 못할 경기였습니다. 저는 진작부터 이 리턴매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제 수영을 다녀와서 그 피곤한 몸으로 자기 시작했는데 (무려 24바퀴를 돌았음. 알고보니 중급자반은 20바퀴가 아니라 24바퀴였음) 정확히 새벽 4시에 눈이 자동으로 떠졌죠. 삭신이 쑤셔왔지만 말입니다.

아스날은 전반 11분까지와 후반전 나머지 20분 정도만 바르샤와 대등했을 뿐 나머지 시간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바르샤에 열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두팀 모두 공격일변도의 엄청난 축구를 팬들에게 제공했습니다. 정말 양팀 모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죠. 벵거 감독은 역시나 뒤로 숨지않고 초반부터 정공법으로 나왔습니다. (역시 그 다워서 마음에 들었죠)

일단 벵거는 포백라인을 하프라인쪽으로 바짝 끌어올려 일선과의 간격을 2-30미터로 좁혀 양쪽라인을 엇갈려 배치했습니다.  삼각형 모양의 촘촘한 그물망을 만들어 바르샤의 패스길을 원천봉쇄하자는 뜻이었죠. 초반 10분까지 이 전법이 먹혀들었습니다. 아스날은 그물망로 차단한 볼을 지체없이 역습으로 연결했습니다. 윌셔가 최초로 패스를 앞으로 내보내 직접 최전방으로 벌려서 뛰는 월콧이나 나스리 혹은 파브레가스를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스날은 진짜 결정적인 찬스를 여러번 맞았으나 반 페르시가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반 페르시는 원래 직선적인 성향의 선수로 칼날같이 뛰어들어가서 예의 그 강하고 빠른 왼발슛을 무자비하게 날리고 돌아오는 선수였는데 오늘은 킥도 약하고 방향도 어림없었으며 발은 한박자 느린것 처럼 보였죠. 월콧 이 친구는 주력은 빨랐으나 세기가 떨어져서 문전앞에서의 결정적인 크로스와 패스가 아군을 김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바르셀로나가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그랬듯 바르샤는 미드필드쪽에서 패싱게임을 전개하다가 전방 침투조에 기습적으로 밀어주거나 상대 수비가 중앙에 밀집해 있을 땐 오른쪽 측면끝에서 넓게 벌리고 기다리는 다니엘 알베스에게 지체없이 연결되었습니다.  아스날의 그물망은 좋았지만 그 반대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수비라인을 너무 끌어올려 골키퍼와 최종수비라인 사이에 거대한 공간이 생긴것이 문제였습니다.

이 공간을 페드로, 비야, 메시가 끊임없이 침투했고 중앙이 불안해 수비진이 간격을 좁혀 중앙으로 몰리면 볼은 여지없이 무인지경의 알베스쪽으로 배달이 되어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전반 15분즈음엔 경기가 완전히 바르샤쪽으로 넘어가 버리고 있었죠. 이 친구들의 패싱플레이는 정말 상대방을 절망으로 몰아넣는듯 했습니다. 너무나도 정교하고 정확한 패스가 아스날의 좁은 수비진 사이를 자유롭게 지나가기 시작했거든요. 결국 결실은 전반 26분 비야의 발끝에서 나왔습니다. 미드필드진에서 수비라인 바로 앞에 서 있던 메시에게 패스가 공급되었고 그 볼은 최종수비라인을 깻잎한장 차이로 돌파하고 있는 비야의 발끝까지 악마처럼 무서운 정확도로 지체없이 다시 배달되어 왔습니다. 비야는 놓치지 않고 골키퍼 가랑이 사이로 정확히 골을 성공시켰죠.

첫골을 성공시킨 다비드 비야, 어시스트를 기록한 메시에게 얼른 달려가더라


사실 전반 중반이라 시간도 많이 남았고 해서 아스날도 열심히 하면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원래 축구가 그렇잖아요 ? 근데 아스날의 분위기는 거의 공황상태에 빠진듯 했습니다. 마치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골을 넣었단 말이지?’라고 말하는것 같았죠. 그 분위기는 행동으로 나타나서 갑자기 아스날 선수들의 행동이 거칠어 지기 시작했고 전반전이 끝날때 까지 끌려다니기 바빴죠. 이때부터는 마치 작년 챔스 경기의 재판이었습니다. 아스날이 무너지는건 이제 시간문제였죠. 실제로 한골 정도 더 먹었더라면 작년과 같이 비참하게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르샤도 골결정력이 답답할 정도로 모자랐죠. 큰 경기의 바르샤가 가끔 보이는 모습인데요.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서도 그에 비례해서 골을 넣지 못하는 건 바르샤란 완벽한 팀에게 있어 항상 옥의 티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티가 그렇게 커질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후반전 들어서도 사실 경기양상은 별로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반전의 실수를 인정한 듯, 벵거감독은 공수의 간격을 유지하긴 하되 라인 전체를 골키퍼 쪽으로 끌어내려서 골키퍼와 최종수비라인의 간격을 좁혀버립니다. 전반전과 같은 침투에 의한 골키퍼와의 1:1상황같은건 다시 만들어주지 않겠다는 의도였죠.  이 때문에 아스날이 전반보다 안정적으로 수비를 하긴 했지만 반대로 공격은 단조로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MOM 잭 윌셔, 그는 뭔가에 눈뜬듯한 플레이를 비로소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단조로움에서 한 줄기 빛이 새어나왔는데 그건 윌셔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아스날을 보면서 번번히 윌셔에 대해 핀잔을 하곤 했는데 오늘만큼은 윌셔가 양팀을 통틀어 최고였다는 점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군요.  양팀은 원래 패싱게임이 전문입니다. 원터치 패스를 하거나 한번 잡아놓고 숏패스로 연결하죠. 멀리서 양팀 경기를 보면 쿠션을 맞고 굴절되 듯 당구공같이 공이 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윌셔 이 친구는 오늘 볼을 잡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놔둔 상태에서 상대방 진영을 돌파하는 모습이 여러번 목격되었습니다. 마치 박지성이 즐겨하던 그대로 말이죠. 이런 스타일에 바르샤 미드필더진이 적잖게 당황했고 윌셔에게 문전앞까지 돌파당해야 했죠. 이 친구는 오늘 수비가담도 발군이었고 공격지원과 역습차단, 압박 등에서 민완한 몸놀림을 보여주며 사실상 무너질지도 모르는 아스날의 기둥역할을 혼자 감당해 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MOM을 이 친구한테주지 누구에게 주겠습니까 ?


68분 비야를 케이타로 교체한 것은 과르디올라 감독의 패착이었다


어쨋든 윌셔의 선전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던 아스날에게 변화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68분 과르디올라 감독이 비야를 빼고 케이타를 집어넣은 것이었죠. 사실 이 교체가 바르샤의 패착이었다고 전 생각합니다. 어떤 의도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모르긴해도 케이타로 하여금 미드필드진을 더 공고히 지키게 하려는 의도였을 겁니다. 그에 화답하듯 막바로 벵거감독이 비야를 막던 송을 빼고 아르샤빈을 투입합니다. 이제 아르샤빈이 왼쪽을, 나스리가 프리롤을 맡게 되면서 양상이 변합니다. 아스날이 공격숫자를 늘이면서 공세로 전환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반대로 바르샤는 약간 힘을 잃은 모양새였습니다. 이렇게 흐름이 바뀐게 눈으로 보였는데도 과르디올라 감독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경기를 끌고가려고 했습니다.

승기를 잡았다고 느낀 벵거는 분위기를 더욱 살리기 위해 77분 오른쪽의 월콧을 빼고 벤트너를 투입합니다. 이제 나스리가 오른쪽을, 벤트너가 타겟맨 역할을, 반 페르시가 처진 스트라이커 역할이 되었죠. 그게 아스날의 공세에 힘을 불어넣었고 벤트너가 들어간지 1분만에 왼쪽 엔드라인을 침투한 반 페르시가 각도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골키퍼와 골대사이로 대포알 같은 슛을 날려 동점골을 뽑아 냅니다.


동점골을 성공시키고 벵거 감독에게 뛰어가는 반 페르시. 그로서는 이게 속죄포였다


사실 그 슛이 반 페르시 다운 슈팅이었습니다. 각이 있건 없건 강하고 낮고 빠르게 대포알 같이 날리는 그 슛이 가장 반 페르시다운 슛이었거든요. 평소 페널티킥을 그물이 찢어져라 차는 반 페르시를 보면 X가지 없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오늘만큼은 시원스럽더군요.  이젠 시합의 분위기가 완전히 아스날로 넘어왔고 사실 이렇게 동점으로 끝나도 괜찮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반대로 바르샤는 지키려던 분위기에 찬물을 뒤집어쓴 꼴이 되었고 급속도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동점골을 내준지 5분도 안되어 다시 나스리에게 오른쪽을 돌파당했고 나스리는 뒤에서 달려오는 아르샤빈을 보고 안정적이고 정확하게 그의 발에 크로스를 배달했습니다. 아르샤빈은 골키퍼가 움직이는 반대편을 향해 마치 패스를 하듯 정확하게 역전골을 성공시켰죠. 이 골은 반 페르시같이 무식하도록 강하게 차는 선수였다면 수비수나 골키퍼에 여지없이 걸려들었을만한 지능적인 슈팅이었고 그 자리에 아르샤빈이 서있었던 것을 크게 감사라도 해야말한만 멋진골이었습니다.  3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과르디올라 감독이 다급하게 이니에스타를 빼고 아드리아누를 집어넣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경기는 그대로 종료되었죠.


뱅거감독은 뷰티풀 축구 대결에서 그야말로 체면치례를 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뷰티풀 축구의 맞대결에서 벵거감독이 바르샤를 처음으로 꺾었습니다. 소문난 잔치엔 먹을것이 없다곤 하지만 뷰티풀 축구의 맞대결은 정말 볼 것 많은 잔치였네요. 일찍 일어난 보람이 있었습니다. 아스날로서는 이날의 승리가 값진 것이지만 아직 16강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쨋든 바르샤가 원정골을 하나 기록했기 때문에 캄푸 누에서 1:0 정도로만 승리해도 8강진출은 바르샤가 될 테니까요.

기분 좋은 것은 이 뷰티풀 축구를 한번 더 볼수 있다는 겁니다. 홈인만큼 과르디올라 감독도 이를 갈면서 나올것이고 벵거감독도 후반에 통했던 수비전술을 2차전에서도 그대로 이어갈지 아니면 또다시 수비라인을 바짝 끌어올리는 맞대결을 펼칠지 흥미진진합니다. 오늘 아스날이 이기긴했지만 저는 여전히 전력면에서 바르샤가 8강에 진출할 가능성이 조금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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