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 보는 아시안컵

By | 2011-01-28


일본의 주장 하세베 마코토, 그는 우려대로 4강전에서 한국을 상대로 최상의 활약을 펼쳤다

며칠전 벌어졌던 아시안컵 4강전 한일전에 대한 얘기를 마음이 아프지만 짚고 넘어가야 겠습니다. 패배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드는 것 같습니다. 사실 경기의 뚜껑이 열리자 마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전 일본이 전반을 견뎌내고 후반에 공세를 집중할 거라 예상했었거든요.  킥오프 호각이 울림과 동시에 저는 일본이 어떤 방식의 압박을 사용할지 지켜봤습니다. 크게 두가지 시나리오였는데 전면적으로 라인을 끌어올려 적극적 압박을 가해올 것인지, 라인을 뒤로 물리고 도사리고 있다가 한국팀 상황을 봐서 끌어올릴지 말이죠.

예상외로 일본은 전면적인 압박을 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게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죠. 이전까지 보여준 한국팀의 전반전 볼컨트롤을 생각하면 힘과 힘의 대결에서 일본의 압박을 분쇄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그런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전반 5분까지 보면서 한국팀의 체력이 회복되지 못했음을 알아챘죠.  이때문에 일본 미드필더들이 끊임없이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걸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되었고 이는 곧 위기로 이어졌습니다. 처음 제 예상대로라면 일본의 패스길목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이용래, 기성용, 구자철, 박지성 등에게 몇 번 차단 당하고 반대로 일본이 위기를 맞이해야 했거든요.

그런데 발이 느려지자 일본의 패싱게임을 차단할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기성용의 선취골이 나오기까지는 어느정도 호각지세를 보여주었지만 그 이후 25분은 정말 완벽하게 지배당했고 차두리가 올라간 공간을 같은 윙백인 나가토모가 파고들었고 혼다의 기가막힌 패스가 나오면서 동점골을 내주게 되었습니다. 전반전에 추가골을 허용하지 않은게 다행이라 할만했죠.

일본은 확실히 전반전에 승부수를 띄웠고 오버페이스한게 확실했습니다. 엔드라인 근처에서 수비에 가담하는 최전방 공격수 마에다와 카가와 등이 자주 목격되었거든요. 일본은 혼다-오카자키에 수비부담을 지우는 대신 항상 미드필드 근처에 대기시켜놓고 세컨볼을 잡으면 막바로 역습을 시도했습니다. 이 두명과 골키퍼를 제외한 8명의 전선수는 진짜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뛰어다녔죠.  후반전 초반 홍정호가 미드필드 숫자를 늘리기 위해 지동원과 교체해 들어갈때까지 일본의 공세는 대단했습니다. 홍정호가 들어간 이후 일본 역시 발이 느려지면서 일단의 패싱게임이 누그러졌고 페이스가 다시 한국쪽으로 넘어왔습니다. 이 시기는 혼다와 오카자키의 역습과 한국팀의 오픈공격으로 대변되는데 확실히 단순하게 힘대 힘으로 밀어붙이는 경기에서는 한국팀이 우위를 점했습니다.

연장전에 접어드는걸 확인하면서 사실 전 승운이 우리쪽에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멀리서 올려주는 단조로운 오픈공격에서 한국이 서서히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었거든요. 그러나 여기서 심판이 다시한번 찬물을 끼얹죠. 페널티킥을 허용하고 나자 일본은 이제 잠그기 모드로 들어갑니다.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던 한국팀으로서는 허무하기 그지없는 판정이었습니다만 그래도 막판에 집중력을 잃지않고 황재원이 더티골(우겨넣기가 반복되다 혼전중 찬스에서 밀어넣기)을 터뜨리면서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와~ 이런 경기는 정말 오랜만이었죠.

그 뒤로는 모두가 잘 아시다시피 허무한 페널티킥 실축이 이어졌습니다. -.-;;

이날 경기에서 일본팀이 전반전에 보여준 패싱게임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한국팀과 주고받는 공방은 정말 아시아팀끼리의 대결인지 눈이 의심될 만큼 화끈한 공격위주의 공방전이었죠.  그 중심축엔 혼다가 있었습니다. 혼다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을 유발하는 패스를 남발(?)했죠. 이 친구 은근 무시하고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기량이 향상되는데다가 패스에 대한 센스와 킥력, 움직임, 볼키핑력, 체력까지 모두 나무랄데가 없더군요.  결국 수비에서 공격으로 이어지는 라인에선 하세베와 공격을 이끄는 혼다 두명이 한국팀의 마크에도 흔들림없이 서있었고 이 떄문에 일본팀의 척추가 그대로 살아있었습니다. 결국 이런 바람에 일본팀 공수전체의 밸런스가 살아있게 되었죠. 지난 경기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뛴 이용래가 너무 지쳐있어 이들을 제어해 낼 수 없었습니다. 팔팔한 김정우 정도만 있었더라면 양상이 약간 달라졌을거라 봅니다만… 일본의 오른쪽 윙백 우치다는 이영표를 넘어서기 어려웠지만 왼쪽의 나가토모는 이날 차두리를 속도와 체력에서 제압했습니다.

일본팀은 작년 월드컵 이전의 팀과 이후의 팀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포스팅에서 밝힌바와 같이 월드컵 이후의 현재 일본 대표팀을 사상 최강의 전력으로 생각합니다. 이들이 월드컵 직전까지 당했던 수모가 결과적으로는 근성을 키워주게 되었고 ‘더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뛴 그들의 정신력이 그 때부터 그들의 모토가 된 듯 합니다. 같은 선수구성이건만 이들의 지금 상태는 월드컵 직전까지의 패배적인 분위기와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이번 한일전에서도 그들은 한국보다 더 독하게들 뛰어다녔습니다. 하세베가 연장전에 가서야 실려나가는 것을 보고 ‘정말 지독하군~’이라는 생각이 거듭 들더군요.

일본의 현재전력은 혼다-하세베-카가와와 함께 양측면의 우치다-나가토모를 중심으로 몇 년간 현재의 전력이 지속될 거라 보여집니다. 가장 큰 숙제는 노쇠한 중앙수비진을 일신하고 확실한 최전방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에반해 한국팀은 이미 세대교체의 한 가운데 서있습니다. 바로 직전에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차출되지 않았던 선수가 10여명이며 구자철-김보경과 같이 월드컵멤버이긴 했어도 거의 뛰어보지 못한 선수도 있습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박지성-이영표가 대표팀에서 물러난다는 얘기를 했기 때문에 세대교체는 더 가속화 되겠죠. 이런 세대교체의 한가운데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회에서 놀라운 전력을 보여준 조광래 감독에게 한일전 패배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번대회에서 미래를 보았으니 말이죠.

전 이제 한일전이 예전의 그 피튀기는 철천지원수들간의 대첩이 더 이상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 분위기는 비단 저 뿐만이 아닌것 같습니다. 이번 한일전의 패배를 담담하고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대세인걸 보고 실감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좋습니다. 라이벌이기는 하되 패배에 그저 억울해만 하기보다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본받을것은 본받는 분위기가 이제는 필요할 시점입니다.

이번 한일전은 사실 심판이 흐름을 주도한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라이벌간의 뒤끝없는 공방전이 되도록 무리없이 경기를 진행했어야 했는데 심판이 선언한 두번의 페널티 킥으로 인해 경기의 흐름이 양팀이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 이 경기의 옥의 티 입니다. 적장인 자케로니 감독 또한 두골 모두 페널티킥을 받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신사적으로 인정했고 제 생각 또한 그렇습니다. 만약 그 페널티킥 선언만 없었더라면 경기는 정말 양팀의 실력만으로 검증받는 진검승부가 되었을 텐데 말이죠.

어쨋거나 일본은 제가 보기엔 한국팀이 이란을 상대로 진을 뺀것 이상으로 한국전에 모든 에네르기를 쏟아 부었습니다. 카가와 신지의 부상은 저 조차도 안타깝더군요. 분데스리가 전반기 MVP인 선수가 가장 뻗어나가야 할 이 시점에서 시즌아웃된다는 사실은 그의 축구인생 전체에 있어 또다른 중대변화가 될 것입니다. 안타깝기는 박지성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야말로 고군분투한다는 것이 느껴졌던 만큼 그의 후유증도 만만찮을것 같습니다. 결국 아시안컵 이전에 우려하던 빅리그 선수들의 무리가 현실화 된 느낌이랄까요? 한일 양국 선수들 모두에게 말입니다.

오늘 우즈벡과의 3-4위전은 승부에 연연하지 말고 숨은 보석 찾기의 무대로 사용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전 지난 남아공월드컵에서 허정무 감독에게 가졌던 제일 큰 불만이 그것이었습니다.  월드컵이란 최종적인 무대에서 신인을 기용한다는 것은 모험에 가깝지만 그를 통해 향후 10년 농사를 판가름할 제 2의 박지성을 찾아내는 일도 월드컵의 승리 못지 않게 신선한 일일테니까요. 오늘의 3-4위전 역시 그런 측면에서 발전적으로 생각해주길 조광래 감독에게 기대해 봅니다. (유병수는 기용되었다가 오히려 상처를 받은 케이스죠 -.-;; 조감독도 참…곤조하고는)

어쨋든 일본은 큰일입니다. 완전한 컨디션이라면 발이 느린 호주의 수비진을 현란한 패싱게임으로 제압하는 것이 연상될텐데 지금으로선 할일전에 처음부터 발이 느려지는 한국팀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여 말이죠. 카가와가 부상으로 이탈한 것도 문제긴 합니다만 어차피 일본팀의 패싱 매커니즘이 깨지는 것은 아닙니다. 왼쪽 공격엔 카가와 말고도 나가토모가 있으니 말이죠. (이 친구는 거의 측면 공격수라 부를만합니다. 킥력도 꽤 좋구요. 예전 레알의 카를로스가 나가토모의 롤모델인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팀 전체가 발이 느려진다면 호주을 공략하는덴 분명 문제가 생길겁니다. 한일전에서와 같이 호주전 역시 일본이 시작과 동시에 전면적인 압박을 할건지 기대가 됩니다.  호주는 뭐 한국전에서와 같이 전반을 무실점으로 견디고 정말 지속적으로 오픈공격을 통해 일본의 골문을 노려야겠네요. 사실 일본이 이런 뻔한 공격에 은근 취약합니다. 정상적이라면 일본의 손을 들어주고 싶으나 현재로선 이들의 승부 역시 50:50입니다.

한국팀이 이번 대회 보여준 톱니바퀴 형태의 패싱게임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중심에 서 있던 박지성이 떠난다니 정말 서운하긴 하지만 그가 맨유에 전념할 수 있는 모습도 전 보기좋습니다. 지난번 포스트에서 밝혔듯 한국팀의 패싱게임은 박지성-구자철-기성용-지동원-이청용 등과 함께 바로 뒤 후방의 이용래-기성용의 지원으로 완성됩니다. 호주와 이란, 바레인을 밀어 붙였던 이 시스템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정말 흥미롭습니다. 또한 이 시스템의 완성된 모습으로 일본과 리턴매치를 기대해 봅니다. 이 패싱게임 시스템의 중심이었던 박지성의 빈자리에 누가 들어오고 커나갈지, 그리고 또 새롭게 가세할 멤버가 누가될지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어쨋든 오늘 3-4위전은 그런 기대를 가지고 지켜볼라구요…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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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되돌아 보는 아시안컵

  1. 늙은여우

    라이벌에 역사적 적국이라 인정해서 싫은것 뿐이지, 제 눈엔 일본이 한국보다 낫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일본이 역대 최고의 전력임에는 당연히 동의합니다.
    다만, 이란전의 체력 부담만 없었더라면? 이라는 아쉬움으로 달래봅니다.

    패배보다 견디기 힘든건, 박지성의 은퇴. 그리고 그에 못지 않은 이영표의 은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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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저도 당연히 그런생각이 들죠 ^^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축구에서만큼은 그런 기분이 서서히 사그러들고 있습니다. 괜히 정치적이슈를 스포츠에 들이대지 않으려고 스스로 노력중입니다.

      홍명보의 U20에서 활약했던 좋은 선수들이 많았던 만큼 세대교체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단단했던 왼쪽 풀백을 홍철과 윤석영이 어떻게 메울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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