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포인트는 워드프로세서다

By | 2006-09-29

내가 지금 어느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는지에 관계없이 파워포인트는 워드를 대체하고 있는 중입니다.  경험상으로는 대기업이 이런 경향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마케팅부서, IT부서, 영업부서 할 것 없이 파워포인트는 워드프로세서로 사용되고 있죠.   

파워포인트로 작성하면 프린트물로 나누어주거나 프로젝터를 통해서 프리젠테이션을 할때나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른바 고스톱에서의 ‘일타투피’전술이죠.   이러한 잇점 때문에 파워포인트가 일반적인 문서작성기로 더욱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저의 보고서를 누군가가 화면으로 크게 확대해서 볼 수도 있고 출력해서 기안문서에 첨부할수도 있으며 여차하면 임원들을 모셔놓고 벽면에 크게 확대해서 보여주면서 설명할 수도 있기 때문에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인 비즈니스맨의 전형적인 분석레포트

그래서 기획이나 마케팅 부서에 있는 친구들은 파워포인트를 좀 더 잘하고 싶어하죠.  그들 책상에 가면 엑셀과 파워포인트 참고서적이 한권씩은 꽃혀있는걸 목격하게 됩니다.   그들 역시 스티브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을 구경하거나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이 작성한 프리젠테이션을 보고나면 감탄하게 되고 그렇게 작성해 보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되죠.

그러나 막상 일로 돌아오면 그럴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화려한 색깔을 넣을 시간도 없고 여백의 미를 강조할 수도 없게되죠.  배경에 컬러를 사용하는 것 조차 출력을 고려한다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후우~ 우리가 만들고 싶은 낭만적인 슬라이드 (그림출처 : Presentation Zen)

게다가 내가 작성한 레포트를 가지고 우리사장 앞에서 프리젠테이션 할 수 있는 기회가 꼭 온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보통은 나와 사장 사이에 주욱 늘어선 관리자-임원들이 레포트을 읽는것만으로도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하기 때문에 슬라이드의 내용이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글이 늘어가고 폰트가 작아지기 시작하죠. 

스티브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은 처음부터 청중들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말과 글을 병행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래서 화면엔 핵심적인 단어나 문장만 내보내고 나머지는 잡스의 말과 행동으로 메워지죠.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우리세계와는 동떨어져있다

그래서 일반 비즈니스맨의 프리젠테이션 슬라이드의 작성이 가장 난해한 것 같습니다.  파워포인트를 제 말대로 거의 워드프로세서 수준으로 사용하시는 분들이라면 이제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은 잊어 버리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그걸 포기할 수 없는 분들이라면 출력용/읽기용 레포트와 프리젠테이션 슬라이드를 별도로 만들 각오를 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충분하고 정말 자신이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감시간에 몰려 내용이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 두가지 버전을 모두 만들어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최고경영층을 위한 별도의 축약버전을 만들기도 해야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똑같은 레포트를 3-4개 버전으로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죠.

어쨋거나 결심이 서면 뭔가를 만들기 시작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명암이 엇갈립니다.  처음엔 글자만 빽빽하게 들어선 슬라이드를 발견하게되죠.  자기가 써야할 내용만 몽땅 밀어넣은 후 만족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개념화’, ‘추상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느끼기 시작합니다.

보통 초기버전은 이렇게 구성된다 (그림출처 : Presentation Zen)

실질적으로 프리젠테이션의 내공차이가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이나 뛰어난 아이디어의 소유자들은 슬라이드를 텍스트인채로 그냥 놔두지 않죠.  남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만드는 기술이 이 부분에서 필요합니다.  그냥 썰렁해 보이는 공간을 웬만큼 이쁜 그림으로 생각없이 채우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냅니다.

레포트를 읽는사람이나 청중들은’저 그림이 저기 있는 이유가 뭘까 ?’를 고민하기 시작하고 정작 중요한 내용은 지나치게 됩니다.

적절한 개념화와 그림은 이해력을 높인다 (그림출처 : Presentation Zen)

위와 같이 정말 적당한 그림과 구성으로 이해력을 높이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프리젠테이션이 어려운거겠죠.     그러나 앞서서 말씀드린것 처럼 오늘날 대부분의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의 작성은 레포트와 프리젠테이션, 그리고 화면과 프린트물을 ‘일타투피’로 잡아야 하는 작업이므로 앞으로도 그에 촛점을 맞춰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파워포인트 얘기를 할때는 화려한 화면에 대한 유혹은 잠시 접어두고 앞으로는 단순한 구성, 이해력 등에 무게중심을 실어보도록 하죠.

보시라 이게 오늘날 사무실에서 흔히 작성되는 포맷이 아니던가 ?

※ P.S – 물론 앞으로 Apple의 Keyote얘기를 할때는 파워포인트와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키노트는 레포트로서의 용도보다는  청중을 모아놓고 하는 프리젠테이션에 적합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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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houghts on “파워포인트는 워드프로세서다

  1. 박성용

    저도 파워포인트를 직업상 꽤 많이 쓰는데.. 공감가는 내용이 많더군요 🙂

    그나저나 맥 사용자로서 파워포인트가 키노트와 완벽히 호환이 안 되는게 아쉽지 않나요? 파워포인트로 작업해놓고 작업 환경과 프리젠테이션 환경에 따라 키노트로 금새 호환해서 몇가지 이펙트 주고 프리젠테이션 하면 좋을텐데요 🙂

    P.S. 두번째 사진의 맨트가 인상적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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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사실 전 파워포인트와 키노트의 호환성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습니다. 아니..포기했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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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별바람

    프레젠테이션은 파워포인트가 아니라, 발표자의 “말빨”에서 승부가 난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파워포인트는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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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그런데 그 중요한 프리젠테이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확률이 많은게 문제랍니다 ^^ 산더미같은 레포트들 사이에서 주목받기 위한 “글빨” 역시 필요한 게죠…샐러리맨은 이래저래 괴롭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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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joogunking

    저는 반대로 아래아 한글을 파워포인트로 사용합니다.
    아래아 한글의 강력항 단축키 기반 인터페이스에 너무 길들여져서요.
    아래아 한글에 내장된 프리젠테이션 기능에 간단한 화면 전환 효과를 이용하면 파워포인트인줄 압니다.^^.
    트랜지션이 없는 것만 빼고는 파워포인트 부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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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 그러시군요. 저는 벌써 십수년째 소속회사가 계속 워드를 표준으로 해서 아래아한글 써본기억이 가물가물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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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워낙 사회가 복잡해지고, 여러분야의 전문가가 생겨나면서
    비전문가에게 지식을 보다 빠르게 핵심적으로 이해, 전달시키려는 과정에서 문서의 비쥬얼화가 진행되는 거 같네요.
    그렇지만 우린 너무 텍스트 작성에 익숙해져 있다고 할까요? ^^
    상대방이 내가 작성한 걸 어떻게 받아드릴지를 항상 고민하며 피드백하는게 중요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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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비주얼로 비전문가를 더 쉽게 설득할 수 있다는 말씀은 100% 동감입니다. 피드백 부문도 그렇구요 ^^ 다만 그게 참 어렵죠 ~ 같은 비주얼을 여러사람들이 다르게 해석하지 않도록 명확하게 표현한다는 것이…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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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동주

    안녕하세요. 웹서핑을 하다가 들려서 많은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글이 좋아서 처음부터 정주행?! 하고 있네요. ^^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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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 정주행 계속 하실수 있도록 연장공사중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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