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골 모두에 관여한 파브레가스, 클래스는 영원하다더니 말이다

아스날과 첼시의 빅매치에서 실로 오랜만에 아스날이 3:1로 완승을 거두었다. 경기전까지 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것이 없을까봐 걱정을 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런대로 박진감있는 경기를 펼쳐주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새벽까지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고 해두자) 아스날은 홈팀답게 전반초반부터 첼시를 몰아붙이려고 애를 썼고 요즘 감각이 좋은 나스리가 문전에서 결정적인 칩샷을 날리는데 그걸 체흐가 감각적으로 선방해 내면서 아스날의 초반 공세에 찬물을 끼얹어 버린다. 오른쪽을 지속적으로 공략하던 월콧은 애슐리 콜과의 대결에서 전반적으로 밀리는 듯한 인상을 주었지만 집요한 공략끝에 콜을 따돌리고 문전으로 돌진하는 기회를 잡게 되고 이를 눈치챈 체흐가 미리 나와서 선방하는 바람에 아스날의 전반전 기회는 모두 날아가 버리는듯 했다.

축구는 확실히 흐름의 경기여서 이 시점을 즈음해 첼시가 선취골을 얻어냈다면 아스날로서는 힘이 빠져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첼시의 공격은 무뎠고 아스날은 적극적이고 종적인 움직임을 통해 첼시 문전을 지속적으로 공략하던 중 전반이 끝날무렵 문전혼전에서 송이 왼발 대각선 슈팅으로 첼시의 골문안에 기어이 선취골을 넣어버리고 만다.

당연히 후반전은 과열될 터였다. 첼시는 수비라인을 바짝 끌어올려 아스날의 페싱게임을 차단하는 동시에 빠른 시간안에 동점골을 뽑아내고자 노력했지만 오히려 전혀 안그럴것 같은 에시앙이 미드필드에서 클리어링 미스를 범하면서 그 볼이 그대로 오른쪽으로 쇄도하던 월콧에게 패스가 되어버려 월콧은 무인지경으로 체흐와  1:1을 맞게되고 중앙으로 뛰어들던 파브레가스에게 패스, 추가골을 넣으며 흐름을 완전히 아스날 쪽으로 가져와 버린다.

후반초반부터 공황상태에 직면한 첼시는 추가골을 먹은지 몇분 되지도 않아 또 다시 문전을 유린당하면서 이번엔 월콧에게 세번째 골을 내준다. 오늘 나온 세골 모두에 파브레가스가 관여 했으며 그는 한골과 두개의 어시스트를 올리며 아스날은 대승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이미 공황상태에 빠진 첼시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5:0의 분위기로 경기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흥분한건 아스날도 마찬가지여서 경건하게 분위기를 추스리고 그 순간부터 첼시를 잘근잘근 씹어먹었어야 했는데 분위기가 들뜬 나머지 세트피스 상황에서 이바노비치를 수비들이 노마크로 놓아두며 헤딩골을 허용, 삽시간에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3:0이란 스코어는 거의 대승의 스코어지만 30분이상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추격골을 먹고보니 만약 한골만 더 먹게 된다면 금방이라도 동점이 될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이제 양팀은 각자 교체카드를 꺼내들며 나머지 후반 경기를 챙기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안첼로티는 세골을 먹고나서야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듯한 말루다를 대신해 카쿠타를, 이어서 페레이라를 대신해 오버래핑이 뛰어난 보싱와를 투입했다.  벵거 감독은 15분 정도를 남기고 지키는 전술대신 공격진들을 대거 교체함으로써 여전히 카운터어택을 바라고 있었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듯이 말이다. 일단 내가 생각해도 별로였던 반 페르시를 샤막으로, 많이 뛰어준 월콧을 공수밸런스가 좋은 디아비로 교체한 다음 5분 정도를 남기고 파브레가스를 로시스키로 교체한다.  뭐랄까 공격진이라는 카트리지를 새로 교체한 듯 아스날의 공격은 다시 신선해졌고 첼시는 추가골을 먹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실제로 체흐의 선방이 없었다면 나스리가 또 다시 추가골을 넣을뻔 했었다)

경기는 그대로 3:1로 끝났고 아스날은 첼시에게 거의 2년만에 승리를 거두었다.


그래 이때는 진짜 쩔었었지..베르캄프+앙리 조합에 비에이라..후훗

그런데 양팀 경기를 보면서 내내 가슴 한구석이 휑~ 했었던 것은 양팀 모두의 전력이 에전만 못해서 인것 같다. 특히 최근의 아스날은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파브레가스야 이미 클래스에 올라섰지만 아직도 사냐-클리시는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 비해 크게 성장한 것 으로 느껴지지않는다. 클리시는 맨유전때 하도 당해서 이날 경기에서는 정말 이를 악물고 뛰더라. 그래도 이 친구는 사냐와 함께 이때쯤이면 뭔가 쩌는 모습으로 성장했어야 했는데 작년 바르셀로나에게 관광을 당하던 당시 오른쪽의 알베스와 비교를 해보니 정상급 윙백이라기엔 아직 한칼이 부족한 감이 있었다.  오늘 상대했던 아스날의 배신자(!) 애슐리 콜과 비교해서도 역시 그렇다.

중앙에 서있는 파브레가스도 웬지 휑~해 보였다. 흘렙-피레스가 공격을 보좌하는 시대엔 정말 악~! 소리가 날만큼 멋진 패스와 돌파가 한경기에서 몇장면씩은 연출되었던 것 같은데 오늘 파브레가스 바로 뒤에 위치한 윌셔는 아직 아스날의 클래스에 미치지 못하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사실 윌셔의 스타일은 작년 볼튼때도 마음에 안들었는데 오늘 첼시전에서도 아스날 답지 못한 패스를 뿌리는 것을 보고 경기내내 한숨을 내쉬었다. (벵거가 계속 중용하는 이유를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오늘 경기에서는 그나마 아르샤빈-로시스키와 같은 해결사들이 선발출장하지 않아 더 파브레가스가 외롭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대신 좌우에 포진한 나스리와 월콧은 나쁘지는 않았으나 아직 선배들이 보여준 존재감에 미치려면 그들 역시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베르캄프와 앙리가 빠져나간 자리는 아데바요르 – 벤트너로 이어져 왔지만 벤트너 이 친구는 선배들에 비해 확실히 떨어짐에도 불구, 그 표정만큼은 벌써 베르캄프나 앙리의 약간은 건방진 것을 닮아 있어 (못된건 먼저 배워가지고) 역시 못마땅한데다 그나마 요즘은 스트라이커 자리를 (역시 못마땅한) 반 페르시가 계속 메우고 있다는 점도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반 페르시 이 친구는 스트라이커 바로 뒤쪽에서 날카로운 비수를 숨기고 달려드는 성향이 어울리는 친구라 지금의 스트라이커 자리가 더 어색하다.

중앙수비진과 미드필더들은 더 아쉬운 부분이고 말이다..더 말해서 무엇하랴.. 이런 아스날일진데 첼시를 꺾고 리그2위를 유지하는게 좀 신기하다. 사실 아스날을 보면서 들었던 오늘의 생각(옛생각에 약간은 서글픈 ..)은 첼시나 맨유를 보면서도 똑같이 느끼는 것이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오늘의 첼시를 보라. 무링요 시대의 그 숨막히게 상대를 압박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 어떤 팀을 상대하던 세골을 허용한다는 것은 첼시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요즘 첼시가 세골 허용하는 것은 일상 다반사가 되어 버린듯 하다.

맨유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계속 스콜스, 네빌, 긱스의 잔상이 스쳐지나간다. 어뢰와 같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오버래핑에 가담하는 네빌에게 나가는 스콜스의 패스와 그것을 그대로 빨랫줄같은 크로스로 연결하던 네빌의 모습은 안데르송-하파엘로 대체하기엔 아직 무리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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