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미국 드라마 덱스터의 열렬한 팬이다. 이 드라마는 한 시즌당 12편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현재는 시즌 5가 한창 진행중인데 한 편을 보고나면 일주일을 기다리는 것이 정말 고역일 만큼 중독성이 있다. 보통 드라마들은 두가지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가 한 시즌을 통틀어 계속 이어지는 경우와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사건이 완결되는 경우이다. 덱스터는 전자에 속하고 예전에 유행했던 ‘프렌즈’의 경우는 후자에 속한다고 하겠다.  덱스터와 같은 형식을 지닌 드라마들은 그래서 항상 도입부에 지금까지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보여준다.  ‘아 맞다 지난주 이야기가 저기까지 였지’ 하고 시청자들을 리마인드 시킨 후 곧바로 이야기의 중심부로 뛰어든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보고서와 프레젠테이션이 ‘프렌즈’와 같이 단발적으로 깔끔하게 끝나는 일은 거의 없다. 수년전 나는 ‘인터넷 전화’에 대한 과제를 받아들고 결코 한번에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였다. 예상대로 전체 통신 시스템을 인터넷 전화로 대체하자는 보고서는 지루하게 이어져 거의 2년 정도를 끌게 되었고 나는 초반부터 장기전에 대비하여 한꺼번에 모든 일을 해결하기 보다는 작은것 부터 하나하나 풀어 나가고자 했다. 그 2년동안 짧게는 2개월, 길게는 3-4개월 마다 나는 보고서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 것 같다. 매번 그렇듯 매 프레젠테이션 때마다 참석자가 약간씩 바뀌었고  수 개월전 결정된 사안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참석자도 있었다. 아마 이런 상황은 누구에게나 익숙할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드라마 앞부분에서 항상 보여주는 ‘지금까지의 줄거리’이고 이것은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 보고서에서도 필수적이다.   오늘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경과 요약’에 대한 것으로 작성방법과 포함되어야 할 내용 등 지금까지의 내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목적 : 참석자들의 출발선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청중의 출발선을 맞춰라 (From GettyImages)

만약 지금까지 같은 주제에 대해 네번 정도의 보고회를 가졌다고 했을 때 참석자들이 매번 같은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떤 참석자는 네번 모두 참석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이번이 처음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들 각각이 가진 주제에 대한 이해도는 서로 다르며 이는 같은 100미터 경기를 하면서도 각자 다른 출발선에 늘어선 선수들과 같다. 어떤 선수는 120미터 지점에서 출발하고 어떤 선수는 50미터 지점에서 출발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누구는 이해하고 누구는 이해못하는 상황이 연출되어 내가 바라지 않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따라서 ‘경과 요약’은 참석자들의 출발선을 모두 같은 곳으로 맞추는 역할을 해야한다.


짧게하라

50분짜리 드라마 서두에 나오는 ‘지난 줄거리’는 대부분 1분 정도로 전체 길이의 1/50정도에 불과하다. 나 역시 ‘경과 요약’은 특별히 설명이 어렵지 않은 이상 단 한장의 슬라이드로 끝내려 노력한다. 짧게 설명하고 청중들이 이해하였는지 잠시 체크하면서 지난 보고에 대한 간략한 질문을 받는 것도 좋다. 그리고 난뒤 곧바로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계속 진행하라. 매번 서론-본론-결론의 양식을 갖출 필요가 없으며 이런 모양새를 갖추다보면 정작 말하려고 하는 내용에서 시간의 압박을 받게된다. 그러니 ‘경과 요약’은 때로는 ‘서론’을 대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경과보고’와 혼동하지 마라

기업이나 단체의 보고서 형태중 경과보고라는 것이 있다. 이는 프레젠테이션 주제 자체가 장시간 지속되는 어떤 일에 대한 변화를 관측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과보고는 내용전체가 일정 기간내에 일어난 예상되지 않은 상태변화와 그에 대한 대책으로 채워진다. 우리의 ‘경과 요약’은 새로운 허들을 넘기 위해 지금까지 넘어온 허들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 차이점을 이해하겠는가

경과 요약에 들어갈 수 있는 내용은 아래와 같이 다양하다. 이들 모두가 삽입될 수 있겠고 이들 중 몇 가지만 들어갈 수도 있다.

  • Time Line : 아마 경과요약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요소같다. 전체 일의 시작시점과 예상되는 종료시점, 그리고 오늘 하고있는 프레젠테이션의 위치, 전체 회수 등을 알 수 있다.
  • 결정된 사안과 그렇지 못한 사안 : 일단 지금까지 발표되고 결정된 내용을 짧막하게 요약하는 것이 필요하며 결정된 사안이 있으면 어떻게 결정이 되었는지 그렇지 못했다면 왜 그랬는지를 언급해야 한다
  • 오늘 결정하고자 하는 사안 : 경과요약은 오늘 내가 발표하고자 하는 내용을 잠깐 언급할 수 있다. 이전에 발표한 것과 전체의 맥락을 이어놓고 본다면 오늘 발표의 의의를 찾을 수 있게 한다
  • 변화된 내용 : 이 또한 중요한 내용이다. 만약 지난 의사결정이후 변화되거나 번복해야할 것이 있으면 여기에 꺼내 놓아야 한다.

자 아래 슬라이드가 전형적인 경과요약 형태이다.

경과요약 슬라이드는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하기전의 이정표나 지도와 같다. 우리는 여행을 시작하기전 습관적으로 국립공원 입구나 중간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지도를 보면서 내가 가야할 길과 지나온 길을 잠시 음미해 보곤 한다. 이 슬라이드는 그런 용도로 쓰기 위한 것이다.  또한 처음에 언급했듯이 청중들의 출발선을 가리전히 정렬하는 역할도 한다.  이 슬라이드는 단 한장 뿐이지만 정말 많은 내용이 들어있어서 만약 프레젠테이션을 한다면 가장 오래 설명해야할 슬라이드 중 하나이다.

경과요약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술은 역시 지금까지의 내용들을 짧게 요약하는 기술이다. 지난 연재를 통해 설명한바 있듯 이 요약의 내용엔 결정된 사항과 그 이유, 이유를 뒷받침 하는 증거들까지 제시되어야 한다. 이렇게 짧게 요약하는 기술을 가장 잘 구사하는 사람들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나 제작자, 기획자이다. 이들은 영화 제작자들이 하루에 수십, 수백편의 영화가 될만한 소재들을 검토할 때 그들만의 형식으로 영화의 시놉시스를 짧게 말한다. 제작자는 그 짧은 시놉시스를 듣고 그 영화가 어떻게 그려질지 상상을 한다음 더 자세한 얘기를 들을지 다음 시놉시스로 넘어갈지 판단한다.

예를들어 영화 ‘대부’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마이클은 가족이 하던 마피아 비즈니스를 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아버지 돈 꼴레오네가 총에 맞자 가족을 위해 솔로쪼와 맥컬스키 경감을 죽이고 그 일을 떠맡음과 동시에, 경쟁관계에 있던 모든 마피아를 죽인 뒤 미국 마피아의 최고자리에 오르면서 새로운 대부가 된다. 그리고 그는 자기 가족 내부에 있는 적들을 모두 죽인다. 그는 대부로서 자신의 운명을 따르기로 한다. (마이클 티어노의 스토리텔링의 비밀 중에서)

스토리텔링의 비밀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상영시간이 네시간이나 달하는 대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이렇게 간단하며 이런 형식이 그들 사이에서 통용된다. 이에 대해 더 관심이 있다면 마이클 티어노의 ‘스토리텔링의 비밀 –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를(아우라, 2002, 옮긴이 김윤철) 한번 읽길 권한다. 이 책은 영화의 교양서 같지만 다 읽고나면 프레젠테이션을 구성하는데 정확히 들어맞는 다는 사실을 알게될 것이다.

이 책은 매우 특이하다. 지은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으로 오늘날의 영화를 설명하는데 수천년전 철학자의 관점과 해석이 오늘날에도 정확히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가지 사례와 증거를 제시하며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이 흥미 있는 것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플롯’을 주로 다룬다는 점이다. 어느 프레젠테이션 참고서도 전체 이야기의 뼈대를 잡는 ‘플롯’에 대한 얘기를 다루지 못한다. 그 주제는 프레젠테이션이란 범주를 뛰어넘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는 매우 취약하며 이런 취약점은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영화와 같은 분야에서 배워야 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이 책의 머리말에서 ‘요약’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나면 프레젠테이션의 스토리텔링에 대한 책이 아닌가 할 정도로 직접적으로 배울점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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