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 on Arrival

By | 2010/10/20

Dead on Arrival(DOA) : (보통은 의학용어) 환자가 병원에 도착했지만 이미 손쓸 틈 없이 사망한 상태.

오늘 새로운 영어 표현을 하나 배웠습니다. 그냥 영어책에서 배우는게 아니라 실제 사례를 통해 배운것이니 영어단어 외울때 처럼 까먹을 일은 없을것 같습니다. (참고로 전 학창시절 언제나 영어가 문제였습니다 -.-;;)  오늘 스티브 잡스가 2010년 4사분기 회계년도 실적발표에 따른 컨퍼런스 콜에 이례적으로 직접 등장했습니다. (미국의 회계년도는 보통 10~12월이 1사분기)  그리고 그 자리에서 ‘Dead on Arrival’, 일명 ‘DOA’라는 강도 높은 (제 생각엔 최고수위..) 표현을 써가며 안드로이드 진영의 7인치 타블렛에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전 사실 DOA라는 표현은 Dead or Alive(게임이죠 -.-), ‘도착시 사망?’  정도로 밖에 해석하지 못합니다만 사전을 찾아보니 그것이 ‘넌 이미 죽었다’란 뜻이더군요.  단순하게 오늘 발표한 실적에 대한 숫자를 이전의 실적과 비교하여 늘어놓고 보면 애플에게는 참으로 경사스럽고도 의기양양해야 할 날이었죠. 아이팟의 판매가 감소한 것을 제외하고는 맥과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의 네가지 상품 카테고리중 3개 부문에서 기록적인 실적을 올린 날이었거든요.

아이팟도 어차피 감소곡선 (최근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였음)이 예상된데다 세계적으로 이 부분이 스마트폰 등으로 대체되는 추세이고 애플은 여전히 70%이상의 점유율을 올리고 있으니, 애플로서는 못한게 전혀 없는 날이었습니다.  모든 판매기록을 오늘 갈아치워 버렸으니까 말이죠.

맥의 판매는 컴퓨터 업계의 평균 성장률의 두배를 기록했고 아이폰은 무려 1,410만대나 판매되어 드디어 RIM을 추월했으며 올 4월에 발표한 아이패드 역시  전분기인 327만대보다 28%나 성장한 420만대를 팔아치우면서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실적발표직전까지 애플의 주식은 10%가까이 올랐지만 발표직후엔 5%가 다시 하락했고 표면적인 이유는 아이패드의 실적이 예상(480만대)보다 못하다는 것이었죠. 그러나 뭐 주식시장은 항상 한걸음 일찍 움직여서 올랐다가 빠지는 것이니 제가 CEO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그저 무덤덤하게 반응했을 터였습니다.

이런날에도 경쟁자들에게 악담을 퍼붓는 것을 보니 과연 잡스답다란 생각이 듭니다. 그는 컨퍼런스콜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사분오열된(Fragmented) 체계라고 비꼬면서 7인치 안드로이드 타블렛은 ‘나오기도 전에 이미 죽어버린’기기라고 맹렬하게 공격을 했습니다. 이런면에서 보면 10: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도 주자가 나가면 번트를 대는 야구감독 같아 보입니다. 그저 승부에서 이기는 것만으로는 모자라고 모든면에서 완벽하게 상대방을 밟아 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감독말입니다.  게다가 잡스는 자신이 이미 뱉은 말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절대 인정을 하지 않는 타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잡스의 발언을 두고 ‘애플에서 7인치가 나올 일은 없다’라고 단정지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루머에 따르면 애플 역시 7인치를 준비한다고 알려졌었는데 이제 그 기대를 접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단기적으로 보면 7인치라는 단어는 확실히 잡스의 ‘관심법’에 걸려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잡스가 가진 또다른 면은 ‘뻔뻔함’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할 듯 합니다. 아마 잡스는 오늘 자신이 7인치에 대해 퍼부은 악담을 모두 제쳐두고  또 다른 키노트에서 7인치 아이패드를 자랑스럽게 꺼내놓으며 천연덕스럽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7인치는 다른 것과 비교조차 안된다’며 설명에 열을 올릴 그런 사람입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책인 iCon을 읽다보면 잡스의 성격이 드러나는 일화가 하나 등장합니다. 애플 초기 시절에 그의 회사는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임대(보통 원격으로 사용)하여 사용하고 있었는데 사용료를 수개월이나 내지 못하자 컴퓨터 회사에서 서비스를 중단시켰답니다. 잡스는 그 회사로 찾아가 오늘 사용료를 모두 지불할테니 다시 서비스를 재개하라고  큰소리를 친다음 회사로 돌아와 직원들에게 컴퓨터에 접속해서 모든 자료를 로컬로 백업을 받은다음 결국 그 사용료는 떼어먹었다고 합니다. (참 대단하죠 -.-)

그런 잡스이니 그는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천연덕스럽게 다시 나타날 것이고 우리는 또 허를 찔리게 되겠죠. 그러나 단기적으로 보면  ’7인치’, ‘안드로이드’, ‘넷북’, ‘플래시’ 등 몇몇 단어는 확실히 잡스의 ‘관심법 리스트’에 올라있는 것으로 보이고 당사자들은 맹렬하게 공격당할 것입니다. 1997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의 잡스는 ‘완벽주의’와 ‘공상을 현실화하는 능력’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분명 기기들은 혁신적이었지만 현실감각은 떨어졌죠. 1997년 이후의 잡스는 여기에 ‘현실감각’을 더하고 다시 나타났습니다.  기존의 두가지 능력은 그대로였지만 ‘현실감각’이 무리한 진행을 제어하게 되었고 그의 공상은 값비싼 꿈의 기계대신 딱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점 근처 정도에서 지름신을 몰고 왔죠.

그는 경쟁자들과 언론 그리고 일반인과 고객에 까지 많은 비판을 받아왔지만 그로 인해 산업전체에게 자극을 주고 최신기술이 빠르게 보편화 되는데에 대한 공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스티브 잡스가 거액의 연봉으로 저와 함께 일하자고 한다면 (그럴리도 없겠지만) 저는 아마도 정중히 사양할 겁니다. 저에게 백만불의 연봉을 주면 그는 천만불어치를 저에게서 뽑아낼 것이란 걸 아니까요. (아마도 같이 일하면서 애플에 대한 환상도 산산조각이 날겁니다 ^^)

저는 당장 잡스가 7인치 아이패드를 키노트에 들고 나타나도 절대 놀라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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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의견

7 thoughts on “Dead on Arrival

  1. 성창현

    ㅎㅎ 재미있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잡스는 어떻게 해야 사람의 능력을 1000%까지 발휘하게 만들 수 있는지 아는 것 같습니다. 그저 좋은 사람인 것 이상의 많은 것들이 필요한 일이겠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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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그나저나 애플의 이벤트가 오늘밤이로군요~ 정말 어떤 것이 발표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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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창현

        ㅎㅎ 그러게요, 어떻게 감상하실 계획인가요? 이번에도 지난번 뮤직이벤트처럼 애플 홈페이지에서 중계해주나요?

      2. demitrio Post author

        넵, 애플에서 중계해줍니다. 지난번과 같이 말이죠. 사파리5가 아니면 보기 힘들겠군요. 이것도 몇시간전에 결정난듯 합니다.

      3. 성창현

        아~ 홈페이지 들어가보니 떳네요 ㅎㅎ 기대됩니다

  2. 빈이아빠

    제가 보기에도 분열된 안드로이드에서 나온 7인치는 죽었다로 보입니다.

    오늘 뉴스에도 또 7인치를 주제로 갤러크? 탭을 경쟁자로 삼성의 PT를 열심히 보여주더군요.
    나오지도 않은 iPad 7인치를 가지고 경쟁구도를 만들어 놓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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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사실 제 개인적인 취향에도 7인치는 좀 어정쩡합니다. 10인치보다 휴대성이 좋아 주머니에도 들어간다고 하는데..ㅎㅎ 그건 저로서는 좀 넌센스입니다. 어쩔땐 아이폰도 주머니를 쳐지게 하는데 말이죠.
      저는 항상 가방을 들고다니는 스타일이라 10인치 크기와 넷북의 잘반 무게 정도면 딱입니다. 오히려 지금보다 약간 더 커도 상관없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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