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도 여전히 카세트테잎과 워크맨이 제가 음악을 든는 주요 수단이었습니다. 전 버스에 오래 앉아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건 순전히 창밖을 내다보면서 이어폰을 통해 직접 녹음한 음악을 더 오래 들을 수 있어서였죠. 학생이라 돈이 궁했기에 음악은 라디오를 통해 녹음해서 들었고 그렇게 녹음된 수십개의 테이프를 더블데크 카세트를 통해 절묘하게 편집하는 것이 저의 주특기였습니다.  황인용의 영팝스와 이종환의 밤이 디스크쇼,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단골 프로였죠. 아마 그 당시엔 초저녁부터 새벽 2시까지는 줄구장창 음악프로로 달렸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제일 즐겨 듣는 테이프는 Yes의 Machine Messiah가 녹음된 테이프 였습니다. 정말 닳도록 들었죠.

보통 음악프로에서 녹음을 할 때는 옆에 메모지도 둡니다. 노래 이름을 적어두기 위해서였죠. (아주 치밀 했었죠) DJ가 말하는걸 그대로 따라적어야 하니 가끔 영어 철자를 모르겠거나 급할때는 한글로 소리나는대로 적어버리기도 하죠. 황인용의 영팝스에서 처음 들었던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도 저는 ‘마스터 오브 퍼펙트’라고 따라 적었고 다른 친구들은 그게 노래가 아닌 그룹이름이라고 우겨서 며칠동안 계속 언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Jean Luc Ponty

 

가끔 녹음버튼을 누르는데 정신이 팔려 곡명을 미처 적어두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그런 노래들은 한참동안 누가불렀는지, 곡명이 뭔지도 모르다가 한참 후에야 밝혀내곤 했었죠. 그런데 거의 끝까지 밝혀내지 못한 곡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 테이프에 들어있었습니다. 20년이 넘도록 어떤 곡인지 밝혀 내지 못했던 단 하나의 곡.  정말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죠. 하도 듣다보니 그 멜로디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외울 정도였습니다. 그 곡의 단서는 딱 하나, 전자 바이올린 이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있지 않았기에 더 밝혀내기가 힘들었죠.  좀 바보같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지난 20년 동안 저는 생각이 날 때마다 계속 음반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다행히 최근 몇년부터는 온라인으로 거의 모든 곡들을 30초~1분가량 들어볼 수 있어서 전자 바이올린 연주자…라는 딱지만 붙어있으면 모조리 들어보곤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었죠.

허~ 그런데 그 미스테리가 바로 오늘 풀려버린 겁니다. 우연히 인터넷을 지나치다 쟝 룩 폰티(Jean Luc Ponty)가 바이올린을 들고있는  사진을 보게되었고 저는 즉각적으로 이 인물이 그 미스테리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닌지 확인을 하기 위해 아이튠즈 뮤직스토어에 들어가서 모든 샘플곡들을 하나하나 듣기 시작했죠. 모두 27장의 앨범이 있었습니다. 두장 정도의 앨범을 들어보고 감이 왔죠. 제가 기억하는 그 바이올린 소리의 DNA와 일치했거든요.

 

The Gift of Time : 1987

 

그러나 어이없게도 스물일곱장의 앨범중 스물 다섯장을 들었는데도 제가 찾는 그 곡이 없더란 겁니다. 참으로 기가 막혔죠. 그렇지만 이제 두장이 남았으니 마저 들어보기로 했죠. 오~! 제가 찾는 곡이 마지막으로 살펴본 앨범에 있더군요. 20년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앨범은 국내 어느곳에서도 팔지 않길래 아이튠즈 뮤직스토어를 통해 구입했습니다. 1987년 발표된 The Gift of Time이라는 앨범의 동명 타이틀 곡이었는데 타이틀 곡이면서 하필이면 맨 마지막에 포진되어 있더군요. 정말 극적이죠. 제가 찾던 곡이 27장의 앨범중 27번째 앨범의 맨 끝곡에 있다니 말입니다.

그 동안 에디 잡슨을 비롯해 바이올린을 켠다 하는 락음악계의 연주자들을 뒤지고 다녔는데 쟝 룩 폰티를 그동안 빼먹고 있었다니 매우 억울한 생각까지 듭니다. 그래도 찾았으니 다행이죠. 어떤 곡인지 직접 들어보시죠 ^^

마치 돌림노래를 부르듯,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동심원 모양으로 겹겹이 퍼져나가는 듯한 느낌의 바이올린의 선율이 매우 몽환적으로 흐릅니다. 앙칼지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부드럽게 담을 넘는 듯한 선율이죠. 정말 여유가 넘치는 연주자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유려하게 흐르는 선율을 마지막엔 아주 깔끔하게 접어 넣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쟝 룩 폰티는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의 일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맙소사~ 존 매클러플린과 대니 고틀립(펫 메스니 그룹에 있던) 빌 에반스, 빌리 코햄, 얀 해머 등이 재적했던 바로 그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 말이죠.  전 그동안 커브드에어 등과 같은 락그룹들만 계속 뒤지고 다녔으니 발견을 못했던 것이 당연했죠.  어쨋든 오랜 숙제 한가지가 해결되었군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P.S – 시간이 되시면 화면 오른쪽 상단의 쟝 룩 폰티 사진을 클릭하셔서 바이올린과 관련된 포스트도 한번 구경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바이올린 연주도 들어보시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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