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By | 2010-10-05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역사책을 좋아했다. 우리의 역사건 남의 역사건 ‘예전에 그런일이 일어났었구나’하고 사실들을 알아가는게 재미 있었고 역사적 사실에 대해 굉장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렸을 때 책으로 처음 접하는 역사의 위인들은 보통 그 책의 내용으로 머리속에 각인되게 되어있다. 그 때는 책이 틀리다고 의심해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걸 소화해 내면서 그저 그것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허~ 그런데 나이가 한두살 먹게되자 변화가 일어났다. 정권이 바뀌고, 세계적인 정세가 요동치고 할 때마다 예전에 내가 읽었던 그 위인들에 대한 다른 평가가 들리는 것이었다. 나의 내부기관들은 그 색다른 평가에 대해 자동적으로 강하게 반발했다. 내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을 지키려고 하는 자연적인 반발심 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다)

이상했다. 이미 오래전에 일어난 사건과 그에 대한 평가는 이미 석고처럼 단단하게 굳어진 사실일텐데 어떻게 그게 지금에 와서 틀려질 수가 있단 말인가 ?  멍청했던건 ‘뭔가 이상하다’라고 느낀 시점이 이미 다 커버리고 난 후 였다는 것이다. 아마 대학을 다닐때 그런 혼란스러움을 처음으로 마주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 보통 ‘속아왔다’고 느낀 주변 친구들의 반항심은 상당했다. 그들은 이전까지 자기 머리에 깊숙히 박혀있던 것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다시금 새로운 것으로 채워넣었는데 신기하게도 새롭게 채워진 그들이 진리라고 믿는 것들은 그 이전것들보다 더욱 단단히 머리에 박혀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르고 나자 대학때 새롭게 머리속에 ‘진리’라고 박아 넣은 것들이 또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현재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사실 그게 정상이었다. 그럼 진실은 무엇인가 ? 그리고 그건 누가 나한테 가르쳐 줄 것인가 ? 도대체 언제까지 남들이 진실이라고 하는 사실로 내 머리를 반복적으로 새단장을 해야 끝난단 말인가 ? 그 즈음 내 머리속의 나는 스스로에게 “스스로 판단해 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해왔다.

아~ 내 스스로 말이지?

그건 너무 귀찮고 거추장 스러운 일인데?

그냥 누군가 정리해서 나에게 알려주면 살기 편할텐데 말이지 …

그러나 그로부터 또 몇 년이 흐르자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멍청이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그렇다. 생각하지 않고 남들이 던져주는 정보만으로 반응하는 것이 바로 역사책이 말하는 ‘우매한 대중’이 아니던가. 내 스스로 정의하기를 자신이 지키기 원하는 진실을 절대로 떼어내지 못하게 심장에 못박아 놓은 사람들을 가리켜 ‘원리주의자’ 라고했다.

우리가 텔레비젼에서 보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만이 원리주의자 일까 ?  글쎄… 내 스스로 정의내린 대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심장에 이미 못박힌대로 움직이면서 자신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 반대하는 사람들을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두 원리주의자들 같다.   원리주의자들은 뒤에서 조종하기 쉽다. 그래 그건 많은 역사책에서도 나왔지.

보통 사회의 권력을 움켜쥔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려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한다. 소수의 그들은 보통 그럴듯 하게 보이는 명분을 깃발로 내걸고 원리주의자들을 모집한다. 그게 사회의 통념이 되는 것이고 그건 기차길과 같이 내 인생의 앞에 미리 정해져서  주욱 깔리게 된다.   후~ 보통 그 정해진 통념에 의문을 품고 잠시 옆길에 나가서 좀 생각해 볼라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하하~ 우습게도 누군가 그런짓을 하면 ‘탈선’이라고 부른다. 기차길을 벗어났으니 탈선이라고 하는 것이겠지.

그걸 느낀 후 또 몇 년이 지나자 원리주의자는 통념을 만들어내는 소수의 사회권력자와 추종세력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 그에 도전해서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도 그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헤깔리는 것은 그들이 진정 자유롭게 생각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있어서 그들 역시 진취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사회문제에 있어 나와 같이 그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많은 대중들은 진실에 접근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 사회현상에 대해 판단을 하려면 많은 정보를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어느편에서 흘러나왔든 그 정보는 날것이 아니라 가공된 것이기 때문에 그걸로 진실을 파악한다는 것은 섣부른 판단을 자초하는 길일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에 정보가 넘친다. 스스로 모든 것을 종합해 판단해 보려고 하는 시도나 사실을 검증하기 위한 의심은 또 한걸음의 발전을 위해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얻어낸 정보들을 종합하여 ‘진실’을 말하는 것은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통해 또 한 무리의 원리주의자들이 탄생할 위험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한 지는 사실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으로 통해서 내 스스로가 구축해 놓은 구조는 이렇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보자. GPS가 내 위치를 계산해 내기 위해 여러개의 위성좌표를 이용하듯 나 역시 다양한 정보를 통해 입체적으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하자. 그러나 내가 내린 결론은 답이 아니라 ‘해’이며 그것은 가설이고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이다.

이런 구조가 점차 확립되면서 나는 생각을 내놓는데 인색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견’을 전제로 하거나 ‘가능성’이라고 얘기하였지만 얘기가 전달될 수록 그것을 ‘확정된 것’으로 믿는 사람들과 그걸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몇 번의 수난을 겪게되자 스스로 안되겠다고 판단한 결과다.

사실 이번 토요일 영남대학교에서 강의가 있다. 이번 강의는 실습까지 포함한 거라서 간단한 프레젠테이션 작성을 위해  뭔가 대중적인 주제를 가지고 그에 대해 스스로의 판단력을 슬라이드로 옮기는 과정을 강의하려고 하다가 은근 슬쩍 요즘 유행하는 사회 이슈들을 주제로 사용할 까 하는 유혹을 받게 되었다가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참고적으로 난 내 강의에서 정치, 종교문제 등 서로의 입장이 판이하게 다를 수 있는 문제들은 절대 다루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하였다. 그리고 수강생들에게 내 생각을 은근히 주입하는 것도 싫고 해서 말이다)

큰일이다…이거 강의는 토요일인데 아직도 주제를 정하지 못하고 며칠째 서성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 답글로 간단한 프레젠테이션 실습 주제 아이디어를 귀띔해주면 정말 좋을텐데 말이다…

P.S – 다 쓰고 보니 포스트 제목이 다소 선정적이다. 하지만 정확한 표현이긴 하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다만 그걸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물론… 저게 모든 사람을 의심한다거나 하는 말은 아니다. 역사로 남을 수 있는 그런 사회현상이나 일을 하면서 내가 판단해야 할 것들… 그런 것 들에 한해서이다. 나는 사실 너무 사람을 잘 믿어서 탈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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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oughts on “난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1. se jong

    “주제: iPhone 4를 살 것인가, 갤럭시 S를 살 것인가?” 어떨까요?

    요즘 각 개인의 판단력을 흐리게하는 주범 중의 하나가, 사이비언론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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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감사합니다~ 이것도 좋은 주제가 될 수 있겠군요. 근데 IT분야나 스마트폰과는 좀 거리가 있는 분들이 대상이라 살짝 고민되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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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빈이아빠

    위 삽화가 십수년 전에 읽었던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의 삽화와 닮았다?라고 느낀 것은!

    뜬금없이 시리즈로 나온 책을 2권인가 읽고 마지막 한권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거의 한달에 한번씩 서점에 들러 확인하고 완결을 본 추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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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정확합니다. 죠반니노 과레스끼가 그린 바로 그 삽화입니다. 언젠가 이에 대해서 글을 대대적으로 쓸날이 올겁니다 ㅎㅎ 저 그림들도 어렵게 구했죠. 이태리 사이트를 뒤져서 구할 수 있는건 모조리 구해놓고 사용중입니다. 수필같은 포스트에 지속적으로 사용해 왔는데 알아보시고 댓글을 달아주신건 처음이로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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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isner

    쭉 눈팅하다 도움이 되실까 하여 처음 댓글을 써 봅니다.

    ‘IT 기술의 발전이 사람들을 정말로 행복하게 하는가?’ 라는 주제는 어떨까요?

    가카께서도 집권 초 IT 기술이 고용창출에 도움이 안된다는 얘기도 하셨던데, 진실 여부를 밝히는 것도 관심을 모을 만 하고, 기술 발전의 방향에 대한 환기를 일으키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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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Post author

      제안 감사합니다 ^^
      이걸 주제로 내주면 의견들이 정말 분분한 모습이 눈에 선하군요…강사로선 그게 좋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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