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냄비…나의 월드컵 이야기

By | 2006-05-18

월드컵을 한달여 앞두고 있는 지금..  저는 또다시 맞이하는 월드컵에 흥분을 하고있지만 그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가 못마땅한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게 뭔지 모르겠군요  흥을 깨기는 싫지만 냄비같이 들끓는 그 무언가가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축구관전의 시작…

1982년 스페인 월드컵을 보면서 어렸지만 스포츠의 흥분을 느꼈습니다.

그 당시 이탈리아의 파올로 로시와 마라도나, 루메니게는 정말 영웅이라 불릴만 했습니다.  이듬해에 박종환 감독이 전 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죠.  아직도 기억나는 신연호, 김종부, 김종건 등등의 이름은 지금들어도 짜릿합니다.   MBC에서 심야에 서독 분데스리가 경기를 간간히 보여줬었는데 함부르크SV와 보루시아MG의 짜릿했던 승부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차범근의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던 터닝슛 장면도 아직 기억속에 있습니다.   축구가 저에게 문제가 된 것은 박통시절의 ‘박스컵’축구 중계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쳐다보지도 않는 말레이시아와의 경기가 항상 하일라이트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버지가 하도 흥분하면서 밥상도 멀리하시고 보시는 통에 언제부터인가 저도 축구중계에 물들어 버렸습니다.

그때가 초등학생-중학생 시절이었기 때문에 늦게까지 TV를 본다는 것은 ‘죄악’이었죠.  한번은 분데스리가 경기를 보기위해 몰래 거실로 나와서 텔레비젼을 담요로 덮어씌운다음 그 안으로 들어가서 모기소리만큼 볼륨을 줄여놓고 경기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경기가 함부르크와 보루시아의 경기였는데  썰물과 밀물처럼 번갈아 주고받는 양팀의 박진감 넘치는 공방전에 완전히 넋이나가 그 담요안으로 아버지가 들어오는것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 경기가 너무 재미있던 턱에 저는 혼나는 대신 담요을 벗기고 아버지와 끝까지 탄성을 지르면서 경기를 봤었습니다.

터닝포인트

1983년이 저는 한국 축구의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지옥에서 온 외인부대와 같았던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 대표팀이 4강까지 진출한 것이었죠.   지난 수년간 한국 대표팀의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보아왔기 때문에 저로서도 정말 믿겨지지 않는 경악스러움이었습니다.   비록 첫 경기에서 스코틀랜드에 완패했지만 두번째 호주전부터는 당시 청소년대표팀의 트레이드마크인 ‘숏패스’가 살아나면서 완전히 경기의 주도권을 잡아가기 시작했었습니다.

우리팀 선수들이 미드필드에서의 패싱게임으로 상대방 수비를 유린하고 좌우에서 빠르게 침투하는 공격수가 수비수 뒷공간으로 낮게 크로싱하는 것을 신연호같은 선수가 날카롭게 잘라먹는 광경은 요즘의 대표팀에서도 볼 수 없는 패턴이었습니다.   준결승 브라질전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통렬한 선제골을 먹이는 광경을 보고 저는 정말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축구를 보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시는 분들을 이해하겠더군요

그 후로 박종환 감독이 성인 대표팀까지를 맡게 되고 국내 축구계가 서서히 승리하는 것에 중독이 되면서 결국 1986년 멕시코 월드컵 티켓까지를 손에 넣게 됩니다.   저야 당연히 기절할 듯이 좋아했습니다.   차범근이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에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행운이었고 최순호와  김종부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무대였죠.     월드컵 티켓을 따냈던 장면도 극적이었습니다.  그 지긋지긋한 말레이시아와의 수중전 패배에 이어서 잠실의 복수전끝에 따낸 것이었죠.

32년만의 출전에서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와 전대회 우승국 이탈리아를 만난건 최악의 조편성이었지만 저는 뭐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결과 역시 저에게는 흡족했습니다.

성장가도를 달리다

1990년 월드컵은 제 일생일대의 패착이었습니다.  바로 월드컵 기간이 훈련소에 있는 기간이었기 때문이었죠.   저는 소집영장을 받아들고 군대를 가게 된다는데 좌절한게 아니라 월드컵을 보지 못한다는 것에 좌절했습니다.    게다가 90년 월드컵멤버들은 역대 최강이라 불릴만 했습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역예선을 전승으로 가볍게 통과하는 괴력까지 발휘하게 됩니다.  (그 당시 제 기억으로는 아시아 지역 티켓이 딱 두장 정도였는데도 말이죠)  그러나..결과는 역대 월드컵 중 가장 참담했죠…

94년과 98년 월드컵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94년 미국 월드컵때는 호마리우와 베베토의 서커스를 구경하느라 입에 감탄사를 달고 살았습니다.  98년의 프랑스는 정말 무적이었구요..   지단의 그 아름다운 패싱과 드리블은 지금도 잊기가 힘듭니다.  90년대 들어서는 한국축구가 탄탄대로를 달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름다웠던 2002년…

2002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저는 우승후보로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꼽았더랬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게 저로서는 당연했습니다.  프랑스의 기세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유로 2000을 거머쥘 당시의 프랑스는 그야말로 철옹성이었거든요.    그런 프랑스를 패배직전까지 몰아붙인 이탈리아의 왕~짜증 수비도 어쨋든 인정할만 했습니다. 

철옹성이라고 보고있었던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만나 거의 손도 못써볼 수준으로 답답한 경기를 하는것을 보고 정말 짜증나는 이탈리아의 찰거머리 수비에 존경심까지 일었습니다.   그런 이탈리아가 미드필드에서 상대방의 공을 짤라서 빠르게 역공을 펼칠 때면 정말 도살자로 돌변합니다.  인정사정 없이 상대진영을 유린하면서 dirty goal이라도 꼭 넣고야 말죠.   유로 2000의 프랑스전이 딱 그랬습니다.

이탈리아가 자국의 팬들에게 토마토 세례를 받는 것은 항상 그렇게 이기고 있다가 끝나기 직전에 동점을 허용하고 연장까지가서 역전을 허용하거나 승부차기에서 지기 때문인데요.  9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막강 화력의 브라질 듀오인 호마리우와 베베토를 철통같이 막아놓고도 결국 페널티킥 실축으로 모든걸 날렸었지요.

유로 2000에서도 프랑스에 막판 동점골을 허용한데다 골든골을 허용하면서 다잡은 승리를 날려버린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2002년때 설기현이 동점골을 넣는 것을 보고 ‘공식대로 되어가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동점골 이후에는 안정환의 골든골이 없었더래도 단 1%도 우리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페널티킥 승부로 갔더라도 분명 비에리같은 핵심선수가 실축할 것을 느끼고 있었죠.

모르긴해도 이탈리아 선수들과 국민들 역시 동점골 순간 ‘악몽이 또 찾아왔다’라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을 겁니다.   게다가 퇴장당한 또띠만 하더라도 세리에A에서 선수들끼리 뽑는 최고의 더티플레이어상(?)을 최근까지도 수상하고 있는  악질중의 악질입니다 (기량은 발군이지만요 ^^)

 

좋아 그런데 뭐가 문제지 ?

여기까지가 저의 짧막한 월드컵 축구관전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좀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때도 막판에 그런 감정이 생겼었지만요… 좀 묘하고 찝찝한 기분을 버리지 못하겠네요.

솔직히 이렇게 말로 설명하기 뭐한 기분을 느끼고나서 스스로 죄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일단 언론과 기업들이 월드컵을 가지고 필요이상으로 분위기를 과열시키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축구가 이제는 축구자체를 넘어선 그 무엇인가가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서포터들과 그를 후원하는 기업과 그들 서로간의 치열한 공방에 눈살이 찌프려집니다.

승리지상주의로 점철된 상업주의와 냄비근성이 축구를 철저히 대표팀경기와 그외의 축구로 항구적으로 분리해 버릴까봐 걱정스럽습니다. 

이 ‘냄비근성’이란 것이 골수축구팬과는 겉으로 보기에 백지장 한장 차이 밖에 없는 것 같아서 저로서는 더 조심스럽게 됩니다.    이 둘을 그나마 구분시켜주는 단어가 ‘맹목성’입니다.   여러가지 다른 느낌의 단어로도 표현 될 수 있겠지만 ‘맹목성’이 가장 나은 대안이라 보여지는군요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도 이러한 논리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어쩌다 한번씩 이 세상에 등장하는 사이비 종교들도 결국 ‘맹목적추종’이 근간을 이루고있죠.

황우석 박사의 사건이나 여러가지 분야에서도 이러한 ‘맹목성’이 후유증을 불러오곤 하죠

정작 그 중심에 선 대개의 주인공들이 맹목적이지 않은 반면 주위의 추종자들은 거의 일방적이다 시피 맹목적일 때가 있습니다.    

2002년에 사실은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공공장소에서 한국팀 경기를 보다가 좋은 역습찬스에서 안정환이 한발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오프사이드에 걸려들었고 하마터면 골키퍼와 1:1로 무인지경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자주 있는 일이죠)    이럴때 골수축구팬들은 오프사이드라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오긴 합니다만 대개 선심이 못봐주기만을 바라고 있죠. (그리고 선심의 기가 올라가면 대개는 잽싸게 선수에게 욕설을 날립니다 -.-)

선심이 기를 바로 들더군요.  저는 혀를 끌끌 찼습니다. (공공장소였기에..)

주심이 따라와서 바로 오프사이드를 불었습니다.

그…때 … 옆자리의 여학생 5-6명이 심판에게 고래고래 ‘안정환 오빠는 잘못한게 없다’고 고함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오프사이드가 뭔지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  사실 그 전부터 그 분들은 설기현 선수나 박지성이 공을 잡으면 꼭 정환오빠가 골을 넣어야 하니까 그쪽으로 패스해야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패스하지 않는 선수들을 증오하더군요 -.-

저는 바보같이 느린화면(보통 오프사이드 판정때 느린화면을 내보내주죠)을 보고 ‘오프사이드가 맞네’라고 무심코 내뱉어 버렸고 후반전은 다른 곳에 가서 봐야했습니다. (굳이 싸우느라고 경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저 역시 고래고래 소리치고 욕을 하면서 축구를 봅니다. 심판에게 듣기 거북할 욕설까지도 서슴치 않죠.   2002년 직전까지만 해도 황선홍, 유상철 선수는 저에게는 그야말로 ‘대표팀에는 필요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두선수가 폴란드전에서 보란 듯이 릴레이 골을 넣다니요…   그 다음에는 마음속으로 두 선수에게 사과했습니다. 

골수팬과 냄비팬은 백지장 한장 차이입니다.  그냥 조금 더 생각해보고 비판하고 반성하다 보면 냄비팬은 골수팬으로 바로 넘어 올 수 있습니다.   요즘의 언론과 기업은 정말 히틀러 시대의 선전상 괴벨스가 무색할 지경으로 모든 사람들을 맹목적인 집단 광기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축구를 즐기세요

여러분의 월드컵 기간은 언제까지 입니까?  혹시 우리나라가 탈락하는 날 여러분의 월드컵 기간이 끝나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팀이 16강에 진출하든 4강에 진출하던 저는 결승전이 끝나는 그 날까지가 저의 월드컵 기간입니다.

이번에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이 진출하는 세브첸코가 이끄는 우크라이나와  드로그바가 이끄는 코브티브와르도 기대되고 아르헨-코브티브와르-네덜란드-세르비아몬테니그로가 속한 죽음의 조 경기역시 입맛을 다시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고의 선수였다가도 하루아침에 문제있는 선수로 변신하는 냄비언론과 한국팀이 부진할때 자신들의 광고를 바로 내려버릴 기업들에게는 더 이상 기대지 마십시오.   다른팀들도 눈여겨 봐주시고 블로그에 올라오는 축구 매니아의 면밀한 경기분석도 놓치지 마십시오

이상으로 늙고 병든 골수, 광 축구팬의 조그만 소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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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월드컵과 냄비…나의 월드컵 이야기

  1. 원아이드잭

    재미있게 봤슴.. 데미트리오 정도는 안되더라도 나도 이제부터
    스포츠 관련 글을 좀 써봐야 겠구먼..

    맹목성.. 그거 참 위험한거지.. 백퍼센트 동감..

    그리고 덕분에 메타블로그에 등록하고 나서 방문자가
    늘어나는게 보이는구만.. 고마우이..

    그래도 당구를 져줄 수는 없음.. 알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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