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험한 매니아의 길

By | 2006-08-29

얼마전 12v 1000mA짜리 아답터를 찾느라고 집안 곳곳을 뒤지다가 예전의 툴박스에서 처음 시작할 때 만들던 1/35 스케일 독일군 인형을 발견했다.

10년전쯤 이던가 ?

벨린덴에서 나온 54mm 피규어를 열을 내어 만든적이 있었다.  뭔가 집중하고 잡념을 없애기 위해 시작했었는데 시작하고 보니 판이 점점 커져갔었다.

붓을 사고 에나멜을 사모았다.  에나멜은 사고나서 집에서 작업을 시작하려면 항상 필요한 색이 없었다.  나는 예전엔 타미야 제품이 무조건 제일 좋은 것인줄 알았다.   그러나 타미야의 에나멜은 인형에는 맞지 않았다.  왼쪽 사진과 같이 인형의 얼굴을 칠할때는 블랜딩이 제대로 되지 않아 항상 망쳤었다.

그걸 고민하다 보니 여러 자료집과 제한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었다.  그때는 웹이란 단어도 생소할 때였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사실을 알게되었다.   인형의 얼굴을 칠할때는 유화물감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 그리고 에나멜중에서는 험브롤이 블렌딩이 잘 된 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발견한 뒤로 ‘취미가’를 매달 사서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블렌딩, 웨더링 등 기초 테크닉에 대한 갈증이 심해져갔다.  그래서 하는수없이 아마존 등을 뒤져서 외국자료들을 사모으고 헌책방을 뒤져 취미가의 과월호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박기갑, 원영진 등의 이름이 항상 우상처럼 각인되었다.

아마존에서 참고서적들이 도착하자 작업에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유명한 작품사진들을 여러장 보고나서 내것을 보니 정말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그 즈음 또한번 고민에 빠졌는데 저 사진속의 독일 위장복 바지의 패턴을 정확히 몰라 조색을 어떻게하고 무늬를 어떻게 그려넣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또 교착상태에 빠져버렸다.     어쩔수 없이 또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결국 독일 친위대 자료집을 구하게 되었고 또한번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시행착오가 거듭될 수록 값비싼 벨린덴 인형들이 무차별적으로 잡동사니통속에 던져지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론 IMF때문에 2인 1조 인형 한세트에 35000원 정도는 줬던것 같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연습용으로 드래곤의 인형들을 대량으로  샀다.  (5천원에 8마리…-.-;;)

아무리 조립을 잘해도 어깨와 팔사이의 접착에 틈이 벌어지고 해서 그때쯤 퍼티를 사야했다.   퍼티에 종류가 많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고 여러개를 다시 사야했다.    뭐  이런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필수적이라는 것들을 사다보니  (정밀한 작업을 위한  확대경도 사고..-.-;;)  정말 기둥뿌리가 빠지겠더라

결국 내가 행진을 멈추게 된것은 컴프레서 때문이었다.   인형을 넘어서서 Tiger I 전차와 퀴벨바겐, 메서슈미트 109를 사고나서는 컴프레서가 없이 작업한다는 것은 곡예에 가깝다는 결론을 스스로 냈고  컴프레서를 사기 시작했다가는 여러종류의 에어브러시와  작업을 위한 작업대, 신나, 기타 등등 거의 자원을 무한대로 까먹을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처음 구경한 컴프레서가 미제 TESTOR사의 3-4백달러를 호가하는 제품이었고 동일 브랜드로 원목 케이스에 담겨있는 고급 에어브러시까지를 구경한 후로는 값싼 대만제 컴프레서와 에어브러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게 되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그걸 포기하는 대신, 인형만 전문적으로 만들자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또 아니었다.   독일군만 만들다가 미군, 영국군,러시아군을 만드려고 하니 에나멜 한세트가 또 필요하게 되었다.  내가 가진 조색이 모두 독일군복에나 어울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독일군만 계속 만들었었다.   위의 사진은 내가 처음 모델링을 시작할 당시에 열악하고 제대로 뭘 모르는 상태에서 그나마 만들어냈던 몇 안되는 완제품이었던것 같다.  

그리고 그나마도 결혼을 하고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래서 난 매니아들을 존경하는 편이다

무슨 분야에서 뭘 하든지 간에 존경한다.

그들은 웬만한 장벽을 계속해서 넘어왔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장벽,  기술적인 좌절, 주위의 반대와 겐세이~

10년전의 유물 하나가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밤이다 ㅎㅎ

Facebook Comments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