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링의 추억

By | 2010-08-27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벽장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도구들, 나버지는 모두 버렸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달가량 쉬고있는 입장에서 그냥저냥 놀기만 했다가는 우리 마님의 눈밖에 나기 십상이었다. ‘무노동 무임금’이 아닌 ‘무노동 가사일’ 원칙을 신혼초에 주장하며 못버는 사람이 당연히 가사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건 나였다.  그래서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은 내 일이 되었는데 어차피 할거 그동안 못한것들을 하나씩 해보자는 생각에 시간이 날때마다 구석에 쳐박혀있는 것들을 정리하거나 버리는 일이 매일같이 계속되었다.
결혼직전 신혼집에 내가 가져온 물건들 중 마님이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본 것은 모델링 도구들이었다.  총각시절 한때 심취한 모형만들기 (특히 1/35스케일 피켜, 그중에서도 독일군) 도구들은 적지않은 부피였고 좁은 단칸방 신혼집에 그것들을 널어놓기는 내가 봐도 민망스러워 일단 커다란 도구함 몇개에 그 녀석들을 나눠서 적재해 놓고 10년을 보냈다.  마님은 집이 커지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선전을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애같이 인형을 잡고 있을게 아니라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했다.
그때부터 서서히 벽장에 쳐박아 놓은 그 모델링 도구들은 기억에서 잊혀지기 시작했고 이사를 할 때마다 그 부피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내가 집에서 쉰지 한달째 되었을 때 나는 책장을 포함해 집안 구석구석을 다 깨끗이 치워놓았고 마지막 순서는 모델링 도구들이 들어있는 그 벽장이었다.
그를 위해 나는 동네마트에서 50리터짜리 커다란 분리수거 쓰레기 봉지를 샀다. 처음부터 모든걸 그냥 버릴 심산이었던 것이었다. 베란다에 있는 커다란 벽장문을 열고 그 상자들을 10년만에 열어보고 나서야 나는 애초에 그들을 버릴마음이 없었던 것을 깨달았다. 일단 도료들을 일일히 열어보았다. 나에게는 다섯가지 종류의 도료들이 있었다. 타미야의 에나멜 시리즈, 역시 같은 타미야의 아크릴컬러들, 그리고 몇개의 스프레이, 테스터의 에나멜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해외에서 어렵게 주문해 구한 험브롤 에나멜들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귀하신 몸...험브롤 에나멜


초기에 나는 그저 타미야 에나멜들을 이용해 인형의 얼굴을 칠했었는데 그게 참 볼품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블랜딩이란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유화물감들을 새로 들일 생각도 없었다. 귀찮아서 락카의 사용도 자제하고 있었던 마당에 새로운 종류의 도료를 사용한다는 것은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험브롤 에나멜과 테스터의 에나멜 들이었고 그 당시로서는 열악한 인터넷환경을 뚫고 험브롤 에나멜들을 해외에서 구입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곧바로 험브롤들을 열어보지 못한채 결혼했다.
사실 10년만에 다시 보는 험브롤 특유의 페인트통같은 뚜껑을 처음 열때 다는 그것들이 모두 굳어있으리라 짐작했다. 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살아있었다. 대부분의 테스터 에나멜들도 그랬다. 그 사실을 확인했을 때 나는 이들을 몽땅 버리면 안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베란다에 앉아 버릴것과 살려야 할것들을 심판하기 시작했다. 수십개의 친숙했던 타미야 에나멜들은 버려졌다.
그리고 두번째 상자에서 역시 어렵게 구해서 사재기 해놓았던 벨린덴 인형들을 본 순간, 나는 이제부터 피겨들만 다시 만들어보기로 방향을 굳혀버리게 되었다. 아깝지만 타미야의 티이거 I 초기형 전차와 드래곤의 미완성 큐벨바겐은 버려졌다. 그리고 10년전에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타미야와 드래곤의 인형들 대부분이 버려졌고 벨린덴 인형들은 거의 남게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벨린덴의 미완성 인형들. 타미야 아크릴 컬러에 기대서있다.


헐~ 우습게도 이미 못쓰게 되어 버릴물건들을 다 추려내고 나니 새로 작업을 시작하기엔 2% 모자란 환경이었다. 접착제도 없었고 커팅매트나 퍼티도 없었다. 예전에 내가 애지중지하던 일자형 니퍼도 어디론가 도망가고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벨린덴의 인형들은 뭐랄까~ 포즈가 다양하고 볼륨감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


뭐~ 눈을 질끈감고 다시 모자란 도구들을 타미야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하여 아래와 같이 다시 사들였다. 커팅매트는 이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A2크기의 믿음직한 놈을 발견하여 얼른 업어왔다. 아마 도색전까지의 과정은 이정도 도구들로 웬만큼 버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서페이서까지 살아 남아있으니 그 단계까지는 작업할 수 있겠지. 도색작업은 일단 하지 않고 남아있는 벨린덴들의 조립만 완성해볼 생각이다. (타미야의 1/16 피겨도 하나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타미야 홈페이지를 통해 다시 사들인 도구들...이러면 또 시작인데 흠~


자 이렇게해서 일단 아래와 같이 단촐하게 도구함들을 다시 꾸려놓고 시간날때마다 이 녀석들을 완성할 생각인데 도색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하면 아마도 살아남은 붓들과 에나멜만으로는 어림도 없을거란 생각이 든다.  내가 독일군 피겨들만 만들게 된 것은 너무 많아질 도료들을 우려한 탓이었다.  영국군, 소련군, 미군을 색칠하기 위해선 또 그에 맞는 컬러세트들을 구비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난 모델링을 그만둘 시점까지 그리 잘만드는 모델러도 아니었었다. 웨더링, 블랜딩, 하일라이팅에 대한 개념만 간신히 알고 있던 그저그런 수준의 모델러였으니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롭게 정리한 도구함과 모형들


오~ 설마 1년후 내 블로그가 모델링 포스트로 가득차고 모델링 블루스라는 책을 집필하고 있지는 않겠지 ?

Facebook Comments

4 thoughts on “모델링의 추억

  1. 우왕

    사연이 마치 토이스토리3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드네요ㅎㅎㅎ

    안보셨다면 꼭 보시길!

    Reply
  2. whiterock

    부럽습니다. ㅠ.ㅠ
    학생때는 돈이 없어서, 지금은 애기들과 마눌때문에 해볼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Reply
  3. demitrio

    저도 뭐 준비만 살짝 갖춘것이지 언제 만들지는 모르겠습니다 ^^ 토이스토리는 봤죠 나중엔 정말 감동적이더군요~~

    Reply

효준,효재아빠 에 응답 남기기 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