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Class, 브라질

By | 2010-06-21

브라질 vs 코트티부아르 3:1 – 다른 색깔의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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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기골을 작렬시키는 엘라노

해설자의 말처럼 이번 브라질 대표팀의 색깔은 이전에 비해 확실히 다르다. 80년대 지코와 소크라테스가 주도하던 탄성을 자아낼 만한 현란함과 질풍같은 속도, 한명이 두세명쯤은 우습게 제치는 드리블 대신 세밀하게 짜여진 그물망과 같이 그들은 상대방을 그물속에 옭아매 놓고 서서히 옥죄는가 하면 가끔은 빠르게 치고 올라가면서 자유자재로 기어변속을 하는 프리메라리가의 상위권 팀 같은 색깔을 지녔다.
그러다 보니 지난 북한전도 그렇고 이번에 만난 코트티부아르전 또한 그리 재미난 경기는 되지 못했다. 이 두팀은 브라질의 그물망에서 완전히 제어당하며 천천히 조여졌다. 경기의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았으며 필요없는 곳에서는 절대 속도를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상대방의 뒷공간을 찔러보면서 그들의 능력을 가늠해 보았다.
질풍같은 오버래핑에 능한 마이콘으로서는 자신의 팀이 별로 재미없을 런지도 몰랐지만 그 역시 그런 팀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언뜻보면 전반 초반은 코트티부아르가 대등하게 브라질에 맞서는 것 처럼 보였다. 그들의 면면 역시 브라질에 꿀릴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고 지난 포르투갈 전과는 다르게 최전방에는 디디에 드로그바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브라질은 조금씩 조금씩 주도권을 가져왔고 문전 오른쪽에서 패스를 받은 카카는 겨우 한뼘도 안되는 공간으로 침투하는 파비아노에게 한치의 오차도 없는 패스를 내줬다. 파비아노는 지난 경기에서 결정적 찬스를 여러차례 놓친바 있는데 이번엔 달랐다. 골키퍼를 보고 그의 머리위로 송곳같은 슈팅을 날렸고 이것이 브라질의 선제골이 되었다. 이때가 전반 25분경이었고 코트티부아르는 서서히 말리기 시작한다.
지난 경기에서 발군의 활약을 보였던 왼쪽 미드필더 제르비뉴가 왜 보이지 않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살로몬 칼루는 마이콘에게 철저히 막히는 중이었다. 물론 마이콘의 뒤에 서있는 루시우와 세자르 골키퍼는 올 챔피언스 리그에서 드록바와 칼루의 소속팀인 첼시를 물리친 경험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기억때문인지 드록바와 칼루는 인터밀란 출신 브라질 3총사에게 철저히 봉쇄 당했다.
후반들어 단 5분만에 터진 파비아누의 추가골은 이번 대회들어 가장 아름다운 트래핑에 의해 완성되었다. 비록 이 골이 예전에 베르캄프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터뜨린 골 만큼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파비아누는 그 좁은 공간에서 3명의 수비수를 두번의 트래핑으로 벗겨내며 왼발슛을 터뜨려 점수차를 벌렸다.
느린 화면으로 본 결과 그는 트래핑 과정에서 두번이나 볼이 손에 맞았음에도 골을 인정받았다. 골을 터뜨리고 나서 하프라인으로 올라올 때는 심판조차 그에게 팔에 혹시 맞지 않았느냐고 시늉을 할 정도였다.
추가골을 얻어맞은 코트티부아르는 다리에 맥이 풀렸다. 만약 카카의 컨디션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상태였다면 몇골을 더 먹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에릭손 감독은 그제서야 제르비뇨를 집어 넣었고 칼루는 오른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제르비뉴는 그 때부터 코트티부아르에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카카는 비록 부진한 와중에도 계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이날의 세번째 골 역시 그의 발끝에서 비롯되었다. 중앙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패스를 받은 카카는 앤드라인 근처까지 파고들다가 때마침 오른쪽 골에이리어 뒤쪽에서 침투하던 엘라노를 보고 기가막힌 패스를 꽃아 넣었고 엘라노는 북한전과 마찬가지로 강하지 않지만 정확한 킥으로 코트티부아르를 완전히 침몰시켜 버렸다.
이후 감정이 고조된 양팀은 거칠어 졌고 이 과정에서 엘라노가 부상으로 실려나가고 카카는 코트티부아르의 교묘한 몸싸움에 말려들어 10분사이에 경고 두번을 받고 퇴장당한다.  이 어수선한 틈을 이용해  코트티부아르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교묘하게 무너뜨린 드록바의 침투와 헤딩골로 한골을 만회하게 되지만 경기는 이미 기운 뒤였다.
G조의 운명은 오늘 밤 벌어질 북한과 포르투갈 전이 끝나면 거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관전 포인트는 북한이 과연 승점을 따낼 수 있는가와 포르투갈이 몇점이나 득점할 것인가 이다. 코트티부아르는 3:0으로 질 수 있는 경기에서 한골을 만회했고 이 골이 16강 진출에 어떤 의미를 줄수도 있을것 같다. 만약 포르투갈이 북한과 비기기라도 하는 날에는 16강 진출을 단념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비록 브라질과의 최종전에 카카와 엘라노가 못나온다 하더라도 브라질이 이번 대회에 보여주고 있는 그물망 축구는 이전보다 허약해 보이는 포르투갈의 수비진에 두골이상은 선사할 것 같이 보인다.
코트티부아르는 비록 3:1로 졌지만 아직 끝난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북한전에서 소나기 골세례를 퍼부어야 하고 그 가능성은 포르투갈보다 조금 더 높지 않을까 하는게 내 생각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북한과 같은 동아시아 팀들은 테크니션들에게도 좀 약하지만 피지컬을 동반한 테크니션들에게는 더 약한거 같더라는 경험치 때문이다.  작년 U-20월드컵에서도 홍명보호가 완전히 당해버리고 말았던 가나전에서도 그런 경향이 좀 드러났었다. 나의 나이지리아전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도 사실 거기에 있다.
브라질은 비록 전통적인 색깔을 버리고 둥가 감독에 의해 수비와 미드필드를 단단히 하는 압박축구로 변신했지만 오히려 안정감은 더 높아진 느낌이다. 이대로라면 브라질을 막을 팀은 거의 없어 보인다. 부상이나 퇴장 같은 변수가 없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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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First Class, 브라질

  1. 늙은여우

    카카의 그 패스는 말씀처럼 정말 감탄스러웠습니다.

    컨디션이 안좋은데도 저 정도까지 해주는데, 얼른 컨디션이 좋아져서 예전 월드컵에서처럼 그 아름다운 중거리슛을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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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이번 대회는 유명선수들이 좀 부진한게 눈에 띄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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