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했지만 존경받을 만한 일본

By | 201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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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대회직전까지 많은 고초를 겪었다. 아마 본선에 진출한 32개팀중 출전 전부터 자국팬들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저주를 받았던 팀은 일본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이런 분위기 대로라면 3연패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것도 대패를 예상했다.
1차전 일본의 승리는 사실 전형없는 동네축구 같은 것이었으나 그것은 설움을 당하고 있는 벼랑끝에 선 일본선수들의 울분의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이 아르헨티나에게 처참하게 무너졌기 때문에 일본과 네덜란드의 경기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묘할 수 밖에 없었다. 아시아 팀이 처참하게 무너지길 바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본이 네덜란드에게 비기거나 혹시라도 이길 경우 사촌이 논을 산 모습을 앞으로 일주일동안 바라보고 있을 걸 생각하면 너무 씁쓸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분명 선수비 후역습 형태로 나올것이 분명했는데 어떤 식의 수비를 선택하는의 문제였다. 올 챔스리그에서 바르샤를 상대로 무링요가 보여준 대로 수비를 뒤로 물린 형태에서 시작할지, 아니면 레알 마드리드가 바르샤를 상대할 때와 같이 수비를 오히려 끌어올린 후 공수 간격을 20미터도 안되게 유지하여 공간 자체를 없애 버리는 방법 등 두가지에서 말이다.
전반전 일본은 후자의 방법을 들고 나왔다. (한국팀은 전자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방법은 훌륭하게 먹혔다. 게다가 일본은 한국팀 처럼 긴장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더 이상 잃을것 없는 외인구단 같이 보였다. 양팀의 스타팅 라인업은 1차전과 똑같았다. 네덜란드는 덴마크전에서 자살골을 얻어내기 직전까지 보여줬던 답답함을 그대로 이어받아 일본전에서도 별 다른 해법이 없음을 보여줬다.
오히려 간간히 오른쪽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본의 역습에 혼쭐이 나며 전반을 마쳤다.
경기 점유율은 7:3 정도로 거의 반코트 경기에 가까웠지만 일본의 투지는 놀라웠다  네덜란드가 경기는 주도했지만 영양가가 전혀 없었고 슈팅숫자도 3:5로 오히려 일본에 뒤졌다.
후반전 드디어 네덜란드의 선제골이 터졌다. 왼쪽 문전 경합에서 흘러나온 볼을 스나이더가 예의 그 강력한 중거리 슛으로 일본의 골네트를 가른 것인데 사실 일본의 골키퍼가 막아낼 수 도 있었던 (펀칭방법의 잘못) 골이었다. 이때부터가 사실 주목할만 했다. 일본이 대량실점을 하지 않고 이대로 마치려고 수비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만회를 하기 위해 앞서 나가다가 추가골을 허용할 것인가 말이다.
그러나 그 시점부터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일본은 남은 시간동안 3장의 교체카드를 모두 공격적으로 하고 그때부터의 게임을 지배했다. 중앙수비수인 툴리오가 타겟 스트라이커 자리에 까지 올라가면서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고 양쪽 윙백인 코마노와 나가토모까지 자리를 바꾸고 최전방 윙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반코트 게임을 벌이기 시작했다. 워낙 완강한 일본의 공격이 계속되다 보니 네덜란드는 하프라인 아래로 내려올 수 밖에 없었고 이미 지쳐버린 반 더 바르트와 슈나이더, 반 페르시를 엘리아, 아펠라이, 훈텔라르로 바꾸면서 역습을 노렸다.
일본이 위험수위에 가까울 정도로 공격에 매진하는 틈에 엘리아와 아펠라이가 골키퍼와 1:1 찬스를 맞기도 했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가고 일본의 맹공은 계속 이어졌다. 결국 중앙수비수 툴리오가(-.-) 길게 넘어온 것을 왼쪽으로 떨구고 교체되어 들어간 오카자키가 돌아서 침투하며 결정적인 슈팅을 날렸지만 골대위를 살짝 넘어가고 말았고 그것으로 일본의 공격도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일본은 비록 패했지만 A급 팀인 네덜란드를 맞아 아시아 팀의 힘과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된다. 한국을 대신해서 말이다. 게다가 마지막 경기인 덴마크 전에서의 가능성도 시사하는 경기이기도 했다.
비록 첫경기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동네축구같은 모습으로 비아냥을 들었지만 이 한경기로 다시 모든것을 원점으로 돌려세웠다. 일본에 대해서는 아직도 감정적으로는 복잡하지만 마지막 덴마크전에서도 나름 선전하길 약간만 기원하겠다 (아~ 이 벤뎅이 속이란)
p.s – 이 경기를 보고 우리도 아르헨 경기에서 이 정도 경기를 하고 졌으면 좋았겠다란 생각을 내내 했다…에효
p.s – A급 팀들이 그다운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네덜란드도 여전했다. 네덜란드 역시 현재까지는 2006년의 파괴력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시간이 갈 수록 살아나는 경향도 없잖으니 그건 좀 더 나중에 결론 내릴 일이다.  현재까지로서는 독일과 브라질 정도만이 명성에 걸맞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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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oughts on “패했지만 존경받을 만한 일본

  1. 뚜보기

    한국의 아르헨티나전 그리고 일본의 네델란드전, 마지막으로 북한과 브라질전은 경기외적인 관심을 끌었던 경기였다. 그것이 비록 개인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아시아에서 대표로나간 4팀중 3팀이라는 점도있고 인종적으로도 더욱 그러했다. 최소한 내게는 .그래서 같은 아시아 대표인 오스트레일리아는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북한이 2:1로 지는것도 보았구 오늘 일본이 네델란드에 1:0으로 지는 것두 보았다. 그러나 한국의 아르헨티나전은 보기는 보았으되 끝까지 차마볼 수가 없었다. 정말 치욕그자체였다. 아마 일본 국민도, 북한국민도 똑같이 졌다고는 하지만 ,나처럼 치욕스러워서 자국 팀의 경기를 끝까지 다 보지 못하지 않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경기후에 마음속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면, 나는 한조각의 희망도 남겨주지 못한 우리 대표팀에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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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전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봤던것 같습니다. 단 한경기로만 판단할 수는 없는 만큼 나이지리아 전을 지켜봐야죠. 그러나 예로부터 이어오는 전통을 깨지 못해 아쉽긴 아쉽습니다~ 매우 진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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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indy

    일본의 선전이 놀랍고 질투가 나기도 했으나, 네덜란드의 실력이 원래 이랬나 싶긴 하더라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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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덴마크전에서도 네덜란드는 좀 아니었죠~ 이번대회는 이전 월드컵보다는 좀 선선해서 좋을거 같은데 그게 또 아닌가봅니다~ 미국월드컵때는 정말 더웠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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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정도령

    일본이 월드컵에서 최악과 최고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는구나. 나도 우리나라가 아르헨전에서 일본처럼 경기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더라구. 물론 네덜란드에는 메시같은 선수가 없고 어처구니 없는 자책골 상황도 없었으니 일본이 저 정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혼자 위로를 하긴 했다. -.-;

    어쨌든 일본 대단했다. 만일 비겼다면 최후방과 최전방을 담당한(^^) 툴리오가 MOM 감이고.. 맨날 신경질만 낼 줄 알던 오쿠보도 상당했다. 오쿠보 요넘은 이천수를 생각나게 한다. 경기 스타일은 다르지만 성질머리는 비슷한듯.

    유재석 감독(ㅋㅋ)은 경기가 끝나자 분한 표정이 드러나더라. 정말 이길 작정을 했던 거 같다. 이런 정신력을 진돗개 감독(-.-)이 본받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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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그래 툴리오가 MOM이지
      오카다 감독은 확실히 정신세계가 일반인과는 다른듯… 바라보고 있으면 참 묘하다~ 특히 끝날 때 마치 먹잇감을 놓쳤다는 그 분한표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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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정도령

    그나 저나 호주는 지지리 운도 없는 거 같다. 경기마다 10명이 하게 되니.. 큐얼이 퇴장감은 아니었는데.. 아직 대회 초반인데도 논란이 되는 심판 판정이 좀 있네. 인정 못받은 미국의 마지막 골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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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응 뭐 어차피 페널티였으니 노란색만 꺼냈어도 되지 않았나 싶긴 한데…그래도 골과 직접 관련있으니 그랬겠지… 어쨋든 안됐음
      미국 골이야 말로 최악의 오심이 아닌가 생각. 정말 완벽한 골이었거든…최고의 골중 하나이기도 했고…그 짐승같은 문전대시라니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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