뢰블레의 시대, 막을 내리다

By | 2010-06-18

처음부터 어제 벌어지는 세경기 모두를 관전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한국팀의 경기가 있는데다가 그와 관련있는 그리스/나이지리아전과 뒤이어 벌어지는 이변의 무대를 기대하면서 말이죠.
A조에서 16강에 오를 팀으로 저는 처음에 프랑스와 멕시코를 꼽았습니다. 그러나 멕시코가 남아공과의 경기에서 기대이하의 경기를 보이면서 ‘아닌가보다~’라고 생각했었죠. 그렇지만 프랑스 역시 그리 좋지는 않았기 때문에 내심 이변을 기대하면서 이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어제 밤 멕시코는 정말 완벽하게 프랑스를 잡아냈습니다. 스위스가 스페인에 벌인 것과 같은 저인망 수비로 제압한 것이 아닌 자신들의 공격적인 성향을 고스란히 투영하면서 2:0의 완승을 거두었고 지금까지의 1라운드와 2라운드 4경기를 모두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축구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정확한 기준이란건 없지만 A급 팀이라면 어제 무너진 프랑스, 아르헨티나, 브라질, 스페인,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정도가 항상 그 다운 레벨을 보여주는 팀이라 생각됩니다.
바로 그 아래 레벨에는 정말 수많은 팀이 있지요. 언제라도 A급 팀을 이길 수 있는 그런 끈적끈적한 팀 말입니다. 이번에 나오지 못한 크로아티아나 우루과이, 칠레, 파라과이, 미국, 세르비아,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웨덴, 덴마크…그리고 아프리카 대다수의 팀들과 어제 선전한 멕시코 까지….(이상을 B급이라고 한다면)
아마 그 바로 아래 단계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강호들과 유럽의 약체들..중미의 하위권 팀이 있을것 같고 (C급) 맨 아래에는 축구의 변방국들(예를들어 인도,싱가폴…)-D급

제 나름의 클래스 분류로만 따지자면 이렇게 네단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고 우리의 과제는 이제는 한레벨 정도 올라설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C급팀이 A급팀을 잡으면 이변이라고들 하죠. 미국이 잉글랜드를 잡아내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제 멕시코는  한국팀의 훌륭한 롤모델로서 바로 직전에 끝난 한국과 아르헨티나전의 본보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자신들의 공격적인 성향을 처음부터 끝까지 잃지 않았고 그것을 결국 관철시키면서 경기 역시 승리로 이끌었거든요. 패하더라도 그렇게 자신의 색깔을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냉정하게 우리팀을 아직도 C레벨로 분류한 이유지요.

어제 멕시코에게는 위기가 한차례 있었습니다. 도스 산토스와 공격을 양분했던 카를로스 벨라가 이른시간에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빠져나가야 했거든요.(이번대회 경기중간 햄스트링 부상이 왜이리 많은 건가요)  그러나 후반까지 차례로 들어간 세명의 교체멤버들이 모든 골을 합작해 냈습니다. -.-
멕시코의 주장 마르케스는(바르셀로나) 공수양면에서 정말 기가막히게 경기의 템포를 잘 조절하더군요. (내가 생각하는 MOM) 다음시즌부터 맨유에서 뛰게될 에르난데스는 프랑스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수차례나 무너뜨리면서 결국 자신이 결승골을 터뜨렸고 벨라와 교체되어 들어간 바베라는 페널티 킥을 얻어냈으며 그걸 마지막 교체카드인 블랑코가 기가막히게 차 넣어서 프랑스를 무너뜨렸죠.

프랑스는 일단 도메네크 감독의 선수기용이 하나도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리베리 혼자 분전했지만 이번부터 새로 들어간 말루다 효과가 생각보다 적었고(그래도 이전보다 낫습니다만) 아넬카 역시 겉돌았습니다. 아비달은 실수 투성이 였고 그를 포함한 포백진 전체가 실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도메네크의 교체카드는 더 심했죠. 후반시작과 함께 아넬카를 빼고 지냑을 넣었는데 지냑은 들어가자마자 스텔스 모드로 돌변하더군요. 거기에 더해 오른쪽의 시드니 고부를 발부에나로 교체했는데 뭐 이로써 오른쪽 공격루트는 거의 제기능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오히려 발빠른 멕시코의 양쪽 윙백의 공격가담을 부추겼죠.  교체카드 한장은 쓰지도 않았습니다.

아마 프랑스로 돌아가면 도메네크 감독은 (어차피 사임이 예정되어 있지만) 언론과 축구인들의 십자포화를 피해갈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멕시코의 블랑코는 오늘도 후반 20여분을 남기고 들어와 발은 느렸지만 적재적소에서 기가막힌 패스를 날리며 완승을 도왔고 그 자신이 페널티킥을 차며 승리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비록 12년전 그에게 당했던 생각에 제 시선은 곱지 않았지만 37세라는 황혼의 나이에도 불구, 그런 노련함을 보여주는 블랑코에 마음이 가더군요.

이제 프랑스에게 자력 16강 진출 기회는 사라졌습니다. 우루과이와 멕시코의 승점이 벌써 4이고 득실차가 각각 +3, +2이기 때문에  승점 1, 득실차 -2인 프랑스는 최종전에서 우루과이와 멕시코가 비겨버리면 무조건 탈락합니다.  멕시코가 우루과이를 한골차 정도로 제압해 준다해도 남아공을 5:0 정도로 이겨야 진출이 가능해지죠. 우루과이가 멕시코를 한골차로 이겨도 남아공을 4:0 정도로 제압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프랑스의 16강은 물건너갔습니다.  남아공 역시 개최국이 처음으로 탈락하는 사례를 남길거 같습니다. 우루과이와 멕시코 양팀 모두 아르헨과 맞붙지 않기 위해 마지막 게임에서도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결과를 놓고보니 A조도 죽음의 조 였군요.  개최국과 시드배정국을 떨어뜨리다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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