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단상 ③

By | 2010-06-17

1.

1:4의 패배를 단순히, ‘괜찮아~ 다음엔 잘 할 수 있어’로 끝낼 생각이 나에게는 없다. 아마 나이지리아를 이기고 16강에 올라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 같다. 단순히 스코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번번히 자기기량을 꺼내놓지도 못한 상태에서 패배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같은 스코어로 지더라도 좀 더 화끈하게 질 수도 있는 건데… 뭐 지난 30년 가까이 이런 스타일이 경기를 봐왔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으나…번번히 이런식이면 좀 화가나긴 한다.
정말 멕시코 청소년 대회때의 그 화끈함은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
2.
오범석 카드는 일단 전반에 실패했다. 사실상 그쪽에서부터 아르헨티나의 공격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고 그 여파가 중앙과 오른쪽에까지 미쳤다. 첫골을 실점한 그 프리킥도 거기서 나왔다. 따라서 후반엔 김남일이 아니라 차두리가 들어 올 줄 알았다. 기성용은 수비는 그렇다 쳐도 공격에 있어서는 전반에 보인 그 중거리 슛처럼 골문에 접근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최고의 공격 옵션중 하나였다.
3.
수비 포메이션은 이도 저도 아니었다. 스페인 평가전처럼 대부분 내려와서 두줄로 진을 치고 지역을 압박하는 형태도 아니었고 최전방부터 1:1로 악착같이 압박을 하면서 패스미스를 이끌어 내거나 중간차단을 하는 방식도 아니었다.  아마 애초에는 전자와 같은 수비를 생각한 것 같은데 수비수들이 성급하게 볼을 빼앗으려고 달려들면서 오히려 1:1돌파를 당하고 주변의 동료가 그걸 도우러 올때 또 다른 공간이 생기면서 와해되기 시작했다.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면서 공격을 지연시켜야 했다. 북한선수들이 보여준 것 처럼 말이다.
4.
2라운드는 단 세게임이 치뤄졌지만 확실히 1라운드에 비해 골이 늘어나고 있다. 벌써 11골이나 터졌다. 경기당 4골에 육박한다는…(물론 한국팀이 기여한 바가 크지만)
5.
A조에서는 우루과이가 남아공을 3:0으로 이기면서 16강행을 거의 굳힌 모습이다. 프랑스는 잠시 후 멕시코를 같은 스코어로 눌러야만 자력으로 1위를 확정지을 수 있을 듯 하다.  반대쪽에서 16강전을 준비하는 아르헨티나로서는 프랑스나 우루과이 둘 다 껄끄러운 상대다.
우루과이는 남이 예선을 간신히 통과했으나 같은 대륙 출신으로서 서로의 장단점을 모두 잘 아는터라 껄끄러울 수 밖에 없고 프랑스는 2006년에도 보았듯 강팀들을 몽땅 잡아내고 결승까지 갔으니 그 또한 고민이다. 그래도 우루과이가 더 낫겠지.  그런데 이걸 어쩌나… 우루과이가 1위가 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더 높아보이니 말이다. 설마 아르헨이 2위를 하려고 일부러 그리스에 대패하거나 하진 않겠지?
6.
경기가 끝나자마자 제일먼저 박주영이 걱정되었다. 세게 청소년 선수권에서도 부담감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데다가 처음 출전한 2006 월드컵에서도 부진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이번 대회에서는 자신의 메이저 대회 첫골을 자살골로 기록했으니 말이다.
앞으로 한동안 박주영이 한국팀의 공격을 이끌어 나간다고 한다면 이 친구가 어쨋든 기가 살아야 하는데 정말 걱정이다. 그래도 이청용의 첫골을 밀어줬고 후반엔 아슬아슬한 프리킥을 날리면서 나아진 모습을 보였으니 앞으로도 더 나아지리라 기대한다.
7.
나이지리아는 한국과의 경기에서 자신들이 이기면 16강에 진출하기 때문에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선제골을 노리면서 나올 듯 하다.  이 경기야 말로 단단하게 지키면서 역습을 노려야 할 거 같다.
야쿠부를 막으려면 측면쪽에서도 차두리가 필요할 것 같다. 나이지리아와의 경기는 좀 더 편하게 하겠지. 대패한 심리적 타격도 만만찮기 때문에 자칫하면 긴장할 수도 있다. 제발…같은 아프리카 대회에서 (비록 청소년 대회지만) 강심장의 면모를 보였던 김보경이나 이승렬을 좀 투입해 달라.
8.
그리스의 남은 작전은 일단 패하지 않는 경기를 하는것. 즉, 일단 걸어잠그고 보는 것이다. 레하겔 감독이라면 아르헨에 이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을터, 일단 걸어잠그고 한두번의 기회를 노리는 2004년의 전술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가 선취골이라도 얻어내면 염치불구하고 전원수비로 끝까지 지키려고 할 것이다.
마라도나 감독은 마지막 경기에서 메시에게 휴식을 줄 가능성이 없지않다. 리드를 잡은 후 빼거나 반대로 경기가 안풀릴때 후반에 투입하려 할 것이다. 메시는 이미 너무 많은 경기를 통해 지친 상태이고 아직 갈길은 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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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oughts on “월드컵 단상 ③

  1. indy

    휴.. 패배의 충격보다 스코어의 충격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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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늙은여우

    정말로 져도 화끈하게 졌네요.

    사람 맘 참 간사한게, 일본도 네덜란드한테 관광당하길 바라는 이 마음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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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뭐 저도 그런 마음이 없는게 아니지만~ 나중에 일본에서 약올린다 하더라도 잘해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아시아의 관광은 한번이면 족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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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정도령

    1. 전반 스코어 2-1 정도로만 졌어도 이렇게 기분 나쁘진 않았을텐데.. 후반에는 마음만 급해서 맞장 뜨려다 더 두드려 맞은 경우인 듯 하다.

    2. 오범석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셈이지. 평소 기량을 전혀 못보여줬으니..

    3. 게다가 골문 앞에서 (얄미운) 이과인을 너무 자주 놓쳤다.

    6. 나도 박주영이 제일 걱정이다. 94년의 황선홍처럼 정신적인 데미지가 너무 커지지 않았을까 싶다. 문제는 우리팀에 박주영을 대체할 자원이 없다는 거지.

    PS) 아르헨티나의 골이 대부분 씁쓸하게 들어간 것도 아쉽다. 첫째골은 차치하더라도 셋째골은 오프사이드 비슷하고, 넷째골은 정성룡이 막아줄 수도 있었을텐데.. 물론 경기 내용으로라야 4-1이 억울한 점수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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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2. 오범석의 선발 출장은 욕먹을 사안이 전혀 아니지. 후반에 교체를 안했다는 것이 좀 충격적이었지… 이건 감독의 문제임

      3. 우리팀이 보통 월드컵에서 허무한 골을 허용한 사례가 많지. 뭐랄까 상대방 스트라이커가 가볍게 톡 차넣을 수 있는 상황이 오는 그런…말이야. 잘차고 잘막았는데도 골을 허용한 경우보다 말이야…

      6. 이 친구 상처가 오래갈것 같아… 나이지리아 전에서 부활한다 하더라도 그 트라우마는 계속 될거 같음 …

      맞아… 4:1이 억울한 스코어는 아니지. 정성룡이 실점도 많이 했지만 아르헨의 슈팅이 22개에 유효슛이 무려 11개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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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mitrio

      큰일이네요 …. 어젠 스코어 이상으로 잃은게 너무너무 많습니다 … 상상할 수 있었던 최악의 상황을 넘어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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